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글쓰기 -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나민애 지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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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글쓰기'는 내가 시간이 있을 때 주로 하는 일이다. 별다른 재주나 취미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10여년 전부터는 읽은 책을 적어놓기 시작했고 증발을 막기 위해 온라인 공간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사적인 공간은 페북이고(친구공개), 공개된 공간은 알라딘 서재이다. 고맙게도 알라딘에선 계정만 있으면 바로 개인 서재가 만들어져서 독서기록을 축적할 수 있었다. 어느덧 1000편이 훌쩍 넘었다. 1년에 100편 정도 쓴 셈이다.

그렇게 써온 글들을 무엇이라 규정할까 궁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흔히 서평이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바, 내가 쓰는 독서기록은 엄격히 말하면 서평이 아니다. 사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전혀 감추지 않고 쓰기 때문이다. 구성을 따지면서 쓰지도 않고 퇴고도 전혀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 가는대로 펜 가는대로 쓰는 독서기록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무엇이겠는가? '독후감'에 가장 가까운 것 같다. 근데 그렇게만 말하기엔 추천 이유라든가 대상, 내용 분석 등 서평적인 내용도 들어가긴 한다. 한마디로 양다리를 걸친 글이라고 할까? 그래서 그 두 개념을 포괄한 '리뷰' 라는 용어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 이 책을 발견하고 골라들었다.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몹시 친절한 서평 가이드' 라는 부제 때문이었다. 이제 나도 좀 서평다운 서평을 써보면 어떨까 싶어서.ㅎㅎ

결론을 먼저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엔 굳이 '서평'을 쓰겠다고 나의 글을 뜯어고칠 필요는 없어보인다. 내가 잘 쓰고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문체나 글버릇도 성격이나 말버릇과 같아서 어지간해선 안 고쳐진다는 깨달음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서평만 가치있는 글인 건 아니기도 하고. 독후감이면 어떻고 짬뽕이면 어때. 독서 기록을 위한 글이라면 어찌 했든 독서기록을 했으면 된 것이니까. 단, 서평이벤트에 응모를 했다거나, (그럴 일은 없지만) 의뢰받은 서평이 있다면 그동안의 자유로움에서 벗어나 형식과 내용을 다듬어 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주 안 입더라도 정장 한 벌은 가지고 있어야 하듯이. 그 정장을 갖추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나갔다.

1부 [서평 체급 정하기]에서는 먼저 서평의 분량을 기준으로 단형, 중형, 장형 서평으로 나누었다. 단형서평은 100자평 같은 것들. 중형서평은 A4 1~2장, 장형서평은 3장 이상이라고 한다. 내가 주로 쓰는 분량은 중형서평에 해당하는 것 같고, 가끔 단편소설집을 읽고 수록작품을 한편씩 다 언급하거나 교육서적을 읽고 생각을 풀다보면 장형까지 분량이 넘어가기도 한다.

이어서 저자는 서평의 개념을 규정하는데 바로 '책을 평가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평가를 위한 분석과 판단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34쪽)
이를 위해서는 독서법도 따로 있다. 1단계 독서가 '감상의 독서'라면 2단계는 '비판의 독서' 3단계는 '학문의 독서' 라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서평이 가능한 셈이다. 그동안 내 독서기록이 독후감 쪽에 가까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2부 [서평러의 기초체력 키우기]에서는 위에 분류한 각 서평을 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안내한다. 내가 주로 쓰는 중형 서평을 이 장에선 '블로그 서평'이라고 명명했다. 제목 짓기, 서지사항 밝히기, 내용 요약, 인용과 핵심포착 등 저자의 경륜에 따른 팁들이 가득하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좀 위안이 되었던 것은 내가 요약에 있어서는 틀에 박히지 않은 유연한 요약에 좀 자신감이 있고(이건 절대 누구한테 배운게 아니다. 1000편을 쓰다보니 스스로 터득한 듯) 저자가 알려주신 인용의 팁도 이미 하고 있던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 얘기를 늘어놓는 것만 봐도 이미 서평에서 멀어지고 있다ㅋ) 이 부분은 저자가 블로그라는 온라인 공간을 감안해서 팁을 제시해 주신 부분이 많은데,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들은 그런 팁도 도움이 많이 되겠다.

장형 서평(아카데믹한 학술서평)이야말로 저자에게 배울 점이 많은 분야이다. 진짜로 공식적이고 정형화된 버전의 서평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전체 구성 나누기와 각 부분에 합당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이 조언들 중에 나에게 인상적인 문장들이 있었다.
"꼭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적 독해 사이에 위치하길 바란다." (136) 라는 지침이었다. 서평에서 제일 어려운 점이 바로 이 점이고, 서평을 서평이게 하는 점도 바로 이 점이라고 하셨다. 동의한다. 근데 이게 말하자면 고난이도의 줄타기이지 않은가? 감성 쪽에 치우치면 개인 독후감이 되어버리고 이성 쪽에 치우치면 재미가 없다. 서평이란 백퍼 남 읽으라고 쓰는 글인데 읽기를 거부당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개인적 감상을 지양하면서도 독자들이 관심있게 끝까지 읽게 하는 서평. 무척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같은 맥락에서 "자기 혼자만의 경험과 결부해서 쓰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142쪽), "일기나 사소설처럼 글을 시작하지 말라." (145쪽)는 조언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들과 나누려고 쓰는 블로그형 서평까지는 어느정도 용납이 되겠지만 진짜 찐 서평을 쓰고자 하는 경우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1,2부 뒤에는 부록으로 [서평 쓰기 실전 활용 꿀팁]이 6가지 들어있다. 그중 '좋은 점수를 받는 서평의 사례'에는 저자가 지도하신 대학생 서평의 모범사례도 들어있다.

이 책은 저자의 대학 강의를 지면으로 옮긴 성격이 강한데, 그만큼 대학생들이나 그보다 조금 앞단계인 고등학생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 같다. 나처럼 나이먹은 사람에게도 참고가 되었다. 나이 먹었어도 이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블로그나 서재를 개설하시고 당장 읽는 책부터 기록을 시작하시라고 강추하고 싶다. 이 책을 옆에 끼고 하시면 든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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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 낯설게 보는 인류사 천개의 지식 35
옥이샘 지음, 이정모 감수 / 천개의바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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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샘의 만화가 점점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감정툰, 진로툰에서 환경툰으로 영역을 확장하더니 이제는 인류사툰? 놀라운 확장력이다. 환경툰에 서평을 쓸 때 작가님이 참 많은 책을 읽으셨겠다고 했었는데 이 책은 ‘말해뭐해’이다. 우리가 A4 한 장의 자료를 만든다고 할 때 입에서 나오는대로 주워섬기는 게 아니라면 그 안에 들어간 노력은 그저 종이 한 장이 아닌 것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 들어간 사전작업은 그저 책 한 권이 아닌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노력이 가장 보람있는 직업이 바로 교사라고 생각한다. 뭐든 배우고 알면 다 써먹을 데가 있어요~ 작가님은 교사이기도 하시니 가장 보람있는 작업을 하셨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인류사를 제대로 서술하자고 들면 1000 페이지인들 넉넉하랴? 그런데 이 책은 고작 150여 쪽. 게다가 만화. 게다가 직접 서술이 아닌 상상과 실제를 오가는 구성. 에계계. 그럼 내용이 얼마나 되려고? 그런 걱정은 굳이 안해도 되겠다. 책은 많고 각자의 역할을 하는 법이니.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말랑한 개관’의 역할을 한다. 입문서로 가장 적당하다는 뜻이다. 4,5학년 정도에 가장 알맞아 보이고, 6학년도 유치하진 않다. 관심만 있다면 저학년도 읽기는 가능하겠다. 부모가 함께 읽거나 교사가 자료로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은 어떤 가정에서 출발한다. 바로 제목이 그것이다.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공룡은 어린이들이 매우 선호하는 소재다. 멸종된 동물이 왜 그리 어린이들에게 인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지인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나도 모르는 길~다란 공룡의 이름들을 줄줄 외우고 특징을 살려 그림까지 그려내곤 했었다. 이 책에 보니 데일 러셀이라는 고생물학자는 “만약 공룡이 멸종하지 않았다면, 인간처럼 지능이 뛰어난 공룡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설정은 바로 이 말을 상상으로 펼쳐낸 것이다. 어린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매우 적절한 아이디어이다. 게다가 옥이샘은 만화가이기도 하잖아. 그의 독특한 그림체는 이제 널리 알려진 바, 그가 그린 공룡은 어떨까? 역시나 특징이 잘 살아있으면서 웃기고 친근하다.

공룡 중에서 어떤 종류가 직립보행을 하고 손이 자유로워지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이들에게 ‘똑똑이 공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들이 곳곳에 퍼져나가는 데까지가 1장. 2장은 [농사와 가축, 변화를 일으키다]로 정착생활의 단계를 다룬다. 이로써 농사를 짓고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빈부차이와 계급이 생기고 감염병도 생겨났다. 이와 같이 이 책은 인류 발전의 각 단계에서 장단점을, 다르게 말하면 명암을 균형있게 설명한다.

3장은 [거대한 나라로 뭉치다], 4장은 [과학으로 세상을 보다], 5장은 [산업혁명, 놀라운 세상을 만들다]이다. 증기기관을 시작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빠르고 편리해진 생활이 가능해진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여기서도 역시 “세상은 크게 발전했지만, 대신 어떤 댓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제시한다. 뒤이어 나올 환경 문제의 시작을 짚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만큼, 그 결과를 책임 있게 다루는 법도 함께 배워야 한단다.” (101쪽)
이 문장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6장부터는 벌써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인공지능, 빛과 그림자를 가져오다]에서는 ‘빛과 그림자’라는 소제목에서 말해주듯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도 짚어주고 있다. 그중 특히 “인공지능이 오히려 주인이 될 수 있어”(114쪽) 라는 내용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는데, 독자들마다 각기 이런 부분이 있을 테고, 그게 다음 독서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제 현대까지 다 왔는데 아직도 두 개의 장이 남아있다. 7장은 [기후위기를 맞닥뜨리다]이다. 환경툰을 저술하신 작가님이니 이 내용을 한 개의 장으로 따로 다루신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여기에서도 눈에 꽂히는 문장들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똑똑이 공룡이 사는 사회가 돈과 성장이라는 약속 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야.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쓰는 일이 좋다고 믿는 사회 말이야. 이 믿음이 기후 위기를 키운 면도 있어.” (128쪽)
“중요한 건 모두가 함께 믿고 행동할 수 있는 약속을 만드는 거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약속을 모든 똑똑이 공룡이 다 같이 믿기 시작한다면, 다시 한번 세상을 바꿀 수 있어.” (129쪽)
이 약속과 믿음이 가능할까? 꼭 그래야만 하는데....

마지막 8장의 제목은 무엇일까? 이 책이 문학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서사가 있고 구성의 독창성이 있으니 마지막 장 소개는 덮어두는 것으로 스포를 방지하려고 한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 까마득한 옛날 인류의 시작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책은 공룡책이면서 역사책이고 과학책이면서 미래책입니다.”라는 이정모 관장님의 추천사가 아주 딱이다. 옥이샘의 다음 툰은 무엇일지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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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임금님 납시오
강혜숙 지음 / 초록귤(우리학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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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새로우면서도 어딘가 낯익은 느낌도 들어 찾아보니, 아! 몇년 전 재미있게 읽었던 <호랑이 생일날이렷다>의 작가님이구나. 그때는 호랑이, 지금은 도깨비로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뭔가 통하는 느낌이 있다. 창작그림책이지만 옛이야기의 소재를 천연덕스럽게 갖다 쓴 능청스러운 재미를 첫번째로 꼽겠다. 그림체가 다르지만 익살스럽다는 점도 공통점이고 색상도 올컬러가 아니면서 뭔가 강조되는 색상을 집중배치했다는 점이 같다. <호랑이...>에서는 특이하게도 형광분홍색을 사용하더니만 이 책의 주 색조는 주황과 파랑이다. (보색의 배치인가...?) 올컬러가 아니라도 충분히 생동감 있고 눈길을 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소개하며 책이 시작된다. 그건 바로 도깨비! 망태기 도깨비, 빗자루 도깨비, 솥뚜껑 도깨비 등 집안의 일곱 도깨비가 등장한다. 도깨비들은 사람을 놀래키고 싶어 아기를 업고 일하는 한 아이한테 다가갔는데 이게 웬일, 하나도 안 놀라는 거야. 심지어 이런 말까지.
"바빠 죽겠는데 도깨비 따위 뭐가 무서워!"

그 '따위'라는 말에 각기 절망하는 도깨비들이 펼친 화면 가득 들어있다. 그림과 더불어 글씨체로도 웃길 수 있는 작가의 재치가 부럽다. 그럼 뭐가 무섭냐는 질문에 아이는 '임금님'이라고 답하고, 도깨비들은 저마다 자기가 임금님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때, 앞으로의 서사를 재미나게 펼쳐갈 아이의 제안이 나온다.
"임금님이 되고 싶은 도깨비는 다음 보름달이 뜰 때까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가져오도록 해. 그럼 내가 도깨비 임금님을 뽑아 줄게."

순식간에 흥미진진해지는 이 전개를 보소! 과연 약속한 날 도깨비들은 어떤 보물을 가져왔을까? 이 대목이 바로 작가님이 이런저런 옛이야기에서 뽑아온 소재들이다. 저번 호랑이 이야기도 그러더니.... 다 말해버리면 김샐 것 같아서 두가지만 살짝 말한다면 빨간부채, 파란부채와 투명감투. 느낌이 오쥬?^^

아이는 이중 최고를 뽑기가 난감하여 없던 일로 하자고 했더니 도깨비들의 분노가 대단했다. 할 수 없이 "내가 가지고 가서 하나씩 써보고 어떤 보물이 으뜸인지 정해줄게." 하고는 일곱 도깨비들에게는 임시 모자를 하나씩 씌웠다. "진짜 임금님을 뽑을 때까지 너희 모두 도깨비 임금님이야!" 하면서.

자, 아이들과 함께 읽고 있다면 이 대목에서 딱 멈추면 좋겠다.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거다. 아이들이 만들어낸 뒷이야기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야기 창작력도 보여주겠지만 내면의 욕구도 보여주지 않을까? 그런 속셈까지 가지 않더라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재미나게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뒤로 계속 가볼까? 책의 아이는 보물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는지. 복수를 했을까? 부자가 되었을까? 높은 사람이 되었을까? 이 대목은 책의 백미이니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아 마지막으로, 도깨비들과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가 기억하는 바, 도깨비들은 신통력은 있지만 아주 허술하잖아. 여기까지만......^^;;;

두 권을 읽어봤을 뿐이지만 작가님은 재치가 남다르시다. 게다가 다양한 이야기를 모으는 수렴력에다 그걸 다시 펼치는 확산력까지 출중하셔. 덕분에 오랜만에 창작 옛이야기 그림책을 재미나게 읽어봤다. 가정 소장용으로 부모님들이 선택하셔도 좋겠고 위에 쓴 이유로 선생님들이 선택하셔도 좋을 것 같다. 도서관에는 기본으로 한 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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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구는 이웃들이 궁금하다 책이 좋아 3단계 24
이선주 지음, 국민지 그림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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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이선주 작가님의 책을 읽어봤다. 쓰신 작품은 많은데 나는 두 권만 읽어봤었다. 한권은 공저로 쓰신 단편집이고, 한 권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실종 사건>이라는 고학년 동화다. 몇 년 전이라 기억이 많이 지워졌긴 하지만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남아있다.

이 책도 나온지 3년이나 되었는데 이제야 눈에 띄어 읽어봤다. <태구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게 후속작들이 나와서 현재 4권까지 나와있다. 그 시리즈의 문을 여는 첫 책이다.

태구는 자신이 쿨하고 덤덤한 존재라는 것을 초장부터 독자들에게 각인시킨다. 프롤로그에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가장 먼저 나이(열두 살)와 사는 곳(복도식 아파트)을 밝힌다. 나머지는 이야기 전개에 별 상관이 없다는 투다. 이야기 주인공이 인생에 대해 다 아는듯이 우쭐대다가 마지막에 아닌 것을 깨닫는 이야기를 가장 싫어한다며 "나는 인생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고 미리 못을 박는다. 앞에 말한 저런 서사는 등장인물에 대한 모욕이나 다름없다며.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면서 "그래,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얘야." 라는 마음이 된다. 얘는 인생을 모르는 대신에 이웃들에 대한 사소한 정보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이렇게 덤덤함(밋밋함?)을 강조한 태구를 이후의 서사에서 바라볼작시면, 쿨함을 가장하여 꼬인 아이도 아니고 반항심과 공격성을 품은 아이도 아니다. 적당히 평범하면서 양심도 웬만큼 있고 따뜻한 시선도 있다. 다만 완전하진 않을 뿐. 세상에 완전한 아이가 어디 있겠나? 그러니 이 작품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꽤나 웃길 때도 있는데 그 상황이 썩 좋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웃프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해 보인다. 웃프다는 우리 일상에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 상황이냐. 그러니 더욱 현실적일 수밖에.

태구의 가족은 할머니와 아빠다. 세대별로 한명씩인 것은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태구 아기때 아빠랑 헤어졌기 (공식적으로는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태구가 알면서도 속는 척 한다는 것을 가족들은 모른다. 이처럼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꽤나 귀가 밝고 눈치도 빠르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15층, 층별 10세대인 복도식 아파트는 태구가 이웃들을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다. 그 이웃에는 시험기간에만 층간소음을 따지러 올라오는 아랫집 아주머니도 있고, 식당에서 일하면서도 최저시급 정책에는 찬성하기 껄쩍지근한 아주머니도 있다. 같은 층에 사는 맞벌이 신혼부부 중 남편이 실직하여 아내몰래 낮에 집에 드나든다는 것도 태구의 레이더에 걸린 상황이다. 가장 흠칫했던 건 끝집의 할아버지가 며칠째 보이지 않은 건데, 태구가 경찰에까지 신고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 취급을 받았다. 문앞에 가면 된장찌개 썩은 냄새가 난다고 써있어서 설마 했는데 고독사가 맞았던 거였어....ㅠ 그런데 의외인 점은 이 이야기가 그 사건을 그리 '참혹한 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찌보면 '그럴 때가 됐지 뭐...' 라든가 '언젠간 겪을 일' 이런 수준으로 다루어진다. 그렇다. 어쩌면 그런 시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며 살고 있는지도....? 아닌가, 우린 슬픔의 감각을 더 키워야 하나. 어느 쪽이 맞는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이웃 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태구의 관찰 표현도 재미있고 정곡을 찌른다. 아빠의 늘 실패하는 연애사까지도 어느정도 짐작하고 있는 태구. 한화 지역에서 태어나 살며 만날 지는 야구를 응원해야 하는 운명에 절망하고 한숨 쉬는 아빠를 묘사한 부분을 읽으면 태구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말 많고 걱정 많은 할머니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웃프다'는 표현을 썼는데 가장 웃픈 사건은 그 가족이 처음 함께 떠난 여름휴가.... 에휴 그래 집이 최고지. 휴가가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나도 생각한다.ㅎㅎ

동네 친구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동생들이지만. 옆옆집 사는 예은이는 초반부터 나오고, 끝날 무렵에 해모가 나온다. 그런데 이 해모라는 녀석, 태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네??? 그렇다. 나는 관찰하기만 하는 게 아니야. 동시에 관찰 당하기도 하는 거지.ㅋㅋ 셋은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것 같다. 이쯤에서 시리즈의 첫 권인 이 책은 마무리된다. 자연스럽게 다음 권으로 손이 가는 구성이다.

막 엄청 흥미롭고 입맛이 짭짭 다셔지게 재미난 것도 아니지만 나는 다음 책을 조만간 읽을 것 같다. 태구라는 아주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엄청 특이하지도 않은 아이가 궁금해. 그 아이가 계속 지켜볼 이웃들과, 또 그 안에서 성장할 태구의 다음이 궁금해. 아마도 난 응원할 거야. 새로운 에피소드에 웃거나 한숨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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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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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가이자 교사이신 분이 이 책을 짧게 언급하며 포스팅하신 걸 봤다. 그때 난 마침 도서관에 있었고 운좋게도 책이 딱 있었다. 당장 대출해와서 읽었다. 요즘 독서력이 떨어진 나를 흔들어주는 책이었다. 가독성이 엄청 좋아서 하룻밤 사이에 읽었다.

불펜의 시간이라.... 나도 오래전 한때 야구를 무척 좋아했던 추억이 있지만 경기장 응원을 가본 적이 없어서 불펜의 위치나 생김새는 잘 모른다. 물론 눈에 훤히 보이는 곳에 있지 않겠지.... 대기하며 몸을 푸는 공간으로 알고 있다. 기약없는 공간, 함성과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나 있는 공간. 어떤 인생에게든 내리막길이 있다. 오르고 싶었던 곳에 끝내 오르지 못하는 인생도 있다. 불펜의 시간이란 그런 이들이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아닐까. 나도 예외는 아니다.

세 젊은이가 번갈아 중심인물로 나온다. 새파란 젊은이들은 아니고 세상 물을 10년쯤 먹은 30대 정도인 것 같다. 공통점은 모두 야구와 관련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가장 먼저 나오는 준삼은 중학교 때 감독의 눈에 띄어 야구부 생활을 했다. 거기 mvp 혁오가 있었다. 혁오의 활약은 눈부셨고 투구폼은 완벽하고 유려해서 아름다웠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차이를 인식한 준삼은 졸업과 동시에 야구를 그만뒀다. 공부하고 대학 졸업해 지금은 증권회사 말단으로 있다.

이어서 나오는 혁오. 이미 준삼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알려준 바 있다. 하지만 프로에 입단한 혁오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활약은 커녕 믿을 수 없는 슬럼프를 보여줬다. 극복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고 지금은 중간 계투 요원으로 길어야 2이닝 정도 던지는 미미한 존재감으로 살아남아 있다.

마지막 기현. 여자다. 초등학교 때 오빠 따라 들어간 야구부에서 남자들을 뛰어넘는 기량을 보여주며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진학을 앞두고 여자선수들을 위한 팀이 더이상 없다는 것을 알고 울면서 야구를 그만둔다. 지금은 스포츠신문사의 기자가 되었다.

세 명의 서사가 유기적으로 얽히면서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내 마음을 쓰이게 한 사람은 혁오였다. 그의 트라우마가 죄책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무딘 사람에게는 그냥 지나가버릴 사건이었고, 더한 짓을 하고도 뻔뻔하게 웃으며 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 생생하게 벼려진 양심이 오히려 판타지였다. 준 성자를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현실에 이런 사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이 사람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이 사실이니 뭐라 말할 수가 없겠다.

배구선수 출신이었던 혁오의 엄마는 패배한 사람의 눈을 오래 보지 말라고 아들에게 늘 충고했다.
"경기에서 이기면 기뻐하되 우월감을 느끼거나 상대를 얕잡아보진 말라고, 노력해서 얻은 승리라 해도 뽐내지는 말라고 했다." (37쪽)
혁오 또한 엄마의 당부를 늘 기억했지만 결정적 순간에 참지 못하고 상대방을 잔인하게(?) 이겼다. 눈빛으로 쐐기까지 박았다. 상대방이 엄청 못나게 굴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대응이었다. 사이다라고 박수를 받을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 사건이 이어졌고 혁오의 죄책감은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혁오의 죄책감과 자기형벌은 요즘 이슈가 된 고교야구 조롱응원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승리에도 신사적이어야 하고 사려깊어야 한다'는 원칙을 딱 한번 어긴 댓가로 스타플레이어에서 멀어진 혁오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학생 선수들만 잘못이라 할 수는 없다. 혁오의 엄마가 가르친 저 원칙들을 유난하다 느끼는 스포츠판 전체가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페북에서 초등학교에서 티볼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글을 읽었다.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았다. 티볼에서는 세레머니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그렇게 패자를 배려하고 신사적인 승부를 가르치는 거구나. 그게 스포츠계 전체에 확대되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불상사가 있었겠나? 나는 지역의 문제로 말하고 싶지 않고, 스포츠맨십의 문제로만 말해도 분명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리고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에 '포커 페이스'를 지도한 적이 있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요구한 포커 페이스 상황은 세 가지였다.
1. 짝꿍이나 조원 정할 때
2. 시험지(결과) 받았을 때
3. 게임이나 경기 끝났을 때
물론 3번은 칼같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날뛰지는 못하게 했고, 1,2번은 워낙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을 혼낼 때도 있었는데 그럴때 약간의 불만을 감지한 적도 있다.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다시 한다면 더 강력하게 할 거다. 저항을 느껴 멈칫거리기도 했던 마음을 후회한다. 한편으론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무례가 이런다고 사라질까 싶은 회의적인 마음도 든다.ㅠㅠ

아무튼, 이 면에서 뻔뻔하지 못했던 혁오는 길고 긴 '불펜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의 내면이 허락하는 자신만의 리그를 만들어 선수생활을 해나간다. 나머지 두 인물도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부는 회사 속에서, 거짓 기사와 부당한 압력이 판치는 신문사에서 그들만의 '불펜의 시간'을 살아간다. 표지를 봤을 때 야구소설이었던 이 작품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와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보여주....기는 커녕,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 하는 고민을 독자가 함께 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것이 대다수 인간들의 삶이다. 지금 정점에서 승리와 성취에 취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불펜의 시간은 올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의 무게가 나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혁오의 양심수준만 빼고는 모든게 현실적이었어....^^;;;; 그 비현실적 양심 수준이 우리 세상에도 좀 섞여들어오면 좋겠다. 문학이 그정도는 지향해도 괜찮잖아? 그래서 요즘같은 슬픈 뉴스와 아우성은 좀 적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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