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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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무쌍한 시대의 주인으로 살아가려면 스스로의 양식과 양심 이외에는 어느 것에도 기댈 수 없다는 걸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각자의 양식과 양심이 건강하게 작동하는지 늘 서로 감시하고 격려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남의 이목에 초연하고 상호 의존도가 높은 괴짜 가족이 되어 있었다. -8쪽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얼니 나이에 홀로 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 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선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 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ㅇ벗었다.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은 나 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가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 존중했다. -101쪽

열정 없이 남 보기에만 그럴듯한 턱걸이 인생만 피해도 성공한 인생이라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사람이 단지 성적이 된다고 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큼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다.세속적인 경쟁력도 열정이 좌우하지 학력이 좌우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체험하지 않는가?-139쪽

"내가 너를 사교춤 코스에 등록한다면?"
"어마 돈만 깨지는 거"
"네 친구들이 너만 빼고 전부 사교춤을 배우러 다닌다면?"
"나만 시간 낭비 안하는거"
"네가 사교춤을 안 배워서 출세에 지장이 있다면?"
"난 춤이 아니라 실력으로 출세해"
"출세를 하더라도 사교춤을 못 춰서 상류 사회에 진출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나는 억지로 춤춰야 하는 사회에는 오라 그래도 안 가"
아들보다 세살 어린 딸아이가 내 배턴을 이었다.
"오빠가 사교춤 못 춘다고 여자들이 싫어하면?"
"나도 그런 여자들 싫어"
"나중에 춤추고 싶어하는 애인을 사귀게 되면?"
"그때 가서 같이 배우면 돼. 엄마 아빠처럼"-153쪽

현대의 독일 군인들은 상관의 명령이라도 법에 어긋나면 복종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는다. 이것은 나중에 심판을 받을 적에 상부의 명령이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178쪽

나는 모든 사회에는 주류가 있고 지성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주류는 주된흐름이란 말 그대로 전통을 이어가며 어제와 다름없이, 이웃과 다름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편적인 다수이다. 그리고 지성인은 주류의 방향을 잡아주는 소수이다. 지성인은 개인의 양식에 따라 판단하고 이를 용기있게 표현해 주류의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권은 주류의 시녀일 따름이고 주류의 물길을 조정하는 것은 지성인이다. 좀 더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주류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고 지성인은 물가에 박혀서 물이 흐르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조약돌이라고 하겠다. -194쪽

꼭 학식이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아야만 지성인이 되는 게 아니다. 머리를 빡빡 민 채 낙화산 부대의 장화를 신고 설치던 신나치주의 청년들의 폭력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기에 독일의 많은 가게의 출입문에는 엽서 크기의 노란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 카드에는 자기네 가게는 외국인이 폭력을 피해 들어올 수 있는 피난처이니 위험에 처한 외국인은 언제든지 뛰어 들어오라고 쓰여 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자기네들이 나서서 깡패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선언하는 도자기 가게, 유리 가게, 꽃집 주인들은 바로 독일의 지성인들이다.-200쪽

남과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경쟁적인 사람보다 감정의 소모가 적어 실력 발휘에 거침이 없다. 남과 자신에게 너그럽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자 사회의 힘이 아닐까?-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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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9-12-0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한테 이 책 빌려줬었는데 어제 뜬금없이 전화해서 153페이지의 대화를 읽어주더군요. ㅎㅎ 인상깊었다고. 책 어떻게 읽으셨어요?

LAYLA 2009-12-07 01:07   좋아요 0 | URL
좋았어요 정말 ^^ 리뷰 쓸게요~

노이에자이트 2009-12-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문 때문에 추천입니다.

LAYLA 2009-12-07 01:09   좋아요 0 | URL
유럽의 힘은 저런 합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수정을 하는 바람에. 노이에자이트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178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