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토끼와 고슴도치의 오늘도 좋은 날♥ ㅣ 어린이문학방 저학년 6
하라 마사카즈 지음, 이시카와 에리코 그림, 신명호 옮김 / 여유당 / 2022년 10월
평점 :
보색 대비의 표지가 너무 예쁘다. 빨강과 초록이 주는 강렬함보다도 귀여움과 따뜻함이 더 돋보인다. 사랑스런 존재들을 보면서 기부니가 좋아지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처음 보는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일본의 작품들도 물론 스펙트럼이 넓지만 내가 자주 받는 느낌은 조근조근함? 작고 조용한 느낌? 그런 것들이다. 좁은 범위 안에서 꼬물꼬물 지내는 내 취향과 좀 맞는 편이다.^^
표지색은 선명하지만 본문 그림들은 흑백이다. 가는 펜선 위주인 그림이 귀여워서 화려한 그림들보다 더 눈이 머문다. 60쪽 정도의 분량에 그림책보다는 약간 많은 글밥. 그림책과 줄글책의 다리를 놓아줄 책으로 가장 적당하지만, 중학년이나 고학년 아이들과 음미하며 읽기에도 좋겠고 나같은 어른들 독서모임에서 중간쯤 쉬어가는 느낌으로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
총 4장으로 되어있다. 1장 제목 ‘뾰족뾰족과 포실포실’은 등장인물을 말해준다. 뾰족뾰족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고슴도치, 포실포실은 누굴까~요? 바로 토끼다. 둘이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고슴도치를 처음 본 토끼는 놀라 주저앉으며 말했다.
“너 큰일 났어. 온몸이 가시에 찔렸어.”
“아, 하하하하. 이 가시? 찔린 게 아니라 난 거야.”
둘은 털에 대해 이야기하다 둘다 자기 털이 빠진 뒤에도 쓸모가 있다고 주장한다. 증명하기 위해서 벼룩시장에 내 보기로 했다. 자리를 펴고 앉아 뾰족뾰족 고슴도치 가시 사세요! 포실포실 토끼털 사세요! 하고 외쳤지만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바람이 불어와 토끼털이 날아가고... 그런데 그걸 잡으러 간 건 토끼가 아니고 고슴도치였다. 자신의 것도 아닌 걸 힘들게 붙잡아 호두껍질 안에 고이 넣어온 고슴도치. (착해, 예뻐) 그동안에 잠이 깨어 고슴도치 가시에 작은 빨간 열매를 꽂아놓은 토끼. (너도 착해, 예뻐) 자~ 서로 만들어 준 그 물건들이 합쳐져서 무엇이 되었을까요? 빠르고 편리한 상품들이 넘치는 시대에 작고 소박한 물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게 작가가 의도한 주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우리 사회는 느려지고 소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별거 아닌 걸 예뻐하고 별거 아닌거에 기뻐하고. 그 옛날 사금파리들을 보물처럼 모아 소꿉장난을 하던 시절처럼. 나도 지금 여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ㅠ
2장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친구가 된 두 아이가 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 나온다. 이번에도 호두껍질이 나오는데, 거기에 새로운 소품, 거미줄이 등장한다. 두 호두껍질 사이를 거미줄이 연결했지요. 그게 뭘까~요? 우리 애들 어릴 때 종이컵 전화기 만들어 신기해 하면서 놀던 추억이 있는데, 딱 그거! 호두 전화기로 둘이 나누는 우정의 대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 츤데레라기 보다는 배려의 마음.^^
3장 ‘내일을 위해서’ 에서는 고슴도치가 기분이 별로다. 빠진 가시가 X자가 되면 운이 나쁘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그게 들어맞는 날이었기 때문.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 세상은 달리 보이는 법. 그렇게 4장으로 넘어간다.
4장 ‘민들레 씨’에서도 고슴도치의 가시는 X자가 되었지 뭐야! 우울해하는 고슴도치를 토끼가 끌고 밖으로 나온다.
에잇, 말파리 때문에 재채기를 했어. (그런데 그 재채기 때문에 민들레 씨가 날아가잖아!)
에잇, 넘어졌잖아! 아파! (엇, 근데 멧돼지 아주머니가 애타게 찾던 브로치를 발견했어! 여우 언니가 찾고 있는 약이 되는 꽃도 찾아주고.)
에잇, 연못에 빠지기까지! 역시 나오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이하 생략^^)
내가 괴로워 죽겠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쥐어박아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 책은 소곤소곤 작은 긍정들을 알려준다. 어설프고 작고 귀여운 존재들이 허부적거리다가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살며시 기분이 좋아진다. 세상에 아름다움은 대부분 이런 존재들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찾아헤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