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몸이 되는 날 - 몰랐던 너와 내가 만나는 연극 시간 쓰담문고 4
구민정 지음 / 서해문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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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정 선생님의 공저는 읽은 적이 있는데 단독 저서는 처음 읽어봤다. 교육연극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계신 분이라고 알고 있다. 나는 연극에 관심의 끈이 살짝 있지만 많이 적용하는 교사라고 하긴 어렵고 아예 안하는 교사도 아니다. 교사로서 나의 관심사 레벨을 A,B,C,D로 나눈다면 연극은 B정도? 그런데 방학 중 찾은 동네도서관에서 신간코너에 이 책이 진열되어 있길래 한번 빌려와 봤다. 워낙 이쪽에 유명하신 분이라 접근방법이 어떤지 좀 궁금했다.

 

읽어보니 굉장히 쉽게 쓰셨다. 대상독자는 교사가 아니고 청소년이다. 다정하고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예의있고 존중하는 태도로 쓰셨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청소년도 아니고 청소년을 가르치지도 않지만 시사점을 얻을 것들이 있었다. 그것보다도 아예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는 말이 맞겠다.

 

연극은 매우 오래된 표현방식이다. 저자는 서양연극의 뿌리를 고대 그리스인들의 축제에서 공연되었던 합창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관객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지휘자, 코러스, 배우가 어우러져 표현하는 공연을 상상해보면 그것은 상당히 활발한 대화, 심지어 회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동체의 문제를 연극으로 이야기했다고 보면 쉬울 것 같아요.

그들의 희로애락을 그들 스스로 보고 듣도록 이끄는 통로가 연극이었던 거예요.” (42)

우리나라의 판소리나 마당극 같은 것을 떠올려 봐도 적절한 설명인 것 같다. 그런데 이것들은 우리가 미래, 미래 하면서 지향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어 말하자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저자도 이 점을 염두에 두셨는지 에필로그에 이렇게 쓰셨다.

빅데이터로 정답을 추출하는 인공지능 시대에 이 책은 뒷걸음치듯 모호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이 있다면 그건 말에 체온을 담아 모호하게 소통하는 일일 겁니다.”(176)

 

모호함이 능력이라니 그건 또 무슨 모호한 말인가? 저자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인간은 모호함이라는 미궁 속에서 상상이라는 실을 잡고 모험하는 테세우스일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속도전을 하는 시대에는 맞지 않는 양식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극의 가치를 붙들어야 할까?

 

그 해답이 이 책에 나와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에도 나는 이 가성비 떨어지는연극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중요성을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연극이 소통의 방식이며 공감의 매개이자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는 통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교사용이 아닌데, 나는 읽으면서 수업의 방향성 하나를 붙들게 되었다. 수업에 연극을 도입할 때, 소통과 공감, 생각을 지향하며 운영하자. 물론 기본기라든가 등등 지향점에 다다르기 위한 준비과정도 필요하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읽다가 , 내가 했던 활동 중에도 괜찮은 게 있었네~’ 하는 것도 있긴 했는데, 지향 없이 했던 활동은 뒷걸음치다 쥐잡은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이제 한걸음, 아니 반걸음이라도 더 나아간 시각으로 보면서 활동해보고 싶다.

 

아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들을 북돋워 좀더 행복하게 살도록 이끌어주는 노력은 이렇게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저자께서는 연극으로 그것을 하셨고, 다른 관심사가 있는 교사들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서 하시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중 연극이 매우 효과적이고 가능성이 무궁한 분야이기에 이 책을 보면 도전을 좀 받게 된다는 평을 하고 싶다. 그러나 교사들이 절망하면 백가지 방책이 다 무효하며 생명력을 잃게 된다. 교사들이 희망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길 빌며 리뷰를 마친다. (요즘 무슨 글을 써도 기승전이렇게 되니 슬프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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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 히어로즈 1.5 사수단 1 - 지키려는 자와 파괴하려는 자 북멘토 가치동화 52
전건우 지음, 센개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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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게시판에서 이 책을 신청했다. 인기있는 책들이 속속 마감되고 있었는데 나는 이 책을 골랐다. 일단 1.5 사수단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 것 같았고, 그걸 아이들에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문학으로 접근하는 것은 내가 매우 선호하는 방식이고, 작가가 호러 미스테리 장르문학에서 탁월하다고 들었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로 환경문제를 풀어갔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고 엔솔로지 동화집에서 한번 만나본 정도지만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은 한 권으로도 완결성이 있었지만 번호가 붙어있는 것을 보니 계속 나올 모양이다. 앞으로 나올 책들에서 다양하게 조명하며 디테일한 환경문제도 다루지 않을까 짐작하지만 일단 1권에서는 '대전제'만 다룬다는 느낌이다. 그 대전제란 이런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으며 1.5도 상승을 막지 못하면 엄청난 대재앙이 도미노처럼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당장의 안위를 추구하는 악한 세력은 이것을 부정하며 대중을 호도한다. 학자들까지 끌어들여 '기후위기론이 과장되었고 자연재해는 그야말로 자연발생이며 지구의 항상성은 유지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에 속아 마음을 놓고 현재의 소비패턴을 계속 유지하다간 다같이 망할 것이다.]

나도 기후위기책 두세권 읽고 시간이 얼마 없구나 큰일이다 생각하며 위기의식이 높아졌는데, 반대되는내용의 책들도 많이 나온 것 같다. (그쪽 책들은 읽어보진 못했다) 아는 것이 적어서 판단을 못하겠다. 작가는 철저히 전자의 입장에 서서 후자를 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반영하여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 작품을 썼다.

제목을 보고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전자의 입장에서 지구를 구하려는 사람들은 1.5 사수단이다. 이들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없애려고 하는 이들은 '검은 지구단'이다. 스릴러 전문 작가답게 이 두 세력의 싸움이 아주 긴장감있게 펼쳐진다. 중심에 선 인물은 다희라는 13세 소녀. 어릴때 국지성 호우로 인한 사고로 엄마를 잃었고(얼마전의 지하차도 사고와 똑같아서, 슬프고 놀라웠다. 작품에서 상상한 비극이 현실이 되다니.ㅠ) 아빠도 누군가에게 희생된다. 이후에 다희는 알게 된다. 아빠가 1.5 사수단의 정예멤버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아빠를 대신해 엄청난 일에 휘말린다.

이 작가 특유의 독창적인 설정이 있는데,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바로 저승의 존재들의 등장. 염라대왕, 저승차사 등이 나온다. 이들의 캐릭터를 고정관념대로 설정하지 않아 꽤 재미가 있다. 대표적인 게 염라대왕인데, 삽화상으로는 현실중딩정도? 물론 눈빛에 따라 어른으로도, 노인으로도 보인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게임을 좋아하고 귀찮은걸 싫어한다는 것도 딱 중딩이다. 이승의 일에 관여하면 안되는 저승에서 차사 '산호'를 파견한 이유는 심각한 내용 중 살짝 들어간 웃음코드에 해당된다. 기후위기가 가속화되면 망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하게 될 것인데 그러면 저승이 너무 바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승으로 치면 일폭탄 초과업무?ㅎㅎ 그래서 귀차니즘 염라대왕이 살짝 편법을 쓴 것이다.

나는 차사 류의 이야기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싫어하는 정도도 아니라서 그런대로 재밌게 읽었다. 대결 과정이 긴박해서 독서에 흥미가 적은 학생들에게 권해줘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연일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 이 폭염일수가 수십년 후에는 90일 정도 될거라는 예상을 어디선가 들었다. 기후위기 문제는 과학적으로 따지기 이전에 일단 체감으로 알만한 일인 바, 느긋할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일인 것 같다. 더구나 달구어진 이 지구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는 확실하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작가님께 열심히 조사하시고 다음 권들도 재미나고 타당하며 감동적이게 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주문이 너무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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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괜찮아 마을에서 온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울림 장애공감 그림책
안드레스 게레로 지음, 남진희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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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참아주지 못하는 요즘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라는 느낌이 물씬 났다. 짧은 이야기다 보니 좀 극단적으로 표현되어 있긴 하다. 내 성격으론 동의 못할 상황들. 하지만 메시지에 집중해서 보려고 했다. 끝까지 읽어보니 아주 귀한 메시지였다.

제목이 아주 길고 메시지가 노골적으로 다 들어있다. '괜찮아' 마을에서 온 '행복한' 사람.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문장이다. 화자는 '그래도 괜찮아'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서툴다고 한다. 근데 그 서툰 모습이 내가 볼땐 절대로 괜찮지가 않았다. 아니 벽돌공의 담벼락이 무너지고 제빵사가 구워낸 빵이 딱딱하고 스쿨버스 기사는 길을 헤맨다니 그게 어떻게 괜찮아? 어느 직종이나 전문성이 필요하고 혹 다른 분야에서 서툴더라도 자기가 맡은 분야에선 그러면 안된다. 사회의 기본과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들도 언제나 완벽할 순 없고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극대화하여 보여준 거겠지 라고 이해하며 읽었다.^^;;;

화자는 어른이 되어 마을을 떠난다. '그러면 못참아' 마을에 도착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주지 않았지만 '그러면어때' 양이 호감을 표시했다. 화자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연인에겐 문제되지 않았고 둘은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은 어느 쪽이었을까? 엄마 아빠가 아닌 마을 사람들과 같은 성품이었다. 깐깐하고 웬만해선 맘에 드는 게 없었고 화를 잘 냈다.

부부는 나이가 들어 그 마을을 떠나 시골에 정착했는데, 화자는 거기서 텃밭도 잘 못가꾸어 상추 한잎도 수확하지 못한다. 아 이건 쫌 너무한거 아니야? 매력이 없잖아!ㅎㅎ 그러다 그는 드디어 할아버지가 된다. 딸이 아들을 낳아 손자가 생긴 것이다.

이때부터 화자는 정말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 이해하는 사람, 받아주는 사람, 완충하는 사람.... 아이는 (당연히) 서툴렀고 많은 실수를 하는데 아이의 엄마(화자의 딸)는 조급하고 이해심이 없어 화가 앞서고 소리부터 지른다. 이때 아이는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괜찮아." 라고 말해줄 행복한 사람이 거기에 있으니까. 손자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해 보인다.

사실 모든 것이 괜찮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잘해내야 할 것들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이런 단서를 붙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괜찮아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악의가 없는 지속적이지 않은 실수는 용납도 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요즘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용납하려는 사람을 바보로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조급하게 만든다. 이해하고 용서하다니, 바보냐? 호구야? 똑똑하게 굴어. 최대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받아낼 수 있는 것은 다 받아 내. 시간없어 빨리! 어리버리하단 선점당해. 니가 당한다고! 당하기 싫으면 공격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우리 귀에 계속 불어넣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그악스러운 세상이 되었을까?

다 서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세상이다. 다 앉으면 편하게 영화를 볼 수 있는데. 나만 앉으면 안보이잖아. "자 이제부터 앉겠습니다. 하나 둘 셋!" 이럴 수도 없고.... 손자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주인공의 뒷모습은 과거의 기억 속에 묻히는 것인가. 우리의 조바심을 빼 보는 시도, 그래도 큰일나지 않는다는 경험. 이런 것들이 쌓여야 할 것 같다. 이 책을 코웃음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세상, 긴장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나도 주인공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허당이라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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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위 이제나 내친구 작은거인 66
윤미경 지음, 김유대 그림 / 국민서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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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1년반쯤 된 책인데, 아주 재밌었고 그보다 더 씁쓸했다. 지금부터 내가 씁쓸했던 이유를 말해보겠다.

1. 교실상황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

현실적인 게 왜 씁쓸한 이유가 돼야 해? 그건 현실이 엉망진창이라는 얘기지 뭐. 교사의 지도에 권위가 전혀 실리지 않아 교실의 빌런들은 날뛰고 선량한 학생들은 숨죽이고 각자도생하는 작금의 사태를 동화적이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젊은 여교사는 할 수 있는게 한숨쉬는 것(그것도 작게), 눈물짓는 것(그것도 몰래), 결국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상태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다 넉다운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래도 이 학급이 유지되는 건 대다수의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기 때문인데, 이건 뭐 따른다기보다는 '따라준'다고 해야하나? 그 아이들 마음상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얘네들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빌런짓을 할 수가 있고, 학교는 그저 아이들의 선량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량한 아이들이 더 많긴 하다. 나도 그 복으로 30년간 이바닥을 지켰다. 하지만 빌런 하나의 위력은 이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는다. 이건 마치 바이러스의 습격처럼 누구라도 피해갈 수가 없다. 내겐 다가오지 않길... 한해 한해 운에 기대는 수밖에. 그나마 선생님이 다크서클 정도로 선방하는 건 여기에 학부모가 나오지 않기 때문? 빌런의 악행을 꾸짖거나 제지하다가 '우리 아이를 망신줬다. 아이 마음을 살필 줄 모른다.'며 아동학대로 걸고 넘어지면 담임은 즉시 직위해제되고 이제 교실은 모든 기능을 잃는다. 전원 오프. 교장,교감,보결,대체강사 등으로 임시발전기 돌려봐야 땜빵일 뿐이다.

2. 결국 빌런을 무릎꿇린 건 무력이었다는 점

김유대 작가님의 재미있는 표지그림을 보면 제나가 링 위에서 발차기를 날리고 있다. 킥복싱! 제목의 '전국 2위'는 바로 킥복싱 대회에서 2등했다는 거다. 이 과정을 읽다보면 킥킥 웃음이 나온다. 제나는 단기간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대회에 나갈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킥복싱이 그리 인기있는 종목은 아니어선지 초등부 출전자가 셋밖에 없었고, 거기다 한명이 기권까지 하게 되어 결국 시합 한번에 2등이 되어버린 거다. 그것도 졌는데 말이다.ㅎㅎ

하지만 이 속사정을 모르는 학급의 친구들은 환호했고 빌런은 겁먹었다. 그리고 비록 시합에 나갈 실력은 아니었다 해도 그동안 구슬땀 흘리며 배워온 게 헛되지는 않았을 터, 드디어 빌런과 한판 붙을 기회가 생겼는데.... 알고보니 이 빌런 녀석이 종이호랑이였던거... 어쨌든 학급에 평화는 찾아왔고 빌런과 똘마니는 열심히 속죄하며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나가 킥복싱을 안했다면? 아무 일도 못했을 거 아닌가. 결국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거 아니야.ㅠㅠ 이야기 초반에 제나가 친구들과 '검은개미군단'을 조직하여 빌런놈과 맞서려는 시도가 나온다. 말하자면 '3인의 법칙'을 실현하려는 것인데, 입 한번 뻥끗하고는 바로 실패해버렸지 뭐야. 아 정말 너무 슬프다. 이게 현실인가. 빌런한테는 인실이 답이고 그중 무력이 직방이다? 흑흑ㅠㅠ

3. 교육기관(학교)은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점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었다. 그러니까 다수의 아이들이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야 해." 보다 "선생님 불쌍해. 우리가 지켜드리자."가 커보였다. 착하고 고맙긴 하지만 이래가지고 무슨 교육이 되겠냐고.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긴 하다. 공적 권위를 부정하는 지금 현실에서 교사는 구성원들의 선의와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총은 안전장치가 풀려있고, 대다수의 선량한 구성원들은 거기에 손댈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잘못 생각하는 어떤 이들은 무차별 난사도 가능하다. 그래서 교사들의 집회에서는 이런 구호도 나오는 것이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게 과장인 것 같다고? 그렇지 않다. 봐봐. 이 학급을 구한 것도 선생님의 공적 권위가 아니고 제나의 킥복싱이었잖아. 이 현상은 가장 취약한 학교에서 먼저 터져나왔지만 이제 사회 전반에 만연할 차례다. 아비규환 각자도생. 그렇게 되기 전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안전장치를 채우는 일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너무 재밌고 유쾌한 동화책인데, 요즘 속상한 일과 맞물려 리뷰가 이렇게 흘러와버렸네.... 중학년 정도 학생들에게 권해주면 무척 재밌게 읽을 것 같고, 나도 재밌게 읽었다. 씁쓸함은 이 사회를 향한 것이고, 사실 이 작품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화의 모습 안에서 학교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역할이 큰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읽을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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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나요? - 2022 볼로냐 라가치 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그림책 도시락 6
마리오 브라사르 지음, 제라르 뒤부아 그림, 장한라 옮김 / 꿈꾸는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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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배님들과 차로 40분을 달려 남양주의 '정약용 도서관'이라는 곳을 찾았다. 여기 좋다는 말은 남편한테 들었는데 내가 뚜벅이다 보니 오늘에서야 묻어서 와봤다. 아니 남의 동네 도서관엘 뭐하러? 생각할수도 있지만 도서관 투어도 꽤 좋은 휴가생활인 것 같다. 널찍한 공간에 구석구석 앉고싶은 공간들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무더위에 방학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긴 책은 다 못 읽을것 같아 어린이실에서 그림책을 읽었다.

2022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흑백의 톤에 우울함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이 분위기는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지만 (누군들 좋아할 수 있으랴) 끝까지 읽어보았다.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훌륭한 그림책들이 많은데 이 책도 그 책꽂이에 같이 꽂힐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감성으로 접근하며 분위기도 독특하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아주 오래된 제 사진이에요.
우리가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찍었던 사진이죠."
이 화자는 성인여성이지만 사진속 주인공은 아홉 살 소녀다. 그 환란에서 생존한 여인은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얘길 한다. 그 기억은 희미하고 분절적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렇다. 그게 생존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겠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명히 기억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

소녀가 먼저 기억하는 건 '포근한 잠자리에 대한 갈망' 이다. 잠시도 편히 잠들 수 없었던 그때. 소녀는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산 사람이 그럴 수는 없었을테고 자는건지 깨어있는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친 상태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소녀가 기억하는 악몽 중 첫번째는 '줄'이다. 끝없는 줄. 줄어들지 않는 줄. 피난행렬일 것이다. 보장되어있지 않은, 그저 운명에 맡기는 줄.
"나이 많은 사람들은 토끼풀이 피어난 들판으로 가는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죠.
그 들판에서는 하루쯤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요."
혹시나 연장할 수 있는 하루치 목숨을 위해 몸을 실어야 했던 그 행렬.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채 무겁게 옮겨야 하는 걸음.

인간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시간을 보낼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는 것 같다. 소녀에게 그 수단은 '구름'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흰구름과 검은구름을 나누는 소녀. 흰구름은 평화로운 일상을, 먹구름은 전쟁을 나타내는 거겠지. 어느순간 흰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먹구름만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많은 먹구름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생존한 소녀는 이제 서른 네살이 되었지만, 어린시절 전쟁의 기억은 마음에 큰 자국을 남겼다. 아무 위험이 없는 줄 알면서도 줄을 설 때마다 힘들어지고, 구름을 보며 분류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먹구름을 보면 그때의 악몽을 기억하며 걱정한다. 어디에서 그 고통이 재연되고 있는게 아닐까 하며.

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나요?
저 멀리 가볍게 떠있는 흰구름도 있지만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먹구름도 여전히 있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내가 아는 곳도 있고 모르는 곳도 있겠지. 화자는(작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며 먹구름이 흘러나온 그곳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려 하는 것 같다.

수많은 선택이 있고 그 선택들은 선악을 단순히 논할 수 없겠지만, 절대적으로 악한 선택도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전쟁의 선택이다. 인간이 이 선택을 하지 않는 시대는 과연 올 수 있을까.

구름을 소재로 해서 그 이미지로 더 오래 기억될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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