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강남역의 한 카페에 앉아 형법각론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엄마는 아빠가 오후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걱정이 된다고, 찾으러 나가봐야겠다고 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앉아 있는 카페는 강남대로변에 바로 접하고 있어서 온갖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들로 환했기에, 저녁 6시 30분이 그리 어둡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죽음 이후에야 나는 겨울철의 저녁 6시 30분은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내린 즈음이라는 것을 되었다. 장례식을 치르고 동짓날이 될 때까지 저녁 6시 30분이 되면 시계를 보고 바깥을 보았다. 세상은 도시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수준으로 깜깜했다. 엄마는 어떻게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아빠를 향해 무작정 달린걸까? 


동짓날이 오자 작년의 동짓날이 떠올랐다. 세상이 너무 힘들었던 작년의 겨울날에 엄마는 말했다. 그래도 이제 해가 길어지니 다행 아니냐고. 겨우 하루 몇 분씩 길어지는 해를 의지로 삼을만큼 우리는 괴롭고 절박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더 괴로운 동짓날이 있을 줄은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던 일이다. 


동지가 지나고도 몇 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저녁 6시 30분의 세상은 깜깜하기만하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를 생각하면 차오르는 슬픔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으로 추위를 꼽던 나는 엄마가 죽은 다음날부터 일부러 찬 바람을 맞고 다닌다. 추위 따위는 사람이 인생을 사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엄마의 마지막 전화를 받고 몇 시간 뒤 사고 소식을 전해들었던 강남역의 카페에 오늘 처음으로 다시 가봤다. 저녁 6시 30분, 밖을 보았다. 세상은 정말 환하고 밝고 안전해보였다. 내가 엄마의 전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은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어째서 나의 부모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당연하지 않은 일에 대한 의문이 약간의 분노와 함께 치밀었다. 


그 날 이후 나는 백발의 노인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지팡이를 짚거나 보행기에 의지해 다니는 시골의 노인들. 사고 전까지 나는 노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굳이 따지자면 젊은 생을 산 것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 젊은 시절에 비하면 못한 생의 일부분이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한다.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며 삶의 축복과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그리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애초에 괴로움이 커서 생에 대한 큰 의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산 것은 내가 죽으면 엄마가 슬퍼할 것이 싫어서였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세상에 없으니, 내가 없으면 남은 가족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커서 살아야 한다. 엄마가 그들을 사랑했으므로.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의미를 찾아 헤매고 생에 의미를 부여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은 의미나 노력, 정의 같은 것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작동한다. 음주운전자에게 치여 죽고 암에 걸려 죽고 어딘가에서 떨어져서 죽는다. 죽음은 그 자체로 이 생에 의미가 없다는 걸 반증한다. 나는 그 헛됨을 떠올리며 내 부모의 죽음도 자연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전쟁으로 죽어가는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 아프리카에서는 하마에 물려 한 해에 3000명의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될 때면 곱씹는 방식으로. 그렇구나. 그런 것이구나. 그러니, 내 부모의 죽음도 큰 세상의 일로 보자면 그리 유별난 일이 아니구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의 덕인지 일상에서 바쁘게 일을 할 때면 슬픔이 가슴을 때리지 않는다. 그저 끊임없이 머리에서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단 사실이 논리적인 문장처럼 떠오른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엄마가 떠오르고 마음이 아픈 때는 엄마가 살던 본가에 있을 때가 아니라 평소에 혼자서 살던 서울 집을 방문할 때이다. 내가 누리던 자유와 사랑하던 혼자만의 고독이 사실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엄마가 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홀로 있을 때 깨닫는다. 내 반찬을 걱정하던 엄마, 지치면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라던 엄마, 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하고 니 잘못이 아니다 넌 정말 아까운 딸이다 위로해주던 엄마. 그런 엄마가 이젠 없다는 사실을 아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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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16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레일라님....

책읽는나무 2023-01-16 0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째서 내 엄마는 노인이 되지 못했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저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편이라 늘 그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어머님은 라일라님을 잘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굳건하시길...

다락방 2023-01-16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라일라 님.
라일라 님의 이름을 한 번 부르고 갑니다.

2023-01-16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3-01-16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이렇게 갑작스럽게... 전에 어머님이랑 스위스 갔던 글들 보면서 저는 우리 엄마도 조금 더 젊고 힘이 있었으면 이렇게 같이 해외여행도 다녔을텐데하면서 부러워했었는데요.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기를..... 라일라님께는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위로가 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를 잃은 마음에는 어떤 말도 위로 안될거 같아서.... 그저 많이 슬퍼하시고 그리워하시라는 말밖에 못하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