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품절


19세기 후반까지 유럽에서는 청소년들을 공장의 단순 작업에 대거 투입하였다. 특히 소년들은 성인 임금의 절반만 받고도 거의 유사한 노동을 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더 임금을 낮추기 위해 13세에서 15세의 소녀들까지 생산 공정에 직접 투입하였다. 이런 소녀들의 노동 문제에 관해 가장 큰 관심을 가진 사람은 존 스튜어트 밀이다. 경제학사를 통틀어 단 한명의 천재를 고르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밀을 꼽을 것이지만 또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을 꼽으라고 해도 역시 밀을 꼽을 것이다. 다가올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희망에 공존하던 19세기를 살았던 밀은 생산의 원칙과 분배의 원칙이라는 두 가지 경제현상이 공존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생각의 단초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영국 소녀들의 노동과 임금에 대한 그의 관찰이었다. 15세 소녀들의 노동은 성인 남성에 비해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은 대부분 1/3혹은 절반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을 봄녀서 밀은 분배의 원칙이라는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요소들이 개입한다고 보았다. ...여담이지만 의회에서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최초의 연설을 했던 사람도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다. -53쪽

유럽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다국적 기업이 많은데, 이런 기업들은 청소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최저 임금으로 최고의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역사적으로 축적된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네슬레는 본국인 스위스에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국민기업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제 3세계에서는 무서운 기업으로 돌변한다. 실제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무상으로 분유를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되었던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국제적인 세력 중에 분유 판매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네슬레 기업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분유를 먹이고 싶어했단 아옌데의 경제 프로그램은 결국 작동되지 못했고, 아옌데는 1973년 대통령궁에서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사살되었다.-58쪽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서비스는 생산성이 아니라 안정성.-109쪽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386의 자기 결집은 사회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화하지 못했다. 즉, 대학 국유화를 쟁취한 뒤 다음 단계로 진화했던 프랑스의 68세대와는 달리 우리의 386은 대학개혁에 대해 거의 아무런 청사진이나 의미있는 노력을 개진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벌사회를 더욱 강화시키며 교육 엘리트주의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배신을 행한 세대이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68세대들이 공교육 체계를 대학까지 연장시키면서 다음 세대들이 보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고 20살에 독립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닦은 반면 우리나라의 386은 학벌주의와 경제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반작용을 했다고 할 수 있다....인적자본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386세대를 다른 세대와 비교한다면 해방 이후 가장 많은 독서를 했던 세대이고, 현재도 가장 많은 독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포디즘 이후 변화하는 경제 환경에 대해서도 이전 세대에 비하면 확실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독서할 여력이 없는 다음 세대에 비해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78쪽

...암기교육을 받아서는 세계화라는 국면에서 다양성을 위주로 한 교육을 받은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 없이 혼자서 알아서 지식을 습득 할 수 있는, 언제나 존재하는 2~3%의 천재들을 제외하면 이 인질범들에게 교육을 받아서 외국 기준에 적합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다른사람들'처럼 받아서는 선진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당연하다. 대량생산의 시기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225쪽

현재의 20대가 맞게 된 사회적 고통들의 원인은 20대에게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본질적으로 경제 구조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요인 두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결국은 한국 경제의 영광의 30년 동안 화려하게 활동했던 중소기업이 지난 5년 동안 붕괴하게 된 것과 사회적으로 경제적 약자들의 탈출구였던 자영업의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모두 한국 경제의 독과점화와 관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생산자본에서 발생한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통자본에서 발생한 일이다. 중소기업의 붕괴는 단기적으로는 20대 실업과 10%미만의 소위 '우아한 직업'에 대한 과잉 경쟁을 만들어내고 구조적으로 90%정도의 젊은이 들은 자신의 원치 않았던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자신이 원해서 간 것이 아니므로 이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기는 어렵다. 게다가 기존의 경제조직에서 완전히 내몰린 사람들이 자영업에 대한 창업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미 유통에서도 대형 할인매장과 편의점을 중심으로 독과점화가 거의 완료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90%의 젊은 이들에게는 불만족 상태에서.-241쪽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룡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것'들의 약탈장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자본주의 경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된다. 이걸 사람들이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유럽형 경제라고 할 수 있고, 법원이 직접 나서서 약간씩 완화시키는 것이 미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80년대까지 이런 일을 했었고, 박정희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에서 나름대로 이런 큰 것들만 살아남는 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일들을 했었다. 경제개발계획이나 디제이노믹스라고 불렸던 큰 경제담론에서는 이런 작은 것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것 같지만, 박정희 대통령만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매달렸던 대통령도 별로 없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예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벤처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나름대로의 균형과 안정성을 만들어냈다. 본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나름의 다양성과 안정성, 즉 다안성이 등장한 셈이다. 탈 포드주의 시대로 갈수록 이런 다안성의 전략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253쪽

스웨덴에 유학 가는 사람들은 입학 허가서와 함께 입학 안내서를 받게 되는데, 스톡홀름에서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수 없으므로 만약 스타벅스를 좋아한다면 미리 충분히 마시고 오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아주 자상도 하신 조언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상징적인 일이지만, 스웨덴은 유럽 중에서 노동조합과 20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리케이드를 공유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에는 노조들이 강성 노조이지만, 평소에는 20대와 바리케이드를 공유하지 않는데, 스웨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90년대 후반부터 스웨덴은 생애 첫 자금 지원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20세가 되면 2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은행 창구를 통해서 지원을 하게 된다. 이 돈을 받은 사람은 등록금에 보태거나 주거권에 사용할 수도 있다. 많은 대학생들이 이 돈을 가지고 전 세계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립대학이라서 등록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주어지는 2000만원은 스웨덴 청년들이 경험과 지식을 높이는 데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된다. 물론 스웨덴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라서 이런 제도를 운용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기성세대가 만들어놓-288쪽

은 사회적 바리케이드가 20대에게도 제공된 경우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20대에게 적절한 기회를 주고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바리케이드를 제공하는 이런 나라들이 앞으로도 잘 살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고, 정규직의 일자리 나누기가 스웨덴 자동차 회사 이름을 따 볼보주의라고 불리는 것도 이러한 사회의 맥락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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