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누군가가 쓴 글을 보았는데 엄마가 죽고 난 뒤에 엄마가 만들어 둔 반찬이 아까워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 그대로 삭고 상하도록 내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을 땐 눈물이 나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을 마지막 반찬이 버려지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먹어치우려고 한다. 엄마가 살아 있을 적의 나는 뭘 잘 먹지 않아서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오래 묵힌 뒤 버리는 일을 많이 했다. 엄마가 죽은 뒤에야 후회하고 비가 내리면 우는 청개구리처럼 지금의 나는 엄마의 음식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서 최대한 많이 먹는다. 아직도 냉장고엔 엄마의 반찬이 많이 있다. 베란다에는 엄마의 고추장과 된장도. 


아빠에게는 오래 써서 튿어지고 속의 솜이 드러난 오래된 낡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거기서 주전부리도 많이 먹었기에 소파 주변은 늘 지저분했고 그래서 나는 그리로 잘 가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죽고 집 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소파를 감싸안고 우는 일이었다. 살아 있을 때 너무 오래된 그 소파의 가죽을 갈려고 알아봤더니 비용이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나중에 하자고 미뤄뒀던 일인데 이제는 아빠가 앉아 있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그 낡은 소파를 그대로 오래도록 간직할 거 같다. 


엄마와 아빠의 스마트 폰에서 유튜브 앱을 열고도 울었다. 둘의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추천 영상들에. 아빠는 중장비나 공사, 기독교에 관한 영상들. 엄마는 반찬 만드는 법이나 건강에 관한 영상들. 나는 그 알고리즘이 흐트러지기 전에 스크린 캡쳐했다. 


엄마가 죽은 뒤 내가 엄마의 방을 쓰고 있다.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이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이리저리 뒤척인다. 사실 엄마가 죽고 처음 엄마의 방에 들어섰을 때 방이 너무 썰렁해서 놀랐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엄마는 내가 내려올 때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엄마 혼자 있을 땐 이리 썰렁하게 지냈었구나. 그 뒤로 보일러를 높이고 싶지도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설에 친가 친척집에 들렀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그 집안 사람들의 이마가 모두 아빠와 똑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의 작은 아버지는 치매없이 100세를 맞았다.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사고없이 60, 70언저리의 나이를 먹었다. 나는 이제서야 우리 집안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집안 식구들 중 그 동안 사고로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어떻게 어르신들은 모두 80, 90, 100을 꽉 채워 살았단 말인가. 확률적으로 누군가가 사고로 죽지 않은 것이 이상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아빠의 환갑잔치를 치르지 않았었다. 모두 오래 사는 요즘 세상에 뭣하러 환갑잔치를 하냐고. 엄마가 먼저 손사래를 쳤었다. 80이 되지 못하였어도 아쉽고 의아하다 생각했을텐데 고작 70도 살지 못하다니. 뒤늦게 나는 치르지 않은 환갑잔치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부 납골묘에 모신 엄마아빠를 보러 갔다가 그 뒤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사망일자를 보며, 엄마아빠보다 젊어서 함께 죽은 부부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이 큰 세상의 일로 보면 참 심상한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4년만 더 살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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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24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글 보면서 혹시 부모님이 두분 함께 사고를 당하신건가 싶다가도 설마했는데요.
라일라님 두분 같이 편안하실거라고 믿어요. 그냥 그런 믿음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거 같아요.
그냥 라일라님 손 꼭 잡고 위로를 드리고 싶은데 말로만 위로를 전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1-24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마지막 반찬!
꼭꼭 씹어 오래도록 그 맛을 기억하세요.
썩어서 버려야 할 때는 더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됩니다. 그냥 엄마가 곁에 계셔 나를 위해 해주셨구나~ 생각하고 맛있게 먹는 게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인 듯 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저도 위로의 말을 전할 수가 없어 그저 잘하셨다는 말밖에는...

라로 2023-01-25 0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심적으로 좀 안정이 되신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저는 엄마의 옷이랑 양말을 챙겨 여기까지 가져와서 가끔 입고 신고 그래요. 레일라님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늘 마음 잘 추스리고 자신을 잘 돌보는 거 잊지마시길요.

LAYLA 2023-01-26 12:25   좋아요 1 | URL
여기 말고는 말할 곳이 없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라로 2023-01-30 12:39   좋아요 0 | URL
레일라님 여기에 마음껏 쓰세요,, 제가 다 읽어드릴게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제 마음도 넘 아프네요...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아니까..ㅠㅠ

2023-01-27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3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