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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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이면 인간은 웬만한 일을 할 수 있지. 그러나 세월은 빠른 거라서 말이오. 7년쯤이야 금방이야.” 

-<三四郞> 중에서-

      

노노미야 군이 스물 세 살의 산시로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히듯, <それから>에서는 산시로와 같은 클래스에서 비슷한 수업을 받았음직한 서른 살의 다이스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물론 그는 7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배짱 없는 사내다. 하지만 산시로에게는 자신의 23년간의 약점일만큼 감추고 싶은 치부였던 그 배짱 없음도 다이스케에게는, “문명시대에는 궁술이나 검술과 다름없는 케케묵은 도구에 지나지 않은것이 될 정도로, 7년이라는 세월은 다이스케를 변모시켰다. 젊은 시절에 가졌던 사랑이나 우정, 진리와 같은 이상도 이제는 어느덧 옅어졌다. 학창 시절에 사물을 이지적으로 따지고 들며 의심할 때는 불안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것이 마치 하늘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섣불리 돌 같은 것을 던지지 않는 편이 더 좋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는 이미 “‘닐 아드미라리’(nil admirari)의 경지에 달해 있었다.”

 

그 경지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물론 아버지의 경제력이다. 다이스케의 아버지 나가이 도쿠[長井得]는 과거의 유신지사, 그리고 지금은 재계의 거물, 즉 메이지의 출세코스를 그대로 밟은 인물이다. “왜 일을 하지 않는 거지?”라는 친구 히라오카[平岡]의 말에 그는 일하지 않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대답한다. 이 대목은 나름대로 러일전쟁 이후 세계자본주의에 총체적으로 노출된 채 허덕이는 일본의 현실에 대한 다이스케의 예리한 문명비판적인 시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 예리한 감식안(鑑識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자본에 기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이스케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신경만 비정상적으로 발달해버린 고등유민”(高等遊民), 그것이 바로 다이스케의 모습이다. 물론 그 불안은 그의 몸속에서 깨끗이 사라졌다기보다는, 가장된 무신경에 의해 억눌려 있는 것이다. <煤煙>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다이스케가 불현듯 깨닫는 것처럼, 불안의 씨앗은 오히려 그의 몸속에 배태되고 있다.

 

다이스케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미치요[三千代]를 다시 만났을 때부터, 불안의 씨앗은 그의 내면에서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불안의 씨앗은 일종의 암시, 복선이기도 하다. 이제는 히라오카의 아내가 되어버린 미치요는, 한 때 다이스케가 히라오카에게 직접 소개시켜 준 여자였다. 물론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전 그 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 전반부에 제시되지만, 그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는지는 당사자들(적어도 다이스케는) 자신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미치요는 점차 다이스케의 평온한논리(論理)의 영역을 침범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녀의 존재는 누군가 마음에 들었던 사람이 있는 거지요?”라는 형수의 물음을 듣고 갑자기 떠오르는대상 정도였다. 하지만 그 다음의 재회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과거를 서로의 얼굴에서 읽는다.” 물론 이 대목은 둘 사이의 관계에서 의미심장하다. 이후 미치요가 오기를 기다리는 다이스케의 마음을 그리는 대목에 이르면,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진전된다. 친구의 아내인 미치요를 기다리면서 자신이 느끼는 마음, 즉 그 비논리적인 감정에 대해 부끄러워하지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런 비논리적인 상태가 유일한 사실이니까 어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三四郞>에서의 헬리오트로프와 같이, 백합 향은 이 소설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처음 다이스케의 집에 홀로 찾아왔을 때, 미치요는 백합을 사온다. 그 꽃은 그녀가 결혼하기 이전 친오빠와 함께 살고 있었을 때, 오빠의 친구였던 다이스케가 사온 꽃이기도 하다. 감미롭고 강렬한 향기가 두 사람 사이에 서릴 때다이스케는 그 강렬한 자극에 멈칫한다. 미치요가 코를 꽃잎 가까이까지 갖다 대고깊이 그 향기를 들이마실 때, “그렇게 가까이서 맡으면 안 됩니다라고 엉겁결에 내뱉는 다이스케의 대사는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는 그의 최후의 몸짓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백합 향은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서로의 과거를 읽게 해주는 강한 매개체이다. 다이스케 자신도 예전에는 코를 대고 향기를 맡지 않았던가. 그 향기를 맡으면서 다이스케는 오랜만에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히라오카와의 재회에서 그는 히라오카 부부를 삼 년 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고 그것을 기회로 미치요에 대한 연민의 정을 영원히 떨쳐버리려는 최후의 시도를 거의 무의식적으로행한다. 물론 이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그는 자신이 현재의 미치요를, 병든”, “아이를 잃은”, “남편의 사랑을 잃어가고 있는”, 그리고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는미치요를 불쌍히 여기고 있다고, 하지만 이들 부부 사이를 정면에서 영원히 떼어놓으려고 할 만큼 대담하지는 않다고”, 그의 사랑은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다고믿고 싶었다. 하지만 <三四郞>에 나온 의미심장한 어구(물론 번역하기 힘든), “pity is akin to love”가 암시하듯, 미치요는 다이스케로 하여금 어떤 한계를 넘어서게 하는 존재로 자리 잡는다. 이는 다이스케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고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이다.

      

여기서 그는 하나의 딜레마에 봉착했다. 그는 자기와 미치요와의 관계를 앞뒤 가리지 않고 자연(自然)이 시키는 대로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와 정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옛날로 돌아갈 것인지, 그 어느 쪽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잃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외의 모든 어중간한 방법은 거짓으로 시작해서 거짓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전부 사회적으로는 수용 가능하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무기력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미치요와의 관계를 하늘의 뜻에 따라서-그는 그것을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발전시켰을 때에 뒤따를 사회적 비난의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의 뜻은 따르지만 인간의 법도를 어기는 사랑이란 보통 그 사랑의 주체가 죽어야만 비로소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그는 만일의 경우에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날 지도 모르는 비극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섬뜩해졌다.

그는 또 그 반대의 경우로서 미치요와의 영원한 이별을 상상해보았다. 그때는 하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의지에 충실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그 수단으로서 아버지나 형수가 권유하는 결혼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는 그 결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모든 관계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위 인용 대목에서 소세키는 자연하늘’()을 동격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이 때 하늘은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에서 형성되어 온 하늘 개념, 즉 불변의 도리로서의 오륜오상’(五輪五常)보다는 서구의 낭만적 사랑에 전형으로 등장하는 자연개념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마담 보바리를 유혹하면서 불랑제가 자신들의 사랑을 자연적인 것, 혹은 하늘에 따르는 것이라고 속삭일 때 등장하는, 인간의 법도를 넘어서는 사랑=자연=하늘의 뜻이라는 등식을 소세키는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담 보바리>의 로맨스가 일종의 풍자satire인 반면, 소세키는 다이스케의 사랑에 조금 더 순수한 낭만주의적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치요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기 위해 그녀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다이스케의 심경을 그리는 대목은 소세키의 다른 작품, 아니 근대 일본의 어떤 작품과 비교한다 하더라도, ‘치명적 사랑에 대한 묘사에 있어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이스케는 백합을 바라보면서 방을 가득 채운 강한 향기에 스스로를 송두리째 내맡겼다. 그는 그런 후각적인 자극 속에서 지난날의 미치요의 모습을 분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 과거 속에는 떨쳐버릴 수 없는 자신의 옛 그림자가 연기처럼 휘감기고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 오늘 비로소 自然의 옛 시절로 돌아가는 구나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때,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안위를 온몸에 느꼈다. 왜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왜 自然에 저항을 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는 비속에서, 백합 속에서, 그리고 재현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완벽하게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은 어디에도 욕망이 없고 이해관계를 따지려들지도 않았으며 자기를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自然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사회학자 N. 루만은 17-8세기 서구 유럽의 사랑의 코드화 과정을 분석하면서, 18세기 중반에 자연개념이 섹슈얼리티와 격정적인 감정의 공통분모를 찾게 되고, 동시에 이 공통분모는 사랑이 사회의 족쇄로부터 풀려나 자연으로서 사회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표현하기에 이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이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열정을 그들의 본성으로 묘사하며 자연의 이름으로 사회의 도덕적 관습을 전복하는 소설들이 18세기 근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과연 괴테의 이 소설에서 아름다운 자연은 주인공의 심적 상태와 교묘하게 융합되어 한 인간의 생명력이 거대한 자연의 일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묘사된다.

 

물론 소세키의 전체 작품세계에서 자연은 서구 낭만주의의 자연 개념이 보여주는 격렬함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소세키의) ‘자연이 자신에게서 시작해서 자신에게로 끝나는 의식의 바깥에 전개되는 비존재(非存在)의 어둠이며, 소세키는 그것을 신으로도 하늘로도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자연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소세키의 자연은 인간주체에 있어 에로스적인 살아 있는 자연이라기보다 타나토스thanatos적인 죽은 자연’, 즉 자신에게서 시작해서 자신에게로 끝나는 개인을 가로막고 서 있는 존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후기저작들, <行人>, <道草> <明暗> 등의 작품에서 이러한 성격의 자연관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렇게 본다면 <それから>는 소세키의 저작 세계에서 예외적으로 에로스적인 자연을 그린 작품이며, 다이스케가 보여준 결단’, 그리고 그 상징물로서 백합이라는 꽃의 이미지는 그런 예외성 때문에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라면 그의 결심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히라오카가 미치요와의 결혼 이야기를 친구인 그에게 꺼냈을 바로 그 때, 분명히 자신의 의사를 밝혔어야 했다. 하지만 그 당시 그는 친구의 도리, 혹은 섣부른 의협심이라는 치기 때문에 자연에 반하여 오히려 히라오카와 미치요의 결혼을 주선하고 말았다. 그는 그 때의 행동을 후회하며 히라오카에게 너무도 자연을 경멸했기 때문에, 자연에 복수당한것이라고 말한다.

 

다이스케는 미치요를 두고 갈등하는 대목에서, 마치 자신의 대선배베르테르의 운명을 떠올리듯, “하늘의 뜻은 따르지만 인간의 법도를 어기는 사랑이란 보통 그 사랑의 주체가 죽어야만 비로소 사회(社會)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고 토로한다. 괴테는 베르테르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명함으로써, 베르테르를 不滅의 존재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세키는 낭만주의의 화신 괴테만큼 능청스럽지못했다. 자연과 사회는 원래부터 양립하기 어려운 대척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의 힘이 강할수록 자연은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인 사회라기보다는 개인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억압하는 세간’(世間)에 가까운 근대 일본 사회에서 그의 죽음은 자칫하면 개죽음이 될 지도 모른다. 소세키는 메이지 일본의 허약한 사회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소세키는 도덕이나 윤리를 모르는 사랑의 예측 불가능한 힘에 스스로 놀라 뒤로 물러선 것인지도 모른다. 소세키가 자신의 주인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스캔들을 폭로시킴으로써, 다이스케를 사회/세간이라는 심판대에 올려놓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파멸이었다.

 

파멸의 예감은 미치요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을 때 이미 스쳐지나간 바 있다. 다이스케는 이 순간적인 행복에서 생기는 영원한 고통이 갑자기 그의 머리를 침범하면서 이 선택이 결국 그의 파멸을 몰고 올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의 예감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들어맞았다. 히라오카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한 후 곧바로 그는 히라오카, 아버지, 형 등 주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례로 의절 당한다. 그것은 닐 아드미라리적 생활을 가능케 했던 본가로부터의 금전적 지원의 단절이자 사회에서 내팽개쳐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의에 빠져 일자리를 알아보러 길거리로 나선 다이스케의 머리 위로 태양이 내리쬐고”, “메마른 먼지가 불티처럼 그의 맨발에 달라붙어서”, 그는 오글오글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빨간 우체통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그 빨간색이 갑자기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빙빙 돌기 시작했다. 양산집 간판에 빨간 양산 네 개가 겹쳐진 채 높이 매달려 있었다. 양산 색깔이 또 다이스케의 머리로 들어와 뱅글뱅글 소용돌이를 쳤다. 네거리에 새빨간 색의 커다란 풍선을 팔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전차가 갑자기 모퉁이를 돌자 풍선이 쫓아와서 다이스케의 머리에 들러붙었다. 소포 우편물을 실은 빨간 차가 잠시 전차와 스치듯 지나갈 때 또 그 빨간색이 다이스케의 머릿속에 흡착했다. 담뱃가게 입구에 쳐놓은 布簾이 빨갰다. ‘대매출이라고 쓰여 있는 깃발도 새빨갰다. 전신주가 빨갰다. 빨간 페인트칠을 한 간판이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세상이 온통 새빨개졌다. 그리고 다이스케의 머릿속을 중심으로 해서 뱅글뱅글 불길을 내뿜으며 회전했다. 다이스케는 머릿속이 다 타버릴 때까지 계속 전차를 타고 가겠노라고 결심했다

    

다이스케를 사회라는 심판대 위에 올려 세운 소세키의 의도에 대해 여러 비평가들은 이후 작품에 대한 소세키 자신의 평을 인용하면서, 머뭇거림의 의미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그 머뭇거림은 소세키 자신이 메이지 일본 사회라는 벽 앞에서 느낀 공포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그는 여러 강연에서(現代日本開化, 文藝道德) ‘자연주의 도덕혹은 개인주의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文藝道德(1911)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소세키는 낭만주의 문학과 자연주의 문학이 각각 메이지 이전의 도덕과 이후의 도덕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말하면서, 자연주의적 도덕은 인간의 자유를 지나치게 중시하여방종에 빠질 우려가 있고, 그 때문에 이에 대한 부분적인 반동으로 낭만주의 도덕이 일어나게 될수 있지만, “아무래도 자연주의 도덕은 앞으로 계속 전개되어 나갈 것으로 전망한다. 결국 이후의 일본인에게 바람직한 도덕이란, “실현할 수 있는 이상을 품고서 거기에다 미래의 이웃 동포들과 조화를 추구하고, 또 종래의 약점을 관용하는 동정심을 가지고 현재의 개인들과 융합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이 강연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소세키 자신이 만들어낸 다이스케라는 인물에 대해 자기 자신이 질타를 가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이스케의 회심이 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자, 소세키 자신이 가장 공력을 기울여 만들어낸 대목이라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계몽가이자 동시에 문학가인 소세키의 두 면모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계몽가로서 근대 일본 사회에서 자연주의 도덕과 낭만적인 도덕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위는 결코 문학의 영역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문학이라는 실험을 통해 메이지 일본 사회에 저항하며 최후의 권위는 자기에게 있음을주장하는 다이스케라는 근대적 개인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다이스케의 회심이 있었기에, 근대 일본은, 사회, 혹은 관습의 요구에 저항하는, 근대적 개인의 한 자화상을 불완전하게나마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역시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두 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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