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위 이제나 내친구 작은거인 66
윤미경 지음, 김유대 그림 / 국민서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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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1년반쯤 된 책인데, 아주 재밌었고 그보다 더 씁쓸했다. 지금부터 내가 씁쓸했던 이유를 말해보겠다.

1. 교실상황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

현실적인 게 왜 씁쓸한 이유가 돼야 해? 그건 현실이 엉망진창이라는 얘기지 뭐. 교사의 지도에 권위가 전혀 실리지 않아 교실의 빌런들은 날뛰고 선량한 학생들은 숨죽이고 각자도생하는 작금의 사태를 동화적이지만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젊은 여교사는 할 수 있는게 한숨쉬는 것(그것도 작게), 눈물짓는 것(그것도 몰래), 결국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상태로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다 넉다운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래도 이 학급이 유지되는 건 대다수의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르기 때문인데, 이건 뭐 따른다기보다는 '따라준'다고 해야하나? 그 아이들 마음상태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얘네들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빌런짓을 할 수가 있고, 학교는 그저 아이들의 선량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선량한 아이들이 더 많긴 하다. 나도 그 복으로 30년간 이바닥을 지켰다. 하지만 빌런 하나의 위력은 이 모든 것을 뒤덮고도 남는다. 이건 마치 바이러스의 습격처럼 누구라도 피해갈 수가 없다. 내겐 다가오지 않길... 한해 한해 운에 기대는 수밖에. 그나마 선생님이 다크서클 정도로 선방하는 건 여기에 학부모가 나오지 않기 때문? 빌런의 악행을 꾸짖거나 제지하다가 '우리 아이를 망신줬다. 아이 마음을 살필 줄 모른다.'며 아동학대로 걸고 넘어지면 담임은 즉시 직위해제되고 이제 교실은 모든 기능을 잃는다. 전원 오프. 교장,교감,보결,대체강사 등으로 임시발전기 돌려봐야 땜빵일 뿐이다.

2. 결국 빌런을 무릎꿇린 건 무력이었다는 점

김유대 작가님의 재미있는 표지그림을 보면 제나가 링 위에서 발차기를 날리고 있다. 킥복싱! 제목의 '전국 2위'는 바로 킥복싱 대회에서 2등했다는 거다. 이 과정을 읽다보면 킥킥 웃음이 나온다. 제나는 단기간에 정말 열심히 했지만 대회에 나갈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킥복싱이 그리 인기있는 종목은 아니어선지 초등부 출전자가 셋밖에 없었고, 거기다 한명이 기권까지 하게 되어 결국 시합 한번에 2등이 되어버린 거다. 그것도 졌는데 말이다.ㅎㅎ

하지만 이 속사정을 모르는 학급의 친구들은 환호했고 빌런은 겁먹었다. 그리고 비록 시합에 나갈 실력은 아니었다 해도 그동안 구슬땀 흘리며 배워온 게 헛되지는 않았을 터, 드디어 빌런과 한판 붙을 기회가 생겼는데.... 알고보니 이 빌런 녀석이 종이호랑이였던거... 어쨌든 학급에 평화는 찾아왔고 빌런과 똘마니는 열심히 속죄하며 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나가 킥복싱을 안했다면? 아무 일도 못했을 거 아닌가. 결국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거 아니야.ㅠㅠ 이야기 초반에 제나가 친구들과 '검은개미군단'을 조직하여 빌런놈과 맞서려는 시도가 나온다. 말하자면 '3인의 법칙'을 실현하려는 것인데, 입 한번 뻥끗하고는 바로 실패해버렸지 뭐야. 아 정말 너무 슬프다. 이게 현실인가. 빌런한테는 인실이 답이고 그중 무력이 직방이다? 흑흑ㅠㅠ

3. 교육기관(학교)은 아무 역할도 못했다는 점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었다. 그러니까 다수의 아이들이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야 해." 보다 "선생님 불쌍해. 우리가 지켜드리자."가 커보였다. 착하고 고맙긴 하지만 이래가지고 무슨 교육이 되겠냐고.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긴 하다. 공적 권위를 부정하는 지금 현실에서 교사는 구성원들의 선의와 호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총은 안전장치가 풀려있고, 대다수의 선량한 구성원들은 거기에 손댈 생각조차 하지 않지만 잘못 생각하는 어떤 이들은 무차별 난사도 가능하다. 그래서 교사들의 집회에서는 이런 구호도 나오는 것이다. "교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이게 과장인 것 같다고? 그렇지 않다. 봐봐. 이 학급을 구한 것도 선생님의 공적 권위가 아니고 제나의 킥복싱이었잖아. 이 현상은 가장 취약한 학교에서 먼저 터져나왔지만 이제 사회 전반에 만연할 차례다. 아비규환 각자도생. 그렇게 되기 전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안전장치를 채우는 일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너무 재밌고 유쾌한 동화책인데, 요즘 속상한 일과 맞물려 리뷰가 이렇게 흘러와버렸네.... 중학년 정도 학생들에게 권해주면 무척 재밌게 읽을 것 같고, 나도 재밌게 읽었다. 씁쓸함은 이 사회를 향한 것이고, 사실 이 작품에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동화의 모습 안에서 학교의 어려움을 잘 표현해 주셨다고 생각하고, 아이들의 역할이 큰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읽을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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