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무릅쓴 이미지들 - 아우슈비츠에서 온 네 장의 사진 미학과 정치 총서 1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지음, 오윤성 옮김 / 레베카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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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까지 읽은 소감은, 큰 무리는 없지만 역시 번역이 조금 안타깝다는 느낌. 물론 쉽지 않은 책임엔 분명하지만 이미 번역된 <반딧불의 잔존>에 비한다면 많은 부분이 걸려요. 이미 번역이 된 많은 문헌들-레비,아감벤, 벤야민 등-을 참조했다면 훨씬 깔끔하게 번역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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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빅터 피게로아 클라크 지음, 정인환 옮김 / 서해문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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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현대사는 이 땅의 현대사와 너무나 흡사해서, 가끔씩 소름이 돋는 경우가 있다. 아옌데는 쿠데타군의 무력에 맞서 홀로 모넬라궁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했다. 마치 80년 광주 도청의 이름 없는 전사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책은 그 소중한 꺼지지 않는 반딧불의 이미지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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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
모리모토 안리 지음, 강혜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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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 2부를 읽고 나니, 책을 처음 읽고 썼던 리뷰때보다 별 하나를 빼야 할 듯. 기본적으로는 홉스태터에 의지하면서도, 그 논의의 핵심인 근대성에 대한 반란이 발생한 역사적 배경에 대한 탐구가 빠지면서, 논지가 모호해져버렸다는 느낌. 홉스태터가 번역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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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공간 모리스 블랑쇼 선집 2
모리스 블랑쇼 지음, 이달승 옮김 / 그린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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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매혹의 위협이 있는 고독을 긍정하는 공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라는 위험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시간의 부재 속에는 끝없는 새로운 시작이 군림한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되고, 나와 관계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익명의 것이 되어 무한히 흩어진 가운데 무수히 반복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러한 매혹 아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에 의해서 언어 안에서 절대적인 공간과의 접촉 아래 머무르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물은 이미지가 된다. 또한 거기서 어떤 형상을 암시하는 이미지는 형상이 없는 것에 대한 암시가 되고, 부재 위에 그려진 형태의 이미지는 부재의 형태 없는 존재가 된다. 더 이상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 아직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 때에 존재하는 것으로서의 불투명하고 공허한 열림이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글을 쓴다는 것은 왜 이러한 본질적인 고독, 그 속에서 감추어진 것이 드러난다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 이 고독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 박혜영 번역의 책세상 판으로 읽고 있다.. 주석이 불가능한,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 아름다운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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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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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출신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어떤 긴장을 요구한다..

그들에게 <1973년 9월 11일>이라는 숫자는 마치 '주홍글씨'와 같은 <낙인>처럼 그들의 몸에 새겨져, 어떤 이야기를 하든 그 욱신거리는 상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드러내든지, 아니면 감추든지..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군의 집중포화를 받던 대통령궁(모네다궁)에 남은 칠레 대통령, 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사회주의자라 불리던 아옌데는 라디오를 통해 국민들에게 마지막 연설을 한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지금, 저는 인민들의 충정을 제 목숨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존엄한 의식 위에 뿌린 씨앗은 결코 파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변혁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행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아옌데는 노동자, 여성 동지, 전문 직업인, 그리고 투쟁을 지원했던 청년들에게 각각 짧은 고마움의 인사를 남긴 뒤, 칠레의 인민들에게 마지막 고별사를 남기고 결국 대통령궁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선 안 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 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

 

당대 숨죽이며 상황의 추이를 목격하고 있던 칠레의 많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 라디오 방송을 들었을까.. 물론 쿠데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조국을 떠나야 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구금되어 고문을 당하고, 학살을 당하는 비극을 겪었지만, 칠레가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쿠데타군의 무력에도 굴하지 않고, 대통령궁에 끝까지 남았던 아옌데, 그리고 소수의 전사들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7년 후, 대한민국 남쪽의 조그만 도시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쿠데타를 주도했던 세력들이 파견한 무장 계엄군이 도청을 포위했을 때, 소수의 전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도청에 남았고, 바로 그들로 인해 한국의 정치사는 쿠데타 세력들의 의도와는 달리 새롭게 전개될 수 있었다.. 목숨을 걸었던 그들의 용기, 그리고 죽음은 쿠데타 세력들에게, 그리고 그 상황을 무력하게 지켜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부끄러움"의 흔적을 남겼고 그 <부끄러움>이 일종의 혁명적 감정으로 이후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전해지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신화를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 <80년 오월이 남긴 부끄러움이라는 정서가 이후 한국 현대사에 미쳤던 정치적 영향>이라는 전혀 아카데믹하지 않은-뜬구름 같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글을 쓰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것은 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시내에 울려퍼졌다는 확성기의 목소리였다..

 

존경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지금 계엄군이 도청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도청을 사수할 것입니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볼라뇨의 작품세계-그러고보니 <칠레의 밤> 이후 겨우 두 번째 작품이지만-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정서는 바로 그 <부끄러움>, 혹은 그러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냈던 이들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되는 <프라이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칠레 사회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공식적인 장에서 상영된 <칠레 전투>를 본 후 어떤 여대생이 우리에게 이런 투쟁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럽다며 울먹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그런 자부심.. 누군가의 피가 묻은.. 그래서 부끄러운.. 그런 자부심..

 

물론, 역사학자나 사회학자가 아닌 <소설가> 볼라뇨의 작업은 과거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닌, 픽션을 통한 재구성이었다.. <칠레의 밤>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 혼란했던 시기 책의 세계에만 파묻혔던 신부의 독백을 기록하거나, 아니면 시인이자 공군 중위, 그리고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했던 한 남자의 악의 연대기를 쓰는 작업은 바로 그 픽션화의 산물이었다..

 

왜, 그가 당대 현실의 주인공들이 아닌, 이런 주변부에 속하는 인물들에 관심을 가졌는지를 따져묻는 것은, 볼라뇨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진 다음의 작업일 것이다.. 당분간은 볼라뇨의 세계를 계속해서 추적해나가기로 하자..

 

<부적>,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의 세계로..

 

 

cf. 그러고보니 얼마 전 쿠데타군이 아닌 주권의 담지자인 국민의 힘으로, 그리고 엄정한 헌법의 심판으로 <대통령궁>에서 떠나야 했던-그것도 며칠이나 반불법점거를 한 끝에- 한 전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도 이야기하지 않은채, 자신의 소수의 지지자들 품에서 웃음을 흘리며 개인집으로 돌아갔다.. 그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뭔가 마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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