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섬들
마셜 살린스 지음, 최대희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마셜 살린스라는 이름은 인류학을 전공하지 않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나마, 1990년대 중후반 미시사, 문화사 붐이 일었던 시기, 개론서에서 클리포드 기어츠의 <발리 닭싸움> 사례와 함께 살린스의 쿡 선장의 사례가 잠시 다루어졌던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 기억력에 경의를 표해야 하리라.. 또 혹시 오래 전에 <문화와 실용논리>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책의 저자가 바로 그라는 사실을 눈치챈 이가 있다면- 그에게는 보르헤스가 푸네스에게 붙여주었던 호칭을 부여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기억의 천재!!> 천하의 로자님께서도 이 책은 빠트리셨을 정도니까..

물론 전작인 <문화와 실용논리>는 흐릿한 번역만큼이나 국내에 미친 파장은 흐릿했던 것 같다.. 참고로 역시 절판이다..

 

이 책은 사례의 흥미로움과 이론적 치열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보기 드문 연구서이다.. -이 정도면 최상의 찬사이다. 물론 이 때 이론적 논의의 수준은 80-90년대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물론 그 컴팩트함에 있어서는 1981년에 출간된 전작, Historical Metaphors and Mythical Realities(역사적 은유와 신화적 현실)이 훨씬 훌륭하지만, 이 책은 아쉽게도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다. 만약, 이론적 논의를 가능한 패스하고 싶은 일반 독자라면, <제 1장 쿡 항해기 보유, 또는 야생의 산술>과  <제 4장 제임스 쿡 선장, 또는 죽어가는 신>을 먼저 읽어도 내용 이해에 커다란 무리는 없다.. 저자는 여기서 쿡 선장의 살해가 하와이섬의 신화구조 속에서 연출된 것임을 굉장히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인지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커다란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여기서 거기까지 다룰 이유는 없을 것 같고, 다만 그 입증불가능성, 하지만 이해가능성을 둘러싼 끝없는 대화의 시도가 인문사회과학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소견 정도만 덧붙인다..

 

 이 책이 제시하는 이론적 메시지는 생각보다 훨씬 단순명쾌하다.. 아주 거칠게 요약한다면,

우리가 흔히 이항으로 생각하는 역사와 구조, 현재와 과거, 체계와 사건, 혹은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등 다양한 물화된 대립들을 탐구하여 그 상호구조, 즉 진실에 더 가까운 합명제를 찾는 것.. 이를 저자는 브로델의 개념을 자의적으로 빌려오면서, 국면의 구조라고 개념화한다.. 조금 더 <가오를 잡는다면> 특수한 행위자와 그의 경험적 문맥의 환원불가능성을 직시하는<상징적 삶의 현상학>적 탐구, <문화적 범주의 상황적 사회학> 뭐 다 같은 말이다..

 

이미 번역자가 후기에서 충분히 자세히 요약을 해주셨으니, 여기서 중언부언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역사학 전공자가 왜 이 책을 번역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살린스는 서문에서 현대의 과제는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경험으로써 역사 개념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는 오만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족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에. 물론 여기서도 다시 결과는 일방적이지 않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이 인류학의 문화 개념을 깨뜨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번역으로, 역사학과 인류학이 다시 한 번 그 재현을 둘러싸고 생산적인 논의들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과연 한국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지.. 그럼에도 번역의 질은 차치하고라도, 역사학 연구자가 쉽게 옮기기 어려운 이 책을 번역해주었다는 사실에 한국의 인류학계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하와이인들에게 쿡은 인간을 위해 대지가 열매 맺도록 하는 신이었다. 평화와 농경의 기술을 수호하는 생산의 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 쪽에서 볼 때도, 그는 ‘애덤 스미스의 이상을 세계 차원에서 실현하는 대리인’으로서, 마찬가지로 시장의 평화적인 ‘침투’의, 즉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문명을 전해주고 전 세계에 부를 가져올 전도양양한 상업적 팽창의 영혼의 화신이다. 쿡은 그 길을 개척하여 경로와 자원과 시장을 결정할 터였다. 따라서 팍스 브리타니카의 선구자였던 쿡은 동시에 부르주아 로노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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