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선배님들과 차로 40분을 달려 남양주의 '정약용 도서관'이라는 곳을 찾았다. 여기 좋다는 말은 남편한테 들었는데 내가 뚜벅이다 보니 오늘에서야 묻어서 와봤다. 아니 남의 동네 도서관엘 뭐하러? 생각할수도 있지만 도서관 투어도 꽤 좋은 휴가생활인 것 같다. 널찍한 공간에 구석구석 앉고싶은 공간들을 잘 만들어 놓았는데 무더위에 방학이라 그런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긴 책은 다 못 읽을것 같아 어린이실에서 그림책을 읽었다.2022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흑백의 톤에 우울함과 비참함이 지배하는 이 분위기는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지만 (누군들 좋아할 수 있으랴) 끝까지 읽어보았다.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훌륭한 그림책들이 많은데 이 책도 그 책꽂이에 같이 꽂힐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감성으로 접근하며 분위기도 독특하다."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아주 오래된 제 사진이에요.우리가 출발하기 몇 시간 전에 찍었던 사진이죠."이 화자는 성인여성이지만 사진속 주인공은 아홉 살 소녀다. 그 환란에서 생존한 여인은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얘길 한다. 그 기억은 희미하고 분절적이다. 인간의 기억이란 그렇다. 그게 생존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겠지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명히 기억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소녀가 먼저 기억하는 건 '포근한 잠자리에 대한 갈망' 이다. 잠시도 편히 잠들 수 없었던 그때. 소녀는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산 사람이 그럴 수는 없었을테고 자는건지 깨어있는건지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지친 상태로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소녀가 기억하는 악몽 중 첫번째는 '줄'이다. 끝없는 줄. 줄어들지 않는 줄. 피난행렬일 것이다. 보장되어있지 않은, 그저 운명에 맡기는 줄."나이 많은 사람들은 토끼풀이 피어난 들판으로 가는 거라고 했어요.그리고 이렇게 속삭였죠.그 들판에서는 하루쯤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고요."혹시나 연장할 수 있는 하루치 목숨을 위해 몸을 실어야 했던 그 행렬. 그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지 못한채 무겁게 옮겨야 하는 걸음.인간은 어떤 고통 속에서도 시간을 보낼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는 것 같다. 소녀에게 그 수단은 '구름'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흰구름과 검은구름을 나누는 소녀. 흰구름은 평화로운 일상을, 먹구름은 전쟁을 나타내는 거겠지. 어느순간 흰구름은 모두 사라지고 먹구름만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많은 먹구름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생존한 소녀는 이제 서른 네살이 되었지만, 어린시절 전쟁의 기억은 마음에 큰 자국을 남겼다. 아무 위험이 없는 줄 알면서도 줄을 설 때마다 힘들어지고, 구름을 보며 분류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다. 먹구름을 보면 그때의 악몽을 기억하며 걱정한다. 어디에서 그 고통이 재연되고 있는게 아닐까 하며.구름은 어디에서 흘러오나요? 저 멀리 가볍게 떠있는 흰구름도 있지만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먹구름도 여전히 있다. 이것들은 다 어디에서 흘러왔을까? 내가 아는 곳도 있고 모르는 곳도 있겠지. 화자는(작가는)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며 먹구름이 흘러나온 그곳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전하려 하는 것 같다.수많은 선택이 있고 그 선택들은 선악을 단순히 논할 수 없겠지만, 절대적으로 악한 선택도 있다고 생각된다. 바로 전쟁의 선택이다. 인간이 이 선택을 하지 않는 시대는 과연 올 수 있을까.구름을 소재로 해서 그 이미지로 더 오래 기억될 인상적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