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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옆 만능빌딩 - 제14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ㅣ 난 책읽기가 좋아
이현지 지음, 김민우 그림 / 비룡소 / 2025년 3월
평점 :
교사맘이신 작가님은 아이들의 다면적 모습을 이해하고 작품에 담기에 적격이실 것 같다. <도둑의 수호천사>라는 책에서도 느꼈는데 이 책에서도 그랬다. 교사도 양육자가 되었을 때 한발 떨어져서 말하던 이상론과는 거리가 멀게 현실에 타협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독박육아일 때는 더더욱. 작가님이 그렇다는 뜻은 아닌데, 작가의 말에 보면 어쩔 수 없이 학원순례를 시키는 현실적 고백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등에는 책가방을, 양쪽 어깨에는 학원가방을 주렁주렁 메고 다니는 모습이 이 책의 재이와 똑같아요."
재이네 학교 옆 6층짜리 '만능빌딩'은 층층마다 온갖 학원이 다 모여 있다. 수학, 영어 등 교과목 학원 뿐 아니라 피아노, 미술 등의 예술 학원, 수영, 태권도 등 체육 학원까지. 그야말로 종합 학원 건물이라 할 수 있겠다.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만능 빌딩' 이겠다. 하교 후 귀가 시간까지 이 건물 한 곳에서 다 커버가 될 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그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반 애들로 상상해보면 2시에 영어학원 갔다가, 3시에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 미술학원에 갔다가, 5시에 지하로 내려가 수영 하고, 6시에 수영 차 타고 집으로 간다.... 이런 식 아닌가? 애들도 정말 지치겠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푹 쉬라거나 눈 좀 붙이랄 수도 없는 일. 아이들이 '집'에서 푹 쉬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으려나.
재이도 많은 친구들처럼 방과 후 이 빌딩 안을 순례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다.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간식 한번 같이 먹어줄 친구도 없다는 점인데.... 거기엔 약간 자업자득 격인 사연이 있다. 단짝친구였던 선우가 사소한 일로 다투고 놀린 일이 있었는데 그게 학폭으로 번졌다. 주역은 재이 아빠, 그는 변호사였고 결국 승리를 따내고 서면사과를 받아 득의양양했다.
「“아무튼 박선우가 너 따돌리는 거 같으면 말해. 또 학교폭력으로 신고해 버릴 테니까. 혹시 박선우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해도 말해. 그건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되니까.”
“신고해도 같이 놀 수는 없는걸. 사이좋게 지내자고 해 놓고도 사이좋게 안 지내.”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어쨌든 우리가 이겼잖아.”
아빠가 적을 무찌른 장군처럼 턱을 치켜들었다. 아빠는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26~27쪽)
캐릭터가 과장된 감은 있어도 비현실적인 설정은 전혀 아니다. 이미 이런 사례들이 차고 넘치고 있다. 아마 작가님도 가까이서 보신 일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쓰셨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여간에 재이와 선우 사이의 일은 이렇게 위원회로 올라가게 되어 둘의 화해와 관계 회복은 물건너가 버렸다. 처분을 받은 선우는 함께 놀 친구들이 있지만 재판에서 이긴 재이는 주변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쓸쓸하게 만능 빌딩을 배회하는 수밖에.
그러다 재이는 6층에서 ‘임대’ 쪽지가 붙은 빈 학원을 발견했다. 전 하버드 영어 학원이던 그곳에선 웬 할머니가 욕을 하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던 재이는 그 이상한 할머니에게 ‘인생의 진리’에 가까운 것을 배운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오래된 학원들처럼 해봐라’
이런 것들.
저학년 대상의 짧은 동화이다 보니 재이의 시도는 빨리 먹혔고, 둘 사이는 그동안의 일이 싱겁도록 빨리 회복되었다. 하지만 미안해 흑흑 괜찮아 흑흑 그런 신파는 아니고, 여러 가지 사건들과 소문과 진실이 얽혀 꽤나 흥미진진하게 결말에 도달했다.
주인공들이 2학년으로 나오지만 중학년까지는 재미있게 읽고 이야기도 깊이있게 나눌 수 있을 만한 책이었다. 학교가 부모들의 대리전의 장이 된 것, 그리고 아이들까지 그들의 용어를 걸핏하면 사용하는 것, 이런 사실들은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만 놓고 보면 회복과 해결의 가능성은 아직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널리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왕이면 부모님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