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를 돌면 큰곰자리 60
성현정 지음, 혜란 그림 / 책읽는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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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꽤 있다는 걸 미리 밝힙니다)

판타지인데 슬픈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슬프다는 말로 다 표현이 안되는 서러움과 아픔까지 느껴지는 세 편의 단편집이다. 비룡소 문학상을 받았던 작가의 첫 책 『두배로 카메라』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인생의 아픔에 직면해 보았거나 직면할 용기가 있는 아이들이 좋아할 책일 것 같다. 나는 나이가 들었으면서도 그렇지 못한지, 이 책의 분위기와 느낌이 부담스러웠다. 이런 내게 이 책의 메시지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아라. 두려워하지 말고. 그리고 똑바로 바라봐라.

직면. 그렇다. 이 책의 주제를 두 글자로 뽑으라면 나는 그렇게 말하겠다.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우리가 직면을 못하기에 작가는 판타지의 장치까지 동원해서 직면을 시킨 것이 아닐까. 결국 결말에는 살아야 할 현실로 돌아온다.

첫 작품, 표제작인 연우 이야기에서는 연우는 관계 권력을 가진 현아라는 친구에게 맥없이 끌려다닌다. 현아의 취향에 끌려다니고 본인에겐 의미없는 일에 시간까지 쏟아야 한다.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 그러던 중 만난 ‘유령빌라’ 에서의 지상이. 지상이는 자신의 꿈을 소중히 여기고 당당한 모습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줬다. 스스로 자신을 초라하게 여기지 말 것을 알려주고, 끌려다니기보다 외톨이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도 주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려 지상이를 찾았을 때, 현실에는 지상이가 없었다. 연우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상이를 다시 만나게 될까?

두 번째 작품 「꿈 장난꾼」의 판타지는 초반에 좀 어리둥절했다. 읽다보니 ‘꿈 장난꾼’이라는 존재가 나온다. 아이들을 꿈 속에 영원히 가둬놓는 존재. 그 꿈은 행복한 꿈이다. 끔찍한 현실에 처한 견우와 미로가 이 존재의 덫에 걸려들었다.
“이걸 먹으렴. 그럼 넌 끔찍한 현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
꿈 장난꾼의 유혹이다. 이 세상에 이 존재가 있다면, 이 유혹에 넘어갈,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미로가 그랬듯이.... 하지만 견우는 거부한다. 돌아온 현실 속에 견우는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교통사고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때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그 아픔을 안고 견우는 이제 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 번째 작품 「내일의 오늘」은 미래소설 같다. 냉동인간과 타임머신이 나온다. SF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런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점이 다른 곳에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화자인 시우는 33년 후의 세계에서 깨어났다. 급성 불치병으로 냉동인간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떠나보낼 수 없었던 부모님은 냉동인간을 선택했지만, 혼자서 흐르는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 세상에서 깨어난 시우는.... 엄마는 할머니가, 동생은 아줌마가 되어있는 모습 속에서 혼자 아이로 남아있는 기분은.... 시우에게 선택의 갈림길이 놓여있다. 뛰어넘은 미래 세상을 오늘로 여기고 살아갈 것인가,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돌아가 과거의 오늘을 살 것인가.

나는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싫어한다. SF에서 타임머신이 나오면 어쩔 수 없는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돼서 별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타임머신은.... 실제로는 타임머신이 아니었다. 왠지 다행이라 느껴지는 이 마음은? 작품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인지도.... 결국 실망하지 않았다.^^ 시우의 선택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리뷰를 쓰며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니 읽으면서 들었던 그 서러운 느낌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서럽고 아픈 게 인생이지만 광풍을 견디면 조금은 가라앉는다. 그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직면’ 이라고 생각한다.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너무 두려워. 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돌아야 할 차례라면 빨리 돌 것. 그리고 봐 버려. 그게 훨씬 나아. 그게 꼭 나쁜 것이라는 법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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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 클럽 웅진책마을 98
앤드루 클레먼츠 지음, 불키드 그림, 김선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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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앤드루 클레먼츠의 작품이네. 재밌는데 뭔가 건전해....ㅎㅎ 개성있는 주인공이 나오고 학교에서 약간의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가 막나가지는 않는다. 주변 어른들은 인내심이 있고 현명하며 주인공 또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내가 앤드루 클레먼츠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이것 때문일까? 음 그렇다면 좀 곤란한데.... 아이들과 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그게 뭐가 문제야! 우리 아이들은 건강한 해결방법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그걸 몰라 방황하고 자폭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키면서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워야 한다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와 작가와의 공통점은 교사라는 점.ㅎㅎ (나는 현직, 작가는 전직 교사)

작가는 꽤 연세가 있으신 것 같은데 신작이 계속 나오는게 대단하다. 『프린들 주세요』가 나온지 20년이 넘었다. 그 책은 초반부 느낌이 안좋았어서 별로 손꼽고 싶지 않았었지만 나중에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사람들이 많이 추천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이제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보면, 학교생활에 약간 부적응한 6학년 남학생이 ’루저 클럽‘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게 되고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루저 클럽‘에서 느낌 오지 않는가? 하지만 의외로 아이의 문제는 별로 크지 않았다. 딱 한가지 문제가 있었을 뿐 그 문제를 갖게 된 심리적 문제라든지 상처 같은 것은 없었다. 어찌보면 이 부분은 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니면 평범한 경우라고 볼 수도 있고.

아이의 문제는 ‘수업 태도’였다. 지독한 책벌레인 앨릭은 수업시간에도 자주 책에 빠졌다. 그것 때문에 교장실에 자주 가게 되었고 교장선생님은 단호한 조치를 내리셨다.
“앞으로 수업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앨릭 넌 특별 학업 능력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할 거야. …… 네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다음 여름 방학 내내 학교에서 보내야 할 거야. 알겠니?”
이 부분을 보고 놀랐다. 이 학교는 이런 게 가능한가? 수업태도가 불량한 학생을 수업에서 분리하여 교장실에 보낼 수 있고, 교장선생님은 학생의 문제점을 상담하고 지도하며 벌칙도 부여할 수 있고, 학생과 부모는 거기에 따라야 한다니. 배째라 한방이면 손발 다 잘린 듯 방법이 없어지는 우리 교실과 얼마나 다른가. 책 읽는 정도는 조용하기라도 하니 그나마 양반 아닌가. 그보다 더한 수업 방해가 있어도 모든 것은 담임의 책임이며 문제 학생의 부모들이 오히려 학습권을 들먹인다. 특별 학습 프로그램? 학부모가 콧방귀 한 번 뀌면 그만이다. 매우 큰 사안이 있어 학폭위나 선도위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 징계가 내려져야 그나마 강제성을 갖는다. 일상적 지도에서 저런 얘기는 있을 수도 없다. 교장의 생활지도와 상담(학생, 학부모)의 역할, 학교의 교육적 지도에 대한 권위, 그걸 받아들이고 자녀를 지도하는 부모의 태도 등이 놀라웠다. 그저 험한 사람 만나지 않기만을 빌며 한해 한해 살아가는 나와는 너무 다르다. 나야 훌륭하지 못한 평범한 교사라 그렇다지만, 훌륭하신 선생님들 중에도 마음고생에 에너지를 다 쓰느라고 정작 뛰어난 역량은 펼쳐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아까운 낭비인가? 공부하고자 하는 평범한 학생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하여간 이렇게 되어 앨릭은 수업시간에 몰래 책을 읽지 않고 집중하기로 교장선생님, 부모님과 약속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재택에서 회사 근무로 바뀌시는 바람에 방과후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체육활동, 취미활동 동아리, 과제실 중에서 골라야 했다. 책 읽는 것 외엔 하고 싶지 않은 앨릭은 동아리를 골랐고 스스로 독서 동아리를 만들어 <루저 클럽>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담당선생님도 못마땅해 한 그 이름은 인원수를 늘리고 싶지 않은 앨릭의 꼼수였다. 그냥 혼자서 읽고 싶을 뿐. 그래도 두 명은 되어야 동아리가 되니 니나라는 전학 온 여학생을 영입했다.

하지만 상황은 앨릭의 꼼수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루저 클럽엔 계속 회원들이 들어왔다. 혼자만 틀어박혀 있고 싶은 앨릭에게 계속 신경쓰이는 일들이 생긴다. 마음이 통해 친해져가는 니나, 그걸 질투하는 운동 클럽의 에이스 켄트, 옛 친구 데이브, 새로 들어온 후배 여학생들 등.... 다가오는 모든 일들에 앨릭이 그동안 뒤집어썼던 껍질을 벗고 당당히 맞섰던 건 동아리 창설자로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책임을 큰 가치로 보는 나는 이런 점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건강한 모습을 만들어내는 매우 중요한 가치는 책임이다. 남에 대한 책임, 나 자신에 대한 책임. 그런 의미에서 난 무책임한 사람이 너무 싫고, 무책임한 아이들이 너무 안타깝다.

앨릭은 결국 팀원들과 소통하며 동아리 발표회까지 인상적으로 마치게 되었다. 껍질을 깨고 나오니 앨릭이 생각 못하던 의미있는 일들이 가득했다. 그것이 단기간에 앨릭을 훌쩍 성장시켰다.

책을 읽는 것, 책을 좋아하는 것.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지 못해서 문제지. 하지만 그 안에 갇혀버리면 안 된다. 사실 나도 쫌 그런 경향이 있지만.... 그정도로 많이 읽는 건 아니라서 괜찮다(?ㅎㅎ) 내가 수업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순간에도 좋은 일이란 거의 없어요. 예를 들면 책 읽는 것. 방금 전 아침독서 시간에는 아주 좋은 일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이죠. 책 집어넣고 책상 위 정리하세요.” 앨런도 그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지만 책을 좋아하고 책에 몰입하는 성향 자체는 좋은 것이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 중 또 하나는 앨릭이 읽는 책들이 실제 있는 책이었다는 점이다. 손도끼, 화씨 451, 프리데인 연대기, 샬롯의 거미줄 등.... 마치 작가의 추천목록을 보는 듯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도 그 목록에 관심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340쪽이나 되어 꽤 두껍고 무겁다. 판형도 약간 큰 편이다. 하지만 글자가 크고 줄간격도 넓어서 금방 읽는다. 고학년 아이들에게 추천해줘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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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우리는 - 두 교사 이야기 함께교육 6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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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이의 수학여행』으로 시작된 작가의 교육소설은 이로서 두권째가 되었다. 전작의 권오석 선생님이 30대 때 가르쳤던 제자들이 이제 30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중 두 여학생이 교사가 되었다. 써니와 와니.

나는 권오석 선생님과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기에 전작에 공감할 점이 더 많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여교사라는 점에서 이 책에서 공감할 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읽어보니 권쌤, 써니, 와니 중에서 나와 가장 비슷한 캐릭터는 써니인 것 같다. 난 가정의 문제 없이 평탄하게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와니와 같지만 와니는 나보다 집이 훨씬 잘 살고 공부도 전교 2등이며 다재다능하니 나와 비교가 안 된다. 와니는 한마디로 인싸다. 반면 써니는 공부를 어느정도 잘하고 꾸준하고 성실하다는 것 외엔 내세울 게 없다. 써니를 뒷받침해줄 배경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두 친구는 10여년 후, 교사로 다시 만났다.

써니가 휴학과 낙방을 거듭하다 천신만고 끝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와니는 이미 몇 년의 경력을 가진 교사였고 신규교사 연수에 강사로 나오는 ’잘나가는 젊은 교사‘였다. 하지만 와니에게는 그런 게 장벽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친근함과 밝음, 진정성이 있었다. 둘은 학창시절, 특히 권오석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친밀한 동료교사이자 친구로 새롭게 우정을 쌓아간다.

권오석샘의 관점에서 서술된 저번 책에서 나는 그와 교사로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는데, 이번 책에서 제자들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을 보니 나와는 천리만리 떨어진 사람이었다. 그는 교사 무리에는 잘 섞이지 못하는 대신 아이들과는 깊이 소통하며 존경받는 교사였다. 특히 와니나 용이, 전작에도 나왔던 명진이 등 최상위 성적의 학생들에게 추앙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해박한 지식과 교사로서의 전문성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영향을 받아 교사가 된 제자가 이렇게 둘이나 된다. 나는 근근히 수업준비하며 하루벌어 하루먹기에 급급한 교사라서 이런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리하여 나의 공감 대상은 써니와 와니에게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ㅎㅎ

이 책을 읽고 질문 하나를 남기라면 난 이렇게 하겠다.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은 얼마나 큰 것인가요?"
기쁨? 아이고 배부른 소리 한다. 슬픔과 절망, 수치와 회한이 아니면 다행이지. 라고 나의 입은 뱉듯이 말하고 있지만 나의 깊은 곳은 알고 있다. 아무리 먹고 살려고 억지로 하는 일이라지만 괴롭기만 했다면 지금까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수업을 구상하고 디자인할 때 드는 기대감, 그게 먹혀들어갈 때의 충족감, 무사히 마쳤을 때의 안도감, 학생들의 발전이 주는 성취감, 가르칠 밑천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재미, 그것을 써먹었을 때의 효능감, 아이의 변화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 무사히 끝마치고 올려보낼 때의 후련함.... 그렇다. 입으로는 부정적인 말을 주로 쏟아내는 나도 안에는 이러한 기쁨을 품고 있다. 크진 못하고 작게.

"선생님이 되렴.
웬만한 상실은 흔적도 못 남길
무한대의 기쁨이 이어지는
행복을 너도 누렸으면 좋겠어."
(본문과 똑같진 않고 추려서 이어붙인 문장임)

권오석샘이 절친의 사고사로 큰 낙담에 빠졌을 때, 와니의 주도하에 몇 그룹의 아이들이 롤링페이퍼를 썼다. 오석샘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담아서. 예상보다 훨씬 오석샘은 감동했고, 그 학생 중 한명인 써니를 불러 위와 같이 말했다. 저 말이 내게는 현실감이 좀 없었다. '무한대의' 라는 표현 때문이다. 동네 친구들과 작은 공연이나 하는 무명 인디가수가 조용필 가왕님의 말씀을 들은 기분이라고 할까. 나는 그 경지를 모른다. 평생 모르고 퇴직할 것 같다. 내가 느끼는 행복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그날그날의 소소한 성취감이다. 그나마도 없는 날, 절망과 짜증에 덮여 흔적도 없어지는 날이 많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 '무한대'라는 말은 양적인 표현이 아니라 '지속성'을 말하는 것이다. 즉 나한테 그 행복이 퍼부어진다는 뜻이 아니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오석샘에게서 써니와 와니로. 그리고 또 다음 세대 교사로.

이것도 나랑 멀기는 마찬가지다. 하루벌어 하루 먹는 인생이라고 했잖아? 그런 주제에 무슨 후대까지 생각을 하겠어? 하지만 엉망이 된 교단을 두고 나만 빠져나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네. 그나마 좋을 때 선생질을 했어." 와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학교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싶지 않다. 내가 도움될 일이 있을리는 없지만 그래도 응원은 보내주고 싶다. 천하의 오석샘도 와니의 원망에 가까운 아쉬움을 뒤로하고 물러나는 때가 온다. 그게 인생인데 무한대의 기쁨이란게 어떻게 존재하랴. 그저 내 역할을 다하고 가능성을 남겨놓고 퇴장하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겠지.

써니와 와니의 우정과 연대는 교사가 아니어도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교사이기에 더욱 다행인 관계라 생각한다. 써니가 평생 당해온 고난은 남성이었다면 겪지 않았거나 더 일찍 극복했을 것이었는데, 교사가 되어서도 제자인 남성들에게 또 당하는 것을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때 써니를 북돋우고 세우던 당당한 와니 역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악몽 하나를 갖고 산다. 여초 직장이라는 교직 역시 여성에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른 직종에 비해서 그나마 나은 점이 있긴 해도 말이다. 그중에 이 여성들의 우정은 참 빛이 나고 위안이 된다.

논픽션이 아닌담에야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상의 인물들일 것이지만, 염두에 둔 인물들이 존재할거란 느낌 하에, 나의 소망을 담는다면 이렇다.

오석샘, 퇴직 후에 노욕도 무기력도 찾아오지 말고 그대로 현명하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저에 대입하자니 비슷한 점이 퇴직밖에 없지만(나는 연금 나올 때가 아직 멀어서 퇴직 못함;;;) 저도 퇴직하고도 꼿꼿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어요.

써니샘, 나랑 가장 비슷한 사람. 그런 고난을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비슷하다고 해서 미안해. 하지만 같은 상황이라면 난 써니샘처럼 했을 것 같아. 험난한 정글에 던져지기엔 마음이 약한 사람. 난 중등이 아니어서 다행이었는지 어쩌다보니 꽤 오래 버텼답니다. 하지만 아직도 휴일 마지막에 가슴이 막히는 증세는 여전하죠. 써니샘은 천천히 강해질거라 생각합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서 다행. 저도 그렇답니다.^^

와니샘, 늘 부러워하던 캐릭터. 내가 와니샘 또래라면 와니샘에게 기운도 받고 와니샘의 상처도 위로해 줄 수 있는 친구가 되고 싶을 것 같아요. 와니샘이 마지막장에서 말했죠.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 라고. 이제 지는 별 오석샘, 같은길 가는 써니, 괜찮은 남자인 남친, 도전을 주는 명진이(!) 모두가 와니샘이 진짜 어른이 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네요. 응원할게요. 교단을 잘 지켜 보아요! (약올리는 거 아님ㅎㅎ)

이제 교직은 일등신부감 그런거 아니고 큰 장점도 없고 필요한 역량만 잔뜩 늘어난 매우 힘겨운 직종이 되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은 없고 모든 직업은 전문직이다." 라는 소신을 평소에 갖고 있기에 크게 엄살을 부리고 싶은 맘은 없다.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싸잡아 비난하여 힘을 빼놓거나 손발 다 자르고 조직의 부품으로만 만드는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으면 한다. 교사들이 마지막 밑바닥까지 절망하면 그 '무한대의 기쁨' 순환 회로는 생명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석샘보다는 조금 더 하겠지만 그래도 10년 안에 퇴직할 사람으로서 그 모습까지 보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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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끝내주는 심쿵 동물사전
필립 번팅 지음, 윤소영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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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판형의 이 동물 책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수시로 들여다보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되겠다. 구석구석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고 작가 특유의 유머도 풍부하다. 외국의 작가인데 우리가 이것을 유머로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역자의 역할도 컸을 거라고 짐작이 된다. 예를 들면 해파리의 학명을 지우고 '몽그르 몽그르 젤리우스' 라고 한다든가 소똥구리를 '똥방우르 굴리우스'라고 한 부분들을 보면 말이다. 저자가 이것을 우리말로 지어주었을리는 없으니 결국 역자의 센스인데, 이 책에는 이런 부분이 아주 많았다. 역자의 약력을 보니 본인의 저서도 많은 과학 선생님이시네. 이정도 내공이 있어야 이런 책의 번역을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흥미롭게 하는 역할 중 또 하나는 그림인데, 이건 저자가 직접 그렸다. 정보책을 쓸 수 있는 지식과 그림 실력을 동시에 갖춘 저자가 얼마나 될까? 덕분에 책의 어느 쪽을 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색감도 뛰어나고 다량의 정보까지 포함되어 있어 소장가치가 큰 책이 된 것 같다. 좀 배가 아프다. 내가 어릴 땐 이런 비슷한 책도 없었다. 우리 아이들을 키울 때도 이처럼 다양하게 많진 않았다. 요즘 애들이 불쌍할 때도 많지만 갈수록 쏟아지는 탐나는 책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이 책은 한 쪽, 또는 두 쪽에 한 종류씩 동물을 소개하고 있다. 분량은 그림책이라기엔 좀 많은 80쪽이니 5~60종 정도가 실려있는 셈이다. 이중엔 코알라나 타조 같이 잘 알려진 동물도 있고 애기아르마딜로, 아홀로틀처럼 낯선 동물도 있고 모기나 하루살이처럼 정말 하찮아(?) 보이는 동물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동물들은 모두 공평(?)하게 같은 분량, 같은 구성으로 큼지막한 그림과 간단하고도 유머러스한 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이 책은 재미난 정보책이고 저자는 말이 많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장 맺는말에 저자는 모처럼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모든 생명은 다 각자의 자리가 있으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만 명심하면 된다. (다른 동물들은 원래 아는 것 같음) 그리고 저자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냥 가만히 놔두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손은 금손이기도 하지만 손대는 것마다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지. 그러니 가장 적절한 결론이라 하겠다.

혼자 자라는 외로운 아이에게 이런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하지만 둘이 자라는 아이들에겐 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앞에서 말했잖아. 이건 책이자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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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귓속에 젤리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이수용 지음, 최보윤 그림 / 우리학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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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학년용인거 같으면서 부모용인거 같기도 하다. 얇고 재미있으니까 저학년이 읽어도 충분하고 3학년 교실에서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4학년까진 아니고.^^

생활동화로 읽히는 이 책에 딱 한가지 판타지 요소가 있다. 수아에게 '엄마 귓속에 젤리'를 알려주고 사라진 꼬마아이다. 이 아이는 엄마의 어린 시절에도 똑같이 등장했다니.

귓속에 젤리라니 참 적절하고도 재밌는 발상이다. 하나의 발상에서 창작은 출발하는 것이니 이런 발상이 떠오르면 얼마나 즐거울까. 이 젤리는 나에게는 '적정선'으로 다가왔다. 남의(혹은 자식의) 말을 어디까지 들어야 할까.

정답은 '적당히' 이다. 남의 말에 너무 깊이 빠지면 자칫 '말려들어갈' 수가 있다. 자기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귀가 너무 얇다'는 말도 어느정도는 일맥상통한다. 반면 귀를 너무 닫아도 안된다. 소통이 불가하고 아집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귓속의 젤리라는 소재로 듣기의 적정선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건 나에게 무척 중요하고 의미있었다.

수아는 자기 말을 제대로 안듣는 엄마 때문에 화가 난다. 그럴 때마다 소심한 가출을 하지만 시늉 뿐이어서 본인만 아는 가출이다.^^ 어느날은 가출길에서 처음 보는 남자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수아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다. 심지어 가출 이유까지! 꼬마는 엄마 귓속의 젤리 비밀과 그걸 빼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엄마가 잠든 틈을 타 수아는 엄마 귓속의 젤리를 빼내는데 성공했다. 좋았을까? 물론 처음에는. 엄마는 모든 신경을 기울여 수아의 말을 들어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게 꼭 좋지만은 않았다. 어떤 말은 좀 흘려 들으라고~ 어떤 건 좀 그러려니 하라고~ 어떤 건 좀 잊어도 주라고~~ 그러질 않으니 너무나 피곤한 일들이 생겨났다. 결국 수아는 숨겨둔 젤리를 꺼내 반으로 잘라 엄마 귓속에 다시 넣었다. 똑똑한 아이네. 나름 적정선을 찾을 줄 알잖아?^^

문제는 남은 젤리 반개였다. 어느날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수아는 그걸 자기 귀에 넣었다. 이제 어떻게 되었을까?^^

그 젤리가 있다면 나도 갖고 싶긴 하다. 근데 생각해보면 난 누구의 말을 그렇게 잘 듣는 편이 아니니 내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물건이기도 하다. 오히려 귀를 좀 뚫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너무 잘 들어서 탈인 사람보다는, 막혀서 탈인 사람이 더 많긴 하지.

하지만 선택적으로, 정말 안듣고 싶은, 들어봐야 멘탈에 해롭기만한 말 하는 사람 있잖아. 그럴 때 무선 이어폰처럼 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젤리는 판타지이니 자신의 의지로 만드는 수밖에.

내가 보기에 듣기의 적정선은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에게 더 절박한 주제인 것 같은데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 동화로 탄생할 수 있다니 신기했다. 그래서 동화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거라고 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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