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림자가 탈출했다 작은 곰자리 71
미셸 쿠에바스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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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다양한 비유에서 사용된다. 그 의미도 매우 폭이 넓고 다양하다. 이 책 한 권에서도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 이런 책은 책모임에서 읽으면 무한히 의미를 넓힐 수 있을텐데 라는 아쉬움도 들었다.

 

나는 나의 또다른 자아정도로 생각해 보았다. 이 책에서 특별한 점은 그림자에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인의 이름은 없다. ‘그 아이라고만 나온다. 그림자에게는 스무트라는 이름이 있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그림자 스무트는 지난 7년 반 동안 하품 나는 장면만 읽으면서 지냈습니다.

첫 장에 책을 읽는 그 아이와 그림자의 모습이 나오지만 책이라면이라고 비유를 했으므로 꼭 책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인생이 지루했다는 뜻이겠다. 음 약간 나의 얘기 같기도 하다....?ㅎㅎ

 

그 이유는 다음 장에 나온다.

언제나 정해 둔 선 안에만 머물렀지요.

이것도 나와 비슷하다. 나는 선을 그어놓는 사람이다. 그 선을 넘거나 건드리면 몹시 싫어한다. 선이 출렁이면 불안해 한다.

 

그림자가 자유로운 때는 자는 시간 뿐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꿈을 꿀 수 있었어요.

현실 세계가 무채색이라면 꿈속은 총천연색이었다. 스무트는 꿈속에선 자유롭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었다. 음 나도 그렇고, 대부분이 그렇겠지. 꿈은 억눌린 욕구를 반영하지.

 

드디어 어느 날, 스무트는 그 아이와 분리된다. ! 소리와 함께 그 아이에게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잘 됐다! 스무트는 길을 나선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를 맘껏 누린다. 그런데 그림을 찬찬히 보니 재밌는 점이 있다. ‘그 아이가 따라다니며 어딘가 구석에서 스무트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그림자들도 스무트를 보고 용기를 냈다. 민들레의 그림자가 날아올랐고, 귀뚜라미와 메뚜기 그림자는 멋진 연주를 한다. 하나도 떨지 않고. (원래는 겁나서 남들 앞에 못 나서던 밴드) 그런데, 그림자들의 변형과 확장은 점점 규모가 커진다. 잠자리의 그림자는 용이 되었고 바위의 그림자는 거대한 성이 되었다. 이제는 원래의 모습과 매칭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무트는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바람을 다 이룬 그림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기로 한다. 이제 스무트의 차례다.

 

다시 합체그 아이의 모습은 예전 그 아이가 아니다. 수미상관으로 마지막 장에도 책의 비유가 나온다.

삶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이제 그 책은 지루한 책이 아니다. 활력이 넘치고 온갖 색으로 가득하다.

 

부모가 짜놓은 틀에 갇혀 세상의 다양함을 모르고 살아가는 아이들, 자신이 쳐놓은 선 안에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못 내는 어른들, 그 외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인생 책을 다시 점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어찌 보면 매우 직관적인 글과 그림이 인상적이다.

 

그림자를 묶어두고 속박하는 것도, 그림자를 완전히 놓쳐버리는 것도 생의 위기다. 그림자로 나의 인생과 현재의 상태를 성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깊은 의미가 담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아이 때 본 이 책을 어른이 되어 다시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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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도둑 두두 씨 이야기 작은 책마을 56
윤경 지음, 김명 그림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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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선물하고픈 따뜻한 이야기로 가득찬 책이다. 글에도 성품이 있다면, 이 책은 아주 품이 넓은, 누구나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낮은 울타리의 허름한 집 같은 책이다. 조용한 환대가 있는. 어서 와~ 따뜻하게 몸 녹이고 쉬었다 가~ 하는 것 같은.

다섯 편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주인공은 각기 다른 동물들이다. 까마귀 깜즈 씨, 두더지 두두 씨, 여우 미호 씨, 멧돼지 쿵쿵 씨, 고양이 코코 씨. 이들의 삶이 평안하고 풍족하냐면 그렇지 않다. 하나같이 아픔과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살짝씩 내어주는 마음이 보이지 않게 단단히 지탱해주는 밧줄이 되어주는 느낌이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실제로는 쉽지 않기에, 작으면서도 대단한 이야기다.

첫번째, 깜즈 씨는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셔서 슬픔과 무기력에 빠져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땐 함께 탐정 사무소를 했었다. 깜즈 씨를 걱정하며 지켜보던 두두 씨는 간곡하게 사건을 의뢰한다. 사건을 의뢰하는 두두씨의 마음도, 사건 속에 등장하는 그 아이의 마음도 참 고맙다. 어쩜, 첫편부터 이처럼 부드럽게 힘이 나는 이야기라니.

두번째, 두두 씨는 깜즈 씨 엄마인 까미 아주머니 덕분에 달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두두 씨에겐 달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까미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건 깜즈 뿐만 아니라 두두에게도 커다란 슬픔이었다. 하지만 두두 씨는 땅속에 달을 밝힌다는 약속을 이루어낸다. 그제서야 마음 속의 까미 아주머니를 배웅할 수 있었다. 달빛이 되어준 그 작은 존재들에게 고맙다.

세번째, 미호 씨는 변신이 가능한 여우다. 그날도 미호 씨는 여자아이로 변신하여 사람들의 세상으로 갔다. 공원에서 학교소풍을 온 남자아이를 만났는데, 머리색이 남다른 그 아이는 아빠가 체코 사람이었고, 미호를 보면서 얘도 다문화가 아닐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이는 따돌림을 당했고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 둘이는 놀다가 구덩이에 빠졌다! 구하러 와 준 이는 미호한테 늘 불퉁거리던 멧돼지 킁킁 씨. 사람들이 몰려왔고, 총소리가 한 방 났고, 소년은 사람들에게 업혔고 미호 씨는 조용히 사라진다.

네번째, 멧돼지 쿵쿵 씨가 왜 사람들을 멀리하게 됐는지 알 수 있는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그런 쿵쿵 씨가 미호 씨와 소년을 구하러 사람들 가까이 간 것이다. 소년의 빨간 잠바를 물고 흔드는 멧돼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봤겠어! 하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었던 쿵쿵 씨.
"사람이 무서운 쿵쿵 씨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미호 씨를 구하기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었어." (82쪽)
상처받은 짐승은 겉으론 거칠다. 쿵쿵 씨가 무사하길.

다섯번째, 코코 씨는 길고양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미움과 독함만 남았을 것 같은 숫고양이다. 그가 만난 종이봉지 속의 아기고양이 세 마리. 그리고 자주 찾아오는 한 명의 인간. 코코는 어째야 할까? 전에 다쳤을 때 두두 씨가 코코를 치료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왜 날 도와주는 거죠?" 라는 질문에 두두 씨가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내가 도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코코 씨는 아기고양이들을 품어 주었고, 한 명의 인간은 먹을 것과 이불을 갖고 왔던가. 그리고 이 다섯 이야기는 서로 별개가 아니게끔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던가.

너무 착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우유를 너무 많이 타서 싱거운데다 식어버리기까지 한 라떼 맛이 아니고 적당히 진하고 향긋하며 따끈한 카푸치노 맛이라고 할까. 아이들과 착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도 좋겠다. 교실에서 다루겠다면 3학년 정도가 딱이고 2,4,학년도 좋을 것 같다. 아, 세상이 따뜻하면 좋겠어. 냉소가 가득한 세상이 슬프다. 내 입가의 냉소는 어떻게 지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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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웜뱃 피아니스트, 월리 그림책 숲 29
로타 텝 지음, 카밀라 핀토나토 그림, 김여진 옮김 / 브와포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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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목요일마다 싱어게인 시즌3을 보느라고 새벽 무렵에야 잠들곤 한다. 싱어게인1에서 이승윤에게 열광한 뒤, 시즌2를 시작할 때 별 기대가 없었다. 그만한 인재는 이제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와 그런데 결국은 보게 되었다. 스타일은 다르지만 대단한 사람들은 아직도 많았다. 시즌3이 되었다. 이젠 걸출한 인재들이 좀 빠졌겠지? 세상에나 천만의 말씀.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왜 여태 볕도 못 쬐고 있다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이것 뿐만이면 말을 안 한다. 우리나라는 무슨무슨 내가 알지도 못하는 경연 프로그램도 많다. 얼마전엔 우연히 슈퍼밴드를 살짝 역주행해보았는데 미친 연주자들 투성이였다. , 천재들도 저렇게 자리 잡으려고 기를 쓰는데 그냥 수재급, 심지어 평재들은 어떻게 살라는 거임? 평재도 겨우 되는 내가 지금껏 벌어먹고 살았다는 사실이 신통방통하고, 역시 평재인 나의 딸과 아들이 이 경쟁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걱정이 앞선다.

 

이번주 도서실 수업은 편하게 자유독서를 했다. 아이들이 각자 좋아하는 자리에서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신간 그림책 서가에서 머무르다 이 책을 뽑아들었다. 그림책을 아주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라서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생각했는데 이 책이 첫 책이라고 한다.^^ 대신 역자는 요즘 활발히 활동중인 선생님이시라 눈에 확 들어왔다.

 

월리라는 이름의 웜뱃은 피아노를 정말 좋아했다. 좋아해서 많이 치다 보니 어느새 세계 최고의 웜뱃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더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젠 그냥 잘 치는 거로는 되지 않는다. 월리는 탭댄스 추면서 치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하지만 경쟁자도 그걸 금방 넘어섰다. 이번엔 탭댄스 추면서 공굴리기까지 하면서 쳤다. 그것마저도 뛰어넘는 경쟁자가 있었다. 다음 장면에서 월리는 폭발하여 탭댄스 추던 신발을 집어던지며 더 이상 못 하겠어!” 라고 소리를 지른다.

 

월리는 피아노를 포기하고 피아노에서 멀어진다. 그래도 다른 일들을 하며 일부러 바쁘게 지낸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이시대의 능력자들을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럴수록 피아노가 자꾸만 생각났다. 어느날 밤 밖에 나갔다가 집 근처를 어슬렁대는 다른 웜뱃을 만났다. 그는 이전 경쟁자 와일리였다. 그는 월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랑 피아노 연주하던 때가 그리웠거든.”

네 덕분에 피아노를 더 열심히 연습해서 나도 잘 치게 되었거든.”

 

둘은 마음이 통했고, 함께 연습하다 보니 세계 최고의 콜라보 공연도 하게 된다. 여기서 끝내는게 맞을 것 같은데.... 한 장이 더 남았어. 그 마지막 장면에서 풋!!ㅎㅎㅎㅎㅎ 아, 넘나 현실적이다. 그렇지, 현실은 그래.ㅋㅋㅋㅋ

 

그래. 최고는 계속 경신되게 되어있어. 그러니 내가 생애 한 번쯤 최고를 찍어보아도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은 없어. 바퀴벌레인가 싶게 능력자는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오더라고. 그니까 스트레스 받지 말자. 상투적인 말인 것 같지만 내가 이것을 하면서 행복한가가 더 중요한 것이니까.

 

사회 안에서 살아가면서 경쟁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눈 가리고 외발자전거 타면서, 불꽃 내뿜고 훌라후프 타면서 피아노를 치는 그 장면은 우리 사회 극한 경쟁의 모습을 그림 한 장에 너무 재치있게 담았다. 그냥 하나쯤만 잘해도 만족하면 안될까. 하나도 잘하지 못해도 주눅 들지 않고 살면 안될까. 저마다 자녀들에게 팔방미인이 되라고 밀어붙이는 사회는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평범인으로 살아가는 나같은 사람은 SNS를 하는 것 자체가 자괴감을 촉진하는 행위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이 너무 많아. 하지만 기억하자. 영원히 박수를 받는 사람은 없다. 박수 자체에 너무 의미를 두지 말자. 월리에게 가장 행복하고 설렜던 순간은 와일리가 다가왔던 순간이었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 이 책의 주제가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냥 여기서 끝맺으려고 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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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수호천사 고래동화마을 13
이현지 지음, 김정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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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작가도 초등교사구나. 요즘 일부러 찾은게 아니고 우연히 잡았는데 작가가 초등교사인 경우가 부쩍 많았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학교의 일상 하나로도 죽는소리 하면서 사는데 창작까지 하시는 분들 보면 부럽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 책의 사건이나 상황들은 작가님이 어느정도 취재도 하신 걸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처받고 어긋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느꼈다. 조금 부끄러워졌고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혼란의 도돌이표일까. 이건 그냥 그만두는 날까지 숙명인걸까.

내가 부끄러웠던 건 주인공 한나와 같은 아이가 우리반이라면 이라는 가정에 대해 '아 제발...' 하면서 사양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진통을 겪는 사람 옆에 밀착되어 있는 사람은 그 진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인같을 수야 없지만. 그래도 그 진동이 학급을 흔들고 나도 흔든다. 아 제발... 평안한 일상을 살고 싶어. 나도 나의 생활이 있잖아. 퇴근하면 나랑 내 가족 생각만 하고 싶어.

그래도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기에 겪을 일은 겪어야 한다. 이 책의 담임선생님은 젊으신데 참 사려깊고 품도 넓은 분이었다. 때로는 몰아닥치는 사건에 지치고 버거워보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선생님은 함께 겪는 사람일 뿐 해결자가 되어줄 순 없었다. 많은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의 근원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끝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자각도 참 슬픈 것 중의 하나다.

한나는 도벽이 있다. 제목의 '도둑'이 바로 한나다. 그건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그 억울함 때문에. 엄마는 음주운전 차에 치어 돌아가셨는데 그인간은 겨우 4년형을 받았다. 처음이고 반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나의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인간은 4년 후면 다시 일상을 살게 된다. 한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배에서 커다란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밤새 침대에서 몸을 비틀고 난 아침이면 아무나 잡아서 목을 덥석 베어물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훔쳤다. 도둑맞은 걸 알아채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나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만의 규칙이 있다. 나는 한 사람한테 딱 한 가지 믈건만 훔쳤다. 그러면 걸리더라도 그 새끼처럼 당당할 수 있다. 그 친구한테 물건을 훔친 건 처음이고 원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부모없는 한나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이모의 이런 말에 더 동의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너 핑계 대지 마.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스스로 만든 일이라고. 엄마 없는 애들이 다 너처럼 사는 거 아니야. 엄마가 하늘에서 지금 너를 보면 뭐라고 하시겠니?"

나라도 저렇게 말했을 거다. 평소에 내가 하는 생각이 딱 저렇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사람의 마음이 그냥 풀리는 건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절대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알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는 것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는다.

한나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했고, '가출팸' 집에 들어갔다. 집 밖이, 학교 밖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가. 그래서 위의 심정들을 다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런 결정은 꾸짖고 바로잡고 싶다. 다행히 한나에게는 '수호천사'가 따라붙었다. 천사의 실체가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이다.

마지막에 마음이 말끔해진 한나의 변화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새로운 기운과 희망이 느껴지는 결말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앞에서 말한 '문제의 근원'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진심어린 사과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끓는 사과. 사과를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있지만 오히려 진심어린 사과는 자취를 감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용서. 용서 또한 밀어붙여져선 안된다. 두 가지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작용이 일어날지는 쉽사리 알 수 없다. 매뉴얼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상처가 이것으로 치유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깽판을 치면 깽값을 물어야 한다."는 아주 날것의 진리도 유효하다. 마음의 상처는 정상참작만 가능할 뿐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그 빚을 열심히 갚는 한나의 모습이 짠하고도 기특했다. 잘 생각했다 한나야. 응원할게. 이것밖에는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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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달달 달려요 웅진 우리그림책 113
김도아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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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결정적인 장면에서 살짝 놀란 나는 아직도 한참 멀은 사람이다. 학교에서는 사회시간에 한창 편견, 차별, 다양성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해놓고선.... 그뿐인가? 이전 단원에선 사회변화의 키워드로 저출산, 고령화를 다루었다. 그 이전 단원에선 도시와 촌락의 문제점을 공부했다. 이 얇은 그림책 한 권에 이 모든 주제가 담겨 있었다. 감탄했다.

그렇다고 이 책의 느낌이 무겁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더욱 감탄스럽다. 그림부터 아름답다. 색감이 너무 예쁘고, 표정도 살아있는 사랑스러운 그림.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서사는 어떻고? 그 또한 아주 맘에 든다. 등장인물들은? 인정 많고 유쾌한 사람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책은 비현실적인가 라는 생각이...? 아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이곳을, 이 마음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올라온다.

제목에 나오는 ‘달달달 달리는’ 것은 경운기다. 그렇다. 이 책의 배경은 농촌이다. 한창 추수에 바쁜 가을. 주변은 너무 아름답고 주민들은 너무 바쁘다. 그런 중에 동네 방송으로 울려퍼지는 이장님의 목소리.
“그.... 농번기라 다들 바쁘시것지만 가실 수 있는 분들은 그... 내일 아침 6시까정 저...기 마을 앞 느티나무로 나오시면 됩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이장님은 경운기를 단단히 채비하고 자기 과수원의 사과를 한 상자 싣고 출발한다. 느티나무 앞에는 네 분의 할머니가 각자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기다리고 계셨다. 헐레벌떡 뛰어오신 할아버지까지, 총 6명의 주민이 경운기로 길을 떠난다. 이런 말들을 나누면서.
“온 마을 경사여.”
“경사구말구유.”
“우리 어릴 적엔 참 북적북적혔는디.”
“그러게 말여유.”

경운기는 가을의 논을 지나, 밭을 지나, 오르락내리락 산길까지 지나간다. 밤나무 숲을 지날 때 따가운 밤송이들이 떨어지는 모습, 롤러코스터처럼 경운기로 오르막 내리막을 타는 모습이 아주 재미나게 표현되어 있다. 풍경은 또 얼마나 이쁜지. 한 장 한 장이 작품이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하여 드디어 도착한 곳은.... ‘탕’씨 부부의 집이었다. 할머니들이 탕씨 부인의 손을 잡고 “고생 많았구먼.” 하신다. 짐작한 대로, 이 집에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할머니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이 뭐겠어. “어머나, 이뻐라!” 하며 모두가 들여다보는 그곳엔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곱슬곱슬한 아기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우리의 농촌마을 깊숙한 곳에 외국인 부부가 정착한 것이다. 마을 어른들은 그들을 이모저모 보살펴 주고. 할머니들이 바리바리 가져온 보따리들엔 김치며, 떡이며, 고구마 등의 각종 농산물에다 미역, 참기름과 들기름, 천기저귀, 아기옷과 딸랑이까지 있다.
“얼마 만에 아가를 보는 겨?”
“건강하게 잘 커야 혀.”
이런 대화 속에 교과서에서만 가르쳤던 촌락의 문제들이 들어있다. 마을 노인네들은 아가도 보고, 미역국도 끓이고, 밭일도 봐주고, 장 담근 것도 봐주며 이 새로운 마을 식구를 살뜰하게 살펴준 후 바이바이 작별하고 달달달 경운기로 왔던 길을 돌아온다.

얼굴색이 다른 아기를 보고 기뻐하고 예뻐하며 축복하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보았다면, 나는 한가지 생각이 더 들어서 좀 착잡한 마음도 되었다. 촌락의 이야기는 이제 이렇게 쓰여질 수밖에 없는가? ‘이렇게도’ 쓰여지는 것은 물론 좋지만 ‘이렇게밖에’ 쓰여질 수 없다는 것은 또 새로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작가님은 물론 '이렇게도' 쓰신 것이고 이제 그 첫걸음인데 노파심이 너무 심하단 생각도 든다.^^;;;; 부디 이 작고 예쁜 마을의 다양성과 수용력, 나눔과 인정이 우리나라 전체의 것이 된다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에 감사하며, 이런 희망이 향기처럼 퍼져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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