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죽고 난 뒤에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해서 등 뒤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사무실에 나가면 돈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직원들은 이건 어떻게 해야 하냐 저건 어떻게 해야 하냐 내 입을 바라보는데 나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편 떼인 돈 또한 많았다. 사람들은 엄마아빠의 장례가 끝나기 무섭게 입장을 바꿨다. 늘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지식이란 단단한 근거 위에서 판단을 내리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밤이면 이대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그리고 눈이 떠지는 순간 공포로 온 몸이 차가워졌다. 의사는 항불안제를 처방해줬는데, 그래서 그 뒤로 나는 눈을 뜨자마자 먼저 약부터 삼키고 불안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뒤로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가며 나는 내가 변할것임을 알았다. 나름 똑똑하고 메타인지가 있는 사람이니까. 시간은 나를 살려주겠지만 동시에 나를 돌아버리게 만들겠지. 사람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 소송이 주는 압박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을 수소문하고 두드리는 절박감과 초조함. 아무리 숫자를 맞춰도 필요한 돈이 나오지 않을 때에는 카페에 앉아 눈물만 뚝뚝 흘리기도 했다. 사업장에 불이 났을 땐 불을 보러 나온 마을 주민들 앞에서 울면서 뒹굴었다. 제가 뭘 잘못했다고요. 제가 뭔 죄를 지었다고요. 연극 배우나 할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경매에 들어간다고 법원 문서를 받아보던 날 아침에는 쿵, 심장이 떨어지며 등 뒤 뿐만 아니라 두피까지 삐죽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지. 사실 나는 지난 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순간순간 모든 기운과 지력을 닥친 일을 해결하는 데 사용한 나머지 기억을 저장할 여력은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과거를 떠올리면 막연한 고통만이 느껴질 뿐이다. 가슴이 쪼그라드는 것 같은 고통. 전화기를 붙잡고 변호사에게 매달리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간절히 매달리고, 상대의 헛점을 찾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소송기록을 밤새도록 보고 또 보고.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고 기적같이 상황은 나아져갔다.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정말 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는. 아직도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빚이 남아있지만 빚을 다 갚을 날을 고대한다는 점에서는 빚을 다 갚지 못하고 평생을 보낼 수 있다는 공포에 압도되었던 지난 날에 비하면 호사스런 처지이다.


작년 건강검진을 받으며 의사가 보호자가 같이 왔냐고 물었을때 아니라고 답했다. 보호자가 병원에 동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는 보호자가 없는데. 어쨌든 당시의 소감이라면 놀라움이나 두려움, 서러움이 아니라 담담함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은 그런 심정. 보통의 사람이라면(예전의 나라면) 일 년에 한 두번 있을까 말까한 극도의 긴장, 큰 시험을 앞두었을 때나 하는 그런 강도의 긴장을 나는 매일 하며 살고 있고 그러니 암에 걸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여러 추가검사 결과 나는 암은 아니었지만 신체의 여기저기에서 암으로 진행중인 비정상적인 조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네. 이젠 암이 되기도 전에 다 발견하다니. 나는 여전히 담담했고 아프면서 오래 살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고 내가 죽은 뒤 현실의 문제를 처리할 사람에게 당장 현금이 필요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금은 중요한 것이다. 


내가 언젠가는 돌아버릴거 같은데, 그 예언 또한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요즈음 느낀다. 냉소, 괴팍함, 예술에는 흥미가 떨어지고 어떤 책을 봐도 그다지 읽고 싶지가 않다.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써봐야 무언가 이상하다. 맞지 않는 블럭조각을 억지로 끼워 맞춘듯. 이 또한 그다지 슬프지 않다. 예정했던 일이 예정했던 시기에 일어나는 것처럼, 아 역시. 그렇구나 싶을 뿐. 그렇지만 올해의 김승옥 문학상 수상집이 나왔나 검색을 해보다 이제는 아는 이웃들이 모두 떠나가고 조용하고 텅 빈 서재브리핑을 보다가 옛 이웃들이 궁금하여 글을 써본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비밀의 대나무숲 이곳에. 저는 아직 이렇게 살아있고 나의 이웃들도 모두 안녕하시길. 


*보시는 오랜 이웃님들이 계시다면 잘 지내시는지 댓글을 남겨주세요. 아마 이 글은 곧 비공개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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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2025-10-17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LAYLA 님 네임을 보고 오래 전에 제 서재에 들리시고 댓글로 얘기 나눈 분인가 해서 확인해 보니 맞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셔서 무슨 말을 쓸까 주저했습니다. 다만 쓰신 글을 보며 마음 아픔을 느꼈음을 적고 싶습니다. 알라딘 서재라는 허약한 공간에서 스치듯 글로 만났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혼자 계실 때 LAYLA 님께 티끌같은 에너지라도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건강 잘 관리하시길 바랍니다.

2025-10-17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17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10-18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저녁에 찾은 선술집엔 디제이 박스가 있었다. 입석 테이블에 서서 하이볼을 마시며 디제이가 틀어주는 시티팝을 들었다. 오너가 권한 사케를 마셨다. 다음 술은 뭘 마실까요. 내가 묻자 그는 또 다른 술을 내어주었다. 기분이 좋았다. 


시티팝은 어느새 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가요로 바뀌었고 나는 동행과 함께 가벼운 춤을 췄다. 자연스레 옆의 남자와 어깨가 부딪혔다. 그는 나만큼 올드 케이팝을 좋아했다. 성시경과 임재범과 박진영과 쿨 핑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감탄하고 환호하는 그가 귀엽다 생각했다. 


나는 그가 나와 비슷한 또래일거라 생각했다. 이렇게나 올드 케이팝에 즉각적으로 환호할 수 있단 건 정말로 그 노래와 청춘을 함께한 같은 세대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깨가 스치다가 건배를 하고 같이 춤을 췄다. 몇 살이세요? 먼저 물은 건 나였다. 저, 서른이요. 강아지처럼 순하게 웃는 얼굴이 귀여워서 서른이란 나이가 어색하지 않긴 했지만 나는 되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노래를 다 알아요? 그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저 이런 노래 좋아하거든요. 인터넷에서 보았던, 이전 세대의 노래를 유튜브로 배우고 애정한다는 요즘 청년인듯 하였다. 마치 어린 내가 내 이전 세대가 사랑했던 홍콩 영화를 한 철 지나 사랑하였듯이. 


다시 또 같은 리듬에 고개를 까딱이다 그가 물었다. 몇 살이세요? 나는 웃었고 내 동행이 대신 답했다. 많아요. 아주 많아요. 그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저 보다 많다구요? 술집은 꽤 어두웠다. 정말로 몇 살이에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에게 나는 내 출생년도를 말했고, 그는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기분이 특별히 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의미가 있는 말이 존재할 공간도 상황도 아니니까. 이 노래들 좋아해서 우리 나이가 비슷한 줄 알았어요. 내 말에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답했다. 우리 같은 노래 세대잖아요. 에이치오티, 핑클, 에스이에스. 그렇지 않아요? 그에겐 이국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교포들 특유의 해사하고 밝은 웃음이랄까, 그리고 약간은 어눌한 발음까지. 음악이 시끄러워 그에게 다가서 말을 하다 그의 귓볼에 내 입술이 스쳤고 그는 자신이 교포는 아니라 말했다. 저 광고해요. 컨텐츠 만들구요. 


오너가 마감하고 같이 한 잔 더 하자고 해서 기다리는 사이에 그 역시 계산을 하고 업장을 나가기 전 나의 인스타그램을 물었다. 나의 인스타그램. 나의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인 나의 인스타그램엔 술집에서 만난 남자에게 보여주기엔 애매한 것들이 많았다. 부모의 죽음, 사업상의 사고와 어려움, 그래서 내가 언제 어떻게 슬펐는지에 관한 감상적인 문장들, 기타 등등. 나는 내 인스타그램을 말하는 대신 내 폰을 내밀고 그의 인스타그램을 먼저 받았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힙했다. 쿨이 아니라 에스파나 뉴진스와 더 어울렸다. 그의 나이와 외모와 업계가 그러하듯이. 나는 그의 친구신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놔두었다.


2차 술자리까지 다 마친 다음 올라탄 택시가 빠르게 달리는 동안 변호사 미팅 녹음파일을 들었다. 내가 처한 현실은 이런 것이다. 소송과 강제경매와 돌아서면 돌아오는 직원들 월급날짜와 대출금 이자. 서른인 친구는 너무도 귀엽지만 그와 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임재범의 이 밤이 지나면의 클라이맥스에서 함께 립싱크를 할 수 있단 것 외에. 하지만, 난 분명히 그런 생각을 했다. 강제경매를 막고 성공적으로 엑시트 한다면, 그래서 현생의 번뇌의 고통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이런 귀여운 남자아이와 춤이나 추고 술이나 마시고 그가 환한 낯에 내 얼굴의 그늘을 발견한 뒤 마음이 변하기 전까지는 함께 재미있게 놀겠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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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가 죽고 며칠 지나고부터 주변 사람들이 엄마와 아빠를 꿈에서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하얀 차를 타고 집 앞으로 왔다느니, 사업장 걱정을 하며 도움을 부탁했다느니. 나는 왜 내 꿈에도 나타나지 않는 내 부모가 남의 꿈에 나타날까 의아해하며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들었다가 시간이 지나고 알아차렸다. 망인에 대한 꿈을 꿀 정도로 애틋한 마음도 없는 이들이 상심한 척, 자신과 망인이 특별한 사이인 척 하려 그런 거짓말도 한다는 것을. 실제의 인간은 소설에서 보던 인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흉했다.


신은 믿지 않지만 귀신이라고 할까, 그런 건 어느 정도 믿는 나는 정말로 왜 나는 부모에 대한 꿈을 꾸지 않을까 궁금했다. 갑자기 사고로 죽어 한도 많고 남기고 간 뒷일을 자식들이 감당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찠어질텐데 왜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을까. 그리고 2달이 지나서야 어젯밤에 처음으로 부모에 대한 꿈을 꿨다. 그런데 이 꿈은 신기한 것이 부모가 나오지 않는 부모에 대한 꿈이란 점이다. 


꿈속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처럼 깨끗하고 밝고 선명했고 비가 내려 물이 넘치는 여름이었다. 여동생과 나는 물이 넘실거리는 강 위의 나무 다리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엄마 안돌아왔으면 어쩔뻔 했노." 우리는 엄마가 아빠가 오랜 여행에서 돌아와 안도하고 있었고 그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나게 놀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꿈 속에서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엄마는 놀다가 돌아갈 우리를 위해 국수를 삶고 있고 아빠는 트럭을 몰고 산으로 일하러 갔다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꿈이라 할 지라도 엄마와 아빠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사고 소식을 듣고 외국에 살고 있는 동생에게 연락하던 순간에도 나는 돌아가셨다거나 사고가 났다거나 잘못되었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정확하게 '죽었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렇다. 죽은 건 죽은 것이니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아직도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버겁지만 적어도 죽은 건 죽은 거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나이는 되었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젯밤의 꿈에서만큼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어리광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정말로 순수하게 나는 내 부모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 언제나 돌아갈 수 있고 나를 해치지 않고 큰일은 책임져줄 부모가 있다는 그 마음이 어찌나 편안하던지. 


그래서 꿈에서 나는 내 부모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느낄 수 있었고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동안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강렬한 꿈이었다. 그리고 그건 부모의 얼굴을 잠시 보는 꿈보다 더 좋은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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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3-02-1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흐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꼬마요정 2023-02-15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람돌이 2023-02-16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던 꿈이라도 꾸실 수 있어 다행이다 싶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프네요. 그냥 많이 슬퍼하고 많이 그리워하세요. 우리 마음이 그저 슬프고 그립다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맞을거같아요.

2023-02-16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3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5 1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쓴 글을 보았는데 엄마가 죽고 난 뒤에 엄마가 만들어 둔 반찬이 아까워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서 그대로 삭고 상하도록 내내 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을 읽을 땐 눈물이 나고 나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엄마가 열심히 만들었을 마지막 반찬이 버려지지 않도록 최대한 많이 먹어치우려고 한다. 엄마가 살아 있을 적의 나는 뭘 잘 먹지 않아서 엄마가 보내준 반찬을 오래 묵힌 뒤 버리는 일을 많이 했다. 엄마가 죽은 뒤에야 후회하고 비가 내리면 우는 청개구리처럼 지금의 나는 엄마의 음식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서 최대한 많이 먹는다. 아직도 냉장고엔 엄마의 반찬이 많이 있다. 베란다에는 엄마의 고추장과 된장도. 


아빠에게는 오래 써서 튿어지고 속의 솜이 드러난 오래된 낡은 가죽 소파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그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거기서 주전부리도 많이 먹었기에 소파 주변은 늘 지저분했고 그래서 나는 그리로 잘 가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죽고 집 안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소파를 감싸안고 우는 일이었다. 살아 있을 때 너무 오래된 그 소파의 가죽을 갈려고 알아봤더니 비용이 100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 나중에 하자고 미뤄뒀던 일인데 이제는 아빠가 앉아 있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그 낡은 소파를 그대로 오래도록 간직할 거 같다. 


엄마와 아빠의 스마트 폰에서 유튜브 앱을 열고도 울었다. 둘의 관심사가 그대로 드러나는 추천 영상들에. 아빠는 중장비나 공사, 기독교에 관한 영상들. 엄마는 반찬 만드는 법이나 건강에 관한 영상들. 나는 그 알고리즘이 흐트러지기 전에 스크린 캡쳐했다. 


엄마가 죽은 뒤 내가 엄마의 방을 쓰고 있다.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는 이 모든 일이 현실이 아니길 바라며 이리저리 뒤척인다. 사실 엄마가 죽고 처음 엄마의 방에 들어섰을 때 방이 너무 썰렁해서 놀랐다. 그리고 곧 알아차렸다. 엄마는 내가 내려올 때만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엄마 혼자 있을 땐 이리 썰렁하게 지냈었구나. 그 뒤로 보일러를 높이고 싶지도 않아서 그대로 두었다. 


설에 친가 친척집에 들렀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그 집안 사람들의 이마가 모두 아빠와 똑같이 생긴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빠의 작은 아버지는 치매없이 100세를 맞았다. 집안의 사람들은 모두 사고없이 60, 70언저리의 나이를 먹었다. 나는 이제서야 우리 집안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집안 식구들 중 그 동안 사고로 죽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인가. 어떻게 어르신들은 모두 80, 90, 100을 꽉 채워 살았단 말인가. 확률적으로 누군가가 사고로 죽지 않은 것이 이상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아빠의 환갑잔치를 치르지 않았었다. 모두 오래 사는 요즘 세상에 뭣하러 환갑잔치를 하냐고. 엄마가 먼저 손사래를 쳤었다. 80이 되지 못하였어도 아쉽고 의아하다 생각했을텐데 고작 70도 살지 못하다니. 뒤늦게 나는 치르지 않은 환갑잔치를 아쉬워한다. 


그리고 동시에, 부부 납골묘에 모신 엄마아빠를 보러 갔다가 그 뒤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사망일자를 보며, 엄마아빠보다 젊어서 함께 죽은 부부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이 큰 세상의 일로 보면 참 심상한 일이구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4년만 더 살고 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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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4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24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번 글 보면서 혹시 부모님이 두분 함께 사고를 당하신건가 싶다가도 설마했는데요.
라일라님 두분 같이 편안하실거라고 믿어요. 그냥 그런 믿음이 우리를 견디게 하는거 같아요.
그냥 라일라님 손 꼭 잡고 위로를 드리고 싶은데 말로만 위로를 전합니다.

책읽는나무 2023-01-24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의 마지막 반찬!
꼭꼭 씹어 오래도록 그 맛을 기억하세요.
썩어서 버려야 할 때는 더 마음이 아프고, 후회가 됩니다. 그냥 엄마가 곁에 계셔 나를 위해 해주셨구나~ 생각하고 맛있게 먹는 게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을 방법인 듯 합니다.
잘 하셨습니다.
저도 위로의 말을 전할 수가 없어 그저 잘하셨다는 말밖에는...

라로 2023-01-25 0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다는 건 심적으로 좀 안정이 되신 거라고 믿고 싶어요. 저는 엄마의 옷이랑 양말을 챙겨 여기까지 가져와서 가끔 입고 신고 그래요. 레일라님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늘 마음 잘 추스리고 자신을 잘 돌보는 거 잊지마시길요.

LAYLA 2023-01-26 12:25   좋아요 1 | URL
여기 말고는 말할 곳이 없어요. 마음이 너무 아파요...

라로 2023-01-30 12:39   좋아요 0 | URL
레일라님 여기에 마음껏 쓰세요,, 제가 다 읽어드릴게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제 마음도 넘 아프네요... 엄마가 없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아니까..ㅠㅠ

2023-01-27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31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강남역의 한 카페에 앉아 형법각론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오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이 된다고, 찾으러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카페는 강남대로변에 바로 접하고 있어서 온갖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들로 환했기에, 저녁 6시 30분이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나는 겨울철의 저녁 6시 30분은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린 즈음이라는 것을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동짓날이 될 때까지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시계를 보고 바깥을 보았다. 세상은 도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수준으로 깜깜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아빠를 향해 무작정 달린걸까? 


동짓날이 오자 작년의 동짓날이 떠올랐다. 세상이 너무 힘들었던 작년의 겨울날에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해가 길어지니 다행 아니냐고. 겨우 하루 몇 분씩 길어지는 해를 의지로 삼을만큼 우리는 괴롭고 절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더 괴로운 동짓날이 있을 줄은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동지가 지나고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저녁 6시 30분의 세상은 깜깜하기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를 생각하면 차오르는 슬픔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으로 추위를 꼽던 나는 엄마가 죽은 다음날부터 일부러 찬 바람을 맞고 다닌다. 추위 따위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몇 시간 뒤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던 강남역의 카페에 오늘 처음으로 다시 가봤다. 저녁 6시 30분, 밖을 보았다. 세상은 정말 환하고 밝고 안전해보였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째서 나의 부모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당연하지 않은 일에 대한 의문이 약간의 분노와 함께 치밀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백발의 노인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에 의지해 다니는 시골의 노인들. 사고 전까지 나는 노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젊은 생을 산 것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젊은 시절에 비하면 못한 생의 일부분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며 삶의 축복과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그리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애초에 괴로움이 커서 생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산 것은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 것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세상에 없으니, 내가 없으면 남은 가족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커서 살아야 한다. 엄마가 그들을 사랑했으므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의미를 찾아 헤매고 생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의미나 노력, 정의 같은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작동한다. 음주운전자에게 치여 죽고 암에 걸려 죽고 어딘가에서 떨어져서 죽는다. 죽음은 그 자체로 이 생에 의미가 없다는 걸 반증한다. 나는 그 헛됨을 떠올리며 내 부모의 죽음도 자연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아프리카에서는 하마에 물려 한 해에 3000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될 때면 곱씹는 방식으로.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내 부모의 죽음도 큰 세상의 일로 보자면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구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의 덕인지 일상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면 슬픔이 가슴을 때리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머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단 사실이 논리적인 문장처럼 떠오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엄마가 떠오르고 마음이 아픈 때는 엄마가 살던 본가에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혼자서 살던 서울 집을 방문할 때이다. 내가 누리던 자유와 사랑하던 혼자만의 고독이 사실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홀로 있을 때 깨닫는다. 내 반찬을 걱정하던 엄마, 지치면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라던 엄마, 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니 잘못이 아니다 넌 정말 아까운 딸이다 위로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젠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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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16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일라님....

책읽는나무 2023-01-16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저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편이라 늘 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머님은 라일라님을 잘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굳건하시길...

다락방 2023-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일라 님.
라일라 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갑니다.

2023-01-1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16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에 어머님이랑 스위스 갔던 글들 보면서 저는 우리 엄마도 조금 더 젊고 힘이 있었으면 이렇게 같이 해외여행도 다녔을텐데하면서 부러워했었는데요.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라일라님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를 잃은 마음에는 어떤 말도 위로 안될거 같아서.... 그저 많이 슬퍼하시고 그리워하시라는 말밖에 못하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