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이 구르는 속도 - 제4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아동문고 113
김성운 지음, 김성라 그림 / 사계절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랫동안 공들여 쓰신 느낌이 나는 작품이 사계절 문학상 수상작으로 내 눈에 띄었다. 작가님은 이제 제게도 독자 여러분이 생긴다니 꿈만 같습니다.” 라는 소감으로 떨리는 마음을 표현했다. 수상작이라고 무조건 프리미엄을 붙여 다른 작품과 차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작품은 정말 좋았다. 지금 맡고 있는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작품이다. 내년에는 이 학년을 떠나 이정도를 읽기엔 좀 어려운 학년으로 갈 것 같아서 아쉽다. 어쩌다보니 같은 학년을 연달아 하게되어 좋은 책들을 1년에 다 읽기 어려울 만큼 온작품읽기 세트로 축적해 두었는데, 좋은 작품은 나오고 또 나와서 계속 입맛을 다시고 욕심을 내게 만든다. 이 책은 학급이 함께 읽는다면 주인공 학년인 4학년, 같은 학년은 아니지만 5,6학년도 좋을 것 같다. 개인이 읽는다면 독서력에 따라 더 어린 학년도 괜찮겠지.

 

이 책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하늘이의 이야기면서, 하늘이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다. 그 주변은 확대한다면 세상이다. 그 세상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내 느낌엔, 실제 세상의 비율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고, 나쁜 사람은 적고 강도도 낮다. 이런 세상이면 별 걱정이 없겠다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고 유머스럽고 미소가 번지는 세상이다. 그 느낌은 디테일에서 온다. 아직 첫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작가님의 특징이자 특기가 아닐까 싶다. 아주 작은 것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천천히 가는 느낌.

 

일단 하늘이의 가족. 부모님은 도시와 약간 떨어진 바닷가 마을에서 슈퍼를 운영한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니 손님도 드문 형편이다. 거기에 딸의 장애까지 생각하면 한숨을 쉴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타인에게 친절하고 긍정적이며 농담을 즐긴다. 하늘이도 부모님의 성정을 그대로 물려받았는지 웬만해서는 좋게 생각하고 비관이나 서러움에 깊이 잠기지 않는다.

 

그리고 하늘이네 학교. 딱 한 명 빡구라는 빌런이 있긴 하지만 워낙 방어벽이 두터워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친구들이 너무 멋지다. 대단하게 뭘 하는 건 아닌데, 무심하게 멋지다. 이게 최고다. 난 이게 딱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왕별이랑 보라는 하늘이의 단짝 친구다. 어느날 둘이 수업끝나고 분식집에 가자고 얘기하고 있었다. ‘왜 나한테는 말 안하고?’ 의아해진 하늘이는 같이 가자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곤란해하는 아이들. 이유는 하교 때 하늘이 엄마가 데리러오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줌마가 계시면 불편하다고. 하늘이는 그만 울적해졌다. 휠체어만 아니었으면....ㅠ 그때 두 친구는 깨달았던 것 같다. 무심코 한 생각이 친구를 서운하게 했겠구나. 하필 그날 급식에 떡볶이가 나왔다. 친구들은 하늘이한테 떡볶이 먹지 말고 남기라고 하더니 빈 우유갑에 떡볶이를 담아 밖으로 나왔다. 셋이 못가는 분식집 대신 급식 떡볶이를 먹으며 비밀 이야기를 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보라한테 남친이 생겼다는! 어른 있으면 못할 얘기가 맞잖아?^^ 그날 하늘이는 다이어리에 쓴다. 우리 우정 의심하지 않기. 얼마나 멋진 아이들인가! 오해 상황-서운함-피로감-상처-멀어짐 이런 코스를 밟지 않는 이 아이들은 어른보다도 낫다. 무심한 일상인것 같지만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풍경이다. 진짜 감탄했다. 너무 대견해!

 

마지막으로 이웃들. 이웃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일단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태양이네 부모님도 좋은 사람들이고, 이제 막 이웃(아니 식구인가?)이 된 이라크 언니, 미람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다. 무슨 일로 한국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 마을에서 한 달만 지낸다고 하며 하늘이네 2층에 한달 월세로 들어왔다. 한국 오기 전부터 드라마로 한국말을 배웠다는 마람 언니는 줄줄 막힘이 없고 능청스런 농담까지, 아주 한국말 고수다. 언니는 자신을 램프의 요정이라고 소개한다. 소원 들어주기 성공해야 고국에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하늘이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 소원을 고르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이 설정 속에서 하늘이가 겪은 다양한 상황들이 독자에게 보여진다.

 

대표적인 것은 장애를 가진 하늘이가 현장체험학습을 고대하는 모습이다. 현실적인 상황이 많이 들어가 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걱정이 많은 분이었고, 하늘이 부모가 포기하기를 은연중에 바랐다. 2학년 때는 장소가 산이어서 엄두도 못 냈고, 3학년 때는 체험 장소에서 난색을 표했다. 요란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건 명백한 차별의 상황이 맞다. 하늘이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제외되었다. 4학년인 올해는 박물관이다. 하늘이는 과연 무사히 참여할 수 있을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활동지원 선생님이 붙었고, 담임선생님의 계획은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저상이라도 대중교통을 어떻게 믿고... 걍 전세버스로 가시지....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아니나다를까, 믿었던 저상버스는 경사판이 고장나 탈 수 없었다. 그나마 활동지원 선생님이 계셔서 다음 차를 타기로 하고 일행을 먼저 보냈지만, 자주 오는 버스가 아니라서 친구들보다 훨씬 늦게 합류하게 됐다. 그래도 첫 체험학습은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 과정에 하늘이의 성취를 자기 일처럼 마음 졸이고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능한 기쁨이었다.

 

이 대목에서 하늘이가 만조의 비유를 한 것이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이쪽 바다가 만조일 때 반대편 바다도 만조라고 한다. 한쪽으로 쏠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늘이는 친구들을 함께 바닷물을 당기고 있는 지구 반대편 바다라고 생각했다. 멋진 비유다. 작품에 이런 비유가 한두개 들어있으면 작품의 가치가 확 올라간다. 자연현상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비유로 활용한 작가님의 세심한 센스가 돋보인다.

 

이런저런 사건들 속에서 하늘이의 소원들이 다가왔다가 넘어간다. 결국 채택된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이라크에서 온 마람 언니는 한 달 월세살이를 채우고 떠나갔다. 과연 소원은 누가 들어준 것일까? 마람 언니의 정체는 정확히 뭘까? 언니가 요정을 자처하며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하는 건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 아닐까? 작품은 굳이 이런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무심히 넘어간다. 대신 굳이 물어보지 않았던 작은 장면들, 이를테면 아가였던 하늘이가 어린이집에 가지도 못하고 온종일 바닷가에서 혼자 놀던 장면, 엄마가 우리 딸 다리를 고쳐 주세요 라는 소원을 빌지도 못하고 저와 제 딸의 다리를 바꿔 주세요.”라고 빌던 장면을 살며시 보여준다. 그런데 푸하하 웃게 되는 점은 바로 하늘이가 이렇게 치고 나온다는 것이다.

매끈한 내 다리랑 왕 두꺼운 엄마 다리를 바꾸는 건 내가 너무 손해인 것 같지 않아?”

이게 나잖아라고 생각하는 하늘이의 건강한 마음은 스스로 소원을 향해 다가간다. 절대 혼자서는 아니고 부각되지는 않는 다양한 배경들과 함께. 그 희미한 배경 속에 내가 있기를 바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배경엔 네가. 너의 배경엔 내가. 그렇게 살면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휠체어 구르는 소리가 어우러지는 세상. 그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세상. 날로 비관적이 되고 마음의 끈들을 거두어들이는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살며시 다가와 이런 세상도 가능하다고 보여주는 작품이다. 차별과 편견을 말하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농담이 어색하지 않은 재밌고 따뜻하며 특별한 이야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뱃돈 되찾기 프로젝트 초등 저학년을 위한 책이랑 놀래 10
송선혜 지음, 박현주 그림 / 마루비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이렇게 속셈(?)이 뻔한(?) 동화는 작품성이 없게 보이고 재미도 없을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묘하게도 재미가 꽤 있었다. 다만 결말이 어린이 독자들에게 만족스러울지는 모르겠다. 사이다를 기대한 어린이라면 엥 하고 실망할 수도 있겠다.ㅎㅎ 하지만 내가 어른이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꽤 만족스런 결말이었다. 그 과정도 아이들 사이의 관계와 심리가 잘 들어가 있었다.

지민이와 유나는 단짝이었지만 말도 안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나의 물건 자랑 성향 때문이었다. 보다못해 지민이가 "너는 자랑할 게 그것밖에 없어?" 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고 유나가 "너는 헌 물건만 가지고 다니잖아!" 라고 응수함으로써 둘 사이는 완전히 깨졌다.

유나 같은 성향의 아이들이 교실에서 꽤 보인다. 경력이 많아 이런 경험이 많은 나는 아예 원천봉쇄를 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 대한 회의가 한때는 있었다. 모든걸 아이들과 상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주의가 가스라이팅처럼 교직을 뒤덮었을 때.... 나는 인권을 무시하는 교사인가 하는 자괴감이 운신을 힘들게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상의할 것이 따로 있으며 선포할 것도 지도할 것도 있다. 결말이 뻔히 정해진 행동은 못하게 한다. 꼭 똥을 찍어먹게 놔두는 것만이 교육은 아니잖아?

유나같은 성향의 아이들은 '선심쓰기'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 가장 대표적인 행동이 학교에 이런저런 물건들을 가져와 펼쳐놓는 것이다. 그때 뭐야? 뭐야? 하면서 다가오는 친구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것과 자신의 위력을 즐긴다. 이 책의 대화 중에도 그런 게 있다.
"세뱃돈으로 산 비싼 거야. 내 말 잘 들어야 줄 거야."
심지어 급식으로 선심을 쓰는 아이들도 있다. 요구르트 등 1인 1개씩 배부되는 특별메뉴가 있을 때 꼭 "이거 먹을 사~~람?" 하면서 손님들을 모으는 아이. "나! 나! 나 주라 응?" 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만족감을 맛보려 한다. 심지어 자기가 먹고싶으면서도 그러는 아이도 있다는 사실. 심굴궂은 내가 그 꼴을 봐줄 리가 없다.
"순이는 자기 급식으로 선심쓰지 마세요. 그리고 그거 달라는 친구들은 무슨 생각이에요? 그걸 받아 먹으면 순이는 오늘 영양에서 그게 빠지는 거잖아요? 급식선생님들이 주시는 건 더 받아올 수 있어요. 하지만 친구거 받아서 더 먹는 건 안됨!"
교실에 가져오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3월 초부터 학생, 학부모 모두에게 분명하게 선포한다. 수업과 관련없는 물건 가져오지 않기. 슬슬 가져오기 시작하는 아이가 보이면 "순이, 그거 안가져오는 물건인데? 꺼내지 마요. 그리고 오늘 잊지 말고 집에 꼭 놓고와요. 알겠죠?"
이런 식이다. 쪼잔해져야 가능한 담임의 일상. 에휴^^;;;;

이 책에도 그런 아이들의 심리가 여실히 드러난다. 배경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종업식까지 2월 기간 중 2학년 교실. 설날 지나고 온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산 비싼 물건들로 자신의 위력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지민이는 여기에 낄 수 없다. 세뱃돈을 전액 엄마한테 '맡겼기' 때문이다. 이대목을 읽어주면 아이들의 폭발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지민이는 당연하다 생각하던 일들에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님께 그동안 맡긴 세뱃돈을 모두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부모님은 당황한다. 단식투쟁까지 감행하는 지민이에게 꺾인 엄마는 허락한다. 엄마한테 말하고 사용하기로. 지민이가 수소문해서 정리한 가격은 무려 500만원! 냉장고에 가계부 형식의 메모지가 붙었다. 500만원부터 시작해 쓴돈과 잔액을 적어나가는 메모지다. 지민이는 드디어 부러워하던 2만원짜리 슬라임을 샀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항목에 깜짝 놀란다. 엄마가 저녁으로 맛있게 해주신 오리고기의 가격을 적어놓은 것이다.
"너도 이제 돈이 생겼잖아. 아빠는 돈을 벌고 엄마는 집안일을 하잖아. 그러면 너도 돈을 내야겠지?"

이렇게 이야기는 흥미롭게 흘러간다. 지민이는 이제 쉬는 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즐기던 위력을 즐겨볼 수 있었고, 친구들한테 한 턱 쏠 수도 있었고, 피자를 시켜먹을 수도 있었지만.....

무난하고 상식적인 결말이 내 마음엔 훈훈했지만, '맡겨진' 세뱃돈에 한맺힌 어린이가 읽었다면 사이다 결말이 아니라서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이 결말이 좋다. '맡겨진' 세뱃돈은 각 가정에서 평화적으로 합의하시길..... 꿀꺽만 안하시면 되쥬. 근데 지금 든 생각인데, 어느정도 공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면 세뱃돈 그게 상부상조라서 그만큼 부모님 주머니에서 나간 거그덩. 그건 뭐 각 가정의 지혜로운 합의에 따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구멍을 뚫어라 상상문고 22
문은아 지음, 불곰 그림 / 노란상상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비되는 색상의 선명한 표지그림이 눈길을 끌고 좋았는데 본문 삽화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취향 문제인 것 같다. 난 만화체의 삽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강한 것보다는 작고 귀엽고 부드러운 걸 좋아하는 취향. 취향이 다른 분들은 충분히 좋게 느끼실 것 같다.

작가님의 작품 중 읽었던 게 있나 훑어보니 <오늘의 10번 타자>를 몇 년 전에 읽었었네.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다. 이 책에도 몇가지 흥미로운 소재와 감상 포인트가 있었다.

화자가 세 명이다. 첫번째 화자 승찬이는 아파트 밖 주택 구역에 사는 아이이고 부모님은 배 과수원을 하신다. 승찬이네 학교는 인근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데 개구멍을 통과하면 가깝지만 정문으로 돌아가면 오래 걸린다. 이 '개구멍'이 중요한 소재다. 제목에도 나오듯이. 이 개구멍을 둘러싸고 아파트 밖 아이들과 아파트 주민과의 격차와 갈등이 드러난다.

승찬이네는 고모할머니의 수술 때문에 객식구가 들어왔다. 고모할머니가 홀로 키우시는 형과 뭉치라는 이름의 강아지. 형은 승찬이보다 훨씬 크지만 어딘지 어눌하고 좀 다르다. 자폐로 추정되는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하다. 뭉치는 넉살 좋게 승찬이를 쫓아다니는데, 어느날 등교길에 따라온 녀석을 쫓아버린 이후로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집 개도 아닌데 이 일을 어쩌지!

두번째 화자가 바로 이 강아지 뭉치다. 뭉치 시점의 이야기를 읽으며 독자들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잘 알 수 있다. 여기서 인물 한 명이 더 나온다. 아파트 주민인 할머니지만 커다란 여행가방을 풀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시골 사시다 도시의 아들 집으로 왔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할머니. 이 할머니가 다친 뭉치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그러니 승찬이가 못찾을 수밖에.

할머니가 드디어 여행가방을 펼쳐놓는 일이 생긴다. 아파트 바깥의 공터를 텃밭으로 일구셨기 때문이다. 흙을 손에 묻히자 드디어 할머니는 되살아나셨다. 하지만 여기서도 '개구멍' 이슈가 부각된다. 돌아서 밭에 가는 건 노인들에게 너무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아파트에는 개구멍 '뚫어파'와 '막아파'가 의견대립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며느리를 자기쪽 편으로 만들고 싶지만 말 붙이기도 쉽지 않다. 이런 모든 과정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며 뭉치는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다.

세번째 화자는 승찬이네 반 유빈이다. 유빈이 엄마는 동대표이자 개구멍 막아파의 선두주자이며 아파트 진입 문제로 승찬이에게 자괴감을 안긴 인물이다. 유빈이는 마마보이이고 싶지 않고 승찬이와도 잘 지내고 싶지만 엄마 때문에 번번이 어긋나고 만다. 세번째 장은 유빈이의 둥이, 마마보이 탈출기라 하겠다. 아주 극적이거나 완벽하진 않지만 꽤 변화가 있다. 그 변화는 개구멍이 열리는 사건과도 연결된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는 세 개의 퍼즐이 조화롭게 들어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전에 근무하던 학교 주변 아파트 재건축 중에 전근을 왔는데, 요즘 들어보니 재건축이 끝나고 입주가 시작되며 그동네에도 이런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새로 지은 크고 비싼 아파트의 텃세? 온갖 곳 다 걸어잠그기 등등. 동화 속 이야기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배척을 가르치는 어른들의 모습, 사랑을 베풀어주는 장애인 형의 모습, 도시살이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과보호에 매몰되는 부모의 모습 등 주목할만한 다양한 포인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트 베어
해나 골드 지음, 레비 핀폴드 그림, 이민희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잠시 내가 동화를 재미로 읽는지 습관으로 읽는지 왜 읽는지 모르겠던 참에, 오랜만에 진짜 재밌어서 책장이 넘어가는 책을 만났다. 대자연에서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 나는 이런 건 꿈도 못꾸는 사람인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유독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모험이 너무 위험해서, 마지막에는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만 살짝 눈감으면 이야기는 너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엄마를 사고로 잃은 에이프릴은 아빠와 단 두 식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에이프릴은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에 에이프릴은 너무 특이하고, 아빠는 아직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빠와 6개월간 단둘이 멀리 떠나있을 기회가 생긴다. 기후 과학자인 아빠가 북극권의 베어 아일랜드의 기상대에서 관측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어 아일랜드는 작은 섬이고, 기상대 외에 인간이 거주하는 구역은 없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곳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간다는 것, 게다가 관측에 몰두하느라 딸을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 등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특이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에이프릴은 내가 평생 본 어떤 아이들과도 다르다.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에이프릴의 감각은 굳이 인간 관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감각이 닫힌 요즘 아이들이 에이프릴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는 나도 사실은 에이프릴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소통할 사람도 없고 오락도 없는 (TV도 휴대폰도 없는!) 그곳에서 무슨 낙으로 지낸담! 그러고보니 나는 중간 위치가 아니라 그냥 요즘 애들하고 거의 같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가 바쁜 것이 오히려 에이프릴에게는 좋았다. 혼자서 마음껏 섬을 탐사하며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에이프릴은 만나게 되었다. 곰을. 이 책의 제목인 ‘라스트 베어’를 말이다!

섬에 오기 전 아빠는 섬에 곰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이 곰은 어떻게 혼자서 이 섬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사실 북극곰은 우리가 아는 북실북실 침대인형 같은 귀요미가 아니다. 위험하고 무서운 야생동물이다. 에이프릴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곰은 거대했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고 어딘가 몹시 아프고 불편해 보였다. 앞발 하나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에 묶여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에이프릴은 비상식량을 곰에게 나누어 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발을 옥죄는 것들을 풀어주었다. 이제 곰은 에이프릴의 기척을 느끼면 기쁨으로 달려오는 존재가 되었다.

종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에이프릴은 결국 곰이 혼자 이 섬에 생존하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었다. 몇 년 전 이 일대의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버렸던 것이다. 곰은 동료와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구온난화의 상징동물이 된 북극곰. 그들이 공익광고에 나와서 말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점은, 이 당돌한 꼬마가 저 커다란 곰을 원래 터전으로 데려다주려 한 점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말이야. 결국 그들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만, 뒤따라 온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북극권의 끔찍하게 차가운 바다에서 아무리 조력자가 따라왔다 하더라도 난파된 상황에서 살아났다는 건 좀 만화적인 설정인 것 같다. 어쨌든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사랑하는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이별한다. 그것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곰의 모든 사정을 훅 직감했던 날, 에이프릴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뭐라도 할게. 약속해.“
그런 에이프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따진다. 그렇게 관측을 해서, 그래서 뭘 하냐고. 아무것도 안할 바엔 관측은 왜 하는 거냐고. 아빠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우리의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급박한 변화가 우리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인간이 쌓아왔다는, 그 자랑스러운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화는 또 어떤가. 그 모든 것들은 자연과 인간을 철저히 단절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땅의 숨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존재는 에이프릴처럼 정말 별나고 특별한 사람 외에는 없지 않을까.

이 작가를 잘 모르지만 간단한 소개를 보니 에이프릴과 비슷한 점이 있는 분이 아닌가 싶다. 국내 출간된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다. 그 메시지들이 단단하게 닫힌 문을 강력하게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자 극장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그림책이 참 좋아 86
김규아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뒤늦게 발견하고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밤의 교실>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겐 밤의 교실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좋았다. 밤의 교실은 고학년에, 이 책은 저중학년에 권해주면 좋을 듯하다.

그림자 극장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 현실에서 걸려있는 빗장을 풀고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가님의 장치가 마음에 든다. 그림자는 다양한 은유로 작품에 즐겨 사용되는데, 여기서의 역할도 흥미롭고 적절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매간의 다툼은 아주 흔한 이야기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순식간에 들끓게 만드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형제 갈등과 억울함이다. 이 자매에게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 학교숙제로 언니가 정성껏 만든 토끼 인형을 동생이 깨뜨린다. 언니는 울상이 되고 동생은 허겁지겁 본드로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더 망쳐질 뿐이다. 보다못한 언니는 하지말라며 동생을 밀쳤고 동생은 침대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가 난다. 그렇게 최악인 상태로 둘은 등교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멀찍이 떨어져 걷는 자매를 유심히 지켜보는 어른이 있었으니.... 바로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다.

자매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지만 결국 전하지 못한다. 동생은 인형뽑기기계에서 토끼인형을 뽑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언니는 편지지를 사지만 결국 전하진 못하고 하루가 간다.

이정도만으로도 드물게 착한 아이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 입장만 있고 남의 입장은 없다. 자기 입장만 보면 약간의 억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억울함을 부각시킬 상황이 전혀 아님을 깨닫게 될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도리도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만 고래고래 주장한다. 여기에 어떤 해결이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걸 표현하려고 머뭇거린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자매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이만큼이라도 키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자매는 화해를 못하고 2층 침대에서 각각 잠이 들었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이름이 막둥이인 이 집의 귀여운 강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대에 펄쩍 올라가 동생 옆에 웅크려 눕는 모습은 우리집 강아지의 포근함을 바로 연상시키는데.... 이때 막둥이의 그림자가 빠져나와 동생의 그림자를 깨운다. 둘은 창문으로 나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지막에 어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림자 극장'에 도착한다. 거기에 계신 극장 주인은......!!

곧이어 언니도 극장에 도착하고 둘은 극장 주인이 추천해준 '어떤 하루' 라는 영화를 본다. 그 하루는 자매의 하루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 시점으로 상황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선이 내 안에 갇히지 않는 것. 가끔 나는 어떤 아이에게 "너한테서 이렇~~게 빠져나와서 여기쯤에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너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거니?" 라고 속이터져서 말하곤 했는데, 그걸 '객관적 직면' 이라고 할까? 여기선 그림자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매와 막둥이, 토끼인형까지 네 그림자는 신나게 놀다 동트기 직전에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가족의 아침은 평화롭고 자매의 등굣길은 다정하다. 그걸 지켜보는 경비 할아버지. 과연 그림자 극장은, 누군가에게 또 펼쳐질 수 있겠지?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끝장으로 치닫고 그걸 부모가 조장하며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시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마음이 조금만 더 말랑해진다면, 그림자의 눈을 한번 가져본다면 이 세상의 무가치한 아귀다툼이 좀 그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