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버스에 탑승하시겠습니까? 고학년 창작 도서관
임은하 지음, 박현주 그림 / 예림당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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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를 보고 가상현실과 실제의 괴리를 다룬책이겠구나 짐작을 할 수 있었다. <복제인간 윤봉구>를 쓰신 임은하 작가님의 책이기도 하니 믿고 읽어볼 만하겠다 싶어서 집어들었다. 끝까지 쭉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에게 공감도 가고.

6학년 손호랑은 교실에서 소위 '쭈구리'다. 그맘때 아이들이 선망하는 걸 하나도 못 갖췄다. 키도 작고 인물도 별로로 공부도 그닥인데다 운동도 못한다. 고학년 남자아이들의 인기는 공부보다도 운동이 좌우하는데 치명적인 거지. 인기의 요소를 하나도 못갖춘 손호랑은 반에서 존재감 제로에 은근히 무시당하고 있다.

하지만 가상세계에서는 다르다. '조이버스'라는 가상공간에서 손호랑의 아바타인 '소라게'는 핵인싸다.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렸고 크루를 운영하는 대장이기도 하다. 존재감과 성취감, 권력감, 인정과 칭찬을 여기에서는 마음껏 누릴 수 있다. 그걸 즐기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감에 문득문득 불안해진다. 가상세계에서의 성취감에 취해 있다보면 현실의 모습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그 간극이 클수록 현실의 그사람은 더욱 부적응이 될 수밖에 없다.

호랑이가 조이버스와 학교에서 겪는 일들이 대비되어 나오며 그에따른 호랑이의 심리묘사도 잘되어있다. 현실의 주변인들과 조이버스의 주변인들 또한 다를 수밖에 없는데, 조이버스에서 가장 호의적인 팔로워 '알리오올리오마시쪙'이 현실의 주변인인 것을 눈치채게 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은 높아진다.

현실에서의 존재감을 끌어올려줄 절호의 기회(농구시합)를 잡았지만 결정적 기회를 노골로 날려버린 호랑. 거기다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어 조롱거리가 된 날. 호랑의 부적응은 극에 달한다.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부모님도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그렇게 호랑은 홈스쿨링 학생이 된다.

이랬던 호랑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일들이 뒤에 더 남아있다. 위에 적은 '알리오올리오'외에 호랑의 실제 모습을 조이버스에서 까발렸던 '방탄소녀클럽', 아이디 사칭으로 비난받았지만 이후 좋은 관계가 된 '이지은(아이유아님주의)' 등의 팔로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에선 가상현실에서의 모습을 무조건 비난하고 부정하진 않는다. 주인공의 닉네임을 '소라게'라고 한 것도 작가의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다.
"녀석은 얼굴을 감춘 채 껍데기 속에 쏙 숨어들었다. 소라게가 제집에 얼굴을 꼭꼭 숨긴다고 해서 게라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157쪽)
호랑이는 조이버스 계정을 폭파하거나 시시콜콜 변명하진 않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종이블록 로봇을 찍어 올린 것이 달라진 점? 그리고 해시태그에 '나는 괜찮아요' '나는 나다' 와 같은 말들을 올린다.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다시 등교하는 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다. 회피하지 않기. 할 말은 하기.

가상세계를 악마시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결말로 했다면 이 책의 메시지는 너무 단순한 것이 되었을지 모른다. 누구나 한 모습만 가지고 있지 않다. <천 명의 대니>라는 그림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 들어있는 모습은 다양하게 많다.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에서 출발하되, 양쪽 모두 불건강함을 경계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현실이 너무 쭈구리인 것도, 가상이 너무 허황된 것도 건강하지 않았으니까.

이런 면에서 바라보면 이 책이 일깨우는 성찰은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셀럽'을 다룬 드라마도 있는 것 같던데, 그 늪은 어른들에게도 치명적이더라. 그 늪에 빠질수록 현실에 실속이 없어진다. 현실의 탈출구로 가면무도회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이 건강해야 한다는 점. 타인의 환호에 집착하면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목이 탄다는 점. 그걸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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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곰 1 - 북극 열차와 마지막 탐험대원 보름달문고 90
김남중 지음, 홍선주 그림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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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30년간 들었던 연수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다시 되새기는 연수를 꼽는다면 7년전 서울교대연수원에서 받았던 '어린이문학의 이해' 연수였다. 물론 나의 관심사여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강의 구성이 정말 좋았고, 작가님들의 생생한 육성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때 만났던 작가 중 한 분이 김남중 작가님이었다. 어린이문학의 소재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 걸로 기억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김남중 작가님에게 딱 맞는 강의였던 것 같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대표적인 동화작가이기 때문이다. <불량한 자전거 여행>을 비롯한 자전거 소재 동화들에는 작가의 체험과 땀방울이 그대로 담겼고, 또다른 작품들에는 열정적인 취재의 결과가 담겼다. 최근작인 이 <남극곰>을 읽는데 와 이거 엄청나게 취재하셨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 소개글을 보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곰을 실제로 관찰하셨다고 한다. , 2년 전엔가 읽었던 <빨간 여우의 북극 바캉스>를 쓰신 오주영 작가님도 그 배를 타셨다고 했는데? 여러 작가님들이 참가하셨던 건가? 하여간 작품을 쓰기 위한 취재는 때로는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싶다. 이렇게까지 취재했는데 기대한 작품이 안 나오면 정말 괴롭겠다. 그냥 취재했던 과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하지만 다행히도 오주영 작가님의 작품도 이 작품도 다 멋지다. 전자가 귀엽고 저학년용이라면 이 책은 고학년용이고 스케일이 매우 크다.

 

<남극곰>이라는 제목은 2권에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1권에서는 북극행이 그려진다. 실존 인물인 아문센이 나오는 것부터가 놀라웠다. 북극점 정복을 시도하다가 피어리가 먼저 정복하자 남극점으로 목표를 돌려 결국 성공한 인물이다. 이 책에서는 아문센에게 북극곰 조련 의뢰를 받고 도전했지만 포기하고 실패했다는 비에리라는 인물이 나온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후손들이 나온다. 그들의 목표 또한 북극점이다. 이미 정복한 곳을 도전하는 게 의미가 있나? 이게 독자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개연성이다. 나는 모험을 싫어하기 때문에 약간 고개를 갸웃하며 겨우 설득되었지만, 웬만한 독자들은 다 설득되리라 생각한다.ㅎㅎ

 

1권의 부제는 북극열차와 마지막 탐험대원이다. 여기서 북극열차는 선로를 달리는 열차가 아니다. ‘개썰매를 생각하면 쉬운데, 그것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끄는 동물이 북극곰이다. 위의 비에리 가문과 관련이 있다. 북극곰은 길들여지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놀라운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은 스포를 주의해야 할 것 같아 여기까지만.... 그리고 마지막 탐혐대원은 이 책의 주인공 은우다. 해병대 출신인 아빠, 특전사 출신인 엄마와 달리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 게 제일 좋은(나랑 비슷하네. 게임 빼고는ㅋ) 은우가 어쩌다가 마지막 탐험대원이 되었을까? 어쩔 수 없이 휘말린 그 과정. 그 과정에 스토리의 흥미와 긴박함이 집약되어 있다. 나로 말하자면 모험도 싫고 이름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나같은 사람만 있다면 세상이 여기까지 오지 못했겠지. 이 책에는 그렇게 도전하고 모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님들이 타셨다는 그 쇄빙연구선은 환경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오주영 작가님의 책에도 환경과 관련된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이 책도 그럴 것 같다. 발단 부분의 소재가 바나나인 걸 보면 말이다. 은우가 화단에 심은 바나나가 드디어 열매를 맺는다! 개인적으로는 기쁜 일이지만 지구 관점에서 보면 위기고 슬픈 일이다. 사소하지만 바나나의 한살이를 설명한 부분도 그냥 쓰여진 부분은 아니고 공부가 필요했겠다 생각되었다. 책 한 권은 그냥 한 권이 아닌 것이지.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런 책들은 가벼이 읽을 수가 없다.

 

1권에서 일행은 북극까지 가게 되었는데, 2권에서 이어지는 모험은 어떤 것이며 어떤 과제를 안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2권의 부제는 <노아의 방주를 막아라>이다. 노아는 1권에 나온 어떤 인물의 이름이기도 한데, 중의를 담고 있지 않을까 짐작한다. 2권이 마지막일까? 궁금하네.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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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손이 두부 - 제1회 비룡소 역사동화상 수상작 일공일삼 107
모세영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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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손이 두부가 뭘까 생각했다. 막손이는 이름인거 같은데 두부는 뭘까? 설마 먹는 두부는 아니겠지? 했는데 그 두부가 맞았다. 역사동화에 웬 두부? 궁금증이 생긴다.

 

비룡소 역사동화상 1회 수상작이라고 한다. 얼마전에 읽었던 <백제 최후의 날>도 비룡소 수상작이라고 했는데? 아마도 공동 수상인가 보다. 하긴 한 권만 상을 받으라는 법은 없지. 좋은 작품이 많았나보다 라고 혼자 짐작을 해본다. 역사동화의 장이 많이 넓어졌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대적 배경은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시대인데 공간적 배경은 놀랍게도 일본이다. 두부라는 소재도 그렇고, 이 책은 역사동화 꽤 많이 찾아본 내 눈에도 아주 새로웠다. 역사적 상상력을 가미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정확히 들어가야 하는데 제대로 공부하고 쓰신 거 맞겠지? 라는 걱정을 살짝 해보는 순간 작가님 약력에 역사를 전공했다고 되어있어서 믿고 읽어보았다.

 

막손이는 일본 도공촌의 도래인중의 막내다. 도래인이란 일본에 끌려온 조선사람들을 말한다. 더 이전 시대부터 이 도래인들이 일본에 우수한 문화를 전해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막손이네는 진주 도공촌에서 끌려온 팀이었다. 그중 명장인 막손이 아버지는 바다를 건너오는 도중 돌아가셨다. 아비를 잃고 머나먼 남의 나라에 던져진 막손이. 남아있는 어른들이 보살펴주려 하지만 힘없는 그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국 막손이는 관리 무사의 눈밖에 나고 어느 하급무사네 집의 노비로 들어가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드라마적인 요소를 아주 잘 갖추었다.

역경에 던져진 어린 주인공 (막손이)

천진하게 주인공과 친구가 되어주고 심지어 위기에서 도와주는 아이들 (아키라, 료코)

주인공을 들들 볶고 심보가 고약하지만 주인공 없으면 안되기에 심하게는 못하는 인물 (주인집 신지 부인)

이웃집의 착한 여인 (이에무라 부인)

타국에서 만나는 사연 많은 고국의 어른 (호인 아재)

 

여기에 최대 악역으로는 도공촌의 조선 사람들과 막손이를 괴롭히는 비열한 악당 (하급무사 겐조)

아무 힘없는 도래인 아이가 이 악역을 물리치고 이긴다는 건 말이 안되지? 그래서 더 큰 악을 활용하여 악을 이긴다?

겐조만큼 비열해 보이지는 않지만 거악인 인물 (상급무사 가와치)

 

이와같이 동화지만 등장인물들이 다양하고 사건들도 꽤나 긴박하다. 솔직히 어린아이들이 도모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하며 정교함을 요하는 일이라 어른인 내 눈에는 약간 비현실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이야기에 그런 게 없기는 힘들지 않겠나? 어린이 독자들이 가슴 졸이며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좋았던 것은 심사평에서 조선과 일본이라는 빤한 경계를 뛰어넘는 결말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일본인 전체를 악당으로 설정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느 집단이나 그 안에 선인과 악인이 공존한다. 집단이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그 구성원 전체를 미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뻔하고 단순한 인물 설정을 하지 않은 것은 큰 장점으로 느껴졌다. 마음에 안 든다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지만.....

 

두부라는 음식. 지금은 너무 흔해서 별 느낌도 없는 음식이지만.... 한 음식 안에 들어있는 역사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비춰주고 거기에 긴박감과 흥미로움도 곁들여준 이 책. 아이들에게 권해주면 대부분 성공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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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순이가 기다립니다 초승달문고 47
윤성은 지음, 경혜원 그림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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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이라는 노래가 버림받은 반려동물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얘길 들었다. 잘못 안 걸수도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 귀에 그렇게 들린다면 그런 거지 뭐.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물끄러미 선 채 해가 저물고
웅크리고 앉아 밤이 깊어도
결국 너는 나타나지 않잖아
거짓말, 음, 거짓말

이 책의 금순이가 바로 저 노래가사와 같다. 금순이는 갈색 푸들이다. '언니'가 놀이터 벤치에서 "금순이, 기다려." 해놓고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놀이터 벤치를 지킨다.

유기된 반려동물의 이야기는 요즘 동화에서 꽤 단골소재인데도 이 책의 느낌은 기시감이 전혀 없고 완전히 새로웠다. 빨간 새(마법사 할머니) 때문인가? 할머니는 금순이를 여자아이로 변신시켜 주었다. 딱 하루동안.

외로운 금순이는 놀이터에서 또다른 외로운 아이 '사랑이'를 만난다. 사랑이는 스스럼없이 금순이를 언니라고 부른다. 다행히 사랑이는 버려져 외로운 게 아니고 고깃집을 하는 부모님이 너무 바쁘셔서 그렇다. 순수한 사랑이와 순수할 수밖에 없는 금순이는 금세 친해져 즐겁게 논다.

사랑이 부모님이 고깃집을 한다는 설정은 찰떡이자 웃음코드이기도 하다. 금순이가 개니까 상상 가능하잖아? 우리집 개 밥그릇에 닭가슴살이라도 찢어서 놓아줄라치면 개는 '기다려' 라는 말에 꼼짝을 못하면서도 안절부절한다. 그러다가 '뚝' 떨어뜨리는 침 한방울. 그 생각이 나서 한참 웃었다. 다행이다. '언니'는 가버리고 오지 않지만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어서.

금순이가 사랑이와 함께 냄새로 탐색해 '언니'와 함께 살던 연립주택을 찾아내는 장면, 거기서 '언니'가 트럭에 짐을 싣고 이사가버렸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장면, 둘이 공놀이하는 장면 등이 모두 재미있다. 모든 장면에서 금순이가 개라는 것이 드러나지만 사랑이는 알아채지 못한다. 당연하지, 누가 짐작할 수 있겠어? 그래서 어린이 독자들은 더 재미를 느끼며 읽을 것 같다. 독자만 알고있는 이 상황에 대해.^^

독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이 행복이 하루짜리라는 것. 금순이는 다시 개로 돌아가야 한다. 같이 놀던 언니를 잃은 사랑이의 외로움은 또 어째? 하지만 이 책의 결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재미는 반전에 있는 것이 아니고 공감과 흐뭇함에 있다.

언젠가 난 개를 '기다리는 동물' 이라고 칭한 적이 있다. 한곳을 꼼짝않고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마음 아파서. 하지만 기다리는 존재가 개만은 아니겠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78쪽)

기다리는 숙명을 피할 수 없는 바, 작가는 나름 해피엔딩을 제시했다. 그건 '함께 기다리는 것'이다.
"혼자 기다리는 건 쓸쓸하지만 함께 기다리는 건 꽤나 든든하거든요." (93쪽)
이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리고 제목은 '금순이가 기다립니다'. 잘 엮어낸 한 편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저학년부터 중학년까지 추천해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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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멧 : 계절이 지나간 자리 - 2021 볼로냐 라가치 미들그레이드 코믹 부문 대상작 스토리잉크 2
이사벨라 치엘리 지음, 노에미 마르실리 그림, 이세진 옮김, 배정애 손글씨 / 웅진주니어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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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읽는 것보다 그림을 읽는 일이 나에게는 훨씬 어렵다. 그래서 그림없는 그림책들을 보면 한 번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선생인 내가 아이들보다 못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한다. 이 책은 심지어 100쪽이 넘는 만화이니 오죽하랴. 글자가 하나도 없진 않고 가끔 말주머니도 나오는데, 대부분의 장면을 그림으로만 이해해야 한다. 그건 나한테는 너무 고난이도의 작업이다.^^

 

한번 읽고 잘 모르겠어서 인터넷서점의 책 소개를 읽어보고 다시 읽으니 이제야 좀 알겠다.ㅎㅎ 해석에 급급하지 않고 읽어야 이 책에 스민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러니 이 책은 여러번 읽어야 하는 책이다. 책모임에서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단순한 펜선에 색연필 채색의 그림이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취향에 따라 느낌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런 그림체도 좋다. 이 책은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제목보다도 아마 수상작 마크를 보고 집어들었던 것 같다. 처음에 뭔 소린지 모를 때 바로 내려놓지 않은 건 좋은 작품이라니까 끝까지 읽어보자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남들의 안목에 기대는 마음이 나한테도 있다. 수상작 프리미엄이 그런 거겠지.^^;;;

 

내용이 이해되니 느껴지는 감정들이 있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감정들. 외로움이기도 하고, 쓸쓸함이기도 하고, 설렘, 기대, 즐거움, 안타까움, 슬픔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리움이기도 한 그 감정들. 그때는 이름조차 붙이지 못하고 감정인지 뭔지도 몰랐던 감정들. 나에게는 어느정도 과거형인 감정들. 아이들에게는 현재형일 수도 있겠지. 아이들이 그 섬세한 감정의 진동을 느끼면서 자랐으면 좋겠다. 조금 아프고 눈물겹더라도. 너무 많이 말하지 말고 조용히 느끼는 시간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 때 이 책이 함께해도 참 좋을 것 같다.

 

어느 널따란 캠핑장에 루시라는 소녀가 엄마(아마도?)와 함께 머무른다. 게임장에서 인형뽑기로 강아지를 뽑고 싶어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루시. 주변에 물놀이하는 소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물에 떠다니는 페트병 하나를 주워 끈을 매달아 자신의 강아지라고 한다. ‘메멧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서.

 

로망은 거칠고 장난이 심한 아이로 보인다. 친구 한 명이 비디오카메라를 가져오자 그걸로 중세시대 영화를 찍자고 제안한다. 그러려면 마녀 역할을 할 여자애가 필요하다. 그때 딱 눈에 들어온 아이가 루시! 내가 봐도 그럴 것 같긴 하다. 긴 머리에 혼자 겉도는 좀 이상한 아이. 로망은 루시에게 다가가지만 서툴게 실랑이하다 루시의 긴 머리를 잡아당기게 된다. 놀랍게도 그 금발은 가발이었고, 루시의 짧은 맨머리는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뭔가 사정이 많은 아이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게 마음과는 달리 못되게 굴던 로망은 루시가 인형뽑기에 실패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모아두었던 동전을 꺼내고 밤을 기다리는 로망. 다음날 아침 루시의 텐트 앞에 동전이 놓여있고 루시는 드디어 바라던 강아지 인형을 뽑아 즐거워한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엄마가 텐트를 접고 있는게 아닌가.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루시는 방금 뽑은 강아지 인형을 안고 달린다. 로망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강아지 인형을 옆에 두고 돌아선다. 로망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며 강아지 인형을 발로 밀쳐버리지만,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들썩이는 아이의 어깨에서 너무 큰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진다. 로망은 무엇을 느꼈던 걸까?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풀숲에 집어던졌던 고양이 사체를 굳이 다시 찾아내어, 곱게 묻어준다. 그리고 돌아서 걸어가는 로망의 품에는 그 강아지 인형이.....

 

뒷표지에는 왔던 때처럼 오토바이에 텐트와 간단한 짐을 싣고 떠나는 루시네의 뒷모습이 비쳐진다. 이들은 이제 또 어디로 가는 걸까? 다시 만날 일은 아마도 없겠지? 그들의 모습은 서로에게 흔적으로만 남겠지. ‘계절이 지나간 자리..... 배경이 캠핑장인 것도 우리 인생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머무는 곳, 떠나야 하는 곳, 만남과 이별이 있는 곳.

 

아이들의 계절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이 이처럼 슬픔과 아쉬움일지언정, 상처와 악몽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때로는 두렵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렇게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 마음을 나누며 성장한다고 이 책은 말해 주는 것 같다. 끌고 다니던 메멧을 손에서 놓는 날. 그날을 아이가 훌쩍 성장하는 날이라고 해석해도 될까. 물에 떠내려가던 메멧은 어떤 의미일까. 다른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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