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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가을날 집에서 한발자국도 안나가고 뒹굴며 놀았다. 뒹굴때는 만화가 제격인데 오늘은 새로 도서실에 수서한 만화를 두 권 집어왔다. 하나는 400번대, 또 하나는 500번대다. 말하자면 과학(기술)분야라는 말씀.

전자는 정재승 교수가 참여한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 후자는 백종원씨가 참여한 <백종원의 도전 요리왕>이다. 둘 다 1권이다. 후속편이 계속 나올거란 뜻이다.

 

 백종원씨는 외식업체 사장, 말하자면 장사꾼이지만 참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요리책을 한 권 사보았고 공개된 레시피로 각종 양념장도 만들어 보았다. 적당히 대중적인 맛이 난다. 즉 실패할 염려는 거의 없는 맛이라는 것이다. 가끔 TV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한 분야에서 쌓은 그의 전문성과 투철한 직업의식을 볼 수 있어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곤 한다. 그가 어린이책에 도전하다니. 그의 유명세와 이미지를 잘 살린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종원씨가 어린이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동행자를 선발하여 함께 음식여행을 떠난다는 컨셉이다. 딱히 배운 건 없지만 왕성한 식욕과 천부적인 미각을 가진 나래, 학구적으로 요리를 대하는 노력파 보담이, 고기를 넘나 사랑하는 세찬이, 이 세명이 뽑혀 백대표와 동행하며 때때로 요리대결도 펼친다. 음식에 대한 지식을 접하면서 대결에 대한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잘 팔릴만한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1권은 일본이다. 이미 우리에게 깊숙히 들어와버린 음식들이라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입맛을 자극했다. 라멘, 돈부리, 스시, 오코노미야키 등... 각 장 끝에는 만화가 아닌 정보면도 추가되어 있어 간단하게나마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소개도 하고 있다.

만화의 그림체는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음식 그림에는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었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그려져서 말이다. 잘 튀겨진 돈가스를 얹은 가츠동, 반숙계란이 생생한 라멘, 지글지글 오코노미야키.... 츄릅! 먹는 즐거움은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고 그걸 책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요즘 우리반 아이들과 세계 단원을 공부하며 클레이로 세계 음식도 만들어 보았는데,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스시나 카레, 피자 등을 만들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 책이 있었다면 참고가 많이 되었겠다. 2권까지 나와 있는데(중국) 3권부터는 어떤 나라일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 태국 등의 아시아 나라들을 다루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도 다루면 흥미로울 것 같다.


 

정재승 교수가 기획자로 참여한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는 예고편을 보자마자 수서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정재승 교수의 책은 한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과학자가 글도 잘 써서 참 좋겠다', '무슨 분야든 글을 잘 써야 유명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쓴 어린이책이라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담았는데, 이 책은 글작가가 따로 있었다. 만화 형식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인간 탐구보고서'라니. 뭘 탐구한단 말인가. 표지를 보니 제목 위에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라고 되어있다. 뇌과학. 관심은 있으나 내가 공부하긴 어려운 분야라 아는 건 별로 없는 상태... 이럴 때 아이들책에서 쉬운 걸 건지면 좋은데.... 1권의 부제는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뇌과학이라고 하면 일단 신경세포, 시냅스 이런 걸 다루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인간의 인식과 사고의 경향성'이라고 할까? 그래서 어떤 외계행성의 외계인들이 새로 정착할 곳을 찾아 지구에 왔다가 지구인들을 관찰하고 무지 신기해하며 그들의 행성에 보내는 보고서를 쓴다는 설정이다. 꽤 재미는 있다.^^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음. 인정한다. 대체로 그러하다. 나도 내 외모를 가꾸진 않지만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부럽고 인상적이긴 하다. 사실 따지고보면 껍데기일 뿐인데, 이 껍데기에 쏟는 인간의 관심과 에너지는 실로 지대하지.... 그리하여 1권에서는 외계인의 눈에 거기서거기인 지구인들이 그 미세한 차이의 외모를 가지고 구별하고 차별하는 모습들을 잘 표현했다. 2권은 '기억'을 다룬다고 살짝 예고되어 있다. '기억은 만들어진다', '조작된 기억'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2권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이러니 나부터도 2권을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출판인들의 새로운 노력과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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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동화 2권에서 모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건물 유리창에 새들이 부딪쳐 희생되는 문제다. 전에도 종종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두 권의 동화를 동시에 읽게 되니 '이 문제가 그리 심각한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오우, 심각하구나. 신문 기사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 투명창에 충돌해 죽는 새가 연간 800만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는 참매,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종도 포함돼 있어 동물복지뿐 아니라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환경부도 건물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 투명창에 충돌하여 폐사하는 새들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나눠주고 신경써야 할 문제들을 문학작품으로 쓰는 작가들에게 고맙다. 그것도 재밌게 감동적으로 말이다.

 

 

 

 

 

 

 

 

 

 

 

 

<휘파람 친구 / 추수진/ 샘터>


먼저 읽었던 책은 최근의 정채봉문학상 수상작인 <휘파람 친구>다. 이 책엔 두 편의 단편이 담겼는데 그중에 표제작인 '휘파람 친구'에 이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걸 주제로 내세운 작품은 아니지만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외로운 아이 태호는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휘파람새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이후로 태호 옆엔 '이슬이'라는 친구가 생겼다. 이슬이와 여러가지를 함께 하는데 그중에 학교 유리창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에 보니 이슬이의 정체는....   

 

 

 

 

 

 

 

 

 

 

 

 

 

<하늘이 딱딱했대? / 신원미 / 천개의바람>


그리고 이 책, <하늘이 딱딱했대?>를 읽었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그 문제를 다룬 동화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특이한 제목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새들은 하늘을 날았을 뿐인데, 하늘이 딱딱했고, 그 딱딱한 하늘에 부딪친 새들은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새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잘 담겼다. 그러면서 문제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도록 잘 다루었다. 숲속에 투명유리로 지어진 까페. 음~ 까페를 좋아하는 나는 한번 가보고 싶다. 멋지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인간에게만 좋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새들은 모여서 의논하며 여러가지 해결방법들을 찾아보았다. 돌을 떨어뜨리는 방법, 천천히 나는 방법, 나뭇잎들을 붙이는 방법 등.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다치는 새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이것으로 인해 이 책은 유쾌해지고 해피엔딩이 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되었다. 어떤 방법이냐고? 마지막 문장을 보면 된다.^^
"아이들은 그곳을 '알록달록 똥까페'라 불렀답니다."

나 자신도 심각성을 잘 몰랐던 문제였지만 이제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공유해봐야겠다. 신문기사를 보니 환경부에서도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시민인 우리 아이들도 알고 있는게 좋겠지. 또 지구는 우리만 사는 곳이 아니란 걸 가슴깊이 느끼고 있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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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옮겼을 때의 한계점일텐데, 원제인 Bee boy와 '꿀벌소년'은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본문 중에 아이들이 "꿀벌소년! 꿀벌소년!"을 연호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좀 어색하다. '비보이! 비보이!" 이거랑은 느낌이 다르다.ㅎㅎ 어쩔수는 없다. 다른 언어가 똑같은 느낌을 낼 수는 없는거니까. 사실 이 책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지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동화에 담았다. 나도 언젠가 그 문제의 심각성를 듣고 마음이 무거웠던 적이 있는데, 그게 동화에 오롯이 담기다니 깜짝 놀랐다. 그건 아인슈타인이 말했다는 "지구상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4년 이내에 멸종할 것이다."라는 염려와 관련있는 것이다. 과학도서에 그림을 주로 그리던 작가는 이번엔 직접 이야기까지 썼다. 작가가 직접 벌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세부내용이 아주 치밀하고 정확하며 벌에 대한 애정까지 듬뿍 담겨있다. 마치 동화책과 벌에 대한 생태도서를 함께 읽은 느낌이다.

멜빈은 도시의 높은 아파트 꼭대기층에 산다. 옆집 사는 댄 아저씨와 옥상에서 벌을 키운다.(이걸 도시양봉이라 한다고) 아저씨가 자주 하신다는 말씀을 나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좀 길지만 옮겨본다.
"우리가 지구에 살고 있다는 건 행운이란다. 우주에 있는 행성 대부분은 너무 뜨겁거나, 반대로 너무 춥거나, 아니면 유독가스가 있어서 생물이 살 수 없단다. 그런데 우리는 필요한 모든 요소가 갖춰진 곳에 살고 있어. 진짜 진짜 희귀한 행성에 말이야. 우리가 왜 지구를 돌봐야 하는지 알겠지!"
그런데 댄 아저씨는 다른 곳에 가게 되고, 이제 벌은 오롯이 멜빈의 몫이 되었다. 멜빈은 아주 그 일에 푹 빠져 최선을 다한다.

문제의 발단은 전교생 조회시간 멜빈의 발표였다. 멜빈은 방충복까지 입고 꿀벌의 소중함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려 했으나 방충복에 따라 들어온 벌 한마리의 소동 때문에 웃음거리만 되고 만다. 악질적으로 괴롭히고 방해하는 노먼같은 녀석도 있고. 멜빈과 엄마는 부탁을 담은 안내문을 아파트 전 세대에 돌리지만 긁어부스럼이 됐다. 아파트 사람들이 걱정하며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도 벌들은 잘 자라고, 독자들은 꿀벌의 생태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멜빈이 꿀벌로 변신하여 꿀벌 무리에 들어가는 판타지까지 동원됨) 그리고 멜빈과 엄마는 동네 회관에서 양봉에 대한 토론회를 제의한다. 많은 주민들이 왔고, 설득과 이해의 시간이 되었다.(이 과정에 뜻밖의 반전도 살짝) 
이 부분을 보며 멜빈 엄마와 내가 비교됐다. 저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을까. 더구나 자식의 일에 말이다. 공부도 아닌 일에 푹 빠져있지, 남들한테 좋은 소리도 못듣지, 위험한 부분도 있지, 하지만 멜빈 엄마는 차분히 지켜보며 현명하게 도와준다. 나라면 당장 갖다버리게 했을텐데. 꿀벌이 중요한 걸 아무리 잘 알아도 말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꿀벌들의 세계에선 분봉도 일어나고, 천적들에 맞서 치열한 싸움과 희생이 일어나기도 하고 새 여왕벌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사건....은 학교에서 일어났고 이걸 해결한 멜빈은 또 "꿀벌소년!"(비보이) 연호를 받는다. 책 초반의 연호가 조롱이었다면 결말에선 진정한 환호였다.^^

아이들에게 권해주기에, 일단 재미있다는 게 참 고마운 점이다. 만화체의 그림이 잔뜩 들어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 글자가 일반적 인쇄체가 아닌 손글씨체인 것도 아이들에게 친근한 인상을 줄 것 같다. 이 책과 함께 살펴볼 책들 몇 권을 골라봤다. 이중 2권은 도서실에 사놓았는데도 활용할 일이 없더니, 이 책을 함께 읽으면 관심있게 보게 될 것 같다. 지나가다 꿀벌을 만나게 되면 사랑스럽고 소중한 눈길를 보내 주자.(근데 말벌은....흑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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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집>



방학을 마무리하며 독서모임은 영화관람과 함께 했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은 4학년 국어교과서에 들어왔으니 이번 교육과정동안 4학년을 거치는 아이들 중에는 안보는 아이들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문제삼고 싶지 않을만큼 괜찮은 영화긴 했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좋진 않았지만 그건 내문제이고....

열화같은 성원으로 두번째 탄생한 이번 작품도 역시 화제작이 될 만하다. 잘 만든 작품이고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뛰어나다. 힘든 두 가정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가정의 문제를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는 아이들의 몸부림과 그 연대가 예쁘고도 안쓰럽다. 어른들을 향해서도 많은 말을 한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문제에 빠져 있을 때 아이들은 이런 마음이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행동과 이런 궁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 안에도 당신들 못지 않은 우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보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내 왼쪽의 관객은 아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명랑한 웃음을 보내셨고, 오른쪽에 앉으신 분은 공감의 한숨과 눈물을 흘리시는데 나는 화가 났다. 화의 포인트는 하나의 표정과 태도였다. 죄지은 것도 없이 쩔쩔매고 눈치보는 모습. 맞다. 선이도 저런 표정이었지.

나의 문제다. 나는 왜 <우리들>의 선이나 <우리집>의 하나가 비슷하게 보이면서 짜증이 치솟는 것일까? 아이들의 눈치보는 태도, 뭔가 돕겠다는 넘치는 오지랖, 능력은 안되면서 자기가 해야된다는 동동거림, 이런게 지켜보기 딱했다. 나는 가족 중심의 생활을 하는 편이고 가족의 가치를 높게 두는 편인데도 '얘야 깨진 항아리는 본드로 붙여봤자 소용없단다. 너무 애쓰지 마라.' 이런 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차라리 중학생인 하나 오빠가 부모에게 "아, 언제까지 싸울건데? 헤어지든가 빨리 결정을 하라고 쫌!" 하거나 동생한테 "지금 뭐하는거냐? 이래봤자 소용없거든? 하긴 어린 니가 뭘 알겠냐." 할 때 에구 그래, 너는 좀 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족 유미네는 좁은 셋방에 아이들만 놓아두고 부모 모두 공사일에 나가 있다. 그와중에 집주인은 또 방을 내놓고, 이사에 이골이 난 유미는 어떻게서든 막으려 하지만 쉽지 않은데... 결국 동네언니인 하나의 오지랖으로 부모님을 찾아나선 길. 그 험난한 길. 서로의 설움이 폭발해 서로 원망하고 울부짖고, 그리고 함께 잠들었다 돌아오는 길....
유미가 돌아서는 하나한테 묻는다. "언니, 우리가 이사가게 돼도, 계속 우리 언니 해줄거지?"
난 이 대사가 가장 고마웠다. 이 말도 없었다면 끝까지 화냈을 테다.ㅠ

돌아온 하나는 밥을 차린다. (하나의 밥타령과 음식만들기는 영화 전반에 계속 나온다. 같이 밥먹자... 내가 할게...) 그래, 같이 밥을 먹어서 식구라고 한다지. 경찰에 신고하고 들어온 가족들은 놀라고 어이없어하며 밥상에 앉는다. 밥 위의 계란후라이가 탐스럽다. 그리고 하나의 마지막 대사의 무게가..... 대단하다.

영화를 보고 독서모임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가족은 소중한 게 맞지만 절대 깨져서는 안되는 절대구조는 아니지 않냐? 하나 보면서 짜증났다." 했더니 "물론 그렇지만 아이한테는 그 울타리가 우주였던 거지. 아이가 눈치보고 아양떨고 왜그러겠어. 살려고 그러는거야. 지도 살려고." 그 말씀을 하시며 눈물을 살짝 비치시는데 그제서야 나도 좀 울컥했다. 그리고 내가 '오지랖'이라고 표현한 것을 다른 샘은 '연대'라고 표현하셔서 심히 반성됐다.^^;;;;;

하나네 부모님이 어찌됐을지, 유미네가 이사를 갔을지 그건 독자의 상상의 몫이다. 최악은 유미네가 멀리 이사가고 하나네 부모가 이혼하는 거 아니겠나. 내 말은, 그래도 괜찮다는 거다. 그럴수도 있는거지. 근데 아이 마음을, 표정을, 태도를 봐주라구요. 살피고 다독이고 당당하게 펴주라구요. 니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라구요. 그리고 애가 뭘 해주면 맛있게 먹어주고 엄지손가락도 좀 치켜세워주고, 아이가 진정 좋아서 하는거면 취미로 살려주고 어찌될까봐 쩔쩔매서 하는거면 다른 취미로 밝게 지내도록 도와주라구요. 그정도는 해주세요. 나머지는 애들이 알아서 잘해요. 어른들은 '연대' 못해도 애들은 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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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캘러핸이라는 실존인물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전신마비 카툰 작가였다. 말그대로 '영화같은' 인생을 살다 갔다. 우리엄마보다 10년 젊으신데 10년 전 작고했으니 비교적 짧은 삶을 살다간 셈이다. 하지만 사는 동안 그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결국 그는 절망을 이겨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끝내 편해지지 않았다. 절망을 극복하기보다는 아예 절망하지 않기를, 역경을 이겨내기보다는 아예 역경이 다가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쫄보인생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3가지 정보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내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 있음)
1. 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2. 빨간머리다.
3. 학교 선생님이었다.(엥....)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저를 원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는 버려졌고 입양되었고 그곳에서도 환대받지 못했다. 그는 일찍부터 술담배를 했고 알콜중독자가 됐다.

상처받은 짐승의 몸부림은 처절하다. 그동안 받아마땅했던 모든 사랑과 위로와 관심과 어루만짐이 있어야 그 몸부림이 잦아든다. 그제서야 우리는 그의 눈을 바라보고 차분히 말을 건넬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주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걸 알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다. 그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의 짐승 몸부림에 난 미간을 찌푸렸다. 금단증세로 덜덜 떠는 손으로 병째로 술을 들이키고, 비틀거리며 걷고 아무말이나 하고 아무나 만나 위험한 일에 빠져들고... 만취된 두 사람이 차로 걸어갈 때 알아차렸다. 아 저렇게 해서 사고는 일어나는구나.... 그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병원에서의 시간, 온몸이 고정되어 겨우 말만 할 수 있는 그가 자원봉사자인 아누와 나누는 얘기가 너무 처절했다.(정확한 대사는 기억 안 남)
"하나님께 말한다면, 제발 마비가 되지 않게 해주세요."
"악마에게 말한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으니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러나 이미 그의 척추는 부서져 전신이 마비된 상태. 퇴원한 그는 휠체어에 앉아 방문간병인의 손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리고 그 끔찍한 변화에도 알콜중독만은 그를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다. 그는 '알콜중독자 모임'에 나간다. 집단상담 같은 모임인데 인도자인 도니와의 대화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주옥같은 대사가 오고가는 동안 깜빡깜빡 졸아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대사를 많이 놓쳤다.;;;; 존은 도니가 제시한 12단계 프로그램을 하나씩 실행해나간다. 그와중에 환상속의 엄마를(그토록 원망하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보고 음성을 듣기도 하고, 음주운전으로 자신을 이꼴로 만든 친구를 만나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이때 그의 표정이 정말 편안해 보였다. 타인과의 화해(용서)는 그렇게 성공했다.

마지막 단계는 자신과의 화해(용서)일 터. 그는 이것을 무난히 해냈을까?

창피하게도 심각한 대화 도중 살짝 졸았던 이유는.... 이 영화는 극적인 역경극복 스토리가 아니다. 믿을 수 없는 변화가 한 순간에 일어나고 막 감격스럽고 그렇지는 않다. 그냥 그는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쩌면 선택지가 없으니까. 그는 용서했다. 어쩌면 용서하지 않는 것이 더 괴로우니까. 케이트 디카밀로의 동화 <생쥐기사 데스페로>가 생각났다. 데스페로가 자신을 버리고 사지에 밀어넣은 아빠를 용서할 때 작가가 뭐라고 했더라? 


["아빠, 아빠를 용서해요"
데스페로는 그 말을 하는 것이 가슴이 둘로 쪼개지지 않을 단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단다. 얘들아, 데스페로는 자기 자신을 구하려고 그 말을 한 거야.]

그렇게 존은 자신을 구했다. 영화 전반에 걸친 그의 표정변화는 동일배우라 믿기 힘들 정도로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타락한 짐승일 때의 표정-사고로 절망할 때의 표정-쓸쓸한 표정-체념한표정-편안한 표정-복잡한 표정-그리고 사랑과 기쁨의 표정도.

다시 본다면 그의 카툰 내용에 집중하고 싶다. 시각정보에 약한 데다 졸기까지해서 카툰 내용까지는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사고와 처지에 대한 감정이입이 심해서 참 힘들게 영화를 봤다. 그는 용서하고 편안해졌는지 몰라도 내 상상은 거기까지 닿지 못했다. 난 '스페셜'하지 않아도 좋으니 '워리'하지 않게 살고 싶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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