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과 보이지 않는 - 2024 뉴베리 대상 수상작 ㅣ 오늘의 클래식
데이브 에거스 지음, 숀 해리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스포 많음 주의)
다니엘 페나크의 『까보 까보슈』나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을 떠올리게 하는, 개가 화자이며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라고 느껴지기에는 상당한 독특함을 갖고 있었다. 주인공 개의 주체성 면에서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공간적 배경도 매우 특색있었다.
요하네스라는 이름의 개가 화자이다. 이 개는 주인이 없으나 유기견이라 할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호의는 있지만 독자적인 삶을 즐긴다. 사는 곳은 바닷가에 위치한 매우 넓은 자연공원 같은 곳이다. 자신의 은신처도 있는가 하면, 놀이나 휴식을 위해 공원에 나온 인간들의 모습도 지켜볼 수 있고, 다양한 종의 동물 친구들도 있는 곳이다. 그의 출생 배경이 살짝 나오는데, 엄마가 반려견이었다고 한다. (아빠가 누구였는지는 후반부에 반전으로 나옴) 엄마는 무슨 이유에선지 이 공원의 숲속을 출산 장소로 택했고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의 한 마리를 데리고 주인집으로 들어갔다. 나머지 중 세 마리는 인간들이 데려갔다. 요하네스만 끝까지 남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개의 자부심은 인간에게 종속되지 않았다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의무감과 사명감을 갖고 있다. 그의 역할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 나온다. ‘The Eyes’(눈)이다. 이 임무는 이 공원에 사는 매우 늙은 세 마리의 들소가 의뢰한 것이다. 개는 이 들소들을 매우 존중하며 이렇게 생각한다.
“자연의 모든 공간이 모두 그렇듯, 이 공원에도 균형이 존재하며, 들소들은 이를 지켜보고 지키는 존재다. 들소들은 균형의 수호자다.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생긴다.
..... 우리의 체계는 썩 괜찮다. 내가 무언가를 보고 들소들에게 알리면, 그들이 해결 방법을 궁리한다.”
이렇게 이 개는 자신의 빠른 발과 관찰력으로, 이 생태계의 ‘눈’이 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아 수행하며 살고 있다. 그의 다소 높은 자존감은 귀엽기도 하고, 하지만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인간 못지않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낫다.
그의 빠른 발과 예민한 감각은 그의 자부심이었는데, 얘도 예외적으로 허당일 때가 있다. 그건 바로 그림을 볼 때다. ‘사각형’ 안에 인간들이 표현해 놓은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개라니. 결국 또 넋을 놓은 순간, 못된 인간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하지만 그 때가 바로 이 책의 재미 요소중 하나인 친구들의 활약이 펼쳐지는 때였다. 갈매기(버트런드), 펠리컨(욜란다), 다람쥐(소냐), 너구리(앵거스) 등.... 겨우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개는 다른 일로 인간들의 눈에 제대로 띄게 된다. 바로 연못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해 준 일이다. 위험이 예측되는 일이었지만 생명 앞에서 다른 선택은 없었다. 결국 개는 친구들이 주워 온, 그토록 혐오하던 반려견옷을 입고 일종의 변장(?)을 하고 다니게 된다.
그사이 공원도 많은 변화가 있다. 당연히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동물들에게는 좋지 않은 쪽으로.... 그리고 인간들이 데려온 새로운 종과의 만남도 있었다. 바로 염소였다. 염소들은 요하네스와 친구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풀들을 맹렬히 뜯어먹는다. 그중에 왕따인 염소 헬렌. 개에게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 그런데 염소들과의 만남에서 알게 된, 개에게는 인생을 뒤흔드는 새로운 사실. “우린 메인-랜드에서 왔어.” 개와 친구들의 세상이던 이곳이 사실은 아주 작은 섬이라는 것. 바다 건너에 아주 큰 세상인 육지(메인-랜드)가 있다는 것이다.
개는 들소들을 울타리에서 풀어주려는 계획을 수정하여, 아예 섬 밖으로 내보내주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게 가당키나 한 계획인가? 더구나 염소들을 태우고 갈 배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이때 그동안 책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역할을 수행하며 목표를 향해 간다. 과연, 그들이 도모하던 일은 어떤 방향으로.....?
마지막 장까지는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들소들의 선택도 이해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 또 모든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아주 극적으로 보여준다. ‘주체적’ 이것은 요즘들어 아이들에게 거의 소멸되어버린 가치나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른 독자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들소들과 개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했다. 주체적인 삶에 꼭 공간의 확장이 필수인 것은 아니라고. 공간도 광활하면 물론 좋지만 자기주도성, 자기선택성의 유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아이들의 주체적인 삶은 고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남겨진 들소들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개나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이 어차피 그런 것이다. 그러니 두려우려면 한없이 두렵고, 기대하려면 한없이 기대되는 것이 인생인 것 같다. 나는 주로 두려워하는 편이었다....;;; 이런 내가 요하네스의 거침없는 전진을 보니 느껴지는 게 많네... 어린이 독자들도 그랬으면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산다는 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사족1) 이 책도 영화, 특히 애니로 만들면 아주 괜찮겠다. 첫째로 각각의 동물 캐릭터들이 확실하고, 유머 캐릭터를 담당할 동물도 있다. 둘째로 장엄한 풍경을 구사하기에 적당하고, 그랬을 때 엄청 멋질 것 같다. 셋째로 유머코드와 교차하는 감동코드도 아주 묵직하게 배치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족2) 이 책을 읽고 코요테를 검색해봤다. 코요테와 개의 잡종을 코이독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늑대와의 잡종은 울프독...) 흥미롭네.
사족3) 제목의 번역에 약간 의문이 있다. 영어를 못해서, 설명을 들어보고 싶다. 제목이 좋은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해서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