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공주와 마법 거울
나타샤 패런트 지음, 리디아 코리 그림, 김지은 옮김 / 사계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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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이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공주라는 호칭은 무의미하지만, 우리 시부모님은 손녀딸을 아직도 공주라고 부르시니.... 실존 공주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미지로서의 공주는 영원할 것 같다. 그러니 공주 이야기도 계속 나올 수 있겠지. 단, 그것이 기존의 옛이야기식 공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책처럼 말이다.

공주 이미지를 박살낸 이야기로 제일 먼저 <종이 봉지 공주>를 꼽고 싶다. 잘생긴 왕자님과의 결혼을 꿈꾸던 공주에서 닥쳐온 시련을 스스로 극복하는 공주로 성장한 이야기. 그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소품이 바로 ‘종이 봉지’였지. 잘생긴 왕자는 알고보니 허우대만 멀쩡한 찌질이였고 공주는 왕자를 보기좋게 뻥 차버렸지. 여자아이들한테도 남자아이들한테도 다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 남녀를 바꾸어도 말이 되는(된다고 나는 생각하는) 이야기.

이 책은 훨씬 길고 길이만큼 내용도 다채롭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여성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여성이 주인공일 뿐. 하지만 여성이라 더 깊게 공감할 수는 있겠지. 자신이 처한 곳을 어떻게 자각하느냐에 따라 공감의 폭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8편의 공주 이야기를 꿰는 줄은 바로 제목에 나온 ‘마법 거울’이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에서 인형이 그랬던 것처럼 마법 거울은 주인의 손을 계속 떠나고, 그걸 다시 손에 쥐는 다음 사람의 이야기로 이어서 진행된다. 그 마법 거울을 작은 손거울로 만든 것은 마법사였다. 어떤 나라에 공주가 태어나 대모가 된 마법사는 “아기가 훌륭한 공주로 자라나게 돕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마법사는 이런 생각에 빠진다. “훌륭한 공주란 무엇일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 마법사는 거울을 이용하기로 했다.

여덟 명의 공주들은 제각각 다 다르다. 우리 주변의 아이들이 다 다르듯이. 성격도 다르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다르고 배경도 다르다. 각각의 배경들은 색감이 아름다운 삽화들로 표현되어 이 책의 느낌을 한층 다채롭고 환상적이게 만들어준다. 마녀와 동행했던 엘로이즈 공주의 배경은 푸른 숲. 기사들은 마녀를 제물로 삼으려고 날뛰었지만 어림없었지. 엘로이즈는 마녀에게 치료법을 배웠고 열심히 공부하여 치료사가 되었다.

레일라 공주의 배경은 사막. 공주답지 않게 활동적인 레일라의 행동은 늘 ‘말썽’으로 규정되고 어머니인 여왕에게까지 달갑지 않은 딸이었지만.... 결국은 왕국을 위기에서 구해냈지. 아베요미는 고원지대 고대도시의 공주. 여기서는 새어머니(새 왕비)가 나오네? 새 왕비는 기존의 악역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그 점은 좀 아쉽지만... 어쨌든 아베요미는 악한 왕비의 강요를 따르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켜냈다.

다음은 바다의 공주였다. 항해를 사랑한 엘렌 공주. 그가 배를 모는 장면은 인생을 개척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이라 경외심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물을 사랑한 티카 공주. 새끼 악어를 구조하고 침대에서 같이 잘 정도로 사랑했지만 그 결국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인 공주는 현명하다. 울며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놓치면 안된다.

이야기 공주 시얼샤에게 가장 마음이 갔다.. 동질감을 느꼈다고 할까. 출중한 왕자와 공주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시얼샤 공주. 현명한 선대여왕은 공주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거울 속의 공주> 이야기를. 시얼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숨쉬고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깨닫는다. “나는 이야기 공주가 될 거야.”

여덟 명의 공주들은 공간적 배경 뿐 아니라 시대도 다양하다. 전쟁을 피해 먼 나라로 망명을 간 공주들의 분투기도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아파트가 배경인 이야기도 나온다. 이토록 길고 험난한 여행을 마친 거울은 마법사 앞에서 울먹이고, 이내 깊은 휴식에 빠진다. 애초의 목적인 ‘훌륭한 공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이제 독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주’를 ‘사람’으로 바꾸어도 무리가 없다. 훌륭한 사람에 정답이 있을까. 그게 시대에 따라 꼭 달라지는 개념일까. 이 책에서 보여주듯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편견에 끌려가기보다 운명을 개척하는 태도, 차별없이 사람과 생명들을 사랑하는 마음 등은 변함이 없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작품, 다양한 장르에서 끝없이 변주되어도 계속 공감할 수 있는 주제. 특히 이 책은 마법사와 거울을 통해 액자 구성을 절묘하게 엮은 색다른 작품이라 더욱 재미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소개된 작품이라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세계도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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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 특공대 산하 지식의 숲 30
조인하 지음, 김기린 그림 / 산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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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처럼 책도 편식은 안하는 게 좋다는 쪽이어서 아이들에게 문학에 버금가게 비문학도 권하고 있다. 음식 취향이 있듯이 책에 대한 취향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문학 쪽을 조금 더 선호하는데 아이들 중에 나와 같은 아이들도 있고, 비문학에 더 끌리는 아이들도 있다.

 

비문학 중에 이런 책은 참 재미있다. 가만 보면 비문학을 재미있게 쓰는 것은 문학 창작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재미있으면서 지식 전달도 해야 하고, 재미를 위한 장치는 있어야하지만 그 장치 자체가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지식내용이 빈약해져 버리면 안되고....

 

그런 면에서도 이 책은 각각의 비중이 적절하여 내용이 알차다. 코로나 때문에 골탕먹은 인간들이 미생물을 소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 소식을 들은 미생물들이 그에 대항하는 특공대를 조직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는 설정으로 내용을 끌어간다.

 

회의에 참여한 참여한 미생물들은 크게 4개의 그룹이다. 세균(Bacteria), 바이러스(Virus), 원생생물(Protist), 균류(Fungi). 이들이 회의에서 발언하며 자신들에 대해서 소개도 하고 서로 묻고 답하기도 하는 중에 독자는 미생물에 대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1[각종 질병으로 괴롭혀 주지]에서는 세균들이 등장한다. 대장균, 충치균, 황색 포도상 구균, 콜레라균 등.... 제목처럼 세균은 인간에게 각종 질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유익한 일을 해주는 세균도 있다. 대장균도 병원성 대장균 말고는 유익하며 유산균은 아주 고마운 존재지. 세균들마다 발언을 보면 성격들이 나타나는데 조심스럽고 사려깊은 유산균, 투덜대지만 순진한 대장균 등 캐릭터도 잘 만들어낸 것 같다.

 

2[전 지구를 팬데믹에 빠뜨려 주지]에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로 그, 코로나 바이러스가 제일 먼저 나온다. 캐릭터로 치면 아주 강하진 않다. 자신은 원래 박쥐 같은 야생동물의 몸 속에서 살던 평범한 바이러스였다고. 그런데 인간들이 야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인간에게 옮아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나더니 전염성이 대단한 신종 바이러스가 되어 있었다고. 코로나 외에도 인플루엔자, 에이즈 바이러스 등이 나온다. 바이러스들은 대개 섬뜩하다. 하지만 장 끝에 나오는 정보 페이지에 보면 병을 치료하는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같은 것도 있다고 하니.

 

3[별로 해를 끼친 것도 없는데 억울해!]는 원생생물이 나오는 장이다. 원생생물 하면 아메바, 짚신벌레, 해캄만 생각나는데 클로렐라, 미역, 파래, 김도 포함된다. 아니 미역이랑 김은 늘 접하지만 여기에 속한다고는 생각 못하고 있었네? 광합성을 하고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인데, 드물게 있는 파울러 자유 아메바같이 치명적인 원생생물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아 억울하긴 억울하겠다.

 

4[지구가 온통 쓰레기로 뒤덮일걸?]은 균류의 장이다. 곰팡이와 버섯이 대표적이다. 부피를 가진 버섯은 미생물이라는 이름에 좀 어울리지 않지만 균사가 있고 포자로 번식한다는 면에서 균류가 맞다. 균사가 없는 호모도 이 그룹에 속하는데 얘도 역시 착한 캐릭터. 곰팡이들 중에는 페니실린을 만들어 수많은 생명을 구한 푸른곰팡이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제목처럼 지구가 쓰레기장이 되지 않도록 분해하는 역할들을 한다.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고 모든 존재들 또한 그렇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똑같은 개념이라곤 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이들이 이 세계의 많은 부분을 이루고 떠받치고 수많은 역할들을 하고 있다. 이 토대 위에 인간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 존재들 중 일부일 뿐인데, 이 책의 설정처럼 나머지 존재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이 책에서는 미생물들이 특공대를 조직하기 전에 일단 그들의 모습을 인간에게 친절히 알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알림을 접할 수 있는 것이고.

 

과학 교과에서 작은 생물을 다루는 단원들이 있는데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자유롭게 살펴보며 배경지식을 넓히든 조사학습을 하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특히 재미있다는 장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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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를 읽은 아기 오리 삼 남매 햇살 그림책 (봄볕) 49
곽민수 지음, 조미자 그림 / 봄볕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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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는 참 좋은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갸우뚱하기도 한다. 오리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다. 미운 오리 새끼(실은 백조)를 놀리고 구박한 건 잘못했지만, 그래도 백조를 오리보다 월등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걸 당연시하는 게 기분 나빴다. 그래서 패러디 작품이 당연히 나올 것 같았는데..... 나왔나? 잘 모르겠고, 어쨌든 내가 본 것으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오 나올 게 나왔구나! 반가웠다.

 

천둥 치던 밤에 아기 오리 삼남매는 <미운 오리 새끼> 책을 읽고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닐까 상상하기 시작했다. 날이 활짝 개어 그들은 신나게 물가로 나갔다. 거기엔 바로 그 백조들이 있었다. 그중에 새끼 백조 한 마리가 다가와 아는 척했다. “? 새끼오리들이 큰 물가까지 나왔네.”

 

그러자 새끼 오리가 말했다. “아니야, 우린 미운 오리 새끼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새끼 백조라고.”

그 말에 너희들은 딱 봐도 그냥 오리인걸?” 새끼 백조가 크게 웃으며 사라졌다. 오리 삼남매는 너무 실망해서 풀이 죽었다.

 

그때 고양이가 다가왔고......

모든 일이 지난 후 오리 삼남매는 백조들에게 대단하다고 박수갈채를 받는다.

우리더러 대단하대! 꽥꽥!”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닌데도! 꽉꽉!”

오리들은 기분이 좋아졌다.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이렇게 남의 인정과 갈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면 좀 불안하다. 자신이 가치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좋지만 인정과 갈채에 집중하면 상당히 왜곡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책이 이렇게 끝난다면 나는 조금 아쉬웠을 것이다. 다행히 끝이 아니었다.

 

어떤 날은 오늘처럼 대단하다는 말을 듣겠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괜찮아요.

모두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기 오리들이니까요.

 

오리가 백조보다 대단한 일을 해야만 존재를 인정받는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건 원래 오리가 백조보다 못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오리는 오리 그대로 백조보다 못하지 않은 존재다. 그 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책의 이 마지막이 다행스러웠고 매우 동의한다.^^

 

솔직히, ‘백조에 대한 동경은 나도 갖고 있었고 거의다 버리긴 했지만 다 버렸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당연히 미운 오리 새끼의 꿈도 꾼 적이 있었겠지. 그런 내가 오리로서 만족하려면 아마도 여러 단계를 지나야 할 것이다.

에휴, 내 주제를 파악하자. 나는 저이들이랑 클래스가 달라.”

저이들의 삶이 좋아 보이지만 뭐 좋기만 하겠어? 겉으로만 저렇지 속으론 엉망인 게 있을 거라구.”

요 단계라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조미자 님이 그리신 신나고 만족스럽고, 어벙하면서도 눈을 빛내고, 함께 어딘가를 바라보며 즐겁게 가고 있는 그림. 그 그림 속에 마지막 단계가 있을지도.

 

<미운 오리 새끼>는 새로운 버전의 패러디가 좀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그중 이 책이 고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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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한눈에 꿰뚫는 대단한 지리
팀 마샬 지음, 그레이스 이스턴 외 그림, 서남희 옮김 / 비룡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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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세계문화 관련 신간들을 살펴보다 이 책을 발견하고 오~! 했다. <지리의 힘>의 어린이판이라니? 이런 책도 나왔었구나. 내가 찾던 내용의 책이 아닌데, 다른 책들을 다 제치고 이 책을 대출해왔다. 내용이 궁금해서.

 

<지리의 힘> 책은 유명세에 비해 평점은 의외로 낮다. 별 한 개를 주며 혹평하는 사람들도 많아 읽기 전에 좀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자의로는 안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독서모임에서 선정한 책이라 숙제처럼 읽었다. 급하게 휘릭 읽었고 시간도 많이 지나서 내용이 거의 기억이 안난다. 지리적인 조건이 무척 중요하다는 그 책의 전제만 명확히 기억이 난다. 혹평에 비해서는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내가 모르는 내용이 많으니까. 열심히 읽었다면 많이 배웠을 것이다.

 

그림을 많이 넣어 어린이책으로 새롭게 꾸민 이 책은 읽기 편하고 재미있었다. 아니 이게 그 책의 내용 전부인가? 목차를 비교해보니 거의 똑같네. 쉽고 말랑하게 바꾸니까 다른 책 같다.ㅎㅎ 물론 어린이들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렵고 자세한 설명을 뺐으니까 그렇겠지. 그 책을 읽을 때 시각적인 설명이 좀 아쉽고 지도를 갖다놓고 읽어야지 그냥 읽자니 답답하네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는 깔끔하고 예쁜 일러스트의 지도가 화면 가득 들어가고 그 사이사이와 주변에 설명들을 배치해 놓아서 더욱 읽기에 좋다.

 

지리란 인간으로 치면 타고난 환경에 해당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고 재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환경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그 한계에 갇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지리란 그것보다 좀더 넘기 힘든 한계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모두 그 지리의 이점을 타고나 많은 수혜를 받은 행운아들이다. 서부유럽과 미국이 대표적이다. 또 지리적 이점을 지키거나 쟁취하기 위해 이미 충분히 넓은데도 불구하고 영토를 넓히거나 독립을 저지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나 중국이 그러하다. 틈바구니에 끼어 고생하는 나라들도 있고 (우리나라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척박한 환경 탓에 가능성 자체가 매우 적은 나라들도 있다. 특정 자원만은 풍부한 나라도 있지만 그게 국민들에게 부로 돌아오지 않고 폭력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이 책에 별을 하나나 두 개 준 평을 읽어보니 저자(영국인) 위주의 시각에서 본 해석이라는 점에서 동의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어차피 누군가의 저작물은 그의 시각이라는 걸 전제해놓고 읽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내게는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내가 이 책을 뛰어넘을 상식을 갖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이 지리에서부터 출발하여 세상을 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알기 쉽고 현재 지구촌이 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들의 근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내 자식들이 어리다면 난 이런 책을 사줄 것 같다. 지적 호기심이 있는 아이들, 책을 놀이처럼 보는 아이들, 본 책 또 보는 아이들에게 참 좋은 책이다. 세계명작 몇 권밖에 없던 내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이런 책이 있었다면 언니, 동생과 머리 맞대고 문제도 내고 하면서 닳도록 읽었을 텐데. 그럼 꽤 유식해질 수 있었을 텐데.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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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여우의 북극 바캉스 사계절 저학년문고 69
오주영 지음, 심보영 그림 / 사계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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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왜 이 책을 이제서야 보았지? 나온지 1년도 넘었던데 말이야. 오주영 작가의 첫 책 <이상한 열쇠고리>는 나의 읽어주기 목록에 있는 책이다. 그 책이 나왔던 2009년 무렵은 한창 읽어주기에 물이 오르고 있던 때였는데 그 책 반응이 완전 좋아서 모임에서 소개도 하고 그랬었다. 이후 좋은 책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니 한참 잊고 있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다. ‘읽어주기에 성공하는 책들은 대개 읽는 맛이 좋은 책들이다. 그냥 입맛이 저절로 짭짭 땡기는 책들. 말하자면 작가님이 이야기꾼이라는 뜻이다.

 

이 책도 그랬다. 이렇게 무거운 주제가 담긴 줄은 모르고 처음에는 그저 유쾌하고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 두 번째 쪽 너구리 연인들이 빨간 여우의 찻집에서 냉매실차를 사먹고 투명컵을 버리는 장면에서 주제를 짐작하긴 했다. 환경 관련 주제가 나오겠구나. 그러고보니 이 노을 항구의 올여름은 유별나게 덥고, 잠시 정박한 고드름호는 북극으로 간다고 하니.... 뭔가 짚이는 게 있긴 하다. 하지만 뒤에 가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전문적(?)이다. 이 얇고 상큼한 저학년 동화가 담기에는 말이다. 결국은 잘 담아냈다. 짝짝짝! 이 책도 옆구리에 잘 차고 있어야지.^^

 

빨간 여우는 노을 항구에서 찻집을 하고 있다. 매실청을 정성스레 담가 만드는 매실차는 찻집의 대표 메뉴다. 그런데 이 무더운 여름, 빨간 여우는 의욕이 없어지고 바캉스를 떠나고 싶어졌다. 잠시 정박한 고드름호가 북극으로 간다는 사실을 듣고는 몰래 탑승한다. 하룻밤만에 들키고 말았지만.... 그래도 북극 바캉스는 시작되었다.

 

고드름호의 멤버는 늑대 선장과 호랑이 대장, 담비 박사였다. 이들은 북극에 가서 뭘 하려는 걸까? 독자도 빨간여우의 눈을 통해 궁금증을 가지고 읽어나가게 된다. 호랑이는 무슨 어뢰를 조종하려고 하고(그러다 조종기를 바다에 빠뜨려 낭패), 담비는 병에 바닷물을 담아 무슨 실험을 하고... 대체 정체가 무엇이지?

 

그들은 해빙에 다다랐다. 거기서 배가 등가죽에 붙은 북극곰을 만났다. 그들은 북극곰에게 통조림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는데.... 아니 이게 뭐야, 그 북극곰이 밤새 통조림을 한 짐 가득 지고 도망을 가버렸지 뭐야. 동화면 은혜를 갚아야지 말이야.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남편까지 합세해서 배에 침입해 강도질을....ㅠㅠ 이때 나는 매우 실망했고 어린이 독자들도 그럴 것 같은데 어떤 존재든 극한에 몰리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에게 악해질 수 있다는 가슴아픈 진실을 말해준다고 볼 수 있겠다.

 

고래들과의 만남은 좀 달랐다. 그들은 소화제를 원했다. 소화제 하면 매실차지! 덕분에 빨간 여우는 그들에게 숨 오래 내쉬기시합을 제안하고 고래들은 뱃속에 있는 온갖 것들을 토해냈다. 그것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그것들이다. (, 그리고 잃어버렸던 호랑이의 조종기도 나왔다. 그건 다행.ㅎㅎ)

 

끝날 때가 다 되어서야 호랑이와 담비가 연구를 하는 중인 것을 알 수 있다. 북극 바닷속 동토가 녹으면서 천연가스가 올라와 생기는 진흙 화산도 살펴보고, 동토층 코어 작업으로 채취한 흙을 토막토막 실험실 냉장고에 가득 채운다. 오 이런 내용까지? ‘작가의 말을 읽으니 작가는 쇄빙 연구선 아라온 호를 타고 과학자들과 함께 북극 항해를 다녀오셔서 이 이야기의 씨앗을 얻으셨다고 한다. 어쩐지.... 하지만 전문적 내용이 동화의 맛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작가의 이야기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의식을 담았다는 점도 좋지만, 그걸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인류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기후 위기는 교육에서 꼭 다뤄야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개인의 힘이 너무 없어 뭘 어째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해야지 어떡해... 그러면서 점차 함께 해나갈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수업에서 활력과 재미 부분을 담당하면 좋을 것 같다. 저학년용이지만 고학년도 읽어주면 좋아할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항상 시간이 문제야 시간이.....

 

아참, 이 책 그림도 너무 이쁘고 재밌고 잘 어울린다. 언제 읽어주든간에 이 책은 소장해 두어야겠다. 무겁고 중요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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