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줘! 살림어린이 나무 동화 (살림 3.4학년 창작 동화) 10
강효미 지음, 박재현 그림 / 살림어린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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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생명존중 관련 어린이책(동물을 중심으로)' 목록을 40권 정도 만든 적이 있는데 이후로 추가할 책이 많이 생겼다. 최근에 나온 이 책도 그렇다. 더구나 이 책에서 다루는 동물은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 수준을 넘어서 혐오동물을 대표하는 '쥐'이니 더 심도있는 이야기가 가능하겠다.

난 어릴 때 '쥐를 잡자'라는 포스터도 본 것 같고, 세들어살던 집 주인할머니가 놓은 쥐덫에 갇혀있던 쥐를 본 기억도 난다. 더 이전 세대는 쥐꼬리를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다던가? 그게 당연시되던 과거에 비해 이런 동화까지 나오는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인가? 이렇게 되면 집에 출몰하는 바퀴벌레, 오염수 위를 가득 덮은 모기유충들도 다 소중한 생명이라는 논리에 도달해야 되는 것 아닐까?^^;;;

이런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일단 책을 읽어보면 재미있다. 변신 화소 중에서도 몸이 바뀌는 '체인지'류의 이야기는 꽤 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이 책의 달이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생쥐 끽끽이를 괴롭혀서 큰 상처를 입힌다. 그 벌로 몸이 뒤바뀐다. 맨홀 밑 하수구에서 상처입은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서러운 신세가 된 것. 다행히 일식때 서로 손을 맞잡으면 원래대로 돌아갈수 있다는 가능성은 있다.

쥐가 된 달이가 원래 쥐였던 달이를 쫓아다니며 보고 겪고 생각한 일들이 대부분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눈이 확 꽂히는 대화가 있다. 달이로 바뀐 쥐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다.
"쥐는 나쁘지 않아. 쥐도 사람이랑 똑같아.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하고 다치면 아파. 쥐는 안 나빠. 만약 쥐가 인간보다 더 컸다면, 쥐들은 인간들을 괴롭히지 않았을 거야."
이 말에 인간들을 향한 일침이 들어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도 사냥하고 자신의 흥미나 오락을 위해 동물을 이용하고 생태계를 교란시킨 생명체는 유일하게 인간이니까.

쥐가 된 달이는 그들의 고단한 삶에 동참하며 하찮은 삶은 없다는 걸 배워간다. 폭우로 무리가 피신하는 위기에서 달이는 맨홀 뚜껑을 제자리로 되돌려 무리를 구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맨홀 뚜껑이 닫히지 않은 복선이 좀 개연성이 떨어지는 아쉬움은 있다...ㅠ)

마무리가 참 좋았다. 사람이 된 끽끽이가 쥐가 된 달이를 잡으려 한 것은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끽끽이도 쥐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단 목숨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을 치료하고.... 둘은 일식날 손을 맞잡았다.
"미안해."
"찍찍, 괜찮아."
이 말은 서로 자신의 존재로서 용감하고 멋지게 살아가겠다는 말로 들렸다.

아까 처음의 의문으로 돌아가니 이건 어쩌면 우문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단 생명을 장난이나 유희의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 수준에서는 이게 훨씬 다가오는 이야기다. "어떤 생명도 작거나 크지 않아. 세상 어디에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존재는 없어."(작가의 말) 그러니 생명을 가볍게 여기며 희롱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살려 줘!" 라는 절박한 외침의 제목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150쪽 정도 분량에 글씨도 큰 편이다. 3학년 가르칠 때 생명존중 관련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이 책이 있었다면 서너번에 나누어 읽어준 후 얘기나누면 좋았겠다. 3학년 수준에 딱이고 +,- 1학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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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잔치 소동 반달문고 27
송언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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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내가 좋아하는 송언 선생님의 책이다! 현직교사이신 송언 선생님의 책은 현장감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선생님의 얼굴을 본 적도, 목소리를 들은 적도 없는데 책 중의 털보 선생님의 말씀을 읽고 있으면 마치 음성지원이 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소재는 <김구천구백이>와 비슷하다. 윤지라는 아이가 안방에 굴러다니는 돈을 가져다가 물쓰듯 아이들에게 인심을 썼다. 이름하여 ‘돈 잔치 소동’이다. 담임선생님의 해결방법도 같다. 생각없이 얻어 쓴 돈은 그대로 돌려주라는 것이다. 김구천구백이에서는 김브라보 혼자만의 일이었는데, 이 작품에선 아주 많은 아이들이 연루되어 있다. 아이들마다 대처하는 태도도 해결방법도 다르다. 여기에서 아이들의 성격과 처한 상황이 드러나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돈에 대한 철학’도 드러난다. 솔직히 처음에는 같은 소재를 한번 더 우려먹은 것...?인가 잠시 의심했는데 작가의 철학이 아이들의 입을 빌어 나오는 순간, 역시 송언 선생님이야! 하고 무릎을 쳤다.

 

장 딱따구리는 오천원을 이렇게 해결했다. 비싸게 샀던 장난감 총과 게임기를 동네 꼬마들한테 헐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장 딱따구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장난감이나 게임기 살 때는 돈을 많이 내야 하지만 팔 때는 돈을 많이 못 받는구나. 돈이 참 사람을 슬프게 만드네.’

 

최 방아공주네 집은 사정이 어렵다. 밤늦게까지 음식점에서 일하다 들어오시는 엄마에게 여차저차했으니 돈을 달라고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다. 최 방아공주는 늘 돌보아주던 옆집 꼬마아이의 엄마를 찾아갔다. 아르바이트를 할 테니 2천원만 달라고.... 아줌마는 오히려 미안해하면서 돈을 주었다. 하지만 최 방아공주는 씁쓸하다.
-불쌍한 미란이를 돌봐 주는 건 잘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돈을 받지 않고도 하던 일이었다. 마음 한 쪽이 찜찜했다. 최 방아공주는 돈이 무시무시한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에게 받은 돈을 보태 엄마 생일선물을 산 왕 포동포동은 할 수 없이 엄마한테 사실을 고백했다. 엄마가 주신 돈을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 왕 포동포동은 이렇게 생각한다. (정말 심오한 돈 철학이다. 어른들도 새겨들어야 할 진리다.)
-이윤지에게 돌려줄 돈만 마련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이 무거웠다. 설령 엄마 생일선물 사는데 보탰다고 해도 칭찬받을 행동은 아니었다. 왕 포동포동은 좋지 않은 돈을 좋은 일에 보태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꼈다.-

 

한편, 이 일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아이들의 캐릭터가 그대로 드러난다. 뼈속까지 모범생인 윤태환은 천원밖에 안 받았지만 그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돈을 마련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점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예배당을 찾아가 통회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가하면 목 뒤뚝뒤뚝과 양 뽀글뽀글은 아무렇지도 않다. ‘친구가 공짜로 돈을 주는데 안 받는 바보가 세상에 어디 있담.’ 천원 정도는 가볍게 해결하고는 싹 잊어버린다. 세상 편하게 사는 캐릭터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윤지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정확히 묘사되진 않았지만 멀리 떠나 있는 아빠는 윤지와 엄마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 같고, 혼자 윤지를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엄마는 윤지의 외로움을 이해해 줄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은 외로움을 이렇게 풀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털보선생님도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을 남긴 채 돈 잔치 소동은 끝이 났다. 그래도 이 아이들은 엉뚱해 보이지만 속이 깊으신 털보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다. 내가 만날 아이들은 어떤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을까? 그게 또 어떤 사건으로 터져나올까? 걱정된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하다. 이런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있는 한 송언 선생님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되리라는 것.^^*


(2010년 다른 곳에 썼던 리뷰를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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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종소리 사계절 저학년문고 31
송언 지음, 한지예 그림 / 사계절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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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나는 이 책이 정말로 슬픈 이야기일거라 생각했다. 슬픈 종소리라니, 듣기만 해도 구슬프지 않은가? 그런데 표지 그림이 너무나 익살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이야기 역시 송언 선생님 특유의 익살이 가득 담긴 유쾌한 이야기였다. 슬픈 종소리란 다름 아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였던 것이다. 이런!^^*

이 학급의 쉬는 시간은 시끌벅적한 모양이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일기검사를 하고 계시고, 아이들은 이런저런 기상천외한 놀이들을 하고 논다. 급기야는, 죽은 듯 엎어져 있는 아이를 두고 아이들이 외친다. “선생님, 여기요! 김귀휘가 죽었어요!” 선생님의 대응은 더욱 걸작이다. “죽었으면 어쩔 수 없지. 저기 운동장 가 모래밭에 묻어 줘라. 살았으면 그냥 놔 두고.” 

신이 난 아이들은 ‘죽은’ 아이를 떠메고 복도와 계단을 지나 운동장으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운동장 대신 넓은 들판과 산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호랑이도 되었다가, 산토끼도 되었다가, 마지막으로 모래밭에 도착하여 죽은 친구를 파묻어주려는 찰나, 책의 제목인 그 ‘슬픈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와 함께 죽은 아이는 “애들아, 나 죽었다가 지금 살아났어!” 라며 발딱 일어나고, 3분 늦게 입실한 아이들을 너그럽게 용서하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자, 이제 공부하자.” 

아이들이 친구를 떠메고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아찔해지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소심한 선생이다. 나 같으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그렇게 운동장에 나가는 걸 용납할 리가 없다. 그러다 계단에서 놓치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다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나? 교실 앞뒤에서 뒹구는 애들을 보면 말한다. 어디서 뒹굴어! 니네 집 안방인 줄 아냐? 조심해서 놀아야 다치질 않지!(실제로 학교는 다칠 일 투성이다. 쉬는 시간에 맘껏 풀어놓았다가는 당장에 보건실 단골손님이 된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

아마도 털보 선생님에게는 내가 모르는 내공이 있으신 게 틀림없다. 무질서 속의 질서, 자유스러움 속의 자연스러운 규칙, 아마도 그런 것이 있으리라. 그래서 참 부럽다.

아이들은 텅 빈 운동장에서도 즐겁게 논다. 상상 속에서 아이들은 못 될 것이 없다. 얼마 전 즐거운생활 시간에 아이들과 새의 날개를 만들었다. 자~ 날개 달고 나가서 놀자~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나는 데리고 나가면서 궁리한다. ‘한 조씩 빨리 날기 시합을 할까? 멋지게 날기 대회를 할까?’ 운동장 구석 정자에 이르러 나는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했다. “얘들아, 여기는 새집이야. 날다가 힘들면 여기에 와서 쉬어.” 

이야~! 흩어진 아이들은 날개를 펴고 힘차게 뛰어다닌다. 그 중에 몇 아이들은 매도 되고 독수리도 되어 다른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쫓기던 몇 아이들은 다시 정자로 들어와 헥헥거린다. 어느새 매와 독수리는 정자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이 생긴다. 정자에 들어와 쉬던 한 아이가 쪼그리고 있다가, “선생님! 알 낳았어요.” 하며 정자 기둥에 붙어있는 둥그런 것을 어루만진다. 놀이에 있어선, 아이들이 어른들의 스승이다.^^*

우리에게도 ‘슬픈 종소리’가 울려 땀이 뻘뻘 흐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다음 날 일기에 보니 너무나 재미있었다고 쓴 아이들. 나에겐 준비 안 된 수업이 아이들에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현장학습을 가서 넓게 펼쳐진 잔디밭에 풀어놓아도 “선생님, 심심해요. 뭐하고 놀아요?” 하며 게임이건 수건돌리기건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못 노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놀이공원의 자극적인 놀이가 아니면 만족을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이건 아마도 어릴 때부터 자유롭게 놀도록 놓아주지 못한 어른들의 탓일 것이다. 머리말에 송언 선생님은 이렇게 써 놓으셨다. “동산에 둥근 달이 떠오를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신나게 놀아라. 너희들이 놀지 않으면 새 세상은 끝내 오지 않는단다.”

하지만 집의 아이들이건, 학교의 아이들이건 이렇게 마냥 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내 자신이 슬프기만 하다.


(2008년 다른 곳에 썼던 리뷰를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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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천구백이 파랑새 사과문고 61
송언 지음, 최정인 그림 / 파랑새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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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쓴 서평이다. 어느덧 털보샘은 퇴직하셨고, 내가 이 책의 털보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이 책은 중학년 권장도서로 많이 올라있고 송언 선생님 책 중에서도 많이 읽히는 책에 속한다. 10년만에 읽어보니 교실도 나도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난 털보 선생님을 좋아하고 샘이 참 존경스럽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털보선생님의 지도방식은 옛날식이고, 지금 식으로 따지자면 인권침해적 요소가 아주 많다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10년 전에도 난 이 책에서 약간 아슬아슬하게 느꼈었나보다. 아 그렇다고.... 털보샘을, 그리고 아이들이 털보샘께 받은 사랑을 부정할 수 있을까? 10년 전 서평을 보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ㅠㅠ) 

아래는 10년 전 쓴 글을 퍼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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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인 송언 님은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시다. 가끔 아침독서 소식지 등에서 이 분의 교실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느낌이 참 좋았다. 나이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이 느긋하게 꼬맹이들을 사랑하시는 교실은 여유가 넘친다.

주인공인 김건하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 하니 그럼 이 책속의 선생님은 바로 작가 선생님? 책 속에서 본 선생님의 모습은 느긋하고 정이 넘치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집요하시기도 했다.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 셈이라고 할까? 

스토리는 무척 단순하다. 김건하(별명 김 브라보)는 가게를 하시느라 바쁜 부모님 밑에서 다소 방치된 채로 크는 아이다. 하지만 구두쇠인 엄마 때문에 사고 싶은 걸 맘대로 사지는 못한다. 그런 김 브라보는 요즘 유행하는 ‘비드맨’을 무척 갖고 싶어하는데 어느날 엄마 화장대에 있는 돈을 집어온 박마법의 선심(?)에 넘어가 비드맨을 사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께 사실이 들통나고, 선생님은 비드맨 값 칠천원을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리신다. 계속되는 선생님과 김브라보의 줄다리기... 마침내 선생님은 김브라보의 별명을 김칠천으로 바꾸시고, 하루에 백씩 이자를 붙인다고 하시며, 김 만이 되면 경찰에 신고하든지, 전학을 보낸다고 하신다. 별명은 계속 숫자를 더해가고, 김 구천구백이가 되는 날, 마침내 해결이 된다.

학교에 있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 이런 일 정도는 그리 큰 사건 축에 끼지도 못한다. 어찌 보면 사소한 이런 일이 이렇게 길고 재미있는 동화의 소재가 되다니, 이렇게 디테일한 상황묘사는 현직 교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다. 킥킥대며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 나오는 선생님은 누구나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선생님이라 할 수는 없겠다. 7000원 사건으로 그렇게 지루한 줄다리기를 하시는 걸 보고 있자니 훈수라도 한 수 두고 싶어질 지경이다.^^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둥 전학 보낸다는 둥의 협박도 썩 본받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이 이 선생님 반이라면 어떨까? 하는 상상에 즐겁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설익은 교사인 내가 “선생님 그건 아니잖아요.” 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쥐어짜지 않아도 느긋하게 배어나오는, 억지로 꾸며낼 수 없이 드러나는 아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사랑이다. 

김건하가 김 칠천에서 김구천구백이가 될 때까지 학교에서, 소통이 부족한 가정에서 겪은 마음의 부담은 엄청났으리라 짐작된다. 말이 7000원이지 그걸 만들어낼 방법이 없는 김건하에게 그 돈은 백만원만큼이나 암담한 액수일수도 있으니까... 선생님도 그것을 아시는지라 어느 날 고개 빳빳이 들고 울부짖으며 대드는 것도 참아주신다. 마지막 날 최후의 방법으로 아버지께 건하를 보내고, 찾아 온 아버지와의 상담이 무사히(?) 끝나자 내 입에서도 한숨이 새어나왔다. 첫째 이유는 선생님께 공손한 건하 아버지의 태도 때문이고(“예, 그런 일이 있었군요. 당연히 갚아야지요.”하시는 건하 아버지. 요즘 이렇게 하시는 아버지가 흔할까?) 두 번째 이유는 “허어, 식구끼리 이렇게 말문이 꽉 막혀서야.” 라는 아빠의 말씀 때문이다. 이제 건하는 곤란한 일이 생겨도 이렇게 마음고생을 길게 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침내 돈을 갚던 날, 선생님은 건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신다. “김 브라보,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다.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한다는 걸 너희들에게 일러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선생님도 예상 못했다. 미안하구나.” 건하, 김 브라보는 뚜벅뚜벅 자리로 들어가 앉으며 특유의 이런 멘트로 책을 마무리한다. -오랜만에 기분이 브라보이다.-

다른 누군가가 책을 읽고 선생님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둥 따진다면 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 6학년이 된 김 브라보는 축구를 하다가도 선생님을 보면 멀리서부터 달려와 “쌤! 브라보!” 한다니, 이 모든 에피소드는 누구에게나 피와 살이 된 셈이리라. 

송언 선생님 브라보! 이 책을 덮는 내 기분도 브라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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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아베 나쯔마루 지음, 김지연 옮김 / 책과콩나무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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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재를 만들기 전에 서평을 올리던 곳은 회사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 그래서 내가 쓴 서평을 한번에 찾아볼 수가 없고 책을 찾아 들어가야 한 편씩 볼 수 있다. 가끔 생각나는 책이 있으면 찾아본다. 아예 없어지기 전에 가끔 하나씩 옮겨놓을 생각이다. 2011년에 썼던 서평을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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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아세요?' 그림책을 읽던 딸과 아들이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지금도 남편은 생각날 때마다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며 아기가 있는 아빠들한테 권한다. 그 옆에선 우리 애들이 '귀여운 우리 아빠' 라는 표정을 지으며 비웃고 있고.....^^;;

 

그런데 난 며칠 전 도서관에서 이런 제목의 책을 보고 말았다.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

당장 빌렸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가족들을 불렀다.

"짜잔! 이 책 읽어볼 사~람?"

그러자 남편이 인상을 쓰며 세상에서 가장 나쁜 책이라면서 당장 갖다 주란다.^^;;

 

책에 관심이 없어진 우리집 청소년들은 제목에만 잠깐 관심을 가질 뿐 내용에는 무관심하다. 할 수 없이 내가 읽었다.

읽기 전의 예상은 늘 빗나가곤 하는데 이 책도 2가지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첫째, 단편집이라는 것.

둘째, 아주 나쁜 아빠가 등장하고 아들과 심각한 갈등을 겪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

우리와 비슷한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부모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나온다. 연령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정도.

밖에서 볼 때 화목해 보이는 가정도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기 마련인데 이 책에 나오는 갈등은 딱 그정도이다. 심각한 문제 부모도, 심각한 문제 자녀도 없다. 그러나 갈등은 생긴다. 그것이 인생이므로.

 

이 책에서, 갈등에 대처(대처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린다)하는 부모들의 태도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감탄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나도 저 정도의 부모는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표제작인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는 일본의 중학교 2학년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라고 한다. 사토시는 평범하고 얌전한 편인 중학생인데 진로 선생님께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며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했단다. 선생님께 그 말을 들은 후 엄마는 고민에 휩싸였고, 밤늦게까지 일에 바빠 아들과 별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던 아빠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아들과 낚시를 가게 된다.

여기에 아빠의 명대사가 몇군데 나온다.

"어쨌든 어떤 인생이든 고통도 따르고 기쁨도 따르는 법이지.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다양한 인생이 있어도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저기, 아빠. 내가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한 말 있잖아요........ 별 뜻은 없었어요."

"그래......... 그런데 난 아빠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 자식이 더 별로다."

시쳇말로, 참 쿨하지 않은가? 난 쿨한 것도 부모의 미덕이라고 본다. 자식일에 쿨해지기는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난 결국 사토시가 고등학교에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안갔더라도 제대로 된 길을 찾았을 거라고....^^*

 

<울어도 괜찮아>에 나오는 엄마는 평범해 보이지만 참 현명한 엄마다.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는 울보 아들 히데토. 내가 상상하는 보통 엄마의 모습은 바보같이 울지 말라고, 그렇게 징징대니까 더 만만하게 보는 거 아니냐고 자식을 잡든가, 아님 분노에 이성을 잃고 씩씩거리며 학교에 찾아가는 엄마다. 그런데 이 엄마는 그 어느쪽도 아니다. 우는게 뭐 어떠냐고, 울어도 괜찮다고 한다. 자식이 우는게 가슴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래서 이 엄마는 참 은근히 훌륭한 엄마다.

 

<오랜만의 식탁>에서의 아버지 유지는 서점의 월급쟁이 점장인데 늘 늦게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한다. 서점에서 책을 훔치는 학생을 잡아 부모에게 인계한 날,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가족과의 식사 시간을 갖는다. 별다른 내용은 없는데 아빠의 마음이 많이 공감이 된다.

 

<버릴 수 없는 것> 이 작품을 우리반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어졌다.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가까스로 살려 사랑하며 키우던 가족은 엄마와 딸이 앓는 천식이 바로 고양이 때문임을 알게 된다. 고양이를 버려야 한다는 아빠와 자신들이 아파도 가족같은 고양이를 버릴 수 없다는 엄마와 딸.... 아빠는 과연 고양이를 버릴 수 있을까?..... '버리진 않더라도 남을 주든가 해야되는거 아니야?' 라고 나는 답답해 하지만, 애완동물을 키워 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에 좋은 소재인 것 같다.

 

이 외에도 몇 편의 작품이 더 있다.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인데, 우리반(5학년) 아이들과도 함께 읽고 싶다. 요즘은 책 수준이 너무 높게 잡혀 있어서 고학년용 책을 읽혀도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청소년용이면서도 고학년이 함께 읽어도 괜찮겠다 싶다. 야한 잡지를 숨겨두고 읽는 중학생 이야기 부분이 쬐금 걸리기는 하지만.....(그것도 실은 지당한 이야기다)

 

여러 편의 단편이 모두 가족을 소재로 하고 있고 잔잔한 느낌도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확 빠져들진 않지만 은근히 매력있는 책인것 같다. 아마 한번 더 읽으면 더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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