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의 숲 큰숲동화 1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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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 유승희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었는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세상에 참 안타까운 일이 많고 이 책의 세아 모녀 관계도 그러하지만 이토록 무섭고 기괴하게 그려내다니. 잘못된 부모노릇의 비극을 극대화하여 나타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른다. 내가 모르는 곳에 이 책보다 더 큰 비극이 있는지도.ㅠ

유승희 님의 동화에선 아이가 화자나 주인공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이 책에서도 화자는 교사지망생(임용고시 준비생) 민희 씨. 초등임용생이면 후배인지라....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잇따른 임용실패로 엄마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민희 씨는 구인광고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담양 무릉리라는 마을에서 한달 입주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가 후하다는 단서와 함께.

홀린 듯 그곳을 찾아간 민희 씨는 심상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지만 "일단 가보자" 식의 마음으로 숲 속의 저택에 도착하고, 세아 모녀를 만나고 세아 엄마와 '계약'을 한다. '세아가 검정고시에 붙을 때까지 지도해준다'는 계약. 세아는 아주 똑똑했고, 검정고시란 그닥 어려운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은 아주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일은 저택에 걸린 '에셔의 상대성' 그림처럼 끝도 시작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출신인 작가가 배경으로 넣은 이 그림은 의미심장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가 많이 보던 그 계단 그림 말이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꼭대기가 아니어서 끝없이 반복되던 그 계단.....

그렇다. 민희 씨는 계약을 함과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멈춰버린 세아와 세아 엄마의 세계에. 여전히 딴 곳을 보고 딴 것을 갈망하는 그들의 세계에. 알면서도 모른척 돌아가는 그들의 세계에.

세아 엄마는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세아의 학업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올 수 없는 세아 아빠를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준비한다. 세아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늉'만을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따뜻한 엄마와 때로는 토닥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 시점'에 멈춘 이 상황에도 그들은 그러하다.

'그 시점'이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책 속에서도 명확히 표현해놓지는 않았다. 물론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ㅠㅠ 이 부분은 작년 화제 드라마였던 '스카이 캐슬' 보다 괴기스러웠다. 동화라는 장르로서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민희 씨의 계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고 에셔의 계단처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민희 씨는 몸부림친다.

이 세계의 균열은 연락 안되는 딸을 찾아 마을까지 찾아온 민희 씨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늘 투닥거리던 모녀. 구박에 가까운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은 후, 먹고 살기도 힘들어 어린 민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겼던 엄마. 지금도 무뚝뚝한 엄마. 하지만 딸의 실종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의 모습은 세아의 마음을 흔든다. 세아의 결단은 이 '세계'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세계는 무너져 덮여버린다. 그 와중에 오간 말들.
"엄마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다 자라면 엄마에게 고마워할걸.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다 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고 싶다고!"
"널 위해 뭐든 다 해 줬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거야.... 안녕..."

'세계'를 건너와 엄마에게 달려가는 민희 씨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대비되는 세아 모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할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우리 안에 그 모습이 없다고 단언할 사람 있을까?
자식 키우는 것의 엄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식을 수단으로 삼는,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잘못된 부모됨의 비극은 어디까지일까?

어른이 봐야할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아무쪼록 아이들이 민희 씨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느끼길, 그래서 불현듯 깨달은 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한번 품에 안겨 보길 바란다. 자신이 세아라고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보기를.... 그 '세계'에 갇혀 버리기 전에. 부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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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신나는 책읽기 53
조지영 지음, 이희은 그림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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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입에 짝짝 붙는 찰진 동화를 만났다. 책은 어제도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 한동안 슬럼프처럼 스파크가 안 일어날 때가 있다. 오늘 이 책을 읽음으로 모처럼 작고 예쁜 불꽃 하나가 튀었다. 좋은 징조다.ㅎㅎ

세 편의 연작 단편이 담긴 동화집이다. 주인공들은 금빛초등학교 1학년 차돌이네반 아이들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학교에 '똥 사건'이 일어났다. 1학년 화장실 바닥에 탐스런 똥무더기. 법석 떨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이 이 호재를 놓칠소냐. 소리지르고 몰려다니고 아이구 생각만 해도 골아프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점점 미궁에 빠져가는 사건 때문에 교감 선생님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데... 결국 똥무더기의 주인공은 밝혀질 것인가?
똥이야기 중에 가장 강력한 송언 선생님의 <마법사 똥맨>과 견주어도 될 만큼 강력한 똥펀치를 날린다.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반전도 유쾌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선하네.ㅎㅎ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번째 이야기는 참 잘 먹는 송이가 주인공이다. 송이네 엄마 아빠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보고 있자니 공감도 가면서 좀 찔린다.
"엄마는 많이 바라지도 않아. 우리 송이가 그냥 다른 친구들 하는 만큼만 하면 좋겠어. 너무 잘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못하지는 말고. 그래야 친구들이 싫어하지 않지."
안전빵, 무난한 인생을 추구하는 나와 '튀지 말고 중간만 가라'하는 이 부모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실 송이 정도면 무난한 건데, 유난히 좋은 식성을 걱정한 부모는 "급식은 꼭 한번만 먹어. 대신 집에 와서 간식 마음껏 먹기."라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되기 힘든 법. 송이는 어느새 친구들 앞에서 '잘 먹는 아이'가 되어있고 공개수업날 엄마 아빠는 신나고 행복한 송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평범하기는 커녕 튀는 딸의 모습을.
그렇다고 평범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강요된 평범, 조장된 튐이 문제인 것이지. 본인의 기질대로 행복하게 살도록 격려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산 넘고 물 건너]
보통 단편집의 제목은 단편들 중에서 대표작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할 만하다. '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이라는 표제와 가장 연관성이 많은 작품이다. 그동안 조연으로 나오던 차돌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난 개인적으로 차돌이란 이름의 느낌이 참 좋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교사로서 뜨끔한다. 작가도 초등학교 교사시라고 한다. 같이 느끼는 미안함일 것이다. 현실적인 안전의 문제와 아이들의 욕구 사이의 괴리.

차돌이는 엄마 출근시간 때문에 일찍 등교하게 됐다. 그만큼 놀 줄 알고 신이 났는데 웬걸, '학교보안관' 아저씨에게 잡혀 도서실로 안내되었다. (모든 학교가 비슷하다. 정식 등교시간 이전에는 도서실에서 '아침돌봄'이 진행된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생겨난 것) 차돌이는 왜 학교에서 맘껏 뛰놀 수 없는지 그것이 의아하다. 쉬는 시간에 찔끔 노는 것 정도로는 절대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차돌이는 지각이 잦은 유리의 비밀을 알아냈다. 학교 옆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그러나 그것도 학교와 집에 알려져 좌절... 그러던 어느날 등교길에 만난 삼총사는 즉흥적으로 산을 향하고, 그 아이들을 따라간 보안관, 교감, 담임선생님은....

"금빛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대."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동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의 문제는 물론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시고 부모님들이 "맞아! 학교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야지!"라고 하시고 방과 후 시간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신다면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어릴 때 어떻게 놀았는지를 기억해본다. 학교 끝나면 누구네 집에선가 모여서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는 책가방을 팽개쳐둔 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았었지. 동네 뒷산으로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 손 붙잡아 주며 함께 가서 놀다 왔었지. '놀이'의 책임은 어른들 모두가, 가장 크게는 부모가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하나씩만 줄여도 지금처럼 놀이터에 아이들 씨가 마르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나는 이 동화가 말해주는 아이들의 마음만은 늘 기억하려고 한다.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 학교라는 짜여진 시간, 공간, 커리큘럼 안에서도 최대한 아이들과 콧바람을 쐬고 뛰어놀기를 추구하려 한다. 운신의 폭이 좁은 나는 아마 파격적이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더 놀려면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뭐가 그리 할게 많은지 책읽어주기가 뜸했던 요즘, 이 책으로 다시 문을 열어야겠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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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너랑 우리랑 - 건강하고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관계의 지혜
박광철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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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단 저자들의 이름부터 반가웠다. 지금은 SNS가 대세지만 얼마전까진 인터넷 사이트에서 많은 소통이 있었다. 초등교사라면 누구나 아는 '인디스쿨'이 있다. 막 육아에서 벗어나 어딘가 새로운 것을 보고 뭔가 실력을 쌓을 필요를 느끼던 내게 인디스쿨은 대단한 곳이었다. 오래 고민하고 만든 자료들을 막 댓가없이 퍼주고, 주말이면 수시로 '번개연수'들이 열리고 늦은 밤까지 눈이 반짝이는 글과 댓글들이 올라왔다.

저자들은 그당시 인디스쿨의 샛별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지만 그당시엔 연예인보다 더 멋진 선구자들이었다. 그들보다 고경력인 나도 그땐 30대였는데... 방학때 열리는 숙박연수에 수줍게 참여했을 때, 그때 날 반갑게 맞아준 샘(저자중 한분)은 노랑머리의 청년이었지.ㅎㅎ 그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고, 요즘 젊은샘들 틈에는 감히 못끼는 나는 그때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소환하며 이 책을 읽는다. 이제 아이돌은 아닌 그샘들은 지금도 그때의 열정을 갖고 있을까. 열정은 깊이 품고 더 원숙해진 샘들의 목소리가 내내 들리는 듯했다.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적용과 실천만이 무언가를 남긴다. 읽으며 실천하리라 마음먹은 것들을 중심으로 적어본다.

[1장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
교실환경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안정된 환경을 위해서 청결하고 정돈된 교실을 처음부터 만들고 학생들이 그 환경을 유지하게 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이건 진짜 안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될거 같다.(몇명 떠오름ㅎㅎ) 나는 그냥 중간은 가는데,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능력만 된다면 집이든 교실이든 깨끗한 곳에서 더 행복하다. 난 교실보다 집을 못치우고 사는데, 집이 잘 치워져 있다면 행복할거 같다. 교실도 마찬가지 아닐까. 2월 준비기간이 엄청 빡세긴 하지만 더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들에게도 교실 공간을 아끼고 정리하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다. 잔소리만으로는 안되고 의미있는 역할분담 등 학급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노동의 가치와 책임감을 가르쳐야 한다.(노동이라니 거창해 보이는데 교사가 관리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는 청소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2장 관계의 시작]
따말카드 활동이 맘에 든다. 이런저런 카드들을 구입만 하고 사용 안한 것도 많은데 이 활동이 정말 맘에 든다. 근데 카드 문구를 내맘에 들게 바꿀 수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다. 문구는 그때그때 바꿀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있다면 좋겠다. 파일로 되어있어 입력해서 출력할 수 있다거나.... 안될 말이겠지?^^;;;;

[3장 나와 너를 이해하고 협력하기]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협력 운동회가 대박이다. 작은 학교에서 하신 것이지만... 큰 학교에서도 학년 단위 정도로 가능하지 않을까. 가상의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아이들은 대단하니까 운영만 한다면 반응은 폭발적일 것 같다. 스토리와 프로그램 창작 등 기획과 실행의 어려움이 문제다.^^;;; 또, 각장마다 관련놀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장에선 미로탈출 놀이가 맘에 든다.

[4장 소통과 문제 해결]
다툼을 해결하는 대화의 방법이 나와있다. 많이 사용하는 '행감바' '인사약'과 유사하다. 일단 '쿨하게 봐주기'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웬만하면 봐줄줄도 좀 알아야 한다. 매사에 사과 받겠다고 달려들면 참 피곤해진다. 그러나 힘의 우위에 밀려 참는 경우도 있으니 불편함을 표현하는 절차는 꼭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잘지내요' '미상표'로 작명이 되어있다. 작명이야 편한 걸로 하면 된다. 여기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교사가 이끌어가는 해결의 방법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나아가서 함께하는 고민해결 절차까지 나와있다. 진지하게 진행된다면 아이들이 많이 성장할 것 같다.

[관계의 매듭짓기]
학급의 다양한 이벤트 총집합이다. 이제 중견교사가 된 저자들의 내공 + 여전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장이라 하겠다.

위에 쓴 것들과 같이 '이건 기억했다가 해봐야지' 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 이건 난 못해' 싶은 것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기질 차이가 있듯이 어른(교사)도 각자가 가진 기질이 있고 그에 따라서 쉽게 되는 일도, 여간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난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보다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스킨십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친밀한 관계'(친구간 정, 사제간 정)에 나는 저자들만큼 관심이 없다. 적대, 비난, 시기가 없는 관계 정도면 족하다. 원숭이처럼 엉키고 부비는 사이보다 호랑이처럼 독립적인 관계가 좋다. 존중만 있다면.
또 나의 성향은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는 걸 싫어한다. 같이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되 그 시간이 지나면 미련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이런 성격이라 나는 수업시간 외에 아이들과 더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저자들이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신 그 숱한 추억의 시간들, 학급야영, 방학이나 주말에 하는 이벤트, 방과후 특별시간(학급회식) 등등은 내겐 상상만해도 고통스러운 부담이다. 그런 부분들은 내겐 전혀 적용 불가능했다. 이 책을 읽으며 오직 한가지 그점이 아쉬웠다. 내가 부족한 교사라서 그렇지 뭐.^^ 하지만 기질 차이라고 위안하며 나도 내 기질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겠다. 특별 이벤트가 아니어도 일상 중에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이 책에는 많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긴 여정의 관계 이야기를 담았기에 연중 참고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반부터의 일관성이 중요하므로 학급을 세우는 시기에 탐독하면 좋을 것 같다. 아직도 나의 학급 시스템은 무엇인가 딱부러지게 말하기가 어렵다. 내년 준비시기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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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 월드
정연철 지음, 윤지회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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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 월드 / 정연철 / 문학동네>

학급 독서지도에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4권을 한데 묶어 조를 짜서 돌려읽고 말하기(토론)->글쓰기 하는 방법을 십수년째 고수하고 있다. 더 좋은 방법이 많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다양한 장르의 책 고루 읽기, 교육과정과 관련된 책 읽으며 수업에 끌어들이기 라는 장점을 포기하기가 어렵고, 최근 몇년간은 동학년이 함께 하면서 아이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공유하고 책 선정도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하는 중에, 방식은 그대로지만 더 깊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아이들이 책을 읽고 조잘대며 어느덧 쑥 자라 있는 모습이 때로는 신기하다. 물론 날마다 지지고 볶고 죽은 쑤지만 말이다.

4권의 세트는 문학, 비문학을 적절히 섞고 가능하면 교육과정과도 연계한다. 요즘처럼 세계 여러나라 단원을 배울 때는 <세계와 만나는 그림책>을 넣고 가족 단원을 배울 때는 <이웃집에는 어떤 가족이 살까>를 넣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올해 4차의 돌려읽기를 마쳤고 이제 두번을 남겨놓고 있다. 5차 돌려읽기의 책 구성은 3권 확정,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것저것 재보는 중인데 '이번엔 시집을 넣을까'에 생각이 미쳤다. 그동안 시집은 도서실에서 가져다가 골라 읽게 했었고 한 권의 시집을 일제히 읽게 한 적은 없었다. 좋은 시집이 워낙 많은데 꼭 한권을 정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했고 읽히고 싶은 동화책이 많아서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시집을 아이들이 스스로 끝까지 읽을까 자신이 없어서였다.(앞에 몇 편만 읽고 다 읽었다고 하지 않을까^^)

시집을 넣기로 마음을 정하고서는 가장 먼저 이 책을 찾아 살펴봤다.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 좋은 시집 몇권과 함께 옆반 선배님께 보여드렸는데 선배님도 전혀 망설임없이 이 책을 고르셨다. 당첨.

동시를 분류하는 기준은 많겠는데 나는 단원에 따라 두 종류로 분류해서 읽히곤 한다. 언어유희에 중점을 둔 시와 공감에 중점을 둔 시. 전자는 주로 말놀이 단원에서 함께 읽고 후자는 문학(감상) 단원에서 함께 읽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후자에 더 비중을 둔다. 이 책은 표면상으로는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후자의 요소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높이 사는 가장 큰 이유다. 한 편을 골라 소개한다.

속담동시4_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기는 놈 위에
뛰는 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나는 놈이 최고라고?

앙금앙금 달팽이야
너 개구리보다 불행해?
폴짝폴짝 개구리야
너 똥파리보다 불행해?
윙윙 똥파리야
너 개구리보다 행복해?
개구리야
너 달팽이보다 행복해?

왜 말 못해?

이건 속담동시 중 한 편이고 이 외에도 빈칸넣기 동시, 끝말잇기 동시, 수수께끼 동시, n행 동시, 동물 랩 동시 등이 각각 몇 편씩 들어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같은 언어를 쓰지만 언어를 다루는 솜씨는 백만 등급이 있구나 생각한다. 이정도면 천재 등급. 아이들이 푹 빠질 거 같다. '앞장만 읽다 마는 거 아냐?' 이런 걱정은 붙들어매도 되겠다. 아이들이 가장 공감한 시를 골라 필사도 해보고, 맘에 드는 종류로 자작시도 써보고, 쓴 시를 함께 돌려 읽고 이야기 나누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속담 동시 정도는 고학년이 써보면 좋겠고, 저학년도 n행 동시 정도는 도전해볼 만하다.

시도 천재급이지만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건 윤지회 님의 그림이다. 시의 내용을 잘 살리면서도 지나치게 설명하거나 앞서가지 않는 그림. 간결하지만 뛰어난 색감에 많은 이야기가 담긴 그림. 고급스러운 그림책으로 보이게 만드는 수준높은 그림. 투병중이시고 투병생활에 대한 책이 최근에 나왔다고 들었다. 읽어보려고 한다. 응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책 제목도 참 잘 지으신 것 같다. 꽈배기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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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 - 제11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 웅진책마을 105
김정신 지음, 조원희 그림 / 웅진주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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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호랑이가 왔다 / 김정신 / 웅진주니어>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작들을 대부분 좋게 읽었는데 이 책은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아주 싫은 건 아니지만 호감도 가지 않는 느낌. 그 느낌이 뭘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일종의 불편함인 것 같다. 나는 왜 불편함을 느꼈을까.

이야기꾼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학교에 호랑이가 찾아오는 이 이야기도 그렇다. 말도 안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이런 시작이 나는 좋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과 상황들은 작가의 주제의식이 선명히 보이는 것 같으나, 아니 그래서인지 왠지 몰입되지 않았다. 활짝 열려있는 결말 앞에서도 시원한 느낌은 없었다.

내 불편함의 근원을 정확히 지목할 순 없지만 짚이는 부분이 두 군데 있다. 첫째는 이야기에 등장한 어른들의 모습이다. '여자아이 99명을 삼키고 마지막 1명을 찾는' 호랑이가 학교에 찾아왔는데 어른답게 대응하는 어른이 아무도 없다. 교장선생님은 간교하고 비열하며, 담임선생님은 무력하고 비겁하다.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밖에 모르고 자기자식만 보호해 준다면 상대의 인격과 도덕성 등에는 상관없이 짝짜꿍 손뼉을 치며 칭송한다. 호랑이만이 통찰력을 가지고 이 모든 요지경을 굽어본다.

그리고 호랑이가 선택한 아이는 '분홍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준희였다. 긴 머리에 분홍 옷과 분홍 가방, 분홍 장화를 신은 조용한 준희. 누가 봐도 여자아이인 준희는 실은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라면 호랑이에게 먹힐 자격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반발하는 나머지 아이들을 두고 준희를 은근슬쩍 희생양으로 밀어 내몬다. 이 부분이 특히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 그렇지만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런 모습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지.ㅠ

두번째 불편함은 내가 의식과 감수성이 부족한 사람인가 하는 자책감 때문인 것 같다. 양성평등에 많은 장애물이 있고 아직도 가는 길이 멀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잘 모르겠다. 지나간 세대와 우리 세대에서는 물론 심했지만 지금 아이들 세대는 많이 달라졌고 딱히 어떤 성이 크게 차별받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나또한 어떤 성을 우선한 적이 없고 말이다. 다만 성역할, 성특성 고정관념은 아직도 남아있다. 이 고정관념 자체가 불평등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젊은 부모들의 양육방식은 이것까지도 많이 극복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내겐 여러가지 사회 현안 중에서 양성평등의 문제는 비중이 약한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불편함이 비롯된 것 같다. '내가 문제인 건가' 라는 불편함 말이다. 남들이 이토록 문제라고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잘 못 느끼는 나에 대한 불안감?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건 여자가 하는 일이잖아요." "이런 건 남자가 해야죠."라는 말을 하는 아이를 요즘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아니 이게 뭐지?' 했던 적은 최근에 있었는데, 그게 바로 색깔 고정 관념, 바로 분홍색에 대한 기피 현상이었다. 색상지를 나눠줄 때 게시판에 고루 붙이려고 여러 색을 배분하여 골라가게 하면 분홍색만 최후에 남는다. 남자아이들은 "남자가 왜 분홍색을?" 여자아이들도 "내가 여자라고 분홍을 고를소냐" 라는 태도를 보인다. 성고정관념이 가장 많이 투사된 것이 바로 색깔, 그중에서도 분홍색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도 이것을 소재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준희가 우리반이라면 난 예뻐했을텐데. 분홍색 도화지로 멋진 작품을 만들고 난 그걸 아이들 앞에서 칭찬해줬을 텐데. 이 분홍 기피현상이 해소된 걸 성고정관념 탈피의 지표로 보아도 되려나.

'호랑이'라는 존재와 '호랑이에게 먹힌다'는 것, 그리고 '호랑이 아이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작품의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리고 활짝 열어놓은 이 책의 결말 때문에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뒷이야기를 써보는 것도 가능하겠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그 안에서 아이들의 어떤 생각을 엿볼 수 있을지, 그건 또 나의 고정관념을 얼마나 뒤집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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