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달리는 아이들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6
신지영 지음, 최현묵 그림 / 서유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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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컨셉의 역사동화를 읽었다. 앞뒤로 뒤집어 읽는 책. <너는 나의 특별한 □□>, <장꼴찌와 서반장> 같은 동화가 이런 구성이었는데 흔치는 않은 구성이다. 정보를 모르고 무심코 집어 조금 읽다가 나중에 다시 잡고는 어리둥절했다. 아니? 분명히 몇 장 읽었었는데 왜 처음보는 것 같지?ㅎㅎㅎ 다시 보니 거꾸로 잡은 것이었다. 위에 말한 <너는 나의...>같은 책들처럼 이 책도 두 아이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되다가 중간에서 딱 만난다.

두 아이는 많이 다르다. 복남이는 시골 동네 천민의 아들이다.
윤이는 한양에서 알아주는 양반가문의 딸이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둘다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때는 개화기이자 일제가 마수를 뻗치던 시기, 을미사변(1895년), 아관파천(1896년) 등의 사건이 책 속에 나온다. 신식 학교가 생겨나고 세상은 변화에 눈떠가지만 뿌리깊은 신분제도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기득권을 가진 양반들은 변화를 거부한다.

그런 시대에 두 아이는 세상에 맞서며 달린다. 실제로도 '달린다'. 복남이는 동네 아이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다니다가 달리기의 재능을 발견했다. 수방도가에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물지게 나르기 연습을 하던 중 이용익 어른을 만났다. (이분은 실존했던 인물) 다리를 다친 어른을 대신해 연락책 심부름을 하고 신임을 얻는다. 언제나 당당하지만 대책없이 큰소리만 내는 게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려 최대치의 노력을 기울이며 순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참을 줄 아는 복남이의 모습이 믿음직하다. 윤이와의 만남은 한양의 수방도가 대회장에서.

윤이는 여느 양반댁 규수와는 다른 활기와 호기심으로 행랑어멈의 골칫거리. 양장을 하고 신식학교에 다니는 남동생을 부러워하며 간혹 부모님 몰래 동생의 옷으로 남장을 하고 세상 구경을 나온다. 사당패 구경을 나온 길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마당극을 보고 아수라장 속에 위기를 겪기도 한다. 윤이는 중요한 두번의 순간에 복남이를 만났다. 첫번째는 수방도가 대회를 구경갔다가. (이때 윤이는 바람같이 뛰어다니다가 복남이랑 부딪쳤지.) 두번째는 남장을 하고 나갔을 때, 얼떨결에 쫓기는 사당패의 중요한 편지 심부름을 맡았다가.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윤이가 복남이를 찾아 달린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다. 많은 관습과 금기를 한꺼번에 깨는 순간이다.

역사동화는 기본적으로 어느정도 독서 수준은 되어야 읽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 고학년용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4학년 정도에게 권해도 크게 무리가 없겠다. 일단 양쪽에서 시작되니 각 편의 호흡은 짧은 편인데다가 주인공들이 아이들 눈으로 봐도 매력적이고 친근할 것 같다. 다르게 말하면 '친해지고 싶은 책 속 인물'.

일제가 침략하는 시기이니 시대 배경은 답답하고 고난으로 가득차 있지만, 비참함 보다도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게 이 책의 매력인 것 같다. '바람을 달리는' 두 아이를 통해서 독자들은 시대를 극복하는 에너지를 느낀다. 훨씬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과 세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 책 중 두 아이의 대화에서 나온 말과 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중요해요. 설령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열정에 가장 큰 울림을 느꼈다. 노비출신 복남이든, 양반집 딸 윤이든 새로운 배움 앞에서 설레고 감동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금 우리 앞에 이런 설레는 배움이 있을까. 다양화된 사회니 개인에 따라 내용도 층위도 갖가지겠지. 저런 배움의 설렘이 있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그런 설렘을 갖고, 바람을 달리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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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아름다움 소원함께그림책 2
알프레도 코렐라 지음, 호르헤 곤살레스 그림, 이현경 옮김 / 소원나무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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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작가이고 이탈리아 작가인데 이력이 특이해서 눈에 띄었다. '이론철학 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 현재는 디지털 신기술 및 소셜 네트워크 사용과 관련된 홍보 일을 주로 합니다.' 아니 이런 분이 그림책을? 읽어보니 내겐 그 바닥이 바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오한 책이었다. 철학을 전공하셨기 때문일까? 철학적 뿌리가 깊고 굵게 박혀있는 작품. 그래서 출판사에서는 '0세부터 100세까지 함께 읽는 그림책' 시리즈로 출간했는지도.

주인공은 늙고 이름없는 거북이다. 작가는 편의상 '니나'라는 이름을 붙여 불렀다. 니나는 100년을 살았다. 그리고 '끝'이 다가옴을 예감한 것 같다. 그는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겠어." 라며 끝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느릿느릿.

만나는 동물들에게 "끝이 무엇인지 아니?"라고 묻는데 그 갖가지 대답들에서 '끝'의 여러 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만난 개미는 나쁜 거라고 했지만 애벌레는 '평생 기다려 온 순간' 이라고 했다.
"끝은 아마 방향을 바꿔야 할 순간일지도 몰라." 하는 제비의 말이 멋지게 들린다.
뱀이 그린 원에서는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었다.
꾀꼬리와의 긴 대화도 인상적이다. 끝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노래가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
강물은 끝나는 방법이 여러가지라고 말해주었다. 가령 강물은 바다에서 끝난다.

세계관에 따라 '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것이다. 위 동물들 중에서도 세계를 둥글게, 혹은 직선으로 파악하는 동물들이 있는 것처럼.

나도 '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끝' 자체는 그리 싫지도 두렵지도 않은데 오직 두려운 건 육신이다. 육신의 고통과 추함만이 두렵다. 이 책의 니나의 끝에서 고통은 찾아볼 수 없었잖아! 그렇게 '끝' 할수만 있다면 끝이 왜 두려우랴. 그렇다고 '그럼 내일 당장 끝할래?' 라면 "아니 그건 좀...."이라고 하겠지만, 끝 자체를 비관하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연하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 말로 뱉어버리니까 의미의 심오함을 다 나타낼 수가 없는 느낌이네. '끝'은 인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세상 만물에 생명있거나 없거나, 어떤 존재이거나 아니거나 간에 끝은 다가온다. 그 끝은 다행스러울 수도, 안타까울 수도, 새로운 기회일수도, 반드시 해야 하는 마무리일수도 있다. 문득 내가 질렀던 환호성이 생각났다.
"끝났다~~~~!!^^"
다시 반복될지언정, 일단의 마무리는 몹시 행복했던 기억.
그건 단순한 차원이고, 여러 층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책의 제목에 동의는 해야 할 것 같다. "끝의 아름다움"

채도가 낮으면서 바탕과의 대비가 분명한 그림도 매우 새로운 느낌이고 '끝'의 의미를 탐색한 내용 또한 새롭다. 이 책을 읽고 어른들이 모여 자신이 느껴봤던 '끝'에 대한 사색을 나누어도 날새는 줄 모를 것 같고 학생들과 나눌 이야기도 많이 들어있다. 가장 단순하게는 '끝'인 날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달만 일찍 나오지!"라며 아쉬워했다. 얼마전 아이들을 졸업시켰거든. 그 특별한 날에 읽어줄 그림책을 찾다가 다른 활동으로 대체했는데 이 책이 있었다면 읽어줬을 것 같다. 그날 불렀던 노래에 이런 가사도 있었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이 책은 여러번 다시 읽어도 새로 곱씹을 의미가 떠오를 것 같지만, 일단은 '끝의 날'에 읽어줄 책으로 찜한다. 내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다. 일년을 잠자다가 그날 깨어나겠지. 인생은 그렇기도 한 것.

또 한 가지, "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한걸음 나가면 "어떤 끝을 만들 것인가"일 것 같다. 그게 내맘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가 끝맺는 방식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도 해주고 싶다. 사실 내 자신이 더 성찰할 부분이기도 하고. '끝의 아름다움'은 많은 부분 내 책임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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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핑크 블루
윤정미 사진, 소이언 글 / 우리학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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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책의 리뷰는 처음 써본다. 사진은 별로 관심분야가 아니어서 이 책의 사진작가가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잘 몰랐다. 소개를 보니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전시회를 열고 호평받은 분이었네. 그 주제가 핑크 & 블루 프로젝트.

이 책을 보니 딱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재작년에 2학년 담임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이런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핑크 알레르기>
그 글을 퍼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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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도화지에는 노랑, 하늘, 연두, 분홍이 있다.
맘대로 골라가게 하면 하늘 50%, 연두 30%, 노랑 20% 정도 골라간다. 분홍은 드물게 한 명 정도 고르거나 아예 아무도 고르지 않는다. 올해 2학년을 맡고 보니 이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남자아이들은 내가 남자인데 분홍을? 이런 분위기고 여자아이들은 내가 여자기로소니 분홍을 고를소냐? 이런 느낌의 반응을 한다. 고개를 갸웃할 반응이다.

색도화지가 아닌 좀 더 좋은 색감의 색상지도 마찬가지다. 촌스럽지 않은 벚꽃색이나 살구색 오렌지색 종류도 잘 고르지 않는다. 난 뒷판에 색이 골고루 있는게 좋아서 이번엔 맘대로 가져가게 안하고 아이들 인원수에 맞춰서 색을 고루 분배한 뒤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부터 골라가게 했다. "져도 괜찮아요. 다 예쁜 색이에요. 순서를 정하는 것 뿐이에요." 라고 말했지만.... 마지막 아이가 분홍을 갖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분홍이라며 놀렸다. "너희들 이상하네? 왜 색을 차별하지? 분홍이 얼마나 멋진 색인데?"
그러자 아이들이 비웃었다.

왜 아이들은 분홍과 원수가 졌을까? 연구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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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내가 했던 생각은, 고정된 색깔 관념에 대한 반발? 그것에 따르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는 심리인가?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엔 왜 핑크만인가? 블루에는 예민하지 않은데 왜 유독 핑크에만? 남자들은 자신들에게 고정된 것을 거부하지 않는데 왜 여자들은? 색깔 고정관념 뿐 아니라 여러가지가 복합적이구나 생각했었다.

그때 제기된 의문이 작은 것은 아니었나보다. 십수년간 큰 전시회가 열리고 이렇게 책까지 나온 걸 보면. 분홍으로 가득찬 방과 파랑으로 가득찬 방의 대비가 단숨에 주목을 끈다. 그 방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변화를 사진으로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다. 사진작가님은 같은 아이의 5년 후, 10년 후를 추적해서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니, 사진이란게 그저 찰칵인 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무식했던가.^^;;; 약간의 설정이 없을수는 없었겠지만 진정성과 역사가 담긴 사진들이다. 메시지가 담긴 것은 물론이고.

글작가인 소이언 님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써놓으셨다.
"전시회장에서 핑크로 둘러싸인 여자아이의 사진을 보는 여자도 어릴 때는 핑크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핑크를 기피했겠지요. 보라와 파랑을 거치고, 세상이 정해 준 색의 안일함과 무신경함에 맞서 검정과 무채색으로 자신을 감추었다가, 다시 핑크를 사랑하기까지의 그 모든 시간을 그는 사진으로 만났을 것입니다."

세상이 정해준 색에 질질 끌려가지도, 억지로 버티지도 말자.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다고 하면 그만이다. 색은 그 모든 것들의 상징이자 대표일 뿐이다. (색만큼 상징으로 좋은 것은 없을테니^^) 분홍을 좋다고 하는 남자아이를 칭찬하지도 말자. 누가 뭘 좋아하든 그냥 그사람 맘일 뿐이야!

색이 상징하고 대표하는 모든 것. 그것을 색으로 보여주어 더없이 인상적인 그림책. 너만의 '색'을 찾아! 너의 '색'을 잃지 마! 등의 메시지도 연달아서 떠오르는 책. 본문 마지막장의 문장을 쓰면서 마치려 한다.

"좋아하는 색에 마음놓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나만의 이름을요.
그리고 가만히 불러보세요.
안녕? 나의 핑크!
안녕? 나의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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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 제26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비룡소 창작 그림책 68
루리 지음 / 비룡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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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음악대'를 패러디했을 거라고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옛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은 기대가 된다. 맛집에서 포장해온 따끈한 음식을 열 때의 기대감?ㅎㅎ 더구나 이 작가의 문학동네 어린이 문학상 수상작 <긴긴밤>을 읽고 깜짝 놀라서 주문한 책이니 말해 뭐 해. 근데 이책은 황금도깨비 수상작이라고? 세상에나!

브레멘 음악대 원작 내용이 뭐였지?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주인들한테 버려진 떨거지 신세 동물들이 길을 가다 하나둘씩 모이게 됐다. 그들은 브레멘으로 가자고 의기투합했지만 결국... 갔었던가...? 도중에 도둑들의 오두막에서 그들을 놀래켜 쫓아내고 거기서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 아니었던가? 그렇지. 그들도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구나. 알고 있었지만 생각은 못했던 새로운 발견.ㅎㅎ

이 책의 동물들은 그대로 사람으로 보인다. 당나귀는 나이가 많아져 운전기사직에서 밀려나고, 개는 일하던 식당이 이사가며 혼자 남겨지고, 고양이는 인상이 험상궂다며 편의점 알바에서 짤리고, 닭은 노점에서 두부를 팔다 쫒겨난다.

밤의 지하철은 고단함을 상징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아저씨와 지안이 서로의 고단함을 바라본 곳도 밤의 지하철이었듯이. 그들은 밤의 지하철에서 함께 내린다. 그리고 지안이 지친 몸으로 걷던 길 같은 가파른 밤의 골목길을 오른다. 그길에 브레멘 음악대처럼 도둑들의 집이 있었고 창문으로 환히 안이 들여다보였다. 도둑들도 신세한탄을 하고 있었다.
"이제 뭐 하고 살지?
이럴 줄 알았으면
열심히 살 걸 그랬네."
동물들은 그집 문을 두드렸다. 그들은 대면하게 됐고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 도둑들이 한 말,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네."

여기서부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르다. 도둑들은 쫓겨나지 않았고 두 팀은 함께 "이제 우린 뭐하지?"란 고민에 빠졌다.
"일단 밥이나 먹을까요?"
그집에 음식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았더니 찌개를 끓일 수 있었다. 닭은 팔던 두부를, 고양이는 삼각김밥을, 개는 마지막 김치 한통을, 당나귀는 퇴직하며 받은 참치캔을, 등등.... 찌개를 끓이며 누군가는 꿈꾼다. 만약에 말이야....

그러나 현실은 휑한 방 구석에서 찌개 한 냄비 앞에 놓고 둘러앉아 퍼먹고 있는 그들일 뿐이다. 그런데 그 다닥다닥 둘러앉은 모습에서 벌써 진한 연대의 느낌이 난다.

본문은 이것으로 끝이다. 아주 시크한 느낌이고 현실비판, 현실 한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림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하더니 진짜 이 책은 어른그림책이구나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뒷면지의 그림엔 에필로그가 담겼고, 그건 엄청 희망적이었다. 그들은 '만약에 말이야...'를 향해서 가고 있었다.

우리중에 브레멘에 갈 수 있는 사람 얼마나 될까. 나의 꿈이 뭔지 잊었고 나에겐 이렇다할 재능이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고 입이 딱 벌어지는 재능을 가진 사람조차 그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거나 놓치거나 꼬여서 갈팡질팡하는 게 인생이다. 어쩌다 몇몇은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간 곳은 브레멘인가?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브레멘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서 있는게 인생인가. 제목이 처음엔 매우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으로 보이지만 다 읽고 나니 다르게 보인다. "괜찮아"라고 읽어도 될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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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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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비슷한 느낌의 작품들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이 책과 비슷한 책이 언젠가 있었나 기억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다. 이 책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이다. 완벽히 새로운 느낌. 낯설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만족감이 충만했다고 할까. 거기에 뻐근한 감동까지 있었다.

시점부터가 매우 특이했다. 처음엔 누가 화자인지 알수 없었다.
"나에게는 이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이 '나'가 누구인지는 책의 중반이 가까워서야 나온다. 그때 등장한다기보다는 그때 '태어난다'. 아니 그럼 이전의 서술은 뭐란 말인가. 태어나지도 않은 존재의 1인칭 시점이라니? 관찰자 시점도 아닌 전지적 시점이었다. 뭔가 기이하다? 다 읽고 나서 보니 그 '1인칭'이 주인공에게 '들은 이야기'로 시작하여 '겪은 이야기'로 전환한 것이라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또한 매우 특이했으나 이상하게 그냥 자연스러웠다.

야생동물이 주인공인 책들이 꽤 있다. 사자라든지, 코끼리라든지.... 근데 코뿔소는 처음 본다. 그리고 그 '1인칭' 서술자는 펭귄이었다. 코뿔소와 펭귄이라니. 서식지가 전혀 다른 이 두 종의 관계는 무엇일까.

코뿔소의 이름은 노든이었다. 이 책은 그의 일생을 다룬다. 노든은 코끼리 보호 시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코뿔소인 그가 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지는 자신도 모르지만 따뜻하게 품어주는 코끼리들 틈에서 평화롭게 지냈다. 자라서 그곳을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망설일 때 코끼리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

야생으로 나온 노든은 가족을 꾸리고 한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인간의 악함을 처음 경험한 그 순간 노든은 아내와 딸을 잃고 자신도 부상당한 채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들에 의해 도착한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는 복수심에 불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만남은 있었다. 유일한 동족 앙가부. 같은 우리에서 앙가부와 얘기를 나눌 때만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조금은 물리칠 수 있었다. 그들은 탈출을 꿈꿔봤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는일은 없었다. 감행도 하기 전 생각지도 못한일로 앙가부는 죽었고 노든은 뿔이 잘렸다. 노든은 또 완벽한 외로움 속에 내던져졌다.

동물원 다른 한쪽에서 일어난 일은 다가올 만남을 암시한다. 바로 펭귄 우리에서. 오른쪽 눈이 불편한 치쿠를 위해 윔보는 늘 오른편에 섰다. 둘이 함께하면 장애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도 품지 않는 특이한 알 하나를 이 두 친구가 품기로 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났고, 폭격으로 동물원은 무너졌다. 많은 동물들이 희생됐다. 두 친구 중 윔보도... 철봉에 깔린 그의 품에서 알을 꺼내어 양동이에 담아 부리로 물고 치쿠는 길을 떠난다. 바로 노든과의 만남과 동행이었다.

알에 모든 애정을 쏟아붓는 치쿠를 노든은 묵묵히 돕는다. 그들은 바다를 찾아 헤맸다. 지친 치쿠마저 세상을 떠난 날, 알은 완벽히 노든의 책임이 됐다. 그리고.... 가까스로 무사히 그 '1인칭'과 노든은 만났다. 이제는 완벽히 '둘만'이 되었다. 그들은 그저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수많은 '긴긴밤'을 함께 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이 다른 우리가 서로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때는 몰랐었다."
"우리는 긴긴밤을 넘어, 그렇게 살아남았다."
"어느 날 밤, 나는 노든의 이야기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늘이 노든과의 마지막 밤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노든의 눈을 쳐다보며, 눈으로 그것을 노든에게 말했다. 노든도 그것을 알았다. 우리는 오래도록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서로밖에 없던 그들은 때가 되자 또 각각 홀로가 되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저 바닷속으로 곧 들어갈 것을, 모험을 떠나게 될 것을, 홀로 수많은 긴긴밤을 견뎌 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노든은 곧 소멸했을 것이고 이름없는 그 '1인칭'은 홀로 서며 또다른 누구에겐가 다행인 존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초반에 코끼리 할머니가 예언했듯이. 이것이 생명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작가는 우리에게 동물종을 넘어선 큰 사랑과 책임감을 보여줬다. 그럼으로써 죽는 순간까지 삶이 얼마나 숭고한지 느끼게 해줬다. 그 숭고함으로 살아남은 자가 자기의 삶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음을 감동적으로 보여줬다. 삶이 한없이 가벼워지고 관계 또한 삭아버린 실처럼 위태한 이때에, 삶에 대한 이토록 둔중한 성찰은, 관계에 대한 이토록 거대한 의미부여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게 될까?

가볍지 않은만큼 쉽게 들어갈 순 없을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 책 전반을 누르고 있는 무게는 그것 때문이라고. 그 무게를 견디고 자신을 꺼내놓을 의향이 있다면 이 책의 나눔은 아주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 이 책을 천천히 읽고 그 힘겨운 여정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감동을 나누는 시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멋진 도전이 될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은 쉽게 감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져온 삶의 무게만큼만 쉽게.

처음보는 작가인데 미술을 전공했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한 동화작가 몇 분을 알고 있다. (유승희 님, 김태호 님 등... 아 안면이 있다는 말은 아니고) 자기 글에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얼마나 큰 복을 타고난 것인가. 부럽다..... 탄식하며 이분의 그림책을 찾으러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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