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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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쓴다는 것은 단순한 능력이 아님을 이런 책을 읽을 때 깨닫는다. 보통사람의 글이 사실이나 경험의 서술, 조금 더 나아가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정도에서 그친다면, 잘쓴 글은 독자를 흔들고 이끈다. 늘 겪으면서도 직면하지 못하는 상황을 눈앞에 펼쳐놓기도 하고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던 마음이 거기 있기도 하고, 같은 아픔에 감정을 격동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찌꺼기를 뱉어내고 말개진 아침을 맞이하게 하기도 한다. 이상은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잘쓴 글'의 특징이다. 다른 측면에서의 잘쓴 글도 물론 있을 것이다.

읽어보니 왜 이 작가님의 단편을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각편들은 다 다른 소재와 다른 인물의 이야기면서도 묘하게 관통하는 한줄기가 있는 느낌이다. 그게 작가의 마음 아닐까 생각했다. 별볼일 없고, 어쩔 수 없고, 답답하고 연약하고 속물적인 존재로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는 않고 싶어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부끄러워지는)

이 인물들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이들이 특별히 멋져서가 아니고, 그나마 1이라도 성찰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인 것 같다. 알츠하이머가 뇌의 기능을 하나하나 정지시키듯이 마음의 기능이 정지된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이 오히려 쿨해보이고 멋져보이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갈 바를 모르고 주춤대는 자신의 마음과 고민을 조심스레 꺼내놓는 화자들에게 우리는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겼다. 보통 내가 단편 리뷰를 쓸 때는 한 편 한 편 언급하다가 글이 길어지곤 하는데 이번엔 그러지 않으려고.... 각 편이 다 매력적이었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작품도 있는데, 그건 다 개인적인 이유에서였다.

1. 어떤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 내 이름이어서 깜짝 놀람. (좀처럼 없는 일) 그가 하는 일과 상황에도 공감되어서 마음이 많이 갔다.

2. 각 편 제목들이 다 좋아서 어떤 제목이 표제가 되어도 다 좋을 듯했다. 그중에서 표제작이 된 <안녕이라 그랬어>는 '음 그래 역시 표제작이 될만한 작품이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갔는데, 다른 작품이 표제작이었어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기도 하다. 40대의 에이미(은미)가 시골집에 내려와 엄마를 간병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팔리지 않는 시골집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화상영어공부를 통해 로버트라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가 줄거리고, 그 이면에는 옛 연인인 헌수와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던 날에 들었던 'Love Hurts' 라는 노래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영어에 서툴렀던 그녀는 당시에 'I'm young' 이라는 가사를 '안녕'이라고 들었었지. 안녕. 너무 많은 뜻이 담긴 한국말. 지금도 영어에 유창하지 못한 그녀는 마음에 가득한 지난일과 감정을 결국 말하지 못하고 '안녕'의 뜻을 로버트에게 설명하다 대화가 종료된다. 그 뜻은 '평안하시라'였다. 누군가에겐 영어만큼이나 어려운 평안하다는 일. 하지만 그들의 평안을 빌고 싶다. 지금 몇살이든, 옆에 누가 있든 없든, 돈이 있든 없든. 안녕이라고. 안녕하라고.

3. 마지막 작품 <빗방울처럼>에 나는 가장 이입되었는데, 그 이유는 작품 속 사건이 내 인생에 실화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난 작품만큼 복잡하고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인간이란 어쩜 그렇게 자기 경험 위주인지 모르겠다. 그 사건은 바로 '누수'였다. 윗집 누수가 우리집에 피해를 주고 그게 금방 해결되지 않는 상황.

지수에 비한다면 나는 문제를 함께 걱정할 가족도 있고, 집도 아파트고 윗집주인과 연락도 하고 있으니 어찌든 해결방안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작품에서 묘사한, 신경쇠약에 걸릴 것 같은 그 물방울소리가 몇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그런데 그 소리에 반전이 있다. 우리집이 그랬듯이 지수네도 누수는 고쳤고, 천장 도배도 새로 했다. 그런데도 들리는 물방울 소리의 환청. 그건 신경쇠약의 소리가 아니라 이번엔 살라는 소리였다.
안돼.
그러지마.
살아.
물방울은 이제 천장이 아닌 지수의 뺨에 흐른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본인이 너무 맘에 들어 우겨서 계약한 빌라집에서 전세사기를 당하고, 떠앉은 빚을 해결하느라 착한 남편이 과로로 죽고, 집은 물이 새고 혼자 남은 지수는 그걸 어떻게 감당할까. 누수의 스트레스는 그 힘듦의 천분의 일도 안될텐데도 그걸 겪어봤다는 이유로 나는 마치 그녀를 이해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물방울의 환청이 그녀에게 살라고 하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그게 처음 만난 외국인 도배사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는 한마디에서 퍼진 파동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내게 소설은 다른 읽을거리에 밀려 늘 뒷전이었는데 일을 그만둘 시점이 되자 비로소 손에 조금 잡히는 느낌이 든다. 누수라는 단순경험이 주인공에게 연민과 응원을 가져다주는 걸 보니 내가 못한 경험을 소설을 통해서 간접경험하는 것도 세상살이에 나쁘지 않아보인다. 다음 책으로는 요 책 전에 나온 장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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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1~2 세트 - 전2권 - 펀자이씨툰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
엄유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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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펀자이씨툰’이라는 인스타툰에서 관련 내용만을 모아 엮은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인스타를 안해서 접해본 적이 없는 내용이다. 책을 읽고보니 너무 매력적이어서 출간된 ‘펀자이씨툰’을 모두 읽어보리라 결심할 정도였다. 이 책 앞에 출간된 책들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인 듯한데 재미있을 것 같다.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책이다. 제목인 <순간을 달리는 할머니>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를 중심으로 한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전작들은 본인의 이야기, 이 책은 부모님과 가족의 이야기. 말하자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내용들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그런데, 요즘 같은 인스타의 시대에는 예사로운 일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흔히 인스타의 폐해라고 거론되는 보여주기, 과장, 가식의 느낌이 없는 점이 매력인 것 같다. 진정성이 느껴진다. 진정성을 꾸며내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 책의 가치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검색해보니 작가의 어머니는 그 연세에 드물게 상당히 많이 배운 분이고, 교수에다 작가인 분이었다. 강연도 많았다. 말씀하시는 걸 보니 센스와 유머가 아주 깔끔하게 떨어지는 분, 교양을 잃지 않으면서 웃기시는 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식 있고 지혜로우신 분도 피해갈 수 없는 질병, 알츠하이머가 찾아왔다. ‘순간을 달리는’ 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은 것이다.

어머니는 이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당당하고 꼿꼿하다. 결정적으로, 여전히 웃기신다. 아버지 또한 적절히 장단을 맞추시고. 이렇게 잘 어울리는 노부부도 드물겠다 싶었다. 작가님 또한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마음속의 염려와 고통을 애써 잠재우며 씩씩하게 대처한다. 알츠하이머가 이야기의 발단인데, 이렇게 유쾌하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다니, 정말 특별한 가족이라 하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음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다 같은 인생인데 당연한 일이다. 부모님은 자식이 부담 갖고 찾아오길 원치 않으셨지만, 돌봄을 책임지게 된 자식의 입장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가님처럼 위 아래 형제가 모두 외국에 나가 독박 돌봄 처지가 된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시설에 보내드리는 것은 최후의 경우가 아니면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시설 얘기까지 책에 나오진 않았고 내 생각이 그렇다) 본인의 작업도 해야 하는 작가님 입장에서 시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많은 갈등이 따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부분도 책에는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었고 많이 공감했다. 그렇다고 다른 가족들이 못됐거나 얌체인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때로 화를 내고 갈등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다. 옛 기억은 생생하지만 조금 전 기억을 잊는 것이 주 증상이었는데 가장 가슴이 철렁한 일,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가 시작되었다. (이게 너무 가슴아플 것 같다.ㅠㅠ) 그리고 기억을 더 이상 쌓을 수 없어 생기는 한계를 절감한 순간, 공황장애가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렇게 아픈 일들을 굳이 감추지 않으면서도 마냥 슬픔만을 주지는 않는다.
“엄마는 더 이상 글을 쓰거나 사람들 앞에 서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스스로도 기억할 수 없을 꺼져가던 말들이 나의 기록을 통해 전해지고 누군가에게 웃음과 위로가 된다.
그렇게 잠깐 다시 빛이 난다.
만약, 크리스마스 전구의 불빛이 꺼지는 순간이 없다면
그리고 다시 켜지는 순간이 없다면
우리가 반짝임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을까?”

어머니는 소멸되어가는 당신의 기억 대신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딸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딸은 불행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슬픔을 크리스마스 전구에 비유할 수 있게 살아주시는 어머니가 계셔서 참 다행이다.

소통의 의욕을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생각한다. 같은 말을 수십번 물어보는 부모님 앞에서 나는 참고 대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슬프다. 이런 생각을 한 김에 전화라도 한 번? 그리고 펀자이씨툰 전작들을 읽으러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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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 이민, 장애, 나이듦, 그리고 돌봄의 세계에서 내가 배운 것
루아나 지음 / 메멘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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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반납해야 하는 도서관책을 챙기다보니 3권 모두 노인, 퇴직, 돌봄에 관한 책이다. 아 이젠 정말 내가 현장을 떠나 뒷방의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읽는 책이 바로 내가 선 땅을 알려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현장을 떠난다기보다는 제2의 현장을 만나는 이야기다. 이전보다 더욱 치열한. 그 현장이 바로 돌봄의 세계라서 다른 책들과 함께 늙음과 죽음을 좀더 가까이에서 보게된 것 뿐이다. 저자는 이민 전 중등교사였고 호주로 이민을 간 후에 그 사회에 익숙해지며 돌봄의 현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자격증을 따고 지금은 활발히 활동중이다.

이 책을 오늘 반납해야 하지만 한번 더 읽거나 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다. 책이 어려워서는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잘 읽히는 책에 속한다. 하지만 생각할 영역이 여러가지다. 누군가는 저자의 개인적 삶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의 삶이 매우 고달팠었다. 교사로서의 삶이 몹시 소모적이고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으며(자세한 이야기는 없지만 같은 교사로서 다 알 것 같은ㅠ) 그 와중에 표준의 경우와 너무 다른 육아는 개인을 한계로 몰고 갔다. 결국 아들은 자폐와 ADHD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 후 호주 이민, 적응 과정, 새로운 일에의 도전, 싱글맘으로 홀로서기 등의 과정이 이 책을 개인사로만 읽어도 충분히 의미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 줄기에 덧붙여진 것들이 매우 많아 그것도 놓칠 수가 없다.

그중 하나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다. 저자가 호주의 현장에서 뛰며 알려주는 현실은 자연스럽게 두 나라를 비교하게 만든다.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어느정도 흉내는 내고 있지만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아직 멀었구나.

올해 장애 학생이 많은 학년을 맡게 되었다. 반평균 2명씩 있다. 교사를 오래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학교의 모든 지원인력(특수교육 실무사 두명과 공익근무요원)을 총동원해도 턱도 없기 때문에 시간제 봉사자를 채용해서 지원에 보탠다. 우리 지원 선생님들은 정규 비정규 공익 할 것 없이 모두 마인드가 훌륭하셔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초반에는 그분들이 고마운건 고마운거고 교실에 나말고 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힘들었다. 이제 거기에 적응되자 이런 생각이 든다. 호주에선 장애인 비율이 20%가 넘는다고 한다. 반별 2명씩 있다고 놀라는 우리 학년 비율도 10%에 불과하다. 나의 체감으로는 장애학생들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특히 신경다양성 측면에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진단되지 않은 장애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 되겠다. 지원이 필요한 학생의 영역을 좀 넓히고 지원도 확대되면 좋겠다. 일반교사+특수교사의 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특수학급의 정원을 줄이고, 모든 학교에 특수학급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일부 학교에만 특수학급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도 있다. 특수교육이나 지원인력은 진단받은 특수교육대상자에게만 해당되고, 그 진단이란 부모의 동의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니 대상자가 없는 학교도 존재하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러고보면 우리나라는 전체적으로 인식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작년에 모 지역 특수학급에 살인적인 인원과 업무를 몰아놓고 인력충원의 호소를 무시하고 방치한 결과 슬픈 일이 일어났다. 이게 우리나라 현실의 한 단면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잠시 귀국할 때마다 신문물의 작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때 난 생각했다. 아 호주가 우리보다 훨씬 아날로그로 사는구나...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조급증에 쏟아붓는 그 예산들을 훨씬 사람에 투자해도 되는 것 아닌가.... 결국 그 아까운 젊은 특수교사의 죽음은 그 알량한 예산 안 쓰려고 버티다가 그렇게 만든거 아니야? 말만 꺼내도 화가 난다.ㅠㅠ

호주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은 장애 자체의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장애=불행의 공식은 절대 없었다.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다양함의 일부일 뿐이다. 어떤 곳이든 보편적 설계가 당연하게 적용되어 있었고, 번거로움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는 태도가 상식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수영장 장면에서 입이 딱 벌어졌다. 배울 건 빨리 배웠으면 좋겠다.

다음으로는 직업에 대한 것이다. 직업의 안정성과 유연함이 공존하는 방식이 무척 좋아보였다. 우리나라처럼 '하려면 밤낮없이 죽어라고 하고 못하면 말고' 이런 식이 아니라 자신의 체력과 나이, 생활방식에 따라 다양한 시간선택이 가능한 일자리들이 많으면 좋겠다. 모두들 대학도 모자라 대학원까지 나와야 하는 학력 낭비의 한국은 곧 젊음과 세월 낭비이기도 한 것 같다. 직장의 유연함은 근무환경의 향상으로도 이어지고 그건 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인드로 이어진다.

다음은 노년에 대한 생각이다. 저자의 돌봄 일은 크게 두가지 분야이다. 장애인과 노인. 노인을 돌보면서 저자는 한국의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했다. 돌봄은 정말 정신 육체 양면으로 고된 일이었다. 저자도 나처럼 작은 키에 저질체력이신 것 같은데도 이 일을 열심히 배워 해나가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호주의 노인 돌봄 환경은 우리보다 훨씬 좋았다. 특히 돌봄인들이 육체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면서 노인들의 기본적 욕구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여러가지 기계들(기중기, 기립기 등)의 사용은 꼭 필요할 것 같다. 저런 걸 쓰기 전에 죽고 싶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겠지.ㅠ 이런 것을 포함해서 우리가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상황을 다양성의 범주에 넣는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저러느니 죽는게 낫겠다", "저러고 왜 살아" 따위의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생각되었다. 다른 편에서 생각해보면 너무 고통스러운 한계까지 몰아가지 않는 치료, 그러니까 연명치료가 아닌 통증치료(최소한의 존엄사)에 집중하는 의료체계로의 전환을 간절히 원한다. 내가 죽을 때 되기 전에 부디.

기록 좀 남기고 반납하자 하고 생각한 리뷰가 중언부언 길어졌네.... 이 책은 그대로 덮고 잊어버리긴 아까워서 이어지는 대화나 독서가 더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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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ftside21 2025-12-2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수교육 협력강사로 일한 지 2년이 되었습니다. 기진맥진님의 기나긴 리뷰에서 학교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마치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듯한 동지애를 불러일으키네요. 진정성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일반교사와 특수교사의 협업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비정규직 협력강사는 길을 잃을 때가 좀 있었답니다. 아는 작가님이 이 책 북토크 사회를 본다 하시기에 검색해보다가 이런 귀한 리뷰를 읽게 되었네요. 언제나 책으로 이어지는 신비한 인연에 감탄합니다. 몸과 마음이 따뜻한 연먈 보내시기 바랍니다.

기진맥진 2025-12-27 18:51   좋아요 0 | URL
댓글 남겨주신 마음에 감사하고, 반갑습니다. 현장이 조금씩이라도 쭉 좋아지길 바랍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봄을 건너는 법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정은주 지음, 김푸른 그림 / 우리학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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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과 연두의 조합이 이렇게 예뻤던가? 표지와 책등의 색채가 내게 없던 핑크 취향을 불러올 것 같은 예쁨이다. 귀엽고 따뜻한 이야기에 고픈 사람들이 이 책을 집어들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핑크핑크하지만도 않고 귀염귀염하지만도 않다. 왜냐. 우리 주변의 이야기라서. 인생의 이야기라서. 인생이 핑크핑크가 아닌 것은 주지의 사실.

그러나 그 색깔이 존재하듯 우리 인생에도 그런 순간은 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순간. 시린 계절을 지나 봄을 맞은 우리는 잠시 분홍의 따스함에 머물렀다가 이번엔 폭염 속으로 걸어들어가야 한다.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도 살아내느라 힘들구나.

이 책의 주인공을 둘로 말한다면 화자인 김선아와 장애가 있는 강산에이다. 둘의 엄마가 절친이어서 어릴적에 사촌들처럼 자랐다. 산에 눈에는 선아밖에 없었고 선아만 따라다니며 동시에 선아를 든든하게 지켰다. 알고보니 산에한테는 '윌리엄스 증후군'이라는 장애가 있었다. 이후 산에의 특수학교 입학 등으로 두 집의 거리는 멀어진다. 5학년이 된 지금, 친구 관계가 쉽지 않은 선아는 고전중이다. 그 교실에 어느날 전학생이 왔다. 바로 산에였다.

몇년의 세월동안 산에의 마음은 변한게 없었으나 문제는 선아였다. 선아는 그러잖아도 마음처럼 되지않는 관계가 산에 때문에 더 어려워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걸 꿈에도 모르는 엄마들은 선아에게 산에한테 잘해주라고, 도와주라고, 잘 부탁한다고 부담을 준다. 산에는 예전처럼 반갑게 다가가고, 선아는 매몰차게 벽을 친다.

여기에서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의 '무리 소속'에 대한 갈구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인데 그건 아마도 내가 살면서 대충 아무곳에나 속해 있었기 때문에 절실함을 몰라서 그런 걸까? 아이들은 학기초에 이것 때문에 엄청난 물밑 전투를 치느르라 소진된다고 한다. 마치 초반에 결과가 끝장나는 전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 조급함이 이해되지 않는 나는 꼰대이겠지? 어쨌든 현실이 그러하니 나는 늘 아이들의 구도를 주시한다. 누가 누구랑 노는지를. 자유롭게 헤쳐모여의 유연함이 있는 반은 최고다. 어느정도의 고정성이 있지만 소외된 아이는 없고 서로에 대한 적의가 없다면 그럭저럭 괜찮다. 관계권력을 가진 아이가 있고 그 그룹에 들기를 갈구하며 탈락하면 마치 죽을 것처럼 구는 구도라면 최악이다. 나는 아직 최악까지 가보진 않았지만 이러한 이유로 학기초에 권력관계 관찰에 초집중한다. 이 권력이 발견되면 지혜로운 방법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안그러면 문제와 상처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아이들 일이라고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내가 봤던 아이들 중에는 그리 목매달지 않는 의연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아이는 또 그런 아이를 만나게 된다. 보석끼리의 조합이다. 조급함만 없애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데, 당장 죽을 것처럼 울고 뒹굴고 보호자까지 여기에 가세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다.

이 책의 선아는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여기에 주인공 두 명을 더 추가한다면 햇살이랑 민준이다. 햇살이는 인지능력도 산에보다 더 부족해보이고 수업방해나 고집 등 교사를 곤란하게 하는 특성도 훨씬 심한데 장애인은 아니라고 한다.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니니 도움반에 가지 않고 지원인력도 당연히 없어서 담임선생님 혼자서 감당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고 검사를 거부해서다. 여기서 또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현실을 보게된다. 부모의 동의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동의가 없으면 속수무책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이또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의 시선과 그로인한 두려움이 부모의 마음을 닫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두가 함께 힘들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민준이로 말할 것 같으면 안좋은 소문이 따라붙은 (알고보면 억울한) 독립적인 남자애다. 특이하게도 민준이에겐 햇살이를 안정시킬 수 있는 면이 있다. 햇살이와 짝이 되기도 하고, 선아, 산에와 넷이서 모둠이 되기도 한다. 선아가 느끼기에 소문에 비해서 상당히 괜찮은 아이다. 담임선생님이 민준이에게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런 민준이에게 또 오해가 닥쳤다. 그것도 햇살이네 쪽에서...ㅠ 이렇게 꼬이는 일들이 내 문장으로 쓰니 매우 짜증나 보이는데 책은 그렇지만은 않다.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했지만 현실의 서늘함이 표지의 그 따뜻함을 압도하지는 못하는 이야기라고 할까.

되게 슬픈 대화도 있었다. 선아 엄마가 늦던 날, 산에 엄마가 와서 따뜻한 밥을 차려주었다.
"선아야, 혹시나 해서 하는 얘긴데, 산에가 다른 애들한테 놀림당하거나 무시당해도.... 너 나서지 말고 모른 척해. 이모가 산에 키우며 살아 보니까... 사람들 시선이 제일 무섭더라. 사람들이 눈빛 하나로 정말 어마어마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더라고. 산에야 어차피 장애인이니까 감당하고 살아야 돼. 세상이 좀 바뀌어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되겠니? 그런데 너는 산에 때문에 그런 시선 받을 필요 없어. 그니까...."
어떤 마음을 거쳐 산에 엄마가 이런 말을 하게 되었을지 과정을 짐작해보면 너무 슬프다. 특히 찔리는 말은 '눈빛'이다.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당당할 수 있을까? '눈빛'에 이르니 나는 바로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어떤 폭력을 행사하며 살았는지 다 알 수도 없다.

선아와 산에, 햇살과 민준, 그리고 다양한 성향의 주변 친구들을 통해서 작가는 장애와 비장애 어린이들이 함께 어울려 갈등하고 해결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그 과정을 '봄을 건너는' 일로 표현했다. 실제로 학기초에 부딪친 일들이니 액면 그대로의 뜻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잔인한 봄을 지나 싱그러운 여름으로 진입하는 아이들.

저학년때는 그래도 가능했던 어울림이 고학년으로 가면서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이 내겐 여전한 고민이다. 놀이, 관심사 등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아이들은 의무감의 시간 외에는 단짝들과만 지내고 싶어한다. 강제할 수 없고 부작용도 우려되는 부분이라 아쉬운 마음이 남을 때가 많다. 무리없고 자연스러운 호의가 가득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눈빛에 칼날이 없는 세상.

고통없는 인생은 없고 누구에게나 아픔과 장벽이 있다. 산에도 햇살이도 딱 그만큼만 아플 수 있다면 좋겠다. 선아도 민준이도 다른 친구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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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올리브에게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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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창작을 시도해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선 어딘가 동경이 자리잡고 있긴 한가보다.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무한대에 가까운 창작물이 이미 있음에도 사람들은 곡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다.

그중 어떤 작품 앞에서는 '아, 이건 나에게 절대 해당없는 일이구나. 감상 만으로도 벅차. 난 절대 이런 걸 떠올릴 수조차 없어' 라는 마음이 된다. 그러니까 작품을 분류하는 기준은 아주 많지만 이런 분류도 있다는 것이다. 창작에 대한 동경을 포기하게 만드는 작품 : 그렇지는 않은 작품.ㅎㅎ 긴긴밤이 바로 그랬었는데 이 작품도 그러네. 미술을 전공하셨다는 작가의 내면에 이런 이야기의 토양이 있고 전공에 따라 자신이 창작한 세상을 그려서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이 소수라는 점에 위안을 느껴야 하나?^^ 그보다는 독자들에게 주어진 역할-감상에 기쁨을 느껴야 할 것이다.

루리 작가가 구축하는 것은 이야기의 얼개만은 아니다. 내가 감탄하는 것은 그가 만들어내는 '분위기'다. 슬프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면서 묘하게 희망이 차오르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분위기. 분위기를 창작하는 작가들이 있다. 외국 작가로 한명 예를 든다면 케이트 디카밀로 같은. 이들은 무엇으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문체일까? 표현일까? 그래서 그들의 문장에는 적어두고 싶은 것들이 많다.

어딘지 특정하지 않았고 우리나라는 분명히 아닌 배경. 하지만 이국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것 같으며 묘한 그리움까지 불러일으킨다. 그곳은, 전쟁의 포화속에 무너진 곳인데도.

파괴와 살상. 개인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비명과 고통, 눈물만 남기는 전쟁을 왜 사람들은 멈추지 못할까?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와 나란히 왔으며 아직까지도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고등동물이 아니며 가장 어리석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된다. 이 순간 나는 분노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나를 위로한다. 거악의 지붕 아래에서도 서로 손내밀며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살아가는 선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표지에서 보이는, 휘어지고 일부가 떨어져나간 올리브나무가 서 있고 개가 지키고 있는 집. 몇 세대를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이 머물고 지나갔었고 한결같이 그리워하는 곳. 주변에는 그저 소문으로만 떠도는 집. 그곳이 바로 '나나 올리브'가 사는 '올리브나무집'이다. 이집은 늘 문을 열어두었고, 개가 있다. 그 개(들)는 쓰러지거나 길 잃은 이들을 집으로 이끌어주기까지 한다. 그 집 또한 폭격이 피해가진 않았고 가족들은 떠나기도 하고 남기도 했는데, 사람이 없었던 기간에도 개는 남아 집을 지켰다. 이 책에 개가 나오는 이유는 개의 그런 성품 때문인것 같다. 지킴, 기다림. 개의 유전자에 새겨진 듯한 그 '기다림'은 가끔 내 가슴에 통증을 준다. 왜 그렇게 기다려.... 그런데 그들은 기다린다.ㅠㅠ

그집에 머물렀던 이들 중 두 명이 집을 찾으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때 그들은 젊은 군인과 소년이었지만 지금은 노인과 중년이다.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병 치료를 앞둔 군인을 놓고 소년이 먼저 길을 떠난다. 드디어 그 집을 발견하던 순간 미친듯이 뛰는 심장의 고동이 독자들에도 전해진다.

내려앉고 썩어가고 황폐해진 집에서 (과거에 소년이었던)중년은 오래된 노트를 한권 발견하고 치료중인 (과거에 군인이었던)노인에게 부친다. 노인은 그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그건 편지였다. '코흘리개'라고 자신을 칭한 누군가가 '나나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었다. 부칠 수 없는 편지였고 다른 말로는 일기라고도, 생존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글들이었다. 이 편지가 액자 안의 그림처럼 가운데에 자리하고 주변에 이 소년(다리스)과 군인(윌터)를 비롯, 그 집과 인연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치되어 있다. 퍼즐맞추기가 꽤 필요한 독서였다.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닌데 숨을 죽이고 끝까지 읽게 되는 건 이 퍼즐맞추기의 힘이 컸다. 감동은 작은 선의가 연결되고 이어져 흐르는 서사 속에 있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속에서 다 잃고 겨우 남은 것을 나눠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슬픔을 안고 있어요. 그 사실이 니를 버티게 해요. 가끔은 슬픔이 턱밑까지 차올라서 그만 잠겨버리고 말 것 같을 때, 내 옆에 나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슬픔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헤엄쳐 가는 사람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 아직 괜찮구나, 하고 따라서 헤엄을 쳐요. 헤엄을 치는 나를 보고 또 다른 누군가 역시 헤엄을 치겠지요.
우리는 이렇게 시커먼 슬픔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지어 헤엄을 치고 있어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서로를 위해서요."
(104~105쪽)

"가족은 떠나기 전 통조림 몇 개를 주고 갔어요. 곧 겨울이 오는데, 뒤이어 오는 누군가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면서요. 불행한 사람들은 더 불행한 사람들의 처지를 헤아려요. 그러면 불행에서 한 발 멀어질 수 있으니까요. 가족이 남긴 통조림은 누군가를 잠시나마 불행에서 멀어지게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 누군가는 그 잠시 동안 또 누군가를 해아릴 수도 있겠죠.
불행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어요.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서로의 허리를 끈으로 묶고 가듯이요. 그래서 불행에서 한 발 멀어질 때마다, 다른 누군가를 한 발 더 끌어 올리는 거예요. 그 뒤에 있는 사람도, 그리고 또 그 뒤에 있는 사람도요."
(158~159쪽)

거대한 악의 지붕 아래에 웅크린 사람들이 이렇게 작고 거친 손을 이어 잡고 자신에게도 넉넉하지 않은 것을 나눠주는 모습은 슬픈가? 아름다운가? 둘 다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 또한 두 느낌을 모두 담았다. 눈물겹지만 폐허 사이로 비쳐드는 빛의 느낌은 따스하다.

오늘 예배 때 목사님이 읽어주신 말씀을 듣고 이 책의 이미지가 또 떠올랐다. 내가 그 주제를 엮을 통찰은 없으나 '아무 것도 없는 자' 라는 말씀이 마음에 특별히 다가온다. 이 책을 읽은 후라 특히 그런 것 같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10)

폐허 속에서 이어진 연대는 그래서 귀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큰 작품 하나가 또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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