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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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파트에는 거울이 없다. 거울이 있다면 얼굴을 비춰보면서 주름살을 세고 그렇게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오십 년 전이나 사십 년 전, 아니면 육십 년 전 그때는 가을이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알 고 있다. 내 생애의 에피소드에 또 다른 에피소드를 추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그때 나는 거울을 모두 깨뜨려버렸다. - P10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잊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왜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가치조차 없었던 사소한 사건들을 기억 속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는 마치 사용된 인생의 증거로서 쓸모가 있다는 듯 백 번도 넘게 다시 그것을 뒤져 보여주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다. 내 인생에는 잊히지 않아야 할 것들이 많지 않았다. 간직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만 모으면 내 인생은 상당히 짧은 인생이 되었다. - P15

사랑은 바이러스처럼 침입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 틀어박혀 조용히 머물러 있다가 어느 날엔가 우리가 충분히 저항력이 떨어지고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고 생각될 때, 그때 불치의 병이 되어 터져 나온다. - P24

독단조차도 지속적으로는 제대로 교육받은 지성이 필요하다. - P35

가끔 나는 베를린 장벽도 프란츠가 마침내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무너졌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놓쳐서 아쉬운 모든 것에 대해 위로받기 위해 매일 아침 브라키오사우루스 앞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덜 불행하게 흘러갔다면, 그래서 브라키오사우루스 아래의 그 자리가 동시에 몬태나였고 뉴저지였고 매사추세츠 주 사우스해들리에 있는 플리니 무디의 정원이 되었던 일이없었다면, 그랬다면 프란츠가 그곳에서 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 P43

전쟁이 없다면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이 그저 인간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용기와 기사의 충성심같이 남자들의 것으로 간주되는 일정한 특성들이 오직 전쟁을 통해 규정되고 미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남자들을 말살시킴으로써 그들을 그렇게 소중한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남자들이 그렇게 끔찍한 행위들을 저질러도 여자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게 되었고 자신들에게 있어서 군인다운 특성들이 최고의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 P59

나는 자기 부모의 자손이라는 것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을 많이 알지 못한다. 부모를 닮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그와 반대로, 내가 알게 된 사람들 거의 모두가 부모와 닮아간다는 당연한 위협에 대해 기겁을 했다. - P60

청춘의 사랑은 단순히 젊은 시절에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청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견주어 잴 수 있을 어떤 것도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아직 실망을 극복할 필요도 없고 이전의 행복을 능가하지 않아도 되고, 그 무엇도 반박하거나 수정하거나 대체하지 않아도 된다. - P75

노인은 어찌할 수 없는 절망감에 맞서 다양한 감정들을, 프란츠에 대한 자의 정열과는 조금도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고안해낸다. 동물 사랑, 어린이 사랑, 자연 사랑, 일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사랑, 인간애, 음악애호, 일반적인 예술애호....교화된 인간은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사랑한다. 그는 개를 사서 개를 사랑한다. 개가 죽으면 개를 새로 사서 그 개를 다시 사랑한다. 나에게는 그것이 쉬웠다. 프란츠를 만나기 전에 나는 그 영원한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사랑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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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5 - 사과와 링고
이희주 외 지음 / 북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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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빈티지 엽서가 너무 좋아서 완독하자마자 다시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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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앰버슨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0
부스 타킹턴 지음, 최민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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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들은 A급의 고전이 되지 못했나 고찰하는 재미가 있는 휴머니스트 문학전집. 이번 책은 산업혁명기에 몰락한 가문을 다루고 있다. 책 소개를 보면 부잣집 아들이 자신의 어머니와 썸녀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 연인이었음을 알게 되며 갈등이 생긴다고 적혀있고, 그러니까 그 갈등과 막장 뒤에 몰락이 온다는 것일텐데. 도파민 터지게 하는 소재모음에 당장 책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독서를 이어나가는 과정은 무척 느렸는데, 그러니까 사실 도파민이 그다지 싹 돌지 않았던 것.


A급 문학에서 몰락은 인간의 욕망으로 스스로 자초한 것이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어야 하고 도망갈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인간의 몰락은 표면적으로는 부잣집 도련님의 오만함 때문인것처럼 그려지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몰락은 산업혁명기 시대의 변화 때문이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문은 말에서 자동차로 빨리 갈아타지 않은 탓에 가세가 기울어간다. 


일론 머스크를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존재하는 21세기를 사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건 주인공의 사랑이나 갈등이 아니라 이 책에서 그리는 시대였다. 정확히 150년쯤 전에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고, 테슬라 주주들은 자신들이 포드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지만 과연 그럴지? 그리고 그 것이 이 책의 패착요인이었다. 어느 독자가 문학을 읽으며 이런 감상을 느끼고 싶겠는가?


몰락한 부잣집 아들의 바닥을 생생히 그려냄으로서 그 시대 독자들이 원하던 권선징악을 잘 구현한 것이 인기의 요인 아니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서 그린 작품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A급 고전은 되지 못한다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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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앰버슨가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0
부스 타킹턴 지음, 최민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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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건 젊은이건 모두 젊은 연인이 나오는 연극을 즐기지만, 중년 연인이 나오는 연극을 관대하게 받아들일 이들은 오로지 중년 뿐이다. - P57

"네 또래의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안다는 건 내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기쁜 일이지." - P161

시간은 정말로 날아간단다. ...내 말은 우리가 가진 것들과 우리 생각에 참으로 견고해보이는 것들은 사실 연기와 같다는 얘기야. 그리고 시간이란 그 연기가 올라가는 하늘과 같은거지. 너도 연기가 굴뚝에서 어떻게 소용돌이치며 올라가는지 알잖니. 두텁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향해 분주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마치 무척이나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그 일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 그러다가 점점 가늘어지더니 얼마 안있어 자취도 없이 사라져.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하늘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상태를 유지하지. - P162

그가 격렬한 몸부림도 한 번 치지 않은 채로 이런 몰락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몸부림은 내면적인 것이었고, 정신없이 굴러가는 세상은 그런 고투에 동요하지 않은 채 조용히 계속 굴렀다. - P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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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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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바실리 악쇼노프는 러시아 카잔에서 태어난 현대 작가로 우리에게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30년대에 태어났고, 의사이며 ‘작가는 도덕과 교훈 따위의 전염병을 피해야 한다‘라는 그의 좌우명 정도가 그와 관련해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 P77

"내가 여러분에게 하는 말을 명심하세요. 각자 아침식사로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 두 개씩을 받게 됩니다. 버터는 집에 두고 왔으니 잼이 될 만한 것을 스스로 찾아야 해요. 숲속에는 산딸기가 지천이에요. 물론 그것을 찾을 수 있는 사람 것이겠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맨 빵을 먹어야 할 겁니다. 인생이 다 그런 거예요. 모두들 내 말을 이해했나요?"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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