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의 수호천사 고래동화마을 13
이현지 지음, 김정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작가도 초등교사구나. 요즘 일부러 찾은게 아니고 우연히 잡았는데 작가가 초등교사인 경우가 부쩍 많았다.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학교의 일상 하나로도 죽는소리 하면서 사는데 창작까지 하시는 분들 보면 부럽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응원하는 마음도 생긴다. 이 책의 사건이나 상황들은 작가님이 어느정도 취재도 하신 걸로 보이지만 기본적으로는 상처받고 어긋난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느꼈다. 조금 부끄러워졌고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혼란의 도돌이표일까. 이건 그냥 그만두는 날까지 숙명인걸까.

내가 부끄러웠던 건 주인공 한나와 같은 아이가 우리반이라면 이라는 가정에 대해 '아 제발...' 하면서 사양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진통을 겪는 사람 옆에 밀착되어 있는 사람은 그 진통을 함께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인같을 수야 없지만. 그래도 그 진동이 학급을 흔들고 나도 흔든다. 아 제발... 평안한 일상을 살고 싶어. 나도 나의 생활이 있잖아. 퇴근하면 나랑 내 가족 생각만 하고 싶어.

그래도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기에 겪을 일은 겪어야 한다. 이 책의 담임선생님은 젊으신데 참 사려깊고 품도 넓은 분이었다. 때로는 몰아닥치는 사건에 지치고 버거워보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선생님은 함께 겪는 사람일 뿐 해결자가 되어줄 순 없었다. 많은 경우가 그렇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의 근원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가지 못하고 끝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자각도 참 슬픈 것 중의 하나다.

한나는 도벽이 있다. 제목의 '도둑'이 바로 한나다. 그건 엄마가 돌아가시고부터 생겼다. 정확히 말하면 그 억울함 때문에. 엄마는 음주운전 차에 치어 돌아가셨는데 그인간은 겨우 4년형을 받았다. 처음이고 반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나의 세상은 무너졌는데 그인간은 4년 후면 다시 일상을 살게 된다. 한나는 그걸 참을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배에서 커다란 뱀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밤새 침대에서 몸을 비틀고 난 아침이면 아무나 잡아서 목을 덥석 베어물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훔쳤다. 도둑맞은 걸 알아채고 분노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나의 가장 큰 위안이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나도 나만의 규칙이 있다. 나는 한 사람한테 딱 한 가지 믈건만 훔쳤다. 그러면 걸리더라도 그 새끼처럼 당당할 수 있다. 그 친구한테 물건을 훔친 건 처음이고 원한다면 나도 얼마든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의 심정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부모없는 한나의 유일한 보호자가 된 이모의 이런 말에 더 동의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너 핑계 대지 마. 이건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스스로 만든 일이라고. 엄마 없는 애들이 다 너처럼 사는 거 아니야. 엄마가 하늘에서 지금 너를 보면 뭐라고 하시겠니?"

나라도 저렇게 말했을 거다. 평소에 내가 하는 생각이 딱 저렇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사람의 마음이 그냥 풀리는 건 아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도 절대 아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수 없는 것도 알고,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아는 것으로 마음이 풀리지는 않는다.

한나는 급기야 가출을 감행했고, '가출팸' 집에 들어갔다. 집 밖이, 학교 밖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가. 그래서 위의 심정들을 다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런 결정은 꾸짖고 바로잡고 싶다. 다행히 한나에게는 '수호천사'가 따라붙었다. 천사의 실체가 이야기의 가장 큰 반전이다.

마지막에 마음이 말끔해진 한나의 변화를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새로운 기운과 희망이 느껴지는 결말이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앞에서 말한 '문제의 근원'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진심어린 사과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끓는 사과. 사과를 강요하는 세상에 살고있지만 오히려 진심어린 사과는 자취를 감췄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용서. 용서 또한 밀어붙여져선 안된다. 두 가지가 어떤 지점에서 만나고, 작용이 일어날지는 쉽사리 알 수 없다. 매뉴얼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많은 상처가 이것으로 치유된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깽판을 치면 깽값을 물어야 한다."는 아주 날것의 진리도 유효하다. 마음의 상처는 정상참작만 가능할 뿐 핑계가 될 수는 없다. 어차피 내가 갚아야 할 빚이다. 그 빚을 열심히 갚는 한나의 모습이 짠하고도 기특했다. 잘 생각했다 한나야. 응원할게. 이것밖에는 해줄 수 없어서 미안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