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1
조 홀드먼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SF소설>이라는 장르의 벽은 높아만 보였다.. 그건 흔히 말하는 <장르 문학>에 대한 편견(그 반대항이 순문학에 대한 고집일 것이다)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단지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고, 호기심이 생겼을 때는 이미 얇지만 강력한 마니아층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트랩>때문에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다.. 뭐 그런 <부비트랩>이야 학계도 엄청나게 깔아놓지 않는가.. <맑스>니 <베버>니, <프로이트>니, 아니면 <푸코>나 <아감벤>에 이르기까지, 뭔가 커뮤니케이션에 이르기까지 서로의 심급을 확인하는 일련의 절차들..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이 <현문정종>인지 <사파>, 아니면 <마두>인지가 결정나고, 또 한 번씩 장풍을 날려봄으로써 그 내공의 심급을 결정하는 그런 세계를 모르는 것이 아니면서도, 소설을 읽으면서까지 만나야 한다는 것이 조금 거북했던 것이다..
실제로 나는 SF라는 장르를 동경해왔다.. 왜냐하면 내가 몸담고 있는 인류학이 필사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하지만 끊임없이 실패하고, 그래서 재현불가능이니, 성찰이니 하며 논쟁을 벌이는) < 세계>를, SF작가는 너무도 훌륭하게 창조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의 두 세계를 다룬 그 어떤 민족지보다, <빼앗긴 자들>(어슐러 르귄, 이수현 역)이 그려내는 <우라스>와 <우나레스>가 더 생동감 있고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SF 영화>가 그토록 대중적이면서도, <SF 소설>이라는 장르는 소수의 마니아층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건 어쩌면 SF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를 이 시대의 영상언어로는 도저히 재현해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가 소수의 마니아층을 더욱 굳건하게 결집시켰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순수>에 대한 집착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SF소설이라는 세계는 내가 사는 세계에서 몇 백만 광년 떨어진 은하계 저 너머의 행성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물론 가끔씩 우연은 찾아오는 법이다.. 마치 갑자기 <스타게이트>가 나타나 <콜랩서 점프>를 이용해 누군가를 몇 백만 광년 떨어진 저 너머로 데리고 가기도 하는 것처럼.. 물론 거기에는 두 가지 주의 사항이 수반된다.. 하나는 그 여행을 견뎌내기 위해 들어가야 하는 <가속 탱크>의 유쾌하지만은 않은/을 경험, 그리고 또 하나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참 변해버렸을 지도 모를 자기-세계와 다시 조우해야 하는 충격.. 하지만 그런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한 번 떠나보고 싶었다.. 더구나 실로 오랜만에 이루어진, 지금은 저명한 SF문학 번역가이자 소설가가 되어 있는 후배와의 접속을 계기로 내 앞에 스타게이트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타협을 거쳐 그리 멀지 않은 행성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밀리터리 마니아>로서 친연성이 있는 <밀리터리 SF>의 세계로..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십트루퍼스>(아쉽게도 이 책의 번역판은 절판되었다)와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1975)의 세계로..

이 두 소설은 분명히 대구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는 2차대전/한국전 세대인 하인라인과, 어린 시절 하인라인의 소설을 탐독했고 베트남 전쟁에서 불구의 몸이 되어 돌아온 조 홀드먼이라는 두 작가의 세계관의 차이이기도 하다(미국사회에서 두 전쟁의 이후를 이야기하는/그려내는 방식의 차이, 그리고 일본사회에서 전후를 그려내는 방식과의 비교는 이미 이전에 블로그에 올린 바 있다).. 비평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인라인의 소설이 진정 파시즘적 혹은 적어도 군국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군복무>를 마친 시민들만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화정인 것은 분명하다.. 진정한 책임있는 정치적 주체가 되기 위해 군복무는 필수적이고, 또 군 경험은 그들을 이런 주체로 성장시키는 데 분명히 유익한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것이다.. 하인라인은 소설 곳곳에서 여러 인물들(윤리철학 교사나 부대의 상관)의 입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설파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투표권자들과 과거의 주권 행사자들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충분할 정도의 추측을 했네. 그러니까 이제는 명백한 사실을 말해주지-- 현 체제 하의 모든 투표권자와 공무원들은, 자발적이고 힘든 사회 봉사(물론 군복무)를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 이익보다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복지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들인 거야.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실제적인 차이점이네. 그는 현명하지 않을 지도 모르고, 시민의 의무를 잘못 수행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평균적으로 봐서 그는 역사상의 어떤 지배 계급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거야..

이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심지어 주인공은 이 상관의 말에 감화를 받아, 인간이 우주로 팽창해갈 '권리'를 통고해주는 것은 '우주'이며, 그 때까지 기동보병은 <우리 종족 편에 서서, 당당하고 절도있게> 그 곳에 있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기합리화에 가까운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홀드먼의 소설이 그리는 미래 세계는 훨씬 암울하다.. 다가올 외계 생명체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세계정부(이미 이 때쯤이면 국민국가들은 모두 <지구연합>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우수한 젊은이들을 모집하여 이들을 <엘리트군대>로 양성시키지만, 그 부대의 일원인 주인공이 보기에 자신들이 거쳐야 할 <훈련>이나 <미션>은 너무도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처음으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지만, 그들이 자행했던 것은 그다지 뚜렷한 공격적 성향을 보이지 않는(그는 상당히 긴 페이지를 할애해서, 새로운 외계 생명체와의 첫번째 접촉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대등한 화력도 갖추지 않은 이들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심지어 군 상층부는 병사들이 감당해야 할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면암시>까지 해놓은 상태다.. 이는 하인라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적, 즉 커뮤니케이션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학살을 하더라도 아무런 정신적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는 <왕거미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지른 일은 학살이었고, 도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일단 놈들의 대공무기를 파괴한 후에는, 우린 실제적으로는 어떠한 위협에도 처해 있지 않았다. 토오란들(외계 생명체)은 개인 대 개인 전투에 관해 아무런 개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그냥 그들을 몰아붙인 다음 도살했을 뿐이다. 인류와 다른 지적 생물 사이의 첫 번째 접촉에서 말이다. 곰인형들을 계산에 넣는다면 아마 두 번째 접촉일지도 모른다. 혹시 충분히 시간을 두고 곰인형들과 의사소통을 시도했더라면? 그러나 그들도 역시 같은 취급을 받았다.
... 가장 끔찍했던 것은 나의 행동이 알고보면 그렇게 비인간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었다. 몇 세대 전의 조상님들은 굳이 최면 암시를 받지 않아도 같은 인류에게조차 똑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인류 전체가 역겨웠고, 군대가 역겨웠고, 앞으로 남은 일세기 동안 이런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또 하나의 문제는 <귀환> 이후의 삶이다.. 하인라인의 소설대로라면 제대 이후 그들은 책임있는 주체로서 국가정치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귀환 이후 홀드먼의 주인공들이 만난 세계는, 폭력이 만연하고 계급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 늙어버린 지구였다.. 심지어 70이 넘어버린 고령자들에게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들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는 사회적생산성의 측면에서 볼 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더구나 저 머나먼 우주에서 빛의 속도를 뛰어넘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보다 3-40년 늙어버린 가족들과 지인들이었다(정확한 물리적 계산법은 모르겠지만, 상대성 이론의 시간팽창 효과 때문에 객관적으로 몇 세기의 세월이 흘러도 초광속으로 이동하는 우주선 내부의 사람들은 몇 살밖에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냥 어린 시절 보았던 <혹성탈출> 같은 공상과학영화를 떠올려보라).. 다시 말하면 돌아온 그들이 다시 사회적 유대를 맺고 살아갈 공동체 자체가 사라져버린, 그래서 그들은 <뿌리뽑혀진> 것이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결코 SF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대전쟁을 거치고 살아 돌아온 귀환병들이 겪는 <사회적 부적응>의 문제는 우리가 살았던 20세기의 공통적인 테마가 아니었던가.. 그들은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있었던 <전장>과 현재 그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그가 군복무로 받은 연금은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에도 버거운 것이었다.. 결국 주인공은 돌아온 고향에 환멸을 느끼며 다시 군으로 복귀한다..

거듭되는 전투에서 그는 두 발을 잃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지만 극적으로 살아남는다(하지만 불구가 되었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이미 그 시대가 되면 의료기술의 발달로 지금과 같은 <흉칙한> 의수/의족에 의지하며 평생을 살 필요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홀드만이 그려내는 전투는 결코 영웅적이지도, 그렇다고 숭고한 것도 아니다.. 그건 주인공에게 있어 하나의 <일과>일뿐이다.. 더구나 이미 세대가 다른, 그리고 언어와 성적 취향도 다른(이미 시대는 이성애에서 동성애로 코드가 바뀌어 있었다) 병사들과 <전우애>는 커녕, 일상적인 감정적 교류도 어려울 정도이다.. 부대에서 유일한 이성애 취향의 늙은 병사로서(생물학적 연령이 아닌), 그는 고독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기지로 쳐들어오는 토오란과의 운명의 마지막 전투를 끝으로 그는 다시 귀환한다..

귀환.. 물론 세계는 변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미 몇 백년이 흘렀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전쟁이 이미 끝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에서 돌아온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코 영웅적인 대우도 그렇다고 따뜻한 환대도 아니었다.. 그들을 맞이한 책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여러분이 견뎌야 했던 일에 대해서 유감으로 여기고 있고, 그것이 훌륭한 대의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책에 쓰여 있듯이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전쟁의 성격도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에서 <허위에 의해 시작된 인류의 우매함의 기념비>로.. 이미 <푸에블로호>, 그리고 최근의 <천안함>(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태를 목도한 우리들로서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스토리일 것이다.. 21세기 초 드디어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구에서 여전히 권력을 갖고 있는, 그래서 국제 연합 우주탐사 및 식민화 그룹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는 <노병>들이 새로운 우주사업을 개시하고, 때마침 초기의 우주선 중 다수가 사고를 당해 사라졌다.. 전직 군인들은 이 사실에 의혹을 제기하고 식민 우주선을 무장시켜, 처음으로 다른 외계 생명체의 우주선을 만났을 때 그것을 파괴했다.. 그리고 <전쟁은 시작되었다>라는..  
 
그렇다면 전쟁은 어떻게 끝났을까.. 홀드먼은 꽤 친절하게, 그리고 상당히 리얼하면서도 코믹하게 전쟁의 경과와 끝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모든 잘못을 군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식민화 초기의 피해가 토오란의 책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내놓은 소위 증거라는 것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만큼 빈약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지적한 몇몇 사람들은 무시당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구의 경제는 전쟁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토오란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던 것이다. 돈을 얼마든지 처넣을 수 있는 멋진 구멍이 생겼고, 전쟁은 인류를 분열시키는 대신 통합해주었던 것이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토오란들은 그럭저럭 전쟁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 일에 숙달되지는 못했고, 궁극적으로는 패배했을 것이다. ... 토오란들에게는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에 인류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몇 백만 년동안 자연발생적인 클론으로서 살아왔다. 마침내 지구의 순양함들에는 칸의 클론인 맨이 탑승하게 되었고, 그제서야 처음으로 상대방과 의사를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제일 먼저 나온 질문은 "왜 너는 그런 일을 시작했지?"였다고 한다.. 물론 그 대답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시작했다고)?" 물론 클론 대 클론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뭐, 상관 없다.. 심지어 그것은 우리의 주인공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멋진 결론과 이를 정리해주는 주인공의 클로징 멘트로 이미 그 의미는 충분히 차고 넘치지 않을까.. .

알았네, 친구. 아직도 뭔가 미심쩍긴 했지만, 나는 그 설명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나주기만 한다면, 설령 위가 아래라고 한들 믿을 용의가 있었다.

충분하지 않은가..거기에 도저히 만날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연인 <메리게이>와의 재회까지 덧붙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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