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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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았다. 비교적 젊으시고 주목받는 남성 작가이신 듯하다. 생각해보니 올해 읽은 한국문학 대부분이 여성 작가의 책이었다. 교직이 그렇듯이 문학계도 성비가 치우쳐 있을까? 음 그건 내가 확인할수 없고 굳이 중요하지도 않지. 제목이 들어본 듯하고 검색을 해보니 더욱 구미가 당겨서 대출해왔다. 읽어보니 이분도 독자적인 작품 스타일이 있으시네. 저절로 책장이 막 넘어가는 몰입감 쪽은 아니고, 재밌다고 말하기에도 쫌 그런데, 그래도 읽기를 중단하고 싶진 않았다. 이런 느낌도 나의 감상 경험 안에 넣어두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썩 재밌다고 말할 수 없는 건 이 책의 수록작들이 대부분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초월한 작품들 같기 때문이다. 뭔 일이 일어날거 같은데 결국 별일은 안 일어난다. 내가 올해 읽었던 소설집들 (권여선, 손원평, 김애란, 백온유, 조경란 등)에서 자주 느꼈던 결말의 참담함과 깊은 슬픔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들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번엔 뭐가 올까.... 큰 게 오나....'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무시하듯 쓱 지나간다. 나는 엥... 이렇게 끝나나 하면서 그 안에 박혀있는 미세한 감정들을 다시 거슬러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다.

가장 황당했던 작품은 [전조등]이었는데, 여기서 독자는 시종일관 느껴지는 불길함에 마음을 조인다. 어릴 적 아스팔트 위에서 본 어떤 생물의 사체로부터 시작하여 '12인의 성난 사람들' 이라는 연극, 인적 없는 밤길 운전, 전조등의 파열, 털고무신 한짝의 발견... 등등 온갖 불길한 복선으로 독자들을 잔뜩 옥죄어놓고는 그냥 평범한 일상으로 툭 끝난다. 이게 뭐지? 난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했다. 작가는 나를 이렇게 농락해 놓고, 내 안의 불안의 실체를 보라고 말해주는 것인가? 당신 안의 불안의 크기만큼이나 현실에서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뭐 이런? 그렇다면 난 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불안을 무럭무럭 키우는 습성은 이 책을 읽는 과정과 매우 흡사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은 큰 위안이기 때문이다. 작품 의도가 뭐건 간에 난 그냥 그렇게 해석할테다.ㅎㅎ

위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 또한 소설적 기승전결과는 결이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는 볼 수 없었다. 현실로 말한다면 BTS급인 '세상의 모든 바다'의 공연 주변에 사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죽고 다쳤기 때문이다. 공연 전 화자가 굿즈샵에서 만났던 고등학생도 사망자 명단에 있었다. 화자는 그 사건을 털어버리기 힘들어 그가 대화에서 말했던 그의 고향마을에도 가보지만 바다 앞에 잠시 서있다 그대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리고 아무일 없는 일상으로 끝이 난다. 별 재미 없고 쓸쓸한 이야기다. 그래서, 이 작품은 현실에 닿아있는 것일까. 거대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그룹과 그 팬덤이 추구했던 선한 영향력은 결국 환상이고 착각이었으며 개인의 삶은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진행된다. 그렇다고 사회와 삶을 바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는 화를 내며 단정지어야 할까.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는 뭘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고 단지 세상을 바라보는 것 뿐인가. 그 시선에는 흥분이나 열정은 없고 약간의 다정한 시선이 쓸쓸함과 나란히 있다.

[롤링 선더 러브]의 주인공 조맹희 씨는 그나마 좀 입체적인 인물이다. 37세 미혼인 그녀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았다. 심지어 TV 짝짓기 프로그램인 '솔로농장'에 신청서를 넣어 출연하게 되고, 거기서 여성적으로는 어필하지 못한채 엉뚱한 캐릭터로만 부각되고 방영분량도 얼마 잡히지 못했어도 그랬다. 내가 지인이라면 반대했겠지만 나쁜 짓만 아니면 뭐든 경험해보는 거 괜찮지 뭐. 본인이 흑역사라고 후회할 것만 아니면 말이다. 그녀에겐 금기도 비관도 없다. 방송 중엔 출연자가 아닌 PD에게 꽂히고, 방송 후엔 뒤늦게 누군가랑 사귀지만 몇달 후엔 또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주워 얻은 애착인형 호랑이에게 말한다.
"사랑하고 왔다."
이 사람의 '걱정되지 않음'의 원천은 무엇일까 걱정이 많은 나는 생각해보게 된다. 걱정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달라질 건 없다는 명확한 인식? 타고난 성격? 어쨌든 기분이 괜찮은 이야기였다. 대중음악의 제목이나 가사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작가와 소통이 되는 작품이었다.

[보편 교양]은 주인공이 교사라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무난하게 잘 끝났는데도 왠지 느껴지는 쓸쓸함이 다른 작품들과 연결되었다. 곽선생은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를 맡아 겨울방학을 온전히 들이고 사비까지 들여 정성다해 준비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잠자러 온 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했지만 최상위권 학생이 와서 서울대를 합격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 수업의 목록에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있어서 민원이 들어오길래 이걸로 뭔일 나나 했더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근데 왜 착잡하지...

이건 작품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의문인데, 고교에서 학생들 독서수준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가르쳤던 고학년 아이들은 5,6년 안에 '자본론'의 수준에 절대 이르지 못한다. 중학교에 가서도 초등고학년 동화 정도 겨우 읽을 아이들이 태반이다. 좀더 평이한 책으로 깊이있게 감상하고 자본론 정도는 대학 가서 읽는게 어떨까? 이 책이 현실을 얼마나 반영했는지 내가 확실히 모르니 기우일 수도 있지만... 그리고 독서수준이란 게 워낙 개인차가 심한 것이니 수준 되는 학생들이야 뭐 말릴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곽선생의 수업준비와 열정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열정이 최상위권 아이의 스펙 한 줄이 되고 마는 과정이 나에게 쓸쓸함을 안겨준 것인가.... 입시제도 가지고 온국민이 말을 보태지만 나는 세상이 학교에게 네모난 동그라미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 거점의 국립대까지 무력화시킨 사회가 인서울의 상위권 대학 몇개에 한줄 경쟁을 만들어놓은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도 어그러진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곽선생 수업의 의미가 그 스펙 한줄에서만 반짝 빛났듯이... 그는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다음 학기 수업도 그런 열정으로 준비할 수 있으려나.

표제작인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과연 표제작다운 작품이라 생각했다. 진주는 저소득층 가정의 한국인 아이. 니콜라이는 한국 국적을 얻지 못한 고려인 후손. 그 둘의 국적이 달라서 저 제목인가보다 했는데 그보다 훨씬 큰 의미가 있었다. 과거 민중들의 집단적 연대의 구호였던 용어는 지금 두 사람만을 엮어주는 용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둘은 고교 교무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갖다드리라며 주는 서류봉투를 같이 받으며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 우리는 같은 류의 사람들이구나.

사회에 나와 고생하고 애쓰지만 별 진전은 없는 생활을 하며 둘은 만나 밥을 먹고 가끔 술도 마시고 톡을 주고받고 형편이 뻔한 서로의 거처에도 가고 그러다 결국 동거를 시작한다. 인터넷 최저가의 식탁을 주문했으나 볼트가 안맞아 결국 첫 식사는 바닥에서.... 이런 자신들의 관계를 "우리는 친한 사이야." 라고 규정했다. 사랑도 아니고 통속적 파트너도 아닌 '친한 사이' 그 온도감이 참 좋다. 그 연대로 그들은 살아갈 수 있겠지.

다 언급하기엔 너무 길어지기에 이정도에서 마무리하겠다. 새로운 작가님에 대한 독서 경험이 꽤 의미있었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커다란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 시원한 해답은 없지만 세상의 평범한듯 다양한 여러 장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밋밋한 듯 서늘한 듯 따뜻한 듯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장편도 쓰시면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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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를 담은 집 - 소박하고 위엄 있는 일상의 풍경들
박경이 지음 / 플로베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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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나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알아가는 사실들은 이러했다.

1. 퇴직하신 분인가보다. (아마도 교직. 나랑 같네.)
2. 귀농(?)까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퇴직 후 시골집을 짓고 남편과 둘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3. 남편은 너그럽고 교양있고 부지런한 분인 것 같다.
4. 아내(저자)는 감정이 풍부하고 소녀스러운 면도 있다. 부지런한 분인 것은 같다. 매사 귀찮고 시큰둥한 나랑은 종류가 다른 분이다.
5. 4번과 연결되는 말인지 모르겠는데, 시적인 문장을 주로 사용하신다. 구구절절 설명하는 나랑 반대의 성향이시다. 나는 시랑은 거리가 멀어 처음엔 조금 몰입이 안되었지만 읽다보니 괜찮아졌다.
6. 시골집에 살면서 일상적으로 돌봐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당연한 일이다. 관리사무소가 있는 아파트에 평생 살기로 다짐한 나는, 내가 지은 집을 내가 관리하며 살아야하는 번거로움을 상상하지 못하겠다. 난 지금 베란다에 있는 화분도 싫어서 아버님 안계시게 되면 다 치워버릴 거라고, 내 집에 살아있는 건 그 어떤 것도 안키우고 '어지르지 않아 치울 필요 없는' 집으로 만들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인데..... 사실 편안한게 곧 행복이 아닌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분들의 삶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빛과 소리를 담은 집' 주인장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분이고 방문을 환대하는 분이다. 부부간에 형제자매도 많고 조카들까지 많은 친지들이 방문하고 그때마다 북적이는데 그걸 즐기시는 듯하다. 참 좋은 품성이다. 친지들 뿐만이 아니다. 제자들에게도 전심을 다하셨던 분인듯 아직도 이어지는 인연들이 있고, 그외 친구와 지인들도 이 집을 찾아 부침개며 찌개며 맛있는 음식에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수다보따리를 풀며 쉬었다 간다. 그 수다 내용을 자세히 쓰시진 않았지만 몇가지 인상적인 내용은 있었다. 가부장제 속에서 평생 살았지만 이제라도 속박을 풀려는 시도. 또 자식을 날려보내줘야 할 때 붙들어매지 않고 건강히 날려보낼 다짐 등등.

본문이 다 끝나고, 작가의말도 끝나고, 추가 속지가 세 쪽 이어지는데 나는 그만 먹먹해지고 말았다. 함께 했던 반려견 두 마리를 나무 아래 묻었다는 말, 이듬해엔 남편도 떠나셨다는 말이 아주 간결한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본문에 아무 예고도 없었기에 얼얼했다. 그럼 저 시골집에 이제 혼자 남으신 것인가?ㅠ

하지만 그곳을 찾아 마음을 털고 서로 위로하던 이들은 남아있으니, '빛과 소리를 담은 집'의 역사는 이어질 것이다. 그것이 작가님께 웃음과 활력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나하나 손이 많이 가는 시골집의 생활이 나에겐 어림없는 일이라도 이렇게 책으로나마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은 여러 시선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읽다보니 퇴직자의 삶/시골생활 이라는 시선에서 보게 되었다. 자연의 변화에 온 감각을 열고, 느린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그 생활이 좋아 보였다. 도시지향에서 벗어나는 건 사회적으로도 꼭 필요한 일이니까. 또 한가지, 매일 읽고 쓰는 생활이 이렇게 책으로 이어진 과정도 인상적이다. 작가님이 다양한 장르의 글을 꾸준히 쓰시길 응원하며 소중한 집에서 소중한 이야기들이 계속 흘러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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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선생님을 위한 심리학 - 흔들리지 않고 나를 지키며 당당한 교사로 살아가기
서준호 지음 / 지식프레임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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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호 선생님의 전작 <교사의 자존감>을 읽고 긴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5년 전이니 일부는 기억이 희미해졌다. 저자의 특기인 심리극 사례가 많이 나와 감탄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도 심리극 사례가 많이 들어있다. 다만 제목에서도 나와 있듯이 '착한 선생님'에게 중점이 있다는 사실이 차별점이다. 따로 다루어야 할 만큼 그렇게 사례가 많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물론 어느 직군에나 다양한 성격과 성향의 사람들이 공존하고, 교직도 예외는 아니다. 이기적이고 약아빠져서 상종하기 싫었던 사람도 있었다. '참 도움 안되네' 라고 느껴지거나 심지어 폭탄인 사람도 존재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착한 사람'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용어인 '착한 교사 증후군'이 중증부터 경증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하나 일부 특별한 성향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직군 전반에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따로 다룬 책이 나온 것도 필요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 1년차인 내가 이 책을 보며 나를 진단해보니 나는 살짝만 걸친 경증에 해당되었던 것 같다. 중증 아니었을까 생각했던 건 완전 착각이었다.ㅎㅎ 나는 거절도 할 수 있고 팩폭도 가끔 하며 내 영역이 아닌 일에선 미련없이 물러나고 포기할 수도 있다. 싫은 소리도 할 수 있고 가끔 버럭도 했다.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던 성품들이 실은 나를 지탱해줬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묘하네.^^;;; 어쨌든 이 착한 교사 증후군은 많은 교사들을 극한으로 몰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이들의 훌륭한 점이 분명 많지만, 본인의 심신의 건강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치유해야 할 점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모든 교사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착한 교사'와 거리가 먼 교사들도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들의 수고와 마음고생 때문에 내가 편했구나 느끼고 짐을 좀 덜어 지면 좋지 않을까? 어디서든 중간이 없어서 탈이란 말이지. 이 책은 교직의 중간지(균형지대)를 찾아가는 책이라고 해도 좋겠다.

저자인 서준호 선생님은 오랫동안 '성장교실' 운영자로 멘토링, 집단상담을 진행해오신 분이다. 이런 분도 교통사고, 건강악화, 새로운 학교, 어려운 학급 등등의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오자 결국 내담자들 중 한 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은 강철이 아닌 것이다. 저자의 이런 경험은 모든 고난이 모든 교사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거대한 상황 앞에서 개인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버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상황에서 '착한 교사 증후군' 교사들은 자신을 자책한다. 그래서 더욱 더 상처받고 고통이 깊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심리적 양상들을 명확히 짚어 보여주고 솔루션도 제시한다.

1부 [착한 아이의 탄생]은 가정 안에서 착한 아이로 자랐던 '착한 아이'가 '착한 교사'로 고착되는 과정 등 '착한 선생님'의 탄생 배경을 다루고 있다.

2부 [착한 선생님으로 산다는 것]에서는 착한 교사의 대표적 증상 11가지와 그에 대한 설명, 심리극 사례, 솔루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핵심 파트라고 할 수 있겠고 분량상으로도 가장 많다.

나의 경우 가장 해당되었던 것은 '평가의 기준이 자기 밖에 있다'는 점이었다. 욕먹기 싫어하고 민폐 극혐인 사람들의 성향이 주로 이렇다. '타인의 반응이라는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게'(86쪽) 되어 그 불안정한 기준에 늘 흔들린다. 격한 요구와 불만이 많은 작금의 현장이 이런 불안을 더 부추기고 있다고 하겠다. 그외 여러 사례들을 보니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몸이 자주 아픈 것,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것 등의 증상들도 있었다. 지나온 몇몇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이 딱하면서도 민폐는 민폐다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들이 '착한 선생님'이어서 그랬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민폐를 극혐하면서 결국은 민폐를 끼치게 되고 더욱 자책하는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후배를 도울 수 있는 선배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부 [착한 선생님이어도 괜찮아]에서는 내면가족체계(IFS)라는 용어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이 관점에서 보면 2부의 증상들은 나를 지키기 위한 내면의 일꾼들이었을 수 있다. 이 내면의 방식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의 나를 만날 수 있고 나를 세우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저자의 깊은 공부와 경험이 담긴 전문서적이면서도, 읽는 내내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 마음은 바로 "괜찮아요." 이다. 현장의 한가운데서 그 마음을 느껴온 저자가 동료들에게 건네는 간절하고 따뜻한 위로이자 격려이다. 이 책에 큰 위로를 받고 한걸음을 다시 떼는 선생님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본다. 아울러 저자가 2부의 말미에서 "바뀌어야 할 것은 사람보다 구조다." 라고 지적하셨듯이, 사회적 제도적으로도 착한 교사가 넘어지지 않을 울타리를 갖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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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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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명한 책을 이제야 읽어봤다. 평점이 생각보다 낮아서 100자평들을 훑어보니 별 한개부터 다섯개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말하자면 호불호가 크다는 뜻이겠다. 좋다 싫다 뿐 아니라 재미있다 재미없다도 많이 갈렸다. 박정민 배우가 넷플릭스를 운운한 추천사에 대해서도 공감 반 태클 반이었다.ㅎㅎ 독자들의 이렇게 엇갈린 반응도 나한테는 읽기 전 기대 요소가 되었다. 어떤 점이 넷플보다 재밌는지, 싫다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느끼는지.

표제작인 [혼모노]를 먼저 읽었는데 읽자마자 딱 느낌이 왔다. 헐, 이게 뭐지. 라는 느낌. 얼떨떨하네, 뭔 얘길 하려는 거야. 라는 느낌. 이토록 무속이 강한 작품은 처음 보는데 그걸로 인간의 어떤 단면을 말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그게 이렇게 끝난다고?

이어서 읽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렇게 끝난다고?'의 느낌은 이어졌다. 재미없다는 평가는 대체로 여기서 오는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소재들은 매 작품마다 파격적이었으니까. 유사성이 거의 없는 각각 새로운 소재들이었다. [혼모노]는 무속인들의 세계, [길티 클럽:호랑이만지기]는 영화감독에 대한 팬덤의 세계, [스무드]는 한국에 대해 아는게 없는 이민 3세대의 한국 출장기, [우호적 감정]은 마을 재생 사업을 맡은 스타트업 회사원들의 세계 .... 이런 식으로. 워낙 배경과 소재가 다양하여 능숙한 표현을 위해서는 공부와 조사를 많이 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재밌는 점은, 한 편 한 편 읽어갈수록 처음의 느낌(헐, 이게 뭐지)이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읽을수록 익숙해져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몰입감이 점점 더해졌다. 나의 경우 그 절정은 딱 가운데 있는 수록작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였다. 이 작품의 소재는 '건축'이고 주인공들은 건축가들이다. 그런데 그 건축물이 심상치 않은 것임이 곧 드러난다. 서울촌놈이라고,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동네라 제목을 보고도 느낌이 없었는데 그곳은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가 잘 어우러져 있다. 건물 자체에 대한 내용은 허구보다는 대부분 사실이다. 비밀리의 참혹한 일을 하기 위한 건물의, 철저하게도 적합한 설계.... 그걸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하게 되고 어떤 마음으로 하는 것인가.... 너도 나도 많이들 말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여기에 적용하면 맞는 것일까. 그걸로도 다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다면성과 의외성이 느껴진다. 그 건물은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여진다니 세상이 그만큼 좋아졌구나 싶으면서도 한쪽이 펴졌으면 다른 어딘가가 구겨지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나는, 인간에 대한 지독한 불신을 가진 사람이다.ㅠ

이런 나의 성향은, [우호적 감정]을 읽으면서 마을 프로젝트가 (진정한 의미로는) 실패할 것을 초장에 예감했다. 그런 게 가능하면 국가력이 필요없게? 동상이몽이라고,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속도 제각기 다를 뿐더러 그 순도가 변질되는 것은 순식간이라 인간의 선의에 기대서 뭘 한다는 건 기적을 바라는 일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게 슬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음...

[길티 클럽:호랑이 만지기]에서 화자가 한때 참여했던 영화감독 팬덤도 그렇다. 화자는 충성된 팬으로 결국 소수의 오프모임 멤버까지 되었지만 정작 모임에 가서는 소외와 조롱의 느낌까지 받고 온다. 다른 이들에겐 그 와중에도 실속과 속셈이 있었다. 난 그게 없었던 화자가 더 미련해 보인다. 결국 그 우상을 대면했던 시사회 자리에서 내면에 뭔가가 터지며 덕질의 종말이 예고없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이후 여행지에서 이빨 발톱 빼버린 호랑이 만지기의 그 복합적인 느낌은.... 인간의 팬심과 유사성이 있지 않을까. 유명인에 대한 우리의 소비가 바로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잉태기]는 자녀에 대한 이야기이고 집안 이야기이기도 해서 소재가 익숙하다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뒤로 갈수록 이질감이 커지다가 마지막 장면에선 과장이 너무 심한거 아니야?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생활권이 매우 평범하고 소박해서라는 생각이 이어서 들면서 이런 세계도 존재하고, 그들의 높은 경제력만 빼면 생각이나 행동양식은 결국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식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그렇다. 자식을 소유하려 하고 자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려 하는 태도. 그건 재력이 있는 이들이나 내가 본 평범한 사람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를 성공시키는 요인이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라더니 이 책이 딱 그 꼴이었다. 다만 이 집의 문제는 그 둘이 극한 대립을 한다는 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딸의 양육을 놓고 무섭게 적대하는데, 그 고래싸움에 낀 새우는 누구겠는가? 바로 그들이 사랑한다는 딸 서진이. 어린애 같으면 말도 안하겠다. 이미 성인이 됐고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으며 출산도 앞두고 있다. 다 컸는데 그 고래싸움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그녀. 정말 딱하다. 저들은 대체 뭘 원하는가.

[메탈]에서는 오랜만에 옛날 헤비메탈 그룹의 이름들을 접했다. 주인공은 이들을 신봉하며 메탈음악을 추구하는 세 청년이다. 그중 둘은 20대가 되며 대학으로, 직업으로 타협해 들어갔지만 우림만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되는 것도 없이 나이만 먹는 것을 보니 내 속이 탈 지경이다. 나도 청년들의 부모이고, 꿈을 쫓는 자식도 현실을 쫓는 자식도 다 안쓰럽고 불쌍하다.ㅠ

결국은 그도 악기들을 다 치우고 아지트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몇년이나 절연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거는데.... 영화로 치면 신호음에서 영화가 끝난다. 파도소리와 어우러지며.... 그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으며 무슨 말이 듣고 싶었던 걸까. 성해나 작가는 절대로 이런 걸 말해주지 않는다. 딱 한 발 앞에서 끝내는 느낌이다. 말하자면 열린 결말인데 독자들에게 정신적 고생을 안기는 열린 결말이랄까. 자괴감도 불안함도 파탄의 예감도 후회도 낭패감도 모두 독자가 끌어안아야 한다. 이 책이 폭발적 유명세를 탄 걸 보면 그걸 좋아하는 독자들도 많은 것이다. 나도 읽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높게 평가하고 싶다.

성해나 작가의 책은 <두고 온 여름>이라는 소품 같은 소설을 가장 먼저 접했고 이 책이 두번째다. 첫 책으로 살짝 엿봤다면 이번 책으로 활짝 열고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 느낌이다. 최근작으로 인비인이라는 책이 나왔던데 그건 '기담집'이래. 뭔가 무척 내 취향이 아닌 것....^^;;; 내가 그걸 읽어볼까 말까 망설이는 중에도 작가님의 이야기 주머니는 계속 채워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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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도망갔다
소복이 지음 / 나무의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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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그래픽노블이다. 어린이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어른들에게 더욱 그렇다. 엄마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 한창인 이들은 폭풍 공감할 것이고 나처럼 한숨 돌린 사람들의 마음도 애틋할 것이다.

나는 손도 느리고 일도 살림도 그닥 잘하지 못한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하며 두 아이를 키운게 돌아보면 신통하다. 주중도 주말도 밤도 낮도 없었다. 그냥 닥치고 몰아치니까 떠밀려 감당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퇴직하고 이제 자유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독립했고 시아버님과는 하루 두세마디밖에 안하고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각자 조용히 산다. 평생 그리던 고요한 생활이 찾아왔달까. 그런데 생각만큼 좋지는 않다. 그럼 옛날로 돌아가? 아니아니 그건 절대로 더 싫다.ㅎㅎ

그때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 사는 커리어우먼' 이었을 것이다. 원룸이라도 혼자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생각했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이런 생각조차도 길게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엄마를 보니 그때의 순간적인 감정들이 뒤늦게 떠올랐다.
"엄마는 까페가 유일한 쉴곳이라고 했다." (18쪽)
"엄마는 낯선 사람이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37쪽)
"아무도 없는 깊은 곳에 숨고 싶다고 했다." (41쪽)
지금은 온갖 까페들을 매일 돌아가며 전전할 수 있는데, 아이들 취학전에 양손에 한명씩 잡고 다니며 동네 던킨을 지나다가 그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언제 저런데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고급 브런치 레스토랑도 아니고 베이커리 카페도 아닌 동네 지하철역의 던킨 앞에서 그런 생각을 내가 했었다....

이 책의 엄마가 쏜살같이 달려나가는 장면으로 책이 시작된다. 집에는 아빠와 아이가 남았고, 아이가 화자다. 아이는 엄마가 했던 말들을 회상했고 자신이 아는 엄마를 아빠한테 얘기해주기도 한다. 마지막쯤에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가 나온다. 얼마나 금쪽같은 시간일까 생각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시도하지 못했지만 응원하고 격려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 엄마가 누운 곳은 아이가 있는 집이라 독자는 휴우~ 하며 책을 덮을 수 있다.

이 '도망'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이 엄마의 도망을 응원하는 건 '만성 도망'이 아니어서다.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회피도 아니어서다. 자기가 낳은 자식인데 어쩜 저렇게 자식이랑 있기를 싫어할까 싶은 엄마들을 종종 보았다. 숨쉴 구멍을 아예 차단한 경우와 도망이 만성이 된 경우 둘다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간이 있어야지. 이 집의 엄마처럼.

평상시에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애쓰고 밀도 높은 시간들을 살아내고, 축적해둔 여유들을 모아 가끔 한번씩 '도망'을 가길 추천한다. 남편찬스가 가장 좋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서로 찬스가 되어주는게 좋겠다. 뭐든 일방적인 건 좋지 않으니까. 조부모찬스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이들이다. 나는 아직 해당사항이 없지만서도 언젠가 해당이 되는 날이 오면 이 찬스에 투입될 수 있길 바라며 내 건강을 잘 지켜야 한다고 다짐하는 중이다.

이 책의 엄마가 평소 얼마나 마음을 다했는지는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들로 알 수 있다. 아이는 정교한 말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엄마의 속마음과 진짜 모습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엄마의 한숨과 눈물까지도. 평소 엄마와 얼마나 밀접한 사이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외로워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릴 수 있다. 엄마의 회복은 이 아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었다. 며칠 힘들긴 했겠지만 아빠를 위해서도.

인생의 특정 시기에 주어진 빡셈을 아예 회피할 수는 없다. 그게 싫다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 일이다. 하지만 한계로까지 밀어부쳐지기 전에 이렇게 숨통을 틔우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걸 서로서로 해줄 수 있는 우리라면 훨씬 좋은 세상이 되겠지.
오랜만에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를 듣고 싶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캬. 명곡이다. 이 책도 명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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