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베어
해나 골드 지음, 레비 핀폴드 그림, 이민희 옮김 / 창비교육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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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잠시 내가 동화를 재미로 읽는지 습관으로 읽는지 왜 읽는지 모르겠던 참에, 오랜만에 진짜 재밌어서 책장이 넘어가는 책을 만났다. 대자연에서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 나는 이런 건 꿈도 못꾸는 사람인데도, 아니 그래서인지 유독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모험이 너무 위험해서, 마지막에는 ‘아무리 픽션이라도 너무 말이 안된다’ 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거기만 살짝 눈감으면 이야기는 너무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엄마를 사고로 잃은 에이프릴은 아빠와 단 두 식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에이프릴은 외로움에 익숙해져 있다. 다른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기에 에이프릴은 너무 특이하고, 아빠는 아직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빠와 6개월간 단둘이 멀리 떠나있을 기회가 생긴다. 기후 과학자인 아빠가 북극권의 베어 아일랜드의 기상대에서 관측을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베어 아일랜드는 작은 섬이고, 기상대 외에 인간이 거주하는 구역은 없었다. 말하자면 무인도에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그런 곳에 어린 딸을 데리고 간다는 것, 게다가 관측에 몰두하느라 딸을 거의 신경쓰지 않는 것 등이 이해하기 어렵지만 특이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니까. 게다가 에이프릴은 내가 평생 본 어떤 아이들과도 다르다.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에이프릴의 감각은 굳이 인간 관계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감각이 닫힌 요즘 아이들이 에이프릴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는 나도 사실은 에이프릴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 소통할 사람도 없고 오락도 없는 (TV도 휴대폰도 없는!) 그곳에서 무슨 낙으로 지낸담! 그러고보니 나는 중간 위치가 아니라 그냥 요즘 애들하고 거의 같다고 봐야겠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지루하지 않았다. 아빠가 바쁜 것이 오히려 에이프릴에게는 좋았다. 혼자서 마음껏 섬을 탐사하며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에이프릴은 만나게 되었다. 곰을. 이 책의 제목인 ‘라스트 베어’를 말이다!

섬에 오기 전 아빠는 섬에 곰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이 곰은 어떻게 혼자서 이 섬에 존재하고 있는 걸까? 사실 북극곰은 우리가 아는 북실북실 침대인형 같은 귀요미가 아니다. 위험하고 무서운 야생동물이다. 에이프릴도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친구가 되었다. 곰은 거대했지만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깡말랐고 어딘가 몹시 아프고 불편해 보였다. 앞발 하나가 인간이 버린 쓰레기들에 묶여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던 것. 에이프릴은 비상식량을 곰에게 나누어 주었고, 위험을 무릅쓰고 다가가 발을 옥죄는 것들을 풀어주었다. 이제 곰은 에이프릴의 기척을 느끼면 기쁨으로 달려오는 존재가 되었다.

종이 다르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존재가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껴가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에이프릴은 결국 곰이 혼자 이 섬에 생존하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지구온난화와 관련 있었다. 몇 년 전 이 일대의 만년설이 급속히 녹아버렸던 것이다. 곰은 동료와 가족들이 사는 곳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이유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구온난화의 상징동물이 된 북극곰. 그들이 공익광고에 나와서 말하는 이유와 같다.

내가 비현실적이라 생각했던 점은, 이 당돌한 꼬마가 저 커다란 곰을 원래 터전으로 데려다주려 한 점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냐 말이야. 결국 그들은 죽음의 위험에 처하지만, 뒤따라 온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다. 북극권의 끔찍하게 차가운 바다에서 아무리 조력자가 따라왔다 하더라도 난파된 상황에서 살아났다는 건 좀 만화적인 설정인 것 같다. 어쨌든 다행스럽고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사랑하는 둘은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그들다운 방식으로 이별한다. 그것이 그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자연의 법칙이므로.

곰의 모든 사정을 훅 직감했던 날, 에이프릴이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뭐라도 할게. 약속해.“
그런 에이프릴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한테 따진다. 그렇게 관측을 해서, 그래서 뭘 하냐고. 아무것도 안할 바엔 관측은 왜 하는 거냐고. 아빠는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한다. 그게 우리의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가장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급박한 변화가 우리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인간이 쌓아왔다는, 그 자랑스러운 문명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화는 또 어떤가. 그 모든 것들은 자연과 인간을 철저히 단절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제 땅의 숨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존재는 에이프릴처럼 정말 별나고 특별한 사람 외에는 없지 않을까.

이 작가를 잘 모르지만 간단한 소개를 보니 에이프릴과 비슷한 점이 있는 분이 아닌가 싶다. 국내 출간된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그것도 읽어보고 싶다. 그 메시지들이 단단하게 닫힌 문을 강력하게 두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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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극장 - 2023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그림책이 참 좋아 86
김규아 지음 / 책읽는곰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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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뒤늦게 발견하고 읽어봤다. 이 작가님의 <밤의 교실>을 너무 감명깊게 읽어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내겐 밤의 교실이 더 좋긴 하지만 이 책도 좋았다. 밤의 교실은 고학년에, 이 책은 저중학년에 권해주면 좋을 듯하다.

그림자 극장이라는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 현실에서 걸려있는 빗장을 풀고 해소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가님의 장치가 마음에 든다. 그림자는 다양한 은유로 작품에 즐겨 사용되는데, 여기서의 역할도 흥미롭고 적절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자매간의 다툼은 아주 흔한 이야기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순식간에 들끓게 만드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형제 갈등과 억울함이다. 이 자매에게는 이런 사건이 있었다. 학교숙제로 언니가 정성껏 만든 토끼 인형을 동생이 깨뜨린다. 언니는 울상이 되고 동생은 허겁지겁 본드로 수습을 해보려 하지만 더 망쳐질 뿐이다. 보다못한 언니는 하지말라며 동생을 밀쳤고 동생은 침대에 이마를 부딪쳐 상처가 난다. 그렇게 최악인 상태로 둘은 등교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멀찍이 떨어져 걷는 자매를 유심히 지켜보는 어른이 있었으니.... 바로 아파트 경비원 할아버지다.

자매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서로 마음을 전할 방법을 찾지만 결국 전하지 못한다. 동생은 인형뽑기기계에서 토끼인형을 뽑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언니는 편지지를 사지만 결국 전하진 못하고 하루가 간다.

이정도만으로도 드물게 착한 아이들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점점 실종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기 입장만 있고 남의 입장은 없다. 자기 입장만 보면 약간의 억울함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그 억울함을 부각시킬 상황이 전혀 아님을 깨닫게 될 텐데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도리도리하면서 자신의 억울함만 고래고래 주장한다. 여기에 어떤 해결이 있겠는가?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그걸 표현하려고 머뭇거린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자매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우리가 자녀들을 이만큼이라도 키운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자매는 화해를 못하고 2층 침대에서 각각 잠이 들었다. 여기서 또다른 주인공, 이름이 막둥이인 이 집의 귀여운 강아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침대에 펄쩍 올라가 동생 옆에 웅크려 눕는 모습은 우리집 강아지의 포근함을 바로 연상시키는데.... 이때 막둥이의 그림자가 빠져나와 동생의 그림자를 깨운다. 둘은 창문으로 나가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다니다 마지막에 어떤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 '그림자 극장'에 도착한다. 거기에 계신 극장 주인은......!!

곧이어 언니도 극장에 도착하고 둘은 극장 주인이 추천해준 '어떤 하루' 라는 영화를 본다. 그 하루는 자매의 하루였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객관적 시점으로 상황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시선이 내 안에 갇히지 않는 것. 가끔 나는 어떤 아이에게 "너한테서 이렇~~게 빠져나와서 여기쯤에서 너를 봐.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너의 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거니?" 라고 속이터져서 말하곤 했는데, 그걸 '객관적 직면' 이라고 할까? 여기선 그림자가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자매와 막둥이, 토끼인형까지 네 그림자는 신나게 놀다 동트기 직전에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가족의 아침은 평화롭고 자매의 등굣길은 다정하다. 그걸 지켜보는 경비 할아버지. 과연 그림자 극장은, 누군가에게 또 펼쳐질 수 있겠지?

한 번 마음이 어긋나면 끝장으로 치닫고 그걸 부모가 조장하며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시대의 사람들이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어떨까 싶다. 마음이 조금만 더 말랑해진다면, 그림자의 눈을 한번 가져본다면 이 세상의 무가치한 아귀다툼이 좀 그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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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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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온 진형민 작가님의 동화에 이윤희 작가님의 그림. 만족도 최상이다. 게다가 매우 크고 무거운 소재와 주제를 담았다. 섣불리 담았다가는 망하기 십상인.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하여 계속 말해야하는 주제. 기후위기와 환경, 개발의 딜레마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남녀 친구들의 우정과 살짝 설레는 마음도 담겨있지만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연애사에 초점을 맞춘 최근 동화를 하나 읽어봤는데 실망을 많이 했다. 너무 말초적이어서. 연애사도 인생사의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 '사귀는 것' '커플' '고백' 이런 거 자체가 목적은 아니잖아? 자연스럽게 생기고 쌓인 감정을 곱게 키워나가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다른 주된 서사와 함께 적절히 어우러져 있으면 난 그 작품을 매우 좋게 본다. 하지만 마치 커플이 생의 전부인 것처럼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함께 몰두하는 작품을 만나면 짜증이 난다. 그러잖아도 이성적 사고보다 감각추구가 앞서는 아이들이 많은데 동화까지 그걸 부추길 필요는 없잖아?

이 작품에 해당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이 길었다. 이 작품은 '용해시' 라는 산과 바닷가에 접한 지방도시가 배경인 것 같다. 거기에 젊은 시장 후보가 예상 외의 선전으로 표를 얻어 당선이 됐다. 그의 딸 록희가 주인공이다. 록희는 눈에 뜨일 것 없는 아주 평범한 아이다. 시장 딸로 알아보는 것도 싫어서 같은 생각인 할머니와 둘이 아빠랑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도입의 소재는 동아리다. 제목도 그거잖아. 왜 그런 동아리가 탄생했는지 배경설명이 필요하지. 록희네 학교는 자율동아리를 운영한다. 학생들이 계획과 실행을 스스로 하는 동아리인데, 나는 못해봤지만 주변학교에서 이렇게 진행하시는 걸 종종 보았다. 문제는 이게 수업시간이만큼 내용을 채워갈 수 있는 아이들의 책임감과 의지가 필요하다. 록희만 봐도 그시간에 어떻게 대충 혼자 놀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는걸. 그러다 도저히 마땅한 게 없자 동네친구 수찬이와 함께 새 동아리를 창설한다. 최소 인원이 3인이라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반의 과묵한 남학생 조진모와 전학온 여학생 한기주가 포스터에 이름을 썼다. 이리하여 '왜왜왜 동아리'가 창설됐다.

'궁금한 걸 파헤치는 동아리'라고 설정했기 때문에 멤버들은 각자 궁금한 걸 밝혀야 했다. 한기주가 가장 먼저 "다정이를 찾아야 하는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해서 동아리의 첫 과제가 되었다. 다정이는 기주네가 키우던 강아지였다. 여기에서 이 마을의 중대 사건이 하나 등장한다. 바로 산불이었다. 불씨에서 시작된 산불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번졌고 사람 피한 것만도 다행인 상황. 집과 터전이 다 불탔고 강아지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독자들은 이 현장을 상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두번째는 조진모가 "우리 누나 머릿속이 궁금하다."고 했다. "자기가 무슨 잔 다르크인 줄 아나 봐." 라는 말에 힌트가 들어있다. 진모 누나 진경이는 금요일마다 학교를 안가고 교복 차림으로 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마을의 두번째 문제가 공개된다. 이 문제는 시장인 록희 아빠와도 직결되어 있었다. 석탄 발전소와 항구를 신축하는 문제였다. 많은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사업은 강행되었고 바닷가를 터전으로 살던 주민들의 대다수가 떠났다.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진모네는 겨우 버티고 있지만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 발전소-온실가스-지구온난화-산불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악한 진경의 1인시위는 잔다르크보다도 크레타 툰베리를 연상시킨다. 점점 번져나가는 어린이들의 연대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록희는 불가피하게 아빠랑 맞서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 큰 갈등이나 감정소모는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입장의 차이가 관계까지 갈라놓는 건 슬프니까.

현실적으로 내가 부모라면 자식을 말렸을 것 같다. 나도 알고는 있다. 이런 현실에의 순응, 귀찮고 어려운 것에 대한 외면, 이런 것들이 세상을 점점 나빠지게 했다는 것을. 나빠지는 속도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는 것을. 지구인들은 이제 일상에서 작게, 제도적으로 크게, 전 지구적인 합의로 더욱 크게 동시다발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이 책은 모두가 방관하는 브레이크를 온힘으로 밟으려는 어린이들의 힘찬 발걸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다정이... "운동장을 바람처럼 가로지른 개가 한기주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마지막 문장에 눈시울이 잠시 뜨거워졌다. 이런 장면은 언제봐도 감동이야.... 이 마지막 씬은 희망을 보여주며 끝을 맺으려는 작가님의 선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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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프가 되고 싶어 학교종이 땡땡땡 13
요시노 마리코 지음, 타카하시 카즈에 그림, 김소연 옮김 / 천개의바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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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올챙이 시절 생각을 못한다고, 나도 친구관계에 집착하던 한때가 분명히 있었다. 단둘이, 아니면 서넛이, 특별히 친하고 함께 다니던 친구가 있었고 그 구도가 달라지는 건 큰 지각변동처럼 느껴졌다. 그런 걸 보면 이건 통과의례처럼 겪고 지나가는 일인 것 같다. 근데 나이들어 여기에 목을 매는 학생들을 보면 왜그리 답답해 보이는 걸까? 왜 쿨한 것만 멋져보이고 질척이거나 집착하는 모습이 그리도 보기 싫을까?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나도 돌아봐야 하지만 이런 경향이 과도하면 문제는 분명히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은 쉽고 귀여운 동화가 있다. 천개의바람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이 나온 줄은 모르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발견하고 대출해왔다. 이 책은 극단적인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적인 문제를 한번 성찰하게 해준다. 저학년용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고학년과 읽어보고 얘기 나누기에도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른들이 읽어도 깨달음이 있을만한 책이다. 어른들이라고 관계 문제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니까. 아이들보다 더한 경우도 많다는....

 

최근의 유행대로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들이 주인공이어서 더욱 접근성이 높다. 여름이는 고양이 학교에 다닌다. 흑백 얼룩이인 자신을 매우 평범하다 생각한다. 같이 잘 노는 친구로는 예쁘고 똑똑한 삼색이 태비, 호랑이 줄무늬 랑이, 겁쟁이 잠꾸러기 회색줄무늬 시온이가 있다. 여기에 프리실라라는 이름도 개성있는 오렌지색 멋진 털의 고양이가 전학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름이는 프리실라가 맘에 들어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프리실라는 태비에게 베스트 프렌드가 되자고 제안했다. 베프란 걸 생각도 못하고 지내온 친구들은 프리실라에게 맞추기가 어렵다. 태비랑 깨지고 나서 프리실라는 이번엔 랑이에게 베프 제안을 했는데, 얼떨결에 승낙한 랑이도 얼마 안가 깨지고 말았다. 다음 순서로 프리실라는 여름이에게 제안을 하는데.... 여름이는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프리실라의 베프 제안을 받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던 시간 동안, 여름이는 깨달은 게 있었다.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홀로인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교장선쟁님의 비밀 공간에 우연히 들어갔던 여름이는 벽에 걸린 이런 시를 읽게 된다.

 

나뭇잎을 흔들며 흐르는 바람은

전부 고양이 거

(중략)

세상의 주인공은 너니까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외톨이로 살아라.“

 

당당하게 외톨이로 살라니. 멋진 말이다. 위험한 말일 수도 있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절대 혼자서는 설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발판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인간 사회다. 이걸 무시하고 연대의 끈을 다 끊어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그랬다간 진짜로 큰일난다. (현대사회가 점점 그래지는 것 같아 슬프고 걱정될 때가 있다) 여기에서 외톨이란 독립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과 연대의 양면을 다 가지고 있어야 건강하게 유지되는 집단이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바로 이런 뜻인 것 같다.

고양이도 친구가 있어도 되고, 여럿이 모여도 돼. 어른 고양이도 가끔 고양이 모임을 하고 말이야. 하지만 혼자 있는 즐거움도 알았으면 좋겠구나.“

 

작년과 올해 운이 좋아서인지 아이들의 관계 문제로 고생한 적이 없어서 감을 좀 잃어버린 느낌이 있다. 하지만 이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독립을 두려워하는 아이들, 끈이 떨어질까봐 집착하는 아이들, 그 끈의 주도권을 잡고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이 뒤엉키면 그 안에서 많은 상처와 문제들이 발생하곤 했었다. 지금 혼자라고 영원히 혼자가 아니야! 두려워하지 말고 그 끈을 놓아도 된다! 라고 말해주고 싶은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 책은 아주 귀엽고 부드럽게 그 용기를 줄 것 같다.

 

그렇다고 프리실라가 관계를 망치는 나쁜 캐릭터인 것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성향 속에서 지냈고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프리실라는 친구들 돕는 연대의 마음도 갖고 있었다. 다섯이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으로 이 책은 끝난다. 혼자와 함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 어린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난 너무 혼자 있으려고 해서 탈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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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요, 고양이 노래 그림책 1
송인섭.홍이삭.이나래 지음, 민정원 그림 / 야옹서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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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에 의한 책 구매가 또 발생했다. 나는 뭔가에 깊이 치열하게 빠지는 성격은 아니라서 홍이삭 가수의 팬이라곤 하지만 덕질까지는 하지 못한다. 음원을 빠짐없이 다운받는 것과 그가 관련된 영화와 책이 있으면 꼭 사는 것? 이 책도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집에, 한 권은 직장에 두었다. 직장에선 좀더 쓰임새가 많을 것이고, 집에선 아마 나 혼자 보겠지만.^^

홍이삭 가수의 유튜브는 파도 파도 나와서 유튜브의 바다에서 헤엄친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인데, 음악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영상이 많다. 그냥 일상처럼 조용히 무심하게. 저게 작업 맞나 싶은 시간들마저 버리지 않고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 팀이 하나가 아니어서, 이분은 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보다 라는 짐작을 하게 된다. 무던해서일 수도 있겠다.

이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은 ‘차곡차곡’이라는 채널의 친구들이다.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채널이다. 이 책의 내용이 된 노래의 작업 영상은 5년 전에 올라왔다. 초반부는 아 뭐하지 뭐하지 하면서 흘려보내고....ㅎㅎ 동물 이야기로 만들어보자, 그럼 고양이? 하다가 송인섭 씨가 첫 소절을 뱉어보았고, 폭소와 박수가 터지다가 다음 소절, 다음 소절 이야기하며 만들어갔다. 완성하고 나서도 그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근데 이거 어디다 써먹어?” 이랬는데, 5년이 지나 이렇게 귀여운 그림책으로 탄생하였다. 그냥 묻혀버릴 수도 있었는데, 조회수 몇백에서 그친 아쉬운 작업일 수도 있었는데 참 다행이다. 한편으로는 세상의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의 결과물에서 그렇게 묻혀버린 빛나는 조각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5년전에 작업 영상과 함께 노래 영상도 올렸는데 그때의 목소리는 남자어른(아마도 송인섭 씨)이고, 최근 그림책을 출시하며 귀여운 여자어린이 목소리로 다시 녹음을 했다. 동료들에게 이 영상을 공유했더니 힐링이 되는 목소리라며 좋아들 했다. 나 또한 이 어린이의 목소리가 아주 맘에 들지만 최초의 녹음, 그냥 툭툭 부르는 남자어른의 노래도 좋다. (그사이 가사는 조금 바뀐 곳이 있다.)

“여기 있어요, 고양이.
없는 줄 알았겠지만
밤새 따뜻해서 밑에 있어요.
보닛을 퉁퉁치고 출발하세요.”

날이 많이 추워졌다. 이 추위에 길고양이들은.... 나름의 방법대로 생존을 위해 애쓸 것이다. 그걸 배려해주는 센스.

“나는 보기보다 안보입니다.
라이트를 켜도 보이지 않아요.
속도를 줄여주세요, 나는 잘 안보이니까
천천히 달려주세요.”

나는 아기고양이의 사고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걸 글로 쓰기가 어렵다.ㅠㅠ 대로변이라면 모르지만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모두들 천천히 가면 좋겠다.

“나도 외로울 줄 알아요.
강아지랑 비교하지 마세요.
집사가 나가면 나도 문을 쳐다봐요.
그러니 나도 신경 써 줘요.”

난 이 대목이 웃기면서도 찡했다. 보통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고 한다. 도도하고. 하지만 ‘집사가 나가면 나도 문을 쳐다본다’니.... 왠지 찡해. 집사님들은 더하겠지?

“나도 내가 귀여운 거 알아요.
날 품에 안고 데려가고 싶겠지만
밤늦게 집에 안 가면 엄마가 걱정해요.
나를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첫줄에선 빵터졌다. 그렇지 너도 니가 귀여운 거 알지.ㅋㅋㅋ 하지만 길고양이라도 함부로 만지거나 데려가는 건 반대.

“턱 밑에 만지다보면
그대 기분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계속 만지면 내가 좋을 줄 알지만
지겨워서 잠드는 거랍니다.”

여긴 완전 빵터졌다. 솔직히 난 고양이를 안 키워봐서 잘은 모른다. 집사님들 동의하십니까?ㅎㅎ

이하 가사는 생략하고 여기까지. 마지막에 야옹! 하고 끝나는 마무리도 귀엽고 깔끔하고 웃음이 난다. 평이한 듯한 민정원 님의 그림체도 볼수록 마음에 든다. 이 책을 화면 가득 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했다. 반 아이들이랑 보려고. (저작권을 지켜야 하니 개인적으로만 사용)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된다. 노래도 좋아할 것 같다.

네 분의 작가후기가 다 좋았지만 나름 팬이니만큼 홍이삭 님의 후기에 더 눈이 머물렀다. 글도 참 잘 쓰시네 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차곡차곡을 할 때면 별일과 별일 아닌 것 사이의 경계선을 오가는 행위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무가치해 보이지만 또 지나 보면 그런 맹탕 같은 시간들이 졸여져 간간한 국물 한 그릇 얻어먹는 느낌이랄까.”
“그리울 것이다. 창작 행위라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핑계로 보냈던 월요일 밤의 잉여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눴던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했던 대화들이 그리울 것이다.”


이때의 시간들이 의미를 갖는 것도 저자들이 나름 성공(홍이삭 씨는 특히 경연대회에서의 우승)을 했기 때문인걸까. 대답 안하고 싶다. 아니었으면 좋겠어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뜨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의미있었으면 좋겠다. 차곡차곡이라는 채널 이름이 다시금 마음속에 들어온다. 인생을 차곡차곡 채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가르쳐야 할까. 이 귀여운 그림책을 보면서 참 생각 한번 복잡하네. 세상의 어떤 구석을 보더라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본다면 세상이 지금보단 아름답겠지. 공격에 대한 방어, 방어를 위한 선제 공격... 이런 궁리를 해야되는 세상이 너무 힘들어. 고양이 옆에서 포근하게 잠들고 싶다. 나는 고양이를 안 키우니 고양이 대신 우리 강아지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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