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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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독서의 목적은 한결같이, 오로지 단 하나였다.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행보롤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문자 L로 쓰인 Life, 그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책을 읽었다. - P13

‘아들과 연인‘을 근래에 다시 읽은 건 이른바 원숙한 장년기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는데,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세부 사항도 많았거니와 무엇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에 대한 기억이 아예 틀린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책이 정말로 말하려는 바가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지난 세월 내가 이 책을 그토록 소중히 마음에 간직해온 이유는 엉뚱한 것이었지만,그건 오독 때문이 아니라 앎이 아직 여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책이 오히려 더욱 위대하고 감동적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책 한권의 풍요한 의미를 향해 여행을 해야 하는 쪽은 독자인 나라는 걸 처음 똑똑히 깨닫기도 했다. - P32

길모퉁이 너무 엘레인 골드버그의 모친은 페르시아산 양털 코트 소매에 팔을 끼워 넣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돈 많은 남자 사랑하는 건 가난한 남자 사랑하는 거나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지." 그러나 그분 역시 사랑을 믿었기에 목소리엔 씁쓸함이 묻어났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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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문지혁 지음 / 해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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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에 필요한 경험이 딱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감정’입니다. 특별한 경험 자체는 이야기를 창작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일은 언제나 큰 도움이 됩니다. - P101

소설가는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혹은 ‘이야기에 알맞은 거리를 찾아냄으로써’ 이야기를 소설로 바꾸는 사람입니다. - P136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다. 그러나 대게는 흥미롭지 않다." -스티븐 킹 - P141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토리텔링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 검증된 방식은 주인공의 외면적 목표와 내면적 목표를 엇갈리게 하는 것입니다. - P171

좋은 배경이란 숨겨진 의미가 있는 배경입니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에서 리사 크론은 말합니다. 장소와 배경이 좋은 디테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아래 세 항목 중에 최소한 한 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요.

1. 인물에 대한 정보나 통찰
2. 사건을 진행시키는 힌트나 정보
3.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동체의 가치관이나 지향 - P197

퇴고의 선택은 텍스트의 층워(문장 안에서의 가장 좋은 선택)에서 한 번 이뤄지고, 이후 콘텍스트의 층위(문맥 속에서의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다시 한 번 이뤄져야 합니다. - P252

어떤 작가들은 가능한 결말의 목록을 쭉 나열해 두고 위에서 두세 번째까지를 걸러낸다고 합니다. 그런 결말은 뻔한 결말이기 쉽기 때문이죠. 다르게 말하면, 생각과 고민을 많이 할수록 새롭고 신선한 결말이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입니다. 금방 떠오르는 생각은 남들도 할 수 있는 생각이니까요. 더 중요한 점은 작가가 결말에서 여러 선택지를 갖는 것입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최종적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결말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는 결국 주인공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결저오디거든요.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바꾸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선택, 어떤 장면이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중 제일 좋은 것을 고르라는 이야기죠. - P255

문학적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세부 장르입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소설이 보여주었던 전통적인 서사와 스토리텔링보다는 소설의 미래와 가능성, 어떤 새로움을 발견하고자 하지요. 소설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들(서사와 플롯)은 문학적 소설의 관점에서 볼 때는 지루하고 따분한 것일 수 있습니다. 마치 현대미술이나 현대음악, 패션쇼의 옷들을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현대소설은 예술적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문학의 맥락과 흐름에 관한 일정한 공부와 학습이 필요합니다. 많은 독자들이 현대소설을 읽고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라고 되묻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반대로 장르소설은 유사 이래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더 익숙한 서사와 플랫을 여전히 주요 무기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고 느끼죠. 그건 ‘생존을 위해’ 이야기를 갈구하는 우리 뇌의 본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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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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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언제나 현관문이 닫혀 있는 집이었다. 현관문은 사생활을 중시할 만큼 교육받은 사람들과 문을 반쯤 열어놓고 사는 무식쟁이들을 구분하는 나름대로의 기준이었다. - P19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 P44

엄마는 거들을 입고, 낡은 회색 정장을 걸치고, 검은색 스웨이드 통굽 구두를 신고, 얼굴에 파우더를 두드리고 립스틱을 바른 다음 지하철을 타고 시내에 있는 직업상담소를 찾아가 작은 회사에 사무직으로 취직했고 일주일에 28달러를 벌었다. 그 이후로는 매일 아침 일어나 옷을 입고 커피를 마시고 우리 먹일 끼닛거리 목록을 돈과 함께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네 블록을 걸어 지하철역에 가서 타임지를 한 부 사들고 지하철에서 읽으며 42번가에 도착해 회사 건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서 그날 업무를 마친 다음 다섯 시에 퇴근해 아파트 문으로 들어와 부엌 긴 의자에 털썩 앉아 저녁을 먹고 바로 소파로, 따스한 목욕물처럼 당신을 반겨주는 우울함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그날 저녁의 우울, 마지못해 견뎌야 하는 일상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엄마를 배신하지 않고 기다려준 이 절망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그렇게 일을 하고 오는 사람처럼. - P116

이 시대의 심리상담문화가 전수하는 쉽고 허망한 위로가 아니라 브롱크스식 기준을 아는 사람의 가차 없는 평가를 원할 때는 메릴린에게 전화한다. 그의 언어에 완곡어법이란 없다. 명치를 한 방 얻어맞는 듯한 냉철한 분석과 조언을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 - P188

나는 사랑의 경험이란 이전과 비슷하지만 점점 더 실망스러워지는 것, 그러면서도 동일한 열병과 환멸과 격정과 부정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배워야만 하는 저주를 받은 현대 여성이다. - P190

한 여성 운동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스타 아니면 그루피(팬)예요." 그가 볼 때 그루피란 평범하게 성공한 남성의 궤도 안에 머물다가 결혼해서 그 상태를 유지하는 여자들이다. 스타란, 나머지 우리다. 할당된 운명을 흔들고 걷어차버리는 사람들, 적절한 결혼 생활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결혼을 저버리지도 못하는 사람들. - P201

한 번은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서 여성 잡지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 최악이 캐서롤을 만들었다. 그걸 둘이서 10분 만에 대강 먹어치웠고, 난장판이 된 부엌을 한 시간 동안 치운 건 나였다. 싱크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한 순간을 기억한다. 앞으로 40년을 이렇게 살아야 되는건가? - P215

신혼 초반부터 자잘한 싸움으로 점점 나빠졌던 부부 사이는 결혼 내내 한 번도 시원하게 좋아지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그 상태에 우리를 적응시켰을 뿐이다. - P232

그의 몸이 나에게 다가올 때 나는 생각했다. ‘이 남자가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야. 그에게 불러일으키는 이 감각이지.‘ - P259

한 번씩 한밤중에 깨어나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 느낀다고 했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나는 큰 소리로 묻는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한다. "엄마가 첼시에 있어. 매릴린도 73번가에 있고, 오빠는 볼티모어에 있잖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 헤아려보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줄 아느냐고 말했다. - P265

성적인 끌림이라는 것에는 확실히 장점이 많아서 저울질을 해보면 늘 무게가 더 나갔다. 우선, 성애 자체가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욕망은 다정함을 보장한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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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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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은 아니 에르노가 아니라 비비언 고닉이 받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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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어도, 일이 아니어도 - 만화와 요시나가 후미: 요시나가 후미 인터뷰집
요시나가 후미 지음, 김솜이 옮김, 야마모토 후미코 인터뷰이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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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경향이란 건 있었지만 ‘만화 처방전‘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고등학생쯤 되면 그때까지 살아온 과정에 따라 마음을 울리는 대상이 저마다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 P73

개인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또 ‘잘못한 사람이 없어도 슬픈 일은 일어난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향한 저의 일관된 취향이 반여오대 있습니다. - P109

‘여자는 결혼하면 일 그만둬야 하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전부 반박하면서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때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제가 평생 일해서 스스로를 부양하며 살아간다면 그로 인해 세상에 일하며 살아가는 여성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이고,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어요.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해요. 하지만 우선 중요한 첫걸음은 제스스로가 자신의 신념을 배신하지 않고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 P114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관계를 좋아합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죽은 배우자의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관계도 그렇습니다만, 어떻게 부르는게 마땅한지 알 수 없는 관계가 좋아요. ...관계에 대한 명명은 어렵지만 ‘뭐,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관계라고 할까. 바로 그 ‘뭐, 어때‘의 감정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관계에 이름을 붙이기 어려워도, 그런 건 별로 상관없는 거죠. - P168

회복될 수 없는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슬픈 일이 일어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해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해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면 되잖아요? 근데 전 그런 이야기엔 흥미가 영. 재능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컨트롤 가능한 범위 밖에서 결정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바르게 사는 사람도, 친절한 사람이 되려고 마음먹은 착한 사람조차도 돌연 재해의 피해자가 되거나 사건에 휘말릴 때가 있거든요. ...제가 가족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가족은 자신의 기호대로 고를 수 없고, 교제상대는 선택할 수 있어도 그 상대의 가족은 마찬가지로 고를 수 없잖아요. 자신의 가족 혹은 상대방의 가족과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 지점에서 탄생하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 P172

단편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농도는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1화 혹은 단권을 읽으면 이야기는 끝나는데 거기에 인생의 이야기가 통째로 담겨 있잖아요. 엄청난 정보량입니다. 엔터테인먼트물로서 독자에게 재미를 선사하거나 쉽게 흥행과 닿지 않는 소녀만화가 독자들에게 대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정보량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작품은 발매 직후의 위력은 약할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읽힐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 P176

귀여웠던 소년이 축 처진 아저씨가 되는 걸 좋아합니다.그럼에도 행복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 P197

<서양골동양과자점>

이것도 상실과 재생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어떤 큰 사건에 휘말리지 않아도 누구나 소소한 상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해서요. 오노는 오노대로 베이킹을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파티셰를 하고 있고, 결국에는 에이지를 어엿한 파티셰로 성장시키면서 자신이그때까지 해온 일의 의미나 삶의 보람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보였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욱 제 안에서 확고해져갔습니다. - P220

실제로는 구원의 작대기가 일치하지 않는 게 현실이고, 전 바로 그 지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다른 사람에게 아무리 험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반드시 배상을 받으리란 보장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전혀 다른 곳에서 보상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죠. 그것이 인생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P230

‘피아니스트‘는 좀더 차가운 현실을 그린 이야기로, 재능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어요. 하지만 결론은 역시 이런 인생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거죠. 뜻밖의 구원을 그린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해서, 노력이 보상받는 게 아니라 엉뚱한 행운에 의해 구원받는 이야기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 P270

저는 만화를 그릴 때 게이든 이성해자 남성이든 여성이든 노인이든 아이든, 좌우간 등장하는 캐릭터에 관해서는 모두 저와 같은 인간으로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었어요. 설령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일지라도 무슨 외계인 같은 정체 모를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그리고 싶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그런 신념을 지켜왔는데. - P302

위정자가 된 여성은 인간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측실의 자리에 묶인 남성은 인간적으로 훌륭해도 같은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게 되는 거죠. 성벽이 역전되면 그런 일이 생긴다는 것을 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P334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면 인간은 성장한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물론 실패의 기회도 늘어나지만 처음부터 기회 자체가 많이 주어진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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