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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골 강아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 ㅣ 보름달문고 86
이선주 지음, 정인하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작가님이 동화도 많이 쓰셨지만 청소년소설 쪽을 조금 더 많이 쓰신 것 같다. 이 책이 내가 읽어본 이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 청소년소설에 어울리는 문체를 가지셨다고 생각했다. 동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주제도 그렇고 풀어가는 방식도 어린이로 치면 조숙한 어린이 같다고 할까. 뭔가 산전수전 다 겪고 침착해진 아이의 통달을 보는 것 같달까. 하룻강아지가 아닌 어린이.^^
아미골이라는 시골 마을의 순수한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민수는 너무 흔한 자신의 이름 때문에 작은민수라고 불리는 것이 마음에 안 든다. (요즘 민수라는 이름 그렇게 흔하진 않은데.... 민준이라면 한 반에 한명씩은 있지만.^^;;;) 민수의 유일한 친구 용찬이는 심장이 약해서 조심할 것이 많고, 그로 인한 에피소드들이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주인공 아미골 강아지. 주인이 없어 이집저집 다니며 밥을 얻어먹는, 유기견이라 말할 수는 없는 자유견? 민수는 개를 키울 형편이 못되어 속상해하다가 그 강아지를 자신의 강아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디서든 부르면 오고, 함께 뛰어노니까! 그리고 민수처럼 흔한 이름 말고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고민한다. 장고 끝의 작명이 바로 제목에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강아지는 이 이름에 반응했다. 민수와 용찬,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사건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일어났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실종’ 사건이다. 어느날부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다가도 부르면 나타나던 강아지가 보이지 않자 민수의 가슴은 철렁한다. 불길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해가 바뀌도록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상실감과 함께 아이들은 조금씩 더 자란다.
그러다 용찬이가 인근 도시의 동물원 사진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보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말이 되나? 동네 강아지가 왜 동물원에? 하지만 용찬이의 강경한 태도에 밀려 둘은 모아둔 돈을 털어 어른들 몰래 동물원을 찾아갔다. 거기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있었다! 우리 안에. ‘한국 토종개 삽살개’라는 간판을 달고. 아 맞다, 얘가 삽살개였지. 그들의 만남은 생각보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 다음부터가 이 책의 클라이막스라 하겠다. 안타깝게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민수와 용찬이는 어떻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되찾을 것인가? 여기서 포기하면 얘기가 되겠어? 둘은 모종의 작전을 세운다. 그 작전은 꽤나 긴박감이 넘쳤다. 성공하려는 찰나! 발각되고, 추격전이 벌어지고.... 어린이 독자들이 가슴 졸이며 읽을 수 있는 아주 재미난 장면들이 펼쳐진다.
그 이후 결말로 가는 방식에서 이 작가님이 좀 남다르다고 느꼈다. 흑흑 우리 이젠 절대 헤어지지 말자 뭐 이런 류의 신파는 나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건 좀 너무 감동이 없는거 아니야? 그래도 결말에는 드라마틱한 뭔가가 있긴 있어야지. 새드엔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도 아닌 뭐랄까 현실엔딩?ㅎㅎ
그 현실엔딩은 쓸쓸한 느낌이 살짝 들고, 등장인물들은 “내가 이러려고 그 감정의 격동을 겪었던가. 내가 잠깐 미쳤었나 봐. 뭐 절대적인 건 없나 봐. 사는 게 그런 건가 봐.”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갈테고, 나도 변하고 다른 존재들도 다 변한다. 그건 한편으론 쓸쓸하지만 한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지금 보라라고 할 때 빨강이었던 시절과 파랑이었던 시절은 다 의미없는 것일까? 흑역사였다거나 부질없었다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변하면 변하는대로 지금의 진심은 소중한 것이다. 그것으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다 읽고 생각해보니 전반부에서 아미골의 배추할매가 돌아가셨을 때, 동네사람들은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배추할매 돌아가셨어요!”
“어쩌다가?”
“주무시다가요.”
“잘됐다.”
할아버지가 아구구구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무릎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복 받았네. 암, 복이지, 복.”』
이런 대목은 동화로서는 매우 낯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공감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것이지. 이처럼 이 동화는 굳이 어린이 독자만을 상정하고 쓰지 않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 어떤 포인트에서 공감하고 어떻게 감상하는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