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 이윤엽 이야기 판화 그림책
이윤엽 지음 / 서유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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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만 산다면 세상은 다함께 행복할 것 같다.

우리의 터전인 땅에서 땅을 일구며 땅이 주는 것을 감사히 받으며 살아간다면 말이다.

하지만 나부터도 그렇지 못하다. 어릴 때부터 손에 흙 한번 묻혀보지 못했고

나이 들어버린 지금까지도 똑같다. 화분 하나 키우기도 겁난다.

기본적이며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소수고, 그마저도 늙어버렸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이 벌건 채 허상을 쫓아간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마음이 허하고 슬프다.

 

이 책을 읽으며 너무 소중하고 귀해서 눈물겨웠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겹겹이 쌓인 그 많은 것들 중 하나씩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결국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다지며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다.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채.

 

화가 이윤엽 님의 작품들은 여러 동화들의 삽화로 접해서 낯익지만 익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전시회를 가보거나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어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의 작품활동이 참 귀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시선은 세상 주변에서 힘들게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조용히 우리 땅과 물과 하늘을 지키고 있는 동식물들에게 향한다. 그들의 삶은 속도지향적이지 않다. 그래서인가. 이 책의 제목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이다. 비슷한 제목의 시가 들어있는데, 우리집 감나무의 감이 동네에서 젤 떫고 맛없다는 까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다. 지금은 그렇지만 서리가 내린 후에 먹어보면 우리 감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뭔 놈의 감이 그렇게 익는데 오래 걸리느냐고?

 

까치야,

감나무라고 다 똑같이 감이 익는 줄 아니?

우리 집 감나무처럼 익는데 오래오래 걸리는

감나무도 있는 거란다.

 

나도 우리집 감나무가

왜 그러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시간이 좀 걸리는. 130~131)

 

한동네 감나무들도 다 익는 때가 다른데, 빨리 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했던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지금 안하면 큰일 날 것처럼 동동거리고 몰아세우는 일들은 얼마나 흔한가. 속도에 연연하는 우리에게 이 책은 한결같은 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콩밭과 꼬부랑 할머니, 콩 심는 할머니시에 보면 아흔 아홉이나 되셔서 눈도 어둡고 귀도 안들리는 할머니가 하루종일 호미질을 하고 계신다. 구석에 웅크리고 계신 할머니와, 화면을 꽉 채운 콩싹들이 눈이 부시다. 그렇게 평생 땅을 일구고 살아오신 할머니.

 

호박에 깔린 사람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웃겼다. 판화도 웃기고. 이래저래 조금씩 도와줬던 이웃들이 고맙다고 가져온 호박들이 산더미처럼 쌓인 장면이다. 이 책에는 작은 생명들까지 서로 돕고 기대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서로서로라는 시의 마지막은 이렇다.

아 정말 추워.

사람도 춥고 새도 춥고 개도 춥고

나무도 춥고 산도 춥고 구름도 추워.

근데 서로서로 챙겨주니까

좀 안 추워.(63)

 

판화 그림책이라고 되어있지만 시화집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시와 판화로 이루어진. 판화가인 작가님은 어쩜 이렇게 시도 잘 쓰실까. 담담하고 친근하게 주변의 존재들에게 건네는 쉬운 말인데, 거기에서 풀어낼 생각들이 한보따리씩이다. 천천히 읽을 책. 남녀노소 많이 배운 사람 덜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고 공감하거나 생각을 길어올릴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연로하신 부모님께도, 자라나는 자녀에게도 선물할 수 있다. 너무 바빠서 어려운 책의 진도가 안나가고 있는 독서모임이 있다면 일단 이 책으로 진행하시면 어떠실지 제안하고 싶다.

 

본문을 인용하는 것은 글이 너무 길어져서 안하고 싶지만 마지막으로 한 편만. 첫 번째 작품인데 여기에 희망이 담긴 것 같아서다. 제목은 신기한 아이.

병희는 신기한 아이야.

장래 꿈이 글쎄 농사짓는 사람이 되는 거래.

의사도 별로고 과학자도 별로고 대통령도 별로래.

무조건 할아버지처럼 농사를 짓고 싶대.

왜 농사를 짓고 싶으냐니까 모르겠대.

그냥 농사짓는 게 재미있대.

병희야, 농사지으면 자동차도 못 사.’ 하면

그러면 경운기 타면 되지.’ 그러고

병희야, 농사지으면 돈 못 벌어서 맛있는 것도 별로 못 먹어.’ 하면

밭에 가면 딸기도 있고 토마토도 있고 고구마도 있는데!’ 그러고

병희야, 농사지으면 만날만날 일하느라 놀러도 못 갈걸하면

괜찮아. 산에 가고 들에 가면 더 재미있어.’ 그러고

병희야,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는 아직 어려서 모를걸하면

알아, 나도 다리에 알배고 손에 물집 잡힌 적 있어.

그런데 금방 괜찮아져.’ 하고. (후략)(8~9)

진짜로 이런 아이가 있을까? 작가님은 겪은 것을 시로 쓰셨으니 진짜겠지? 이런 아이들이 세상의 희망이 아닐까. 물론 의사도 과학자도 대통령도 다 필요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기본이 되는 일, 토대를 차곡차곡 다지는 일들을 모두가 안하겠다고 손놓아버리면 안되는 거니까. 아주 사소한 결심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나이 든 나도, 몸을 더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몸을 쓰는 일의 당위성과 소중함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도.

 

작가의 말에 보니 이 책은 작가의 의지로 기획된 게 아니고 작가가 여기저기 써놓은 작품들을 출판사에서 정성껏 엮으신 책인 것 같은데 쓰는 작업 버금가게 이 엮는 작업도 참 귀하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작업은 작가님에게도 새로운 동력을 준 것 같으니 새로운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판화에 대해서 한마디만 하자면, 판화로 이렇게 다양한 느낌의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목판화라는 분야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때 아주 오래 걸려 한 작품을 완성했던 기억이 있고, 고학년을 맡으면 목판화까진 못하고 고무판화를 3~4주 걸려 제대로 한 작품 완성하도록 지도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에는 지우개판화 정도 약식으로 하고 넘어갔었다. 다시 제대로 판화를 해보고 싶다. (내가 제대로라고 해봤자 진짜 제대로는 아님^^;;;) 그때도 이 책을 보여주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겠다. 글도 그림도 다 귀한 책. 이 책을 소장하게 되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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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3일만 파란 이야기 10
김정미 지음, 오이트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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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간단 소개만 보고 바로 신청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로테와 루이제>가 생각나서였다. 40년도 더 전에, 계몽사 전집 중의 한 권으로... 친구네 집에서 빌려서.... 그때는 제목이 <두 로테>였었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던 쌍둥이 소녀들이 우연히 만나 상황을 알게되고, 서로 집을 바꿔 들어가 깜찍한 작당을 하던, 너무너무 재미있었던 그 책. 설정이 너무나 똑같았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 그 옛날 그 책으로. 하지만 구할 수 없으니 시공주니어판 로테와 루이제로 읽어봐야겠다.

검색해보니 그 책은 1949년에 나왔다고 한다. 이 책과는 7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이 있구나. 상황적 소재는 같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현대판인 이 책에는 SNS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쌍둥이의 이름은 순우리말인 '라온'과 '제나'다. 서로의 존재를 아예 몰랐던 로테와 루이제와는 달리 이들은 어릴 때의 기억이 있다. 그러나 5년전 엄마아빠가 갈라서고 엄마는 도시에, 아빠는 땅끝 바닷가 마을에 정착하면서 완전히 단절된다. 라온이는 도시의 엄마, 새아빠와 살며 SNS '럭셔리 맘'의 부유하고 예쁜 딸로 자신의 정체성에 적응한다. 반면 제나는 시골에서 좌충우돌하며 작은 의원을 하는 아빠랑 살아간다.

둘이 만난 것도 SNS를 통한 연락이었다. 아이돌이 꿈인 제나가 오디션을 위해 서울에 왔다가 일정이 지체되자 연락을 하게 된 것. 그리고 둘이는 3일 바꿔살기 작전을 세운다. 제나는 엄마집에 머물며 오디션을 보고, 라온이는 시골로 내려가 아빠를 만나고 제나의 학교생활괴 인간관계를 체험한다.

일란성 중에서도 너무나 똑같이 생긴 쌍둥이. 하지만 가까운 이들이 끝까지 몰라볼 수 있을까? 약속한 3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그들의 정체는 결국 들통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상처.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지금까지도 방황중인 엄마와 아빠의 연약한 둑이 터지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적응한 듯하지만 참고 참아온 라온과 제나의 상처에도 공감이 간다.

이미 나뉜 것을 다시 합칠 수 없고,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좋은 결말은 아닐 터이다. 이 책에서도 결국 상황은 바뀌지 못하는데, 그래도 많은 것이 해소된 밝은 느낌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무엇보다 엄마자식, 아빠자식으로 단절되었던 쌍둥이가 서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부모의 삶이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못하고 슬픔과 이별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슬픔이 자녀의 삶을 압도해 버리면 안되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삶에 솔직해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가식은 금물이다. 엄마가 한때 빠졌던 가식의 늪. 아이들 덕분에 빠져나오게 되어서 다행이다.

로테와 루이제처럼 이 책도 설정 자체가 흥미로워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하다. 여러 편의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된 로테와 루이제처럼 이 책도 리메이크 되면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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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독서교육 - 초등학교 교실에서 책과 친해지는 책 읽기
신현주 지음 / (주)학교도서관저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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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동료쌤들께 독서수업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썼다. 그걸 쓰는 지난 2년간의 과정에서 이런 책을 만났다면 나는 책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간에 엎어버렸을 게 뻔하다. 난 이렇게 못 써~ 이렇게 좋은 책이 이미 있는데 왜 써~ 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나는 그게 두려워 이런 책들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펼쳐보는 순간, 나는 푹 꺼져 버릴게 뻔하니까.

이제는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미 나와버린 걸 어쩌겠어.ㅎㅎㅎ 게다가 이젠 제법 목에 힘을 주고 음... 이 책은 나랑 이런 면은 살짝 겹치지만 이런 면에서 서로의 차별성이 있어... 뭐 요딴 생각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치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작고 남은 크다. 이런 책을 그때 보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다.

저자 신현주 선생님은 나를 모르실테지만 나는 연수에서 강사로 뵌 적이 있다. 교육청 연수였는데, 옛날과 달리 요즘은 교육청 연수도 자발성에 근거한 알찬 연수들이 많고 강사들도 알맹이 있는 분들이 많다. 이 분을 보고 내가 그걸 확인했다. 거기에다 이분에게서는 '진정성'까지 느껴졌다. 가진 것은 진정성 뿐이라고 외치는 나와는 달리 이분의 스펙은 꽤 화려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도우려는 태도를 가진 강사였기에 기억에 남았다.

이 책 또한 선생님의 진정성이 담긴 책이다. 선생님의 독서교육은 수업기술을 넘어선 총체적 한해살이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삶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잘한다고 다짜고짜 들이밀지 않고 조심스레 살피며 초대한다. 아이들이 모두 탑승했다면 그때부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책을 읽어주고, 책에 빠져읽는 경험을 하게 하고, 수업에도 책을 끌어들이고, 사람을 만나는 다양한 행사를 기획한다. 아마도 본인의 연구분야가 아닐까 싶은 스키마 독서에 대한 소개도 들어있고 일년의 학급운영을 마칠 때쯤에는 독서활동도 결실을 잘 갈무리하며 정리한다. 이렇게 하여 이륙부터 착륙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1장은 마중독서. 학기초 준비활동을 담았다. 특별한 활동보다도 관심을 담은 관찰, 작은 대화를 통한 파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특이한 활동이라면 '인형 가정 방문'을 꼽을 수 있겠다. 이런 아이디어와 실행력이 선생님의 장점인 것 같다.

2장은 듣는 독서. 많은 분들이 나에게 온작품읽기 뭐로 시작할까? 물으시다가 헉~ 새로 간 학년에 책이 없어~ 하시는데, 이 장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일단 읽어주기로 시작하시라고. 듣기의 중요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에 강조된 설명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읽어줄 책이야 뭐 너무 많아서 탈이고...^^;;; 이 책에 소개된 책들도 참고할 만하다.

3장은 몰입독서. 이 장이 내겐 생각할 게 많았다. 어떻게보면 나도 안한 것은 아닌데, 의미와 중요성을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채 했다고 할까. 온작품읽기를 할 때 음독을 할때도, 묵독을 할 때도 있었지만 음독 쪽에 더 비중이 있었다. 묵독은 시간이 부족하거나 애매할 때 길지 않게 했다. 그러니 '몰입'까지 가기에는 부족했다. 저자는 아예 시간표에 반영하여 2시간(80분)의 몰입독서시간을 운영하셨던데, 쉽지 않은 도전이다. 하지만 진짜 몰입의 맛을 느끼는데까지 끌고갈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체험을 시켜주는 셈이다. 몰입독서가 가능한 학생. 학습의 기본기를 닦은 셈이니까 말이다. 마지막 장에는 40분 몰입독서, 40분 자유놀이 시간을 운영한 사례도 있는데 학년말 보상시간으로 적절한 것 같다. 나도 올해는 아이들에게 '몰입'이라는 낱말을 도입하며 강조를 해봐야겠다. 그게 말로 되는게 아니지만 말이다.ㅎㅎ

4장은 수업독서. 이게 내 책과 겹치는 부분인데, 몇가지의 사례만으로도 수업디자인의 내공을 느낄 수 있었다. 일회성 수업보다는 프로젝트형의 수업이 많고, 미술이나 요리, 연극 등의 활동으로 이어져 학생들의 흥미를 극대화한 점이 돋보였다. 올해 나도 해봐야지 하고 적어놓은 활동은 '명장면 명대사' 라는 활동이다. 연극활동으로의 이행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활동이다. 모둠별 발표도 낭독회, 팟캐스트, 정통연극 등 다양한 형식을 허용하여 선택하게 한다. 이부분은 다시 보려고 체크해 두었다.

5장은 만남독서. 나의 한계를 가장 느끼는 부분이다. 난 스케일이 작아서 교실 안에서만 꼼지락거리고 여기저기 들이대는 걸 잘 못한다. 큰 행사의 기획에 매우 약하다. 근데 저자는 이런저런 정보도 많으시고 그런 네트워크를 통해 외부인들과 학생들을 연결해주는데 거침이 없으시다. 그래서 쌤네 반 아이들은 작가 뿐 아니라 번역가, 잡지 제작자와의 만남도 가져보았고, 그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을 듯하다. 자기 그릇대로 사는 거지만 이런 점은 좀 부럽네....^^;;;

6장은 스키마 독서. 이 내용만 따로 한권의 책으로 서술해도 될만큼 방대한 내용일 것 같다. 공부가 좀 필요한 부분이다. 일단 읽어보고 대략의 내용만 파악했다.

7장 맺음 독서. 책 읽는 반 답게 마무리도 독서로. 1년간 읽었던 책들을 돌아볼 수 있는 활동도 하고 새해 달력을 책달력으로 만들기도 한다. 도장 선물도 좋은 아이디어 같다.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올려보낸다. 나의 고민과 수고가 아이들 삶에 밑거름이 되었길 빌 뿐. 아니라도 어쩔 수 없고 이젠 아이들의 몫이다.

에필로그에 보니 이 대단한 선생님도 교사로서 힘든 시기를 보내셨던 모양인데.... 다 그런가보다. 우리는... 말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지 이 일을 고고하고 여유있게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아닌 분은 이의 제기하시오.ㅋ) 날마다가 지지고볶고의 연속인 것.... 뭐 어쩌겠어. 그래도 이런 나눔과 소통으로 겨우겨우 해나가는거지.

이제야 독서교육관련 책을 읽어볼 용기가 났으니 하나둘씩 읽어봐야겠다. 무척 부끄러울 때가 많겠지만 그건 배움이 있다는 뜻이니 그것도 좋은 일이지 뭐. 저자샘께 감사드리며 존경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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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우리는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문경민 지음, 이소영 그림 / 우리학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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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청소년소설 훌훌을 읽고 너무 좋아서 이 작가님의 동화를 다 찾아 읽었다. 또 한권의 동화가 나온 것을 보니 너무 반갑다. 이 책도 역시 좋았다. 어린이와 청소년기를 잇는 시기의 책으로 권할 만하다. 주인공들이 열세 살이니 말이다. 3년 전 6학년을 맡았을 때 코로나 첫해라서 1년 내내 거의 원격수업만 하느라 온작품읽기를 제대로 못했던 게 아쉬웠는데, 만약 그 아이들과 다시 함께한다면 이 책을 같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그 해 6학년, 아이들마다 힘들었다. 얼굴도 못 본 아이들과 연락해야 하는 나도 힘들었고, 멀리서도 힘든 게 느껴지는 아이들의 부모님께 연락하면 부모님 역시 힘들어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힘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혼자만의 벽에 갇혀 신음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들과 이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 나도 힘을 내보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루미와 보리는 유치원 때부터 단짝이고 부모님들도 서로 알고 지낸다. 특히 아빠들이 같은 회사에 다닌다. 그러다 같은 위기를 맞았다. 회사는 위기를 인력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고, 두 분 다 희망퇴직명단에 올랐다. 두 사람의 대응은 달랐다. 루미 아빠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길을 찾으려 하지만 보리 아빠는 끝까지 버티려 한다. 힘든 와중에 보리 엄마와도 싸우고, 멀리 발령난 김에 아예 집을 나가버리셨다. 집안에는 무거운 어둠이 깔렸다.

 

루미네도 상황이 좋을 리는 없다. 아빠는 재취업을 위해 전기기사 시험을 준비하는 것만도 힘든데 루미 동생 쌍둥이들은 아직 아가고, 엄마는 교통사고가 나서 입원중.... 아빠의 초췌한 모습은 안쓰럽기 짝이 없는데, 그래도 보리네와 같은 어둠은 없다. 힘들긴 하지만 간간이 웃음도 있다. 근데 알고보니 이 가족엔 엄청난 시련이 이미 있었네! 쌍둥이 엄마는 루미 새엄마다. 친엄마는 고통스러운 투병 끝에 몇 년 전 돌아가셨다. 겨우겨우 다시 찾은 행복도 위태위태하지만 웃으면서 버텨간다.

 

어둠에 침잠한 보리의 눈에는 이런 것조차 공평하지 않게 보인다. 루미가 부럽다 못해 밉다. 때마침 의문의 전학생 세희가 보리 반에 들어왔고, 친구 구도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보리는 한없이 변해간다. 그런데 보리가 모든 것을 깨닫는 반전.... 작가님의 서사 능력과 필력이 대단하시다는 걸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숨에 읽게 되었다.

 

작가님이 세희를 버리지 않을 줄 알았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잖아, 어쩔 수 없었잖아, 라고 감싸실 줄 알았다. 근데 아니었다. (버렸다는 표현은 좀 심하지만 다른 적절한 말이 생각이 안남) 아닌 건 아니라고, 힘든 건 이해하나 모든 걸 감싸줄 순 없다고 엄격하게 말해 주시는 것 같았다. 결말에 좀 놀라면서도 나는 이런 작가의 가치관에 완전 동감했다.

 

나도 아닌 건 좀 아니라고 말하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 때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내가 이해심이 부족하고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대해 함부로 재단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감해주고 도닥여주면 스스로 깨닫고 벗어나는 거지. 꼰대질은 금물이야. 요즘의 대세는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런 무한공감주의가 싫다. 50대가 되도록 살아보니, 정색을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면 한없이 질질 끌려다닌다. 그러면서 핑계와 악행은 날개를 단다.

너 힘들지? 다들 그래. 안 힘든 사람 없어.” 이건 좀 잔인한 위로라고 나도 생각한다.

하지만 오죽 힘들면 그랬겠니. 그래 괜찮아. 다 어른들 죄야. 너는 잘못 없어.” 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덜 살아봐서 그런 걸까? 60대가 되면 또 달라질까? 확실한 것은 망가지고 삐뚤어지는 데는 핑계가 없다는 것이다. 특수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의 선택 지점이 전무하지 않다. 루미와 보리처럼. 고개를 들고,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멋져! 엄마 박수를 물개박수로 짝짝짝 보내주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무리 속상해도 너의 인생을 망가뜨리지 말고 세우라고. 나쁜 마음을 경계하고 양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라고. 거기서 지면 핑계댈 수 없다고! 인정머리 없다고 나를 욕해도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님이 나와 똑같은 생각에서 쓰신 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작품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도 힘들어하는 거의 모든 열세 살들, 앞으로 수많은 유혹과 시련 앞에 놓일 그들을 응원한다. 멋지게 가! 그럴 수 있어! 꼭 그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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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와 앤 -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 보름달문고 89
어윤정 지음, 해마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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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잃어가고 있는 감정과 인간성(!)을 로봇에게서 찾게된다는 설정을 꽤 많이 본 것 같다. 그때마다 좀 혼란스럽기는 하다. 과학이 발달하면 가능한 일인가? 의문이기도 하고, 그것 자체가 문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다. 이런 의문과는 별개로, 이야기에 빠져들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로봇을 애틋해하고 있는 나를....

표지를 보면 바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도 로봇이 나온다. ‘리보’가 로봇이다. 앗 그리고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의 두 로봇’이라는 부제가 있네. 그렇다면 ‘앤’도 로봇이다. 도서관에 왜 아무도 오지 않을까? 그것은..... 우리가 겪었던 지난 3년간을 표현한 것이다. 드디어 이런 작품이 나왔구나.

“안녕하세요! 즐거움과 안전을 책임지는 여러분의 친구, 리보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리보는 이렇게 안내와 도움을 맡은 도서관의 로봇이다. 사람의 감정을 읽고 소통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서는 순간이었다. 강력한 감정이 포착됐다. 감정 센서에 ‘즐거움’이라는 결과가 뜨면서 왼쪽 가슴에 진동이 울렸다. 지르르, 지르르 춤을 추는 것처럼.』 (13쪽)
이렇게 리보는 감정을 학습해간다.

평화롭던 도서관에 어느날 비상벨이 울리고 사람들이 허겁지겁 빠져나갔다. 그리고 흰 옷으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이 들어와 호스로 무엇인가를 뿌려댔다. 비상사태이자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사태,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에 대한 방역을 하는 장면이다. 도서관은 무기한 휴관에 들어갔다. 사람들은 로봇에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고 리보는 전원이 켜진 채 혼자 남겨졌다. 휴식과 충전을 하던 곳은 막혀서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로비 중앙으로 돌아와서 현관문을 바라보고 섰다. 늦은 밤까지 전원이 켜져있는 게 처음이라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우두커니 서서 초록색 비상구 불빛을 쳐다봤다.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밤은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었다.』 (24쪽)
아, 이 책의 화자는 리보다. 로봇이 화자인 것도 특별한 점이다. 서술하기 쉽지 않으셨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다음날 아침 리보는 업무 시작을 했으나 도서관에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보는 어린이 자료실에 있는 이야기 로봇 앤을 떠올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초록지붕 집에 살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앤은 바로 그 ‘앤’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감정표현을 많이 하고 감성적인 반응이 돋보이는 로봇이다. 아무도 없는 도서관의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두 로봇만이 도서관을 지키며 이런저런 소통을 나눈다.

오늘도 지인이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처럼 코로나는 아직도 위력을 떨치는 중이다. 하지만 방역지침은 점차 완화되고 있고, 새학기에 수업은 정상적인 대면수업으로 진행될 것이다. 3년을 겪고 나서야 이것이 가능했다. 모두가 처음이던 때,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고, 확진자의 동선이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나도 그렇게 될까봐 어떤 모임에도 갈 수 없었다. 얼굴도 못본 아이들과 원격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2년차때부터는 그나마 줌으로 얼굴이라도 보고 목소리라도 들었지만 첫해에는 기껏 힘들게 수업을 만들어 올려도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다. 심연에 빠진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모님의 눈물에 무력감이 더해졌다.

그렇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한편으로는 좋은 점도 있었다. 회식이 없어진 점, 용건 없는 친목모임이 대폭 줄어든 점은 에너지가 부족하고 혼자있기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나쁠 게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지 오래도록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을 좀 지나서야 깨달았다.

남겨진 로봇들을 걱정하는 아이가 도서관 밖에서 리보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리보는 새로운 감정을 학습한다.
“앤, 나에게 그리움이란 감정이 추가됐어.”
“오오! 그리움은 슬프고도 아름다워. 그리움은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거든. 끝낼 수 없는 마음이거든.”
그리고 리보는 앤의 이 말을 깊이 저장해 두었다.
“그리움은 걷잡을 수 없는 재난.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한다.”
바이러스보다도 더 큰 재난은 우리들 사이의 단절이었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나는 평소에 ‘소통의 결핍도 문제지만 과잉 소통도 문제’라고 생각하곤 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회식이 길어지면 너무나 피곤하고, 별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친목모임을 오래 하느니 혼자 있는 시간이 훨씬 좋다. 아이들도 너무 휩쓸려 몰려 다니지 말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를 두려워하면 무리에 휩쓸리고,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게 된다. 특히, 의미없는 신체접촉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내가 좀 인정머리가 없어.... 아이들한테 신체접촉에 대한 주의를 많이 준다. 괜히 툭툭 치고, 건드리고 뒤엉키고 뒹굴고 하는 것을 방치하면 금세 엉망진창이 된다. 이런 면에서 깔끔한 매너를 가르치고 싶다. 그게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겠지.) 이런 나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고 나는 확신하지만, 인간에게 홀로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서 단절이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홀로인 순간에도 연결에의 확신은 필요하다.

“괜찮아?”라고 나를 확인하는 목소리,
내가 꺼져갈 때 나를 향해 달려오는 발소리,
이게 없다면 내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가장 큰 재난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두 로봇과 아이를 통해서.

이야기는 시대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니 우리가 겪은 이 일들이 앞으로 많은 이야기의 소재로 등장할 것이다. 그중에서 일찍 나온 편인 이 책이 차지하는 무게는 상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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