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카운트다운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어윤정 지음, 이갑규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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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탐사를 꿈꾸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내용은 과학적인 부분보다는 생활과 심리적인 부분의 비중이 크다. 우주를 꿈꾸는 거지 아직 우주에 나간 건 아니니까!^^ 각각의 사연을 가진 네 명의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뜻을 모으기까지 다가서고, 도전하고, 오해하고, 화해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흥미롭고 따뜻하게 펼쳐진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아이는 태오. '갤럭시 어드벤처' 라는 우주과학영화를 보고는 주인공에게 푹 빠졌다. 그리고 화성 탐사 대원이 되겠다고 선포한다. 가족들은 태오를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로 여기는지라 웃으면서 응원하는 시늉만 한다.

태오는 학교에서도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만 비웃음만 돌아오는데, 유일하게 안새롬이 함께 하겠다고 나선다. 아기 때 우유 광고 모델로 떴던 새롬이는 지금은 과거의 명예가 무색하게 평범하다. 덩치큰 왈가닥 소녀일 뿐.

팀의 세번째 지원자는 피시방에서 만난 양수호다. 마스크를 쓰고 긴 외투에 바퀴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다니는 양수호는 뭔가 비밀이 가득한데 우주에 관한 지식만큼은 태오를 훨씬 능가한다.

마지막 멤버는 태오의 절친인 도준수. 절친이라고 하기엔 요즘 어색하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심리적 위기를 맞은 준수는 태오를 피한다. 태오는 그 사실을 알게 됐지만 아는 척할수도 위로할수도 없어 안타까워만 하다가, 세명이 함께 갔던 분식집에서 준수를 만나 우기다시피 하여 팀에 끼워넣는다. 이렇게 하여 태오의 화성탐사 팀은 4명으로 완성되었다. 함께 '불도저 프로젝트'라는 팀명도 짓고 훈련도 한다.

근데 전문적 지도자가 없는 그들의 훈련이란 이런 것들이다. 무중력 적응 훈련이라며 물구나무를 서고, 우주 멀미 적응 훈련이라며 뺑뺑이를 타고, 우주 식량에 적응한다며 맛없는 걸 먹고...^^;;; 아 그리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농사도 짓는다.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하며 갈등이 깊어지기도 표출되기도 하던 중, 양수호가 쓰러진다. 수호가 가진 문제는 나머지 셋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바퀴달린 장바구니에 든 것은 산소통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그런 병을 앓는 사람을 봤다. 성인이었는데도 너무 안쓰럽던데 어린 아이가...ㅠ 하지만 깨어난 양수호는 친구들 앞에서 밝게 웃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준다. 수호가 화성을 꿈꾸는 이유도 현실성은 희박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적지 않은 나이의 내 삶의 짐을 다 합한 것보다도 큰 짐을 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되면 할말이 없어진다. 어딘가 길이 있기를 바라고 응원할 뿐.

훈련 중 만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불도저 프로젝트는 유명해진다. 그리고 드디어 우주 체험관의 전망대에 가서 화성을 관측하던 날, 나사(NASA)에서 온 연락을 받는다. 아이들의 미래는 미정이지만, 이렇게 꿈이 한발 다가오는 것을 보여주며 이 책은 끝이 난다.

에필로그에서 그동안 가끔씩 결정적인 장면에서 등장했던 떠돌이 개 별똥이의 정체가 드러나는데, 단선적이지 않고 이야기의 볼륨을 풍성하게 한다는 면에서는 좋지만 왠지 주 스토리와 결이 안맞는다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 느낌. 다른 사람들은 좋게 느낄 수도)

한 발 앞만 보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라 우주니 꿈이니 이런거랑 나는 거리가 멀다.ㅎㅎ 하지만 아이들의 꿈은 두 발, 세 발 아니 열 발 앞이어도 좋겠다. 그 간격을 좁히는 길에 함께 하는 이들이 있고, 도전이 있고, 역할이 있고, 책임감이 있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 건강한 자존감이 세워질 것이다. '불도저 프로젝트'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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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과 퐁은 지구인이 될까요? - 2022 학교도서관저널 추천 바람 그림책 125
윤여림 지음, 김규택 그림 / 천개의바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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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가는 그림책들을 학교도서관에 신청했다. 구입 절차가 길고 복잡하여 신청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쯤 되어야 책이 온다. 드디어 왔다는 소식에 룰루랄라 가서 대출해온 몇 권. 오늘은 그중에 이 책이 제일 재미있었다. 윤여림 작가님의 스토리도 흥미롭고 김규택 작가님의 그림도 구석구석 재미났다.

편견과 차별에 대해 돌아보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들이 다양하게 있다. 여러가지 스타일의 책들이 다 의미있지만 말랑하고 재미나면서 핵심을 찌르는 이 책이 내겐 특히 맘에 든다. 이런 문제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이렇게 녹여내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참 대단한 작가님들.

롱과 퐁은 누구일까? "지구인이 될까요?" 라는 제목을 볼 때 지구인은 아닌 것 같고 그럼 외계인? 그렇다. '보드라운 돌'이라는 행성이 있었는데 이 별은 점점 추워지고 있어서 거주민들이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불행중 다행으로 그들에게는 변신술, 평화술, 과학기술이라는 세 가지 능력이 있었다. 그들은 살기 적당한 12개의 행성을 후보에 올려놓고 그들을 받아달라고 요청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지구를 제외한 11개의 행성에서 수락 답장이 왔다. 마지막으로 지구에서도 답장이 오긴 했는데, 생중계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구인들의 심사를 받으라는 거였다.

출연을 위해 파견된 두 행성인이 바로 롱과 퐁이었다. 그들은 '지구의 선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의 실시간 댓글을 받으며 지구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해간다. 피부색, 성별, 외모, 성역할 등등.... 지구인들은 그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에 관심을 보인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 흑심이라고 하겠다.

"여러분이 지구에 오면, 다른 행성에 우리 지구 나라를 세울 수 있겠어요!"
"다른 행성에 지구 나라가 생기면 얼마나 좋아요. 그 행성에 있는 자원들을 마음껏 갖다 쓸 수 있잖아요."
"여러분의 변신 능력과 친구 사귀기 능력으로 그 행성인들이랑 친구가 되었을 때, 짜자잔! 우리가 달려가서 그 행성을 점령하는 거죠."

이런 말을 듣는 롱과 퐁의 표정이 점점 안좋아진다. 힘겨운 하루를 보낸 그들은 본부에 보고서를 전송한 후 잠이 들고, 지구인들은 '보드라운 돌 행성인 받아주기 찬반투표'를 시작한다. 과연 투표의 결과는?

다음날 아침, '지구의 선택' 라이브 방송은 계속된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려는 찰나, 롱과 퐁은 원래 모습으로 다시 변신하고 나서 말한다.
"우리는 지구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우리가 지구를 선택하지 않기로 했거든요."
"아름다운 지구에서 살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그리고 그들은 황당해 하는 지구인들을 남겨두고 그들의 기술인 '눈깜짝 도로'를 통과해 눈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지구에 오지 않았다. 지구는 그들에게 선택받지 못, 아니 차인, 것인가? 그들은 왜 지구를 찼을까? 이 책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이유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들이 떠난 후에 그들과 관련된 유행이 생겨남과 동시에 '외계인 혐오'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받아줌'에 대하여 매우 까다롭다. 자신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성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외모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어떤 직업인지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남의 일에 분노를 잘한다. 한가지 생각에 꽂히면 융통성없고 치기어린 공명심의 잣대로 남을 비난한다. 여자로 변신한 퐁이 배가 고파 '내가 밥할게' 하자 벌떼같이 일어나 난리들이 났다. 똑같이 하라고. 뭐든지 똑같이. 기계적인 공정이다. 외계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구를 '찬'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다른 큰 이유는 욕심. 어울리기보다 정복하고 이용하려는 욕구. 수단화하고 대상화하는 본성. 이것이 염증을 일으켰을 것이다. 다시 돌아보기도 싫을만큼.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지구인이며 저런 본성들이 내재되어 있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부록으로 삽입되어 있는 지구 과학자들의 연구보고서를 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더더욱 한심하다. 삽질능력, 헛짓거리 능력, 나아가서는 자멸 능력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는 책들도 이와같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니 완전 절망은 아니라고 해야할까?

그림책이지만 분량이 68쪽이나 되어 읽는 맛도 꽤 있다. 관련된 주제를 다룰 때 아이들과 읽어보며 생각을 나누기 참 좋겠다. 근데 대표로 읽어주기론 부족할거 같은데. 워낙 구석구석 볼 게 많아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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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실이네 떡집 난 책읽기가 좋아
김리리 지음, 김이랑 그림 / 비룡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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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가 워낙 짜기 때문에 인세로 먹고사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한 작품이 성공하고 그 작품이 시리즈가 되고 그 시리즈가 나오는 족족 잘 팔린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동화에서는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모르는 말이라면 죄송^^;;;) 나도 이 시리즈 여섯 권을 다 읽었다. 한 권 빼고는 다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다.

2014년에 3학년 담임을 하면서 <만복이의 떡집>으로 온작품읽기를 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너무 유명해져 있길래 살펴보니 바뀐 교육과정에서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네! 그 해 이후로 3학년을 하지 않아서 몰랐었다. 이 책으로 온작품읽기를 하시는 선생님들도 늘어나서 이젠 3학년 공식 온작품읽기 책이 된 것 같다. 교과서 수록 작품이 모두 이렇게 선호되지는 않으니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왜 골랐었더라? 쉽고 재미있어서 모든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첫 번째였다. 게다가 주제도 너무 좋아. 교훈적인데 거부감이 없어! 그리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활동할 거리도 많고 아이들 반응도 좋았다. 시리즈가 이렇게 줄줄이 나온 지금은 다음 책으로 이어가기 위한 첫걸음으로도 아주 좋을 것 같다.

오늘은 이 시리즈 중 5,6권 <달콩이네 떡집>과 <둥실이네 떡집> 리뷰를 쓰려고 한다. 이 두 권의 공통점이 있다. 반려동물 이야기라는 점이다. 달콩이는 개고 둥실이는 고양이다. 달콩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왔고 둥실이는 길고양이였다.

여섯 권 중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이야기가 3권 <소원 떡집>이라고 생각한다. 생쥐로 태어나 사람이 된 꼬랑지 이야기. ‘절대 편이 되어주는 절편’을 먹은 꼬랑지의 눈에는 슬프고 힘든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이후 4권부터는 꼬랑지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주인공의 슬픔을 알아채는 것도, 떡을 만드는 것도 다 꼬랑지의 역할이니까 말이다.

5권 <달콩이네 떡집>에서 봉구는 유기견센터에 있던 말티즈 달콩이를 데려왔는데, 이 야속한 녀석은 마음을 주지 않고 말썽만 부린다. 참다못한 엄마가 다시 유기견센터에 데려다줘야겠다고 하셔서 봉구의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이를 알아챈 꼬랑지는 어떤 떡을 만들게 될까?

6권 <둥실이네 떡집>의 둥실이는 길고양이다. 길에서 둥실이를 만나면 먹을 것을 주던 여울이는 어느 비오는 날에 둥실이를 집으로 데려와 버렸다. 내보내라던 엄마는 녀석이 새끼를 뱄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약해져 새끼를 낳을 때까지 데리고 있기로 한다. 무사히 아기고양이 세 마리를 낳았고, 입양도 잘 되었다. 그새 정이든 둥실이네 가족은 둥실이를 키우기로 한다.

해피엔딩인 달콩이 이야기와는 달리, 둥실이 이야기는 슬프다. 길고양이여서였나, 둥실이는 고칠 수 없는 병을 안고 있었고 이제 남은 날이 얼마 없다고 한다. 꼬랑지는 슬픔에 빠진 여울이를 도와주려고 소원 떡집 문을 연다. 떡은 여울이와 둥실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통이 사르르 사라지는 약떡’
‘봄바람에 살랑살랑 날리는 매화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매화떡’
여기까진 좋다. 하지만 가야할 운명을 거스르는 일은 동화에서도 없는 게 낫다. 마지막 떡은
‘마지막 소망을 이루게 해 주는 망개떡’
그 ‘마지막 소망’은 둥실이의 소망이었다. 둥실이는 마지막으로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그런데.... 둥실이의 육신이 사라지고 집안은 우렁각시가 다녀간 모습. 내가 여울이라면 그게 더 슬펐을 것 같아. 흑흑ㅠㅠ 하지만 둥실이가 그게 좋다면 된 거지 뭐... 둥실아 잘 가. 편안하고 가볍게 갔으니 잘 되었어. 우리 서로 잊지 말자. 행복하게 기억하자.

7권도 나올까? 아마도 나올 것 같다. 왠지 6권에서 완결의 느낌이 들지 않아서 말이야. 작가님은 아직도 떡에 대한 연구를 하고 계실 것 같다. 웬만한 떡은 이제 다 나왔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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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춘당 사탕의 맛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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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어머님 성함이 ‘정순’이다. 그 세대에 많았던 이름. 그런데 유튜브에서 뵌 작가님은 나보다 훨씬 젊어보이던데?^^;;; 이름이 소박하고 친근한 작가님. 하지만 이분의 감각과 역량은 친근하지 않다. 오히려 범접하기 어려워 보인다. 길지 않은 삶에서 어찌 이런 통찰과 깊은 감정의 바다를 갖게 되셨을까? 아직 이분의 작품을 많이 접하진 못했지만 대단한 작가인 것 같다. 그림책 외에 산문집도 한번 읽어봐야겠다.

옥춘당. 제사를 지내지 않는 우리집에선 거의 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게 되면 군침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냥 설탕 덩어리에 색소를 입힌 것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걸 아는 지금도 뭔가 특별한 맛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예쁜 색에 뭔가 담겼을 것 같은 맛.

작가님에게 그것은 사랑과 추억의 맛이다. 조부모님의 사랑. 조부모님이 작가에게 주신 사랑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두 분간의 사랑이 더 지극하다. 평생동안 변하지 않은, 아니 더욱 깊어진 부부의 사랑.

그런데 슬픈 점은, 두 사람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입에 옥춘당을 넣어주던 자상하고 유쾌한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셨다. 말없고 낯가리고 소심한 할머니에게 할아버지 없는 세상은 황량했다. 할머니에겐 치매가 찾아왔다. ‘조용한 치매’였지만 가족들은 지쳐갔다. 결국 할머니는 마지막 10년을 요양원에서 보내시고 할아버지를 따라가셨다.

한날 한시에 떠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왕이면 의존적이고 약한 쪽이 먼저 가는 편이 좋다. 두분 같은 경우 할머니가 먼저 가시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근데 어디 세상이 생각대로 흘러가던가. 끝까지 할머니를 지켜주실 것 같던 할아버지는 너무 일찍 가셨고, 할머니는 혼자 남은 세월을 20년이나 견뎌야 했다. 그날, 할아버지가 찾아와 할머니의 입에 ‘아~’ 하고 옥춘당을 넣어주시고 “가자.” 하고 손을 잡는다. 이제 두 분은 행복하시겠지. 너무 늦게 오시긴 했어도.

인생의 마지막이 어떠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정도면 보통의 마무리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두 분은 사랑했으니, 불행한 결말은 아니지. 그래도 보는 마음이 참 슬프고 힘들다. 치매에 걸려 동그라미만 그리던 할머니, 온종일 할아버지를 생각하던 할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불쌍한 게 아닐 수도 있을텐데. 두 분의 사랑만 놓고 본다면 어느 사랑보다도 아름다운 이야기인데. 한편으론 아름다움은 개뿔, 책이니까 그렇지 현실에선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인생일 수도 있고. 하지만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인생인 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할 수 있는 사랑을 하는 것이 맞겠지. 그 사랑이 설탕덩어리에 불과한 옥춘당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꾸어 주듯이, 누구나 통과해야 되는 힘들고 어두운 터널을 견디게 해주는 것일지도.

이 책은 작가가 화자(손녀딸)인 실제 가족 이야기인 듯하다. ‘옥춘당’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까지 긴 세월의 희로애락을 잘 담았다. 작가의 여러 장르 중에서 만화 작품이기도 하고. 작가의 살아온 이야기와 살면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 읽진 않았지만 작가의 산문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인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쓰는 작가.... 그게 거짓이 아니라면 치열하고 진실된 삶을 추구해오지 않았을까. 그 이야기들은 아마도 나에게 부끄러움을 선사하겠지. 그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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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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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4대의 이야기. 이런 서사를 젊은 작가가 써냈다는게 놀랍다. 6.25 이전 북쪽 땅에서부터(삼천, 개성) 시작된 이야기. 전쟁이 나고 대구로 피난을 내려오고, 다시 회령에 자리를 잡고, 끝 세대인 지연은 서울에 살다 이혼하고 회령으로 직장을 옮겨 윗 3세대 여인들의 삶과 마주한다.

최은영 작가의 명성은 <쇼코의 미소> 때부터 들었는데 읽지 못했고 이게 첫번째 읽은 작품이다. 소설을 읽고 잘 기억하는 일이 거의 없어서 잘 안읽게 된다. 시간이 많아야 겨우 잡을까말까 한데, 뭐가 바쁘다고 그러는지 시간이 많다고 느껴지는 날이 없으니 원. 이 책을 읽고보니 멈춘지 2년이 넘은 독서모임이 떠올랐다. 선배언니들인데, 모임 시작땐 모두 교사였지만 그중 절반이 지금 퇴직했다. 어느새 교육서적을 읽기가 좀 애매한 정체성을 갖게 됐다. 이 책을 읽으면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언제 다시 모일지는 모르지만.

지연을 기준으로 증조할머니에 해당되는 1세대 삼천이와 새비의 끈끈한 인연이 서사의 기둥이다. 워맨스라고 불러도 되나. 당장 죽을지살지 모르는 참혹한 시대에 그런 우정이 가능했을까. 아니 그런 시대였기에 더 가능했던 걸까.

삼천이의 딸 영옥이, 새비 아주머니의 딸 희자가 2세대다. 이 두 여인은 어린시절을 함께 했으나 이후 아주 다른 삶의 길을 걷게 된다. 지연이 회령에 내려가 만난 할머니가 영옥이다. 42년생 영옥의 삶 또한 험난했다. 북쪽이 고향인 남자와 아버지 뜻대로 결혼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중혼이었고, 딸을 그쪽 호적에 올려놓고 혼자 키워야 했다. 그 딸 미선이가 바로 지연의 엄마.

엄마도 상처가 많고 행복하지 않다. 지연과의 관계도 갈등이 많다. 똑똑한 딸에게 기대는 많이 했지만 온전히 편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심지어 딸이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했을 때까지도. 엄마가 30년간 밖으로 꺼내지도 못한 고통, 큰딸의 죽음은 지연에게도 큰 그늘이다. 어린 자매는 유독 다정했었고, 엄마의 고통에 지연은 언니를 잃은 슬픔을 드러낼 수도 없었으니.

회령에 지원해서 직장과 거처를 옮긴 지연은 그곳에서 할머니(영옥)를 만나 너무 가깝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며 1,2세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인생은, 아니 모든 인생은 왜 이리 힘겹고 아픈가. 몰랐던, 그리고 잊었던 세대간의 연결과 이해는 서로에게 조금씩 딛고 일어날 힘을 준다.

그 많은 고통의 장면에서 내 눈물을 뺀 장면은 증조할머니와 할머니가 피난 내려올 때 두고온 개 봄이와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봄이는 체념하고 가족들의 냄새를 한번씩 맡고는 돌아섰다. 그 장면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근데 그건 더 큰 고통에 대한 체감이 내게 없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슬픔은 그정도인 것이다.

지연 또한 회령에서 유기견 '귀리'를 집에 들였다가 병으로 금방 헤어지는 슬픔을 맛본다. 지연의 복잡한 마음을 나는 다 이해하진 못하고, 이 아픔은 상상이 간다. 사람은 다 자기 범위 안에서 남을 이해하는 것이다.

다른 세대를 살았지만 이해하고 공감하며 유대를 느끼는 이 여인들의 동지애에서, 감히 낄 수 없는 존재들이 있었으니 바로 남자들이다. 어찌 그리 하나같이 없느니만 못한 존재들인지.(새비 아저씨만 좀 나았음) 그녀들에게 행복이 있었다면 그들끼리 일구어온 것들이다. 나의 경우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존재감은 컸고 엄마는 지금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시지만, 이 이야기처럼 여성들만의 동지애로 지탱하는 인생들이 참 많은 건 사실이긴 하더라. 그 애정 중에 특히 인상적인 건 대구의 새비 고모님과 영옥의 관계였다. 피난살이 군식구였던 영옥에게 바느질을 가르쳐주고 무뚝뚝한 사랑을 보여줬던 고모님. 영옥네가 회령으로 떠나고 각자 사연많은 삶을 살아가는 중에도 영옥을 잊지 않던 그 어른의 사랑. 이런 사랑도 있구나 했다.

마지막으로, 책 넘기던 중 눈길이 머물렀던 두 구절을 적어본다. 하나는 남 돌볼 겨를 없는 극한의 피난길에 따라붙는 아이를 모질게 떼어내고서 느꼈던 영옥의 감정.
"별무리가 아주 낮게까지 내려와 밝게 빛났다. 그걸 보면서 할머니는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167쪽)

두번째는 지연이 열차에서 자기에게 기대 잠든 여자를 보면서 느꼈던 감정.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그녀들에게도 어깨를 빌려준 여자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자나,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는 마음. 별 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300~301쪽)

지연이 외국에 정착한 희자할머니와 어렵게 연락이 닿아 편지를 받으며 이야기가 끝나는데, 난 끊어진 인연 굳이 다시 잇는 건 별로지만 이들의 연결이 인생의 아름다운 면을 다시 보게 하고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 지겨운 것도 사람이고 사랑할 것도 사람인 인생의 모순. 인생이 단순하면 그 많은 드라마나 소설이 왜 나오겠냐. 그중에 이 소설은 위로의 힘이 있어 끝나는 느낌이 좋았던 소설로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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