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나요? - 2022 볼로냐 라가치 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그림책 도시락 6
마리오 브라사르 지음, 제라르 뒤부아 그림, 장한라 옮김 / 꿈꾸는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은 선배님들과 차로 40분을 달려 남양주의 '정약용 도서관'이라는 곳을 찾았다. 여기 좋다는 말은 남편한테 들었는데 내가 뚜벅이다 보니 오늘에서야 묻어서 와봤다. 아니 남의 동네 도서관엘 뭐하러? 생각할수도 있지만 도서관 투어도 꽤 좋은 휴가생활인 것 같다. 널찍한 공간에 구석구석 앉고싶은 공간들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무더위에 방학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긴 책은 다 못 읽을것 같아 어린이실에서 그림책을 읽었다.

2022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흑백의 톤에 우울함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이 분위기는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지만 (누군들 좋아할 수 있으랴) 끝까지 읽어보았다.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훌륭한 그림책들이 많은데 이 책도 그 책꽂이에 같이 꽂힐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감성으로 접근하며 분위기도 독특하다.

"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아주 오래된 제 사진이에요.
우리가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찍었던 사진이죠."
이 화자는 성인여성이지만 사진속 주인공은 아홉 살 소녀다. 그 환란에서 생존한 여인은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얘길 한다. 그 기억은 희미하고 분절적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렇다. 그게 생존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겠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명히 기억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

소녀가 먼저 기억하는 건 '포근한 잠자리에 대한 갈망' 이다. 잠시도 편히 잠들 수 없었던 그때. 소녀는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산 사람이 그럴 수는 없었을테고 자는건지 깨어있는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친 상태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소녀가 기억하는 악몽 중 첫번째는 '줄'이다. 끝없는 줄. 줄어들지 않는 줄. 피난행렬일 것이다. 보장되어있지 않은, 그저 운명에 맡기는 줄.
"나이 많은 사람들은 토끼풀이 피어난 들판으로 가는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죠.
그 들판에서는 하루쯤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요."
혹시나 연장할 수 있는 하루치 목숨을 위해 몸을 실어야 했던 그 행렬.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채 무겁게 옮겨야 하는 걸음.

인간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시간을 보낼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는 것 같다. 소녀에게 그 수단은 '구름'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흰구름과 검은구름을 나누는 소녀. 흰구름은 평화로운 일상을, 먹구름은 전쟁을 나타내는 거겠지. 어느순간 흰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먹구름만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많은 먹구름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생존한 소녀는 이제 서른 네살이 되었지만, 어린시절 전쟁의 기억은 마음에 큰 자국을 남겼다. 아무 위험이 없는 줄 알면서도 줄을 설 때마다 힘들어지고, 구름을 보며 분류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먹구름을 보면 그때의 악몽을 기억하며 걱정한다. 어디에서 그 고통이 재연되고 있는게 아닐까 하며.

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나요?
저 멀리 가볍게 떠있는 흰구름도 있지만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먹구름도 여전히 있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내가 아는 곳도 있고 모르는 곳도 있겠지. 화자는(작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며 먹구름이 흘러나온 그곳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려 하는 것 같다.

수많은 선택이 있고 그 선택들은 선악을 단순히 논할 수 없겠지만, 절대적으로 악한 선택도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전쟁의 선택이다. 인간이 이 선택을 하지 않는 시대는 과연 올 수 있을까.

구름을 소재로 해서 그 이미지로 더 오래 기억될 인상적인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