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품절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을 공장의 단순 작업에 대거 투입하였다. 특히 소년들은 성인 임금의 절반만 받고도 거의 유사한 노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더 임금을 낮추기 위해 13세에서 15세의 소녀들까지 생산 공정에 직접 투입하였다. 이런 소녀들의 노동 문제에 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존 스튜어트 밀이다. 경제학사를 통틀어 단 한명의 천재를 고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밀을 꼽을 것이지만 또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해도 역시 밀을 꼽을 것이다. 다가올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에 공존하던 19세기를 살았던 밀은 생산의 원칙과 분배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경제현상이 공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의 단초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영국 소녀들의 노동과 임금에 대한 그의 관찰이었다. 15세 소녀들의 노동은 성인 남성에 비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대부분 1/3혹은 절반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을 봄녀서 밀은 분배의 원칙이라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요소들이 개입한다고 보았다. ...여담이지만 의회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최초의 연설을 했던 사람도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53쪽

유럽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다국적 기업이 많은데, 이런 기업들은 청소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최저 임금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역사적으로 축적된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네슬레는 본국인 스위스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국민기업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 3세계에서는 무서운 기업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분유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던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국제적인 세력 중에 분유 판매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네슬레 기업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분유를 먹이고 싶어했단 아옌데의 경제 프로그램은 결국 작동되지 못했고, 아옌데는 1973년 대통령궁에서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사살되었다.-58쪽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서비스는 생산성이 아니라 안정성.-109쪽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즉, 대학 국유화를 쟁취한 뒤 다음 단계로 진화했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우리의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68세대들이 공교육 체계를 대학까지 연장시키면서 다음 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20살에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반면 우리나라의 386은 학벌주의와 경제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인적자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386세대를 다른 세대와 비교한다면 해방 이후 가장 많은 독서를 했던 세대이고, 현재도 가장 많은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포디즘 이후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해서도 이전 세대에 비하면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독서할 여력이 없는 다음 세대에 비해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78쪽

...암기교육을 받아서는 세계화라는 국면에서 다양성을 위주로 한 교육을 받은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 없이 혼자서 알아서 지식을 습득 할 수 있는, 언제나 존재하는 2~3%의 천재들을 제외하면 이 인질범들에게 교육을 받아서 외국 기준에 적합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다른사람들'처럼 받아서는 선진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 대량생산의 시기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225쪽

현재의 20대가 맞게 된 사회적 고통들의 원인은 20대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경제 구조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요인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결국은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 동안 화려하게 활동했던 중소기업이 지난 5년 동안 붕괴하게 된 것과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 경제의 독과점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생산자본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통자본에서 발생한 일이다. 중소기업의 붕괴는 단기적으로는 20대 실업과 10%미만의 소위 '우아한 직업'에 대한 과잉 경쟁을 만들어내고 구조적으로 90%정도의 젊은이 들은 자신의 원치 않았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자신이 원해서 간 것이 아니므로 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기는 어렵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조직에서 완전히 내몰린 사람들이 자영업에 대한 창업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미 유통에서도 대형 할인매장과 편의점을 중심으로 독과점화가 거의 완료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90%의 젊은 이들에게는 불만족 상태에서.-241쪽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룡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것'들의 약탈장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자본주의 경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된다. 이걸 사람들이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유럽형 경제라고 할 수 있고, 법원이 직접 나서서 약간씩 완화시키는 것이 미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80년대까지 이런 일을 했었고, 박정희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에서 나름대로 이런 큰 것들만 살아남는 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일들을 했었다. 경제개발계획이나 디제이노믹스라고 불렸던 큰 경제담론에서는 이런 작은 것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것 같지만, 박정희 대통령만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매달렸던 대통령도 별로 없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예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벤처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나름대로의 균형과 안정성을 만들어냈다. 본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나름의 다양성과 안정성, 즉 다안성이 등장한 셈이다. 탈 포드주의 시대로 갈수록 이런 다안성의 전략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253쪽

스웨덴에 유학 가는 사람들은 입학 허가서와 함께 입학 안내서를 받게 되는데, 스톡홀름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없으므로 만약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면 미리 충분히 마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아주 자상도 하신 조언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적인 일이지만, 스웨덴은 유럽 중에서 노동조합과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리케이드를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에는 노조들이 강성 노조이지만, 평소에는 20대와 바리케이드를 공유하지 않는데, 스웨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9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은 생애 첫 자금 지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20세가 되면 2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은행 창구를 통해서 지원을 하게 된다. 이 돈을 받은 사람은 등록금에 보태거나 주거권에 사용할 수도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이 돈을 가지고 전 세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립대학이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2000만원은 스웨덴 청년들이 경험과 지식을 높이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물론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서 이런 제도를 운용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288쪽

은 사회적 바리케이드가 20대에게도 제공된 경우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0대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고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바리케이드를 제공하는 이런 나라들이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고, 정규직의 일자리 나누기가 스웨덴 자동차 회사 이름을 따 볼보주의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사회의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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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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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 운용 방식으로, 그러니까 거시적으로 분석하면 지금 우리가 이해해는 것과 조금은 다른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 케인스 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해서라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그리고 코민테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썼다. 흔히 케인스 경제 체제를 수정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 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정권이 민중들에게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 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횡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46쪽

자 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녀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된다. -47쪽

엘리트들, 스카이 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먼저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케인스주의 다음에 왔던 매우 특수한 경제적 양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영구한 신앙과 같은 것이다. 경쟁은 아름답고, 그러한 경쟁만으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생존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금 한국의 대학이다. 그중에서도 부모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특출 난 일류 대학들이다.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볼 때 아주 복잡하며, 개인이 내면화한 것이라 철학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앞에 서 있으면 열에 아홉은 그런 신자유주의를 가슴 깊이 담고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들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경쟁해서 친구를 이기면 천국이 펼쳐진다는 단 한마디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 명씩 걸어가는 육화된 신자유주의 이념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저기, 신자유주의가 걸어가고 있다.

헤겔이 자신의 하숙집 밑으 지나가는 말을 탄 나폴레옹을 보면서 "저기 절대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는 "저기, 신자유주의-50쪽

가 걸어가고 있다"며 대학가에서 고뇌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들도 실은 불편하고 외롭지 않을까-50쪽

정말로 답 없는 이명박과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그러나 한국의 20대에 대해서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소비에 더 길들여져 때때로 소비적 존재로 여겨지고 정치적으로는 나약하고 무기력해 보일지 몰라도, 대단히 미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대기업CEO가 20대들의 이상이란 관점에서, 어쩌면 이명박과 20대는 오히려 이명박과 50대보다 더욱더 환상의 복식조를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 지금 20대들이 얼마나 민감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80년대 전두환에 대한 미각적 거부감은 있어 '대머리'라는 말로 상실감을 표현했지만, 그 시기에는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시대정신 때문에 감성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간지가 맨 앞에 나오는 시기다. 이명박 정부의 치졸한 정책들과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계속되는 너무 뻔한 거짓말들이 지금 20대들의 미학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다. ..간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 20대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랑함. 그렇다고 이들이 이명박 싫다고 바로 민주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데로 관-69쪽

심을 돌릴까? 그럴 리가 있나. 많은 20대들에게 간지는 취향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이 독특한 감성,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다음 세대들의 존재론 아니겠는가. -70쪽

지금 20대들은 성인들의 세계에 잘못 태어난 난쟁이라고 자신들을 생각 할 수도 있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 냈다며 자부심이 대단한 50대들의 세계에서 20대는 이해할 수 없는 난쟁이들일 뿐이다. 전두환도 꺾고 노태우도 내몰았던 40대들에게 지금의 20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배자들이고 지독한 회의론자들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원에 관해서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가 쌓은 경험이라는 단 하나의 창으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야속하겠지만 원래 인간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76쪽

프랑스 학생들이라고 해서 덜 경쟁하거나 학업의 부담이 적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는 한국에 비하면 더 많은 다양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현실로 인해 감옥 한번 갔다 왔다고, 대학에서 1년 유급됐다고 해서 인생이 끝날 정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유럽 대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 한국과 달리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개개인마다 엄청난 철학적 사색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프랑스 대학에는 한국과 달리 운동권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거대한 좌파 블록도 조직화 되어 있을거라고? 최근 한국 대학에서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망했다고 난리지만 프랑스에는 일부 체육 관련 동아리를 제외하면 동아리 자체가 아예 없다. 따라서 유럽과 한국 대학생들의 상황이 다른 것은 실제로 그 나라의 경제 구조가 달라서다. 프랑스 대학생들도 한국과 같은 스펙 경쟁 구조에 놓이면 별 수 없다는 말이다. -106쪽

민주주의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스위스조차도 1971년에야 여성들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을 보면 해방 직후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똑같이 참정권을 준 한국의 제헌의회가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냥 주어진 것과 스스로 쟁취한 것에는 그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스위스에선 이미 여러 번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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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산책 2009-12-22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이 새책을 냈군여~ 딸기 맛있겠당..하얀 꽃잎 흩날리는 거 이뻤는데 바뀌었네용^^

LAYLA 2009-12-22 17:34   좋아요 0 | URL
변화를 시도해봤습니다. 꽃잎은 봄되면 다시 데려올까요?^^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 뮌헨의 건축하는 여자 임혜지의 공간 이야기
임혜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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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오랜 의문을 털어놓았다. 건축가는 남의 돈으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느냐, 아니면 사용자의 이상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느냐, 장차 그 건물을 사용할 사람이 원하는 바를 건축가가'건축이라면 내가 더 잘 안다'는 미명하에 안 들어줄 자격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휘브너 교수의 대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단 1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건축주가 달라고 하는 걸 주지 말고 그가 원하는 걸 주라" 무슨 뜻일까? '건축주가 원하는 것'은 유리에 붙인 창살, 그 자체가 아니다. 옛날 창살로 연상되는 부드러운 분위기의 아늑한 공간을 원하는 거다. 비전문가는 그렇게밖에 자신의 희망을 표현할 수 없다.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은 건축가의 몫이다. 그리고 건축주가 원하는 바를, 모조훔이 아닌 품격 있는 디테일로 실현시키는 것도 건축가의 몫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건축가는 전문인으로서 사회의 미관을 책임지는 의무도 수행하고, 서비스인으로서 건축주의 요구를 실현시키는 의무도 수행하는 것이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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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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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긴 북구의 집들에겐 형광등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후 세 시면 컴컴해지는 기나긴 겨울밤을 보내야 하는 이들에게 조명은 삶의질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형광등에 비해 아늑한 느낌을 주는 백열등의 조명기술은 꽤 오래된 문화다. 이는 초를 켜던 과거 오랜 관습의 연장이다 -16쪽

리추얼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회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도 바로 리추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지식인들은 깊이 고뇌했다. 도대체 이 엄청난 야만이 어떻게 독일에서 일어날 수 있었단 말인가? 괴테, 쉴러, 베토벤의 나라 아니던가?
그들은 독일의 권위주의적 사회구조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가족, 학교, 일터에서 반복되는 권위주의적 리추얼이 권력자에 대한 일방적 복종과 충성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전쟁 이후, 독일인들은 사회 구석구석에 남겨진 이 집단 리추얼을 철저하게 해체했다. 그래서 독일의 대학에는 졸업식이 없다. 졸업식 가운도 물론 없다. 졸업식을 집단으로 모여 권위를 확인하는 세리머니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나는 그래서 한 번도 졸업식 가운을 입어본 적이 없다. 반성이 철저한 독일인들은 초등학교의 합창시간도 없앴다. 함께 노래하는 행위가 집단에 대한 무의식적인 충성으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소리가 아주 착한 리코더를 불게한다. -29쪽

후회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 그리고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한 일은 반드시 오래, 아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이들이게 한결같이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안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고. -38쪽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뇌를 사용하여 느끼고 깊은 까닭이다. 뇌에서 차지하는 혀의 비중을 보면, 왜 혀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입술만큼이나 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7쪽

불안하기 때문이다.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까닭이다. 모든 결과는 과정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땅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자주 망각한다. 그리고 오직 결과만 가지고 서로 비교한다. -108쪽

사는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 . 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 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인내가 쓰면, 열매도 쓰다. 도대체 열매의 단맛을 겪어봤어야 그 단맛을 즐길 것 아닌가.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153쪽

오늘날 우리가 매일같이 반복하는 재미있니?라고 하는 문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일상적 용어가 되었다. 물론 재미라는 단어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의 재미가 아니다. 재미라는 단어 사용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나타난 문화현상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fun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1쪽

서양이늗ㄹ에게 타인의 존재는 항상 나의 상대방으로서의 너다. 동등한 주체로서의 상대방에 대한 무례함은 곧 나라는 주체에 대한 부정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곧바로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너의 존재를 인정할 때 나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마르틴 부거가 그의 책 '나와 너'에서 나라는 존재의 근거로 너와의 관계를 지적하고, 이 나와 너의 관계를 모든 의미구성의 기본 단위로 여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화적 맥락 때문이다.
한국인의 상호작용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나와 너의 상호작용이 서구인들처럼 곧바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너라는 상호주체의 만남은 무엇보다 먼저 우리와 남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야 가능하다. 남은 상호작용의 상대방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질문이 무서운 것이다. 남은 상호작용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무시해도 된다. 관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타인이 일단 우리라고 하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타인은 더 이상 남이 아니다. 그에게 절대 무례해서는 안되다. 우리라는-226쪽

경계선을 넘어오는 순간 상대방은 너라는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에게 나와 너라는 주체적 상호작용은 우리가 성립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전 시대를 지탱해왔던 우리라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산업사회의 공동체 구성방식으로 포스트모던 사회를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인들의 존재근거가 되었던 우리라는 그 울타리가 변형되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의 우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대안적 우리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존재 확인 방식이 없다는 이야기다. -227쪽

문화심리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사회주의가 망한 이유눈 단순하다. 재미없어서다. 보다 재미있는 사회를 가능케 하는 정치 시스템에 대한 동경이 동독의 몰락을 가져왔다. 여타 사회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당시 동독은 절대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1989년 당시 동독의 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이상이었다. 당시 한국의 두 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동독 사람들이 정말 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면 통일 후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들을 살펴보면 된다. 장벽을 뚫고 서독으로 넘어온 다음날부터, 서독 시내의 섹스숍은 동독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발그레한 얼굴로 섹스숍을 나서는 그들에게 기자들이 느낌을 묻자, 그들은 그랬다.
"망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인데 오히려 사회주의가 망했다"-242쪽

어릴 적 꿈꿨던 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충족되지 않는 어릴 적 욕구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삶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다. -260쪽

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하려면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내 친구에게 물어본다. 저사람 누구지요?/저 사람 잘나가는 회사의 전무에요
만약 내 친구들의 입에서 이런 식의 대답이 나온다면 내 미래는 곧 참담해진다. 지금 아무리 잘나가도 곧 망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지위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게 되면, 그 사회적 지위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게 되어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내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즐겁고 재미있는 삶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다. 내 삶의 주인이 더 이상 내가 될 수 없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는 어떠한 창의적 아이디어도 나올 수 없다. -266쪽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대상에 푹 빠져 시간을 보내고 나면 정말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잘 논다는 것은 이렇게 나를 망각하고 말 그대로 정신없이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이렇게 정반대의 과정이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내면의 항상성이 제대로 유지될 수 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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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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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시대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스스로의 양식과 양심 이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댈 수 없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양식과 양심이 건강하게 작동하는지 늘 서로 감시하고 격려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남의 이목에 초연하고 상호 의존도가 높은 괴짜 가족이 되어 있었다. -8쪽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얼니 나이에 홀로 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 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ㅇ벗었다.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 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가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101쪽

열정 없이 남 보기에만 그럴듯한 턱걸이 인생만 피해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단지 성적이 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큼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세속적인 경쟁력도 열정이 좌우하지 학력이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체험하지 않는가?-139쪽

"내가 너를 사교춤 코스에 등록한다면?"
"어마 돈만 깨지는 거"
"네 친구들이 너만 빼고 전부 사교춤을 배우러 다닌다면?"
"나만 시간 낭비 안하는거"
"네가 사교춤을 안 배워서 출세에 지장이 있다면?"
"난 춤이 아니라 실력으로 출세해"
"출세를 하더라도 사교춤을 못 춰서 상류 사회에 진출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나는 억지로 춤춰야 하는 사회에는 오라 그래도 안 가"
아들보다 세살 어린 딸아이가 내 배턴을 이었다.
"오빠가 사교춤 못 춘다고 여자들이 싫어하면?"
"나도 그런 여자들 싫어"
"나중에 춤추고 싶어하는 애인을 사귀게 되면?"
"그때 가서 같이 배우면 돼. 엄마 아빠처럼"-153쪽

현대의 독일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178쪽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있게 표현해 주류의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권은 주류의 시녀일 따름이고 주류의 물길을 조정하는 것은 지성인이다.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주류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고 지성인은 물가에 박혀서 물이 흐르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조약돌이라고 하겠다. -194쪽

꼭 학식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야만 지성인이 되는 게 아니다. 머리를 빡빡 민 채 낙화산 부대의 장화를 신고 설치던 신나치주의 청년들의 폭력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기에 독일의 많은 가게의 출입문에는 엽서 크기의 노란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 카드에는 자기네 가게는 외국인이 폭력을 피해 들어올 수 있는 피난처이니 위험에 처한 외국인은 언제든지 뛰어 들어오라고 쓰여 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자기네들이 나서서 깡패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하는 도자기 가게, 유리 가게, 꽃집 주인들은 바로 독일의 지성인들이다.-200쪽

남과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경쟁적인 사람보다 감정의 소모가 적어 실력 발휘에 거침이 없다. 남과 자신에게 너그럽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자 사회의 힘이 아닐까?-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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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2-0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한테 이 책 빌려줬었는데 어제 뜬금없이 전화해서 153페이지의 대화를 읽어주더군요. ㅎㅎ 인상깊었다고. 책 어떻게 읽으셨어요?

LAYLA 2009-12-07 01:07   좋아요 0 | URL
좋았어요 정말 ^^ 리뷰 쓸게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때문에 추천입니다.

LAYLA 2009-12-07 01:09   좋아요 0 | URL
유럽의 힘은 저런 합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수정을 하는 바람에. 노이에자이트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178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