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경제 운용 방식으로, 그러니까 거시적으로 분석하면 지금 우리가 이해해는 것과 조금은 다른 얘기들이 나올 수 있다. 케인스 시대에는 국가가 직접 경제에 개입해서라도 자본주의가 사회주의 그리고 코민테른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썼다. 흔히 케인스 경제 체제를 수정자본주의라고 한다. 자본주의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해 사회주의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원래 자본주의에는 없던 많은 복지와 후생 장치들을 만들어 넣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복지와 후생 장치들의 탄생 배경은 조금 다르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복지 제도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틈만 나면 해체하려고 하는 의료보험 제도만 해도 박정희 때만들어져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확대 실시되었다. 한국 우파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이런 복지 제도들은 실은 대부분 군사정권이 민중들에게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만든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 특별한 시장 근본주의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너진 90년대 초. 중반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본주의로서는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상횡이었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부의 약-46쪽
자 들에겐 잔인한 경제 시스템이다. 그들이 탈출구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이미 무녀져, 국가로서는 굳이 그들에게 뭘 더 해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는 집회, 시위 등 내부약자들의 저항만 해결하면 된다. -47쪽
엘리트들, 스카이 대학 학생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먼저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이들이다.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는, 국민경제를 운용하는 케인스주의 다음에 왔던 매우 특수한 경제적 양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영구한 신앙과 같은 것이다. 경쟁은 아름답고, 그러한 경쟁만으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생존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금 한국의 대학이다. 그중에서도 부모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특출 난 일류 대학들이다. 이념으로서 신자유주의 개념은 학술적으로 볼 때 아주 복잡하며, 개인이 내면화한 것이라 철학적으로 정의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앞에 서 있으면 열에 아홉은 그런 신자유주의를 가슴 깊이 담고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들을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경쟁해서 친구를 이기면 천국이 펼쳐진다는 단 한마디만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한 명씩 걸어가는 육화된 신자유주의 이념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저기, 신자유주의가 걸어가고 있다.
헤겔이 자신의 하숙집 밑으 지나가는 말을 탄 나폴레옹을 보면서 "저기 절대정신이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면, 지금 우리는 "저기, 신자유주의-50쪽
가 걸어가고 있다"며 대학가에서 고뇌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신자유주의들도 실은 불편하고 외롭지 않을까-50쪽
정말로 답 없는 이명박과 청와대에 계신 분들이 그러나 한국의 20대에 대해서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들은 소비에 더 길들여져 때때로 소비적 존재로 여겨지고 정치적으로는 나약하고 무기력해 보일지 몰라도, 대단히 미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그리고 대기업CEO가 20대들의 이상이란 관점에서, 어쩌면 이명박과 20대는 오히려 이명박과 50대보다 더욱더 환상의 복식조를 이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 지금 20대들이 얼마나 민감한 존재들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80년대 전두환에 대한 미각적 거부감은 있어 '대머리'라는 말로 상실감을 표현했지만, 그 시기에는 이성이 작동해야 한다는 시대정신 때문에 감성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간지가 맨 앞에 나오는 시기다. 이명박 정부의 치졸한 정책들과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계속되는 너무 뻔한 거짓말들이 지금 20대들의 미학과는 도저히 맞지 않는 것 같다. ..간지를 목숨처럼 여기는 이 20대들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명랑함. 그렇다고 이들이 이명박 싫다고 바로 민주당이나 진보신당 같은 데로 관-69쪽
심을 돌릴까? 그럴 리가 있나. 많은 20대들에게 간지는 취향이 아니라 존재 이유다. 불의는 참아도 추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이 독특한 감성,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다음 세대들의 존재론 아니겠는가. -70쪽
지금 20대들은 성인들의 세계에 잘못 태어난 난쟁이라고 자신들을 생각 할 수도 있다. 맨손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 냈다며 자부심이 대단한 50대들의 세계에서 20대는 이해할 수 없는 난쟁이들일 뿐이다. 전두환도 꺾고 노태우도 내몰았던 40대들에게 지금의 20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패배자들이고 지독한 회의론자들로 비추어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원에 관해서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하고, 자기가 쌓은 경험이라는 단 하나의 창으로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야속하겠지만 원래 인간이 그러한데 어쩌겠는가-76쪽
프랑스 학생들이라고 해서 덜 경쟁하거나 학업의 부담이 적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유럽의 경제는 한국에 비하면 더 많은 다양한 삶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현실로 인해 감옥 한번 갔다 왔다고, 대학에서 1년 유급됐다고 해서 인생이 끝날 정도로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유럽 대학생들은 중.고등학교 때 한국과 달리 독서와 사색 그리고 토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 학생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고, 개개인마다 엄청난 철학적 사색을 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프랑스 대학에는 한국과 달리 운동권이 탄탄하게 자리 잡고 거대한 좌파 블록도 조직화 되어 있을거라고? 최근 한국 대학에서 사회과학 동아리들이 망했다고 난리지만 프랑스에는 일부 체육 관련 동아리를 제외하면 동아리 자체가 아예 없다. 따라서 유럽과 한국 대학생들의 상황이 다른 것은 실제로 그 나라의 경제 구조가 달라서다. 프랑스 대학생들도 한국과 같은 스펙 경쟁 구조에 놓이면 별 수 없다는 말이다. -106쪽
민주주의를 말할 때 반드시 언급하는 스위스조차도 1971년에야 여성들의 투표권을 인정한 것을 보면 해방 직후 여성들에게도 남성과 똑같이 참정권을 준 한국의 제헌의회가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그냥 주어진 것과 스스로 쟁취한 것에는 그 내용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건 스위스에선 이미 여러 번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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