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별의 계절

 

 

여름이 끝나갈 즈음 어떤 인간관계가 멀어질 때가 있다. 어느 날인가부터 더 이상 서로 열대야를 안주 삼을 필요가 없어질 때, 아침이면 제철을 맞아 떼 창을 해대던 매미들이 슬그머니 조용해질 때, 한 시간씩 해가 짧아지더니 마침내 하루가 짧아진 기분이 들 때, 바로 그때 여름 내내 연락하고 시시콜콜 안부를 묻던 누군가와 시들해지는 중은 아닐까.

 

지난 이십년 간 여름에 특히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도 나는 여름을 사람에 기대며 여름을 견디는 사람은 아닐까, 청소를 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과 가을이 뭐가 틀린 줄 알아?”

이렇게 묻고 나는 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빛의 무게야.”

이렇게 답했다.

“더 단단해지고 건조해진 빛들이 내 눈엔 여름보다 선명하게 보여.”

“사람 눈이 여름보다 한 곳을 더 오래 응시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럴지도 몰라. 사람은 계절이 변하려고 할 때, 그때야 비로소 내가 지나온 계절을 곱씹어보거든.”

 

우리는 여름과 가을 사이를 이야기 했고 아직 가을이 오기 전에 서둘러 멀어졌다. 어떤 이와는 전화를 끊을 때 다시는 전화 할 일이 없겠구나 예감하듯, 또 어떤 이는 ‘잘가’ 라고 인사할 때 다시 볼일은 아주 멀겠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다시 볼 것 같지 않아도 문득 마주치게 되는 이가 있으니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야 말로 내 뜻과는 무관한 일이 아닐까. 이런 저런 경험에 의한 삶의 법칙들이 하나둘 쌓여 - 아니 쌓이는 줄도 모르던 그 어느 날 - 자신만의 패턴이 되었음을 발견하는 날이 있다. 오늘 아침 비로소 빈번하게 반복되는 여름마감 이별의 법칙을 발견하곤 그것에 순응하기로 결정했다. 공식을 알고 있으면 문제를 풀 수 없어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여름 이별은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2. 이별의 약속

 

 

<마지막 4중주>라는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슬프지 않은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옴을 스스로 이해시키느라 오랜 시간 마음정리가 필요했다.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서 전혀 상관없는 영화를 보았지만 전에 일어난 일이 마음의 박동에 관여한 것이라 누군가 내게 이야기했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을 것이다. 나는 온전히 이 영화에 몰입했고 영화는 내가 잊고 있었던 슬픔을 가동시켰고 그것들은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아마도 이렇게 우겼을 것이다.

 

요즘 나의 화두는 누가 뭐래도 나이드는 것, 늙어가는 것, 그래서 잘 늙고 그것에도 만족하는 것이다. 은퇴라는 것은 저렇게 - 지금까지 행복하게 해왔습니다. 이제는 이 자리와 이 역할을 나보다 건강하고 총명한 젊은 사람에게 양보합니다. 그런 내가 자랑스럽습니다 - 하는 것이 아름다움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은 박수를 치는 것이리. <설국열차>나 <감기>도 <숨바꼭질>도 좋았지만 어느 순간 자극적인 소재는 마치 음료수처럼 갈증만 유발하는 것 같다면 이 영화를 꼭 추천한다. 돌아와 OST를 찾아서 다시 들었다. 바로 지난주에 하루키책을 덮고 다자키 스쿠루가 들었던 라자르 베르만의 연주 리스트의 순례의 해를 하루 종일 들었는데 갑자기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듣고 또 들었다. 그들이 연주한 건 자신들의 인생이라기 보다는 모두의 인생에 기여하는 자기 역할은 아니었을까.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2012 -

 

 

#3. 이별의 방식

 

 

 

“......거기서 벗어나 뭔가를 한다는 건 거의 생각할 수 없었어.”

“거기에 멋진 조화가 있었으니까?”

“거기 있으면 어쩐지 나 자신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 부분이 된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 그건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종류의 감각이었어.”

 

 

- p259,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대화가 등장하는데 한 개인이 전체의 일부분에 속해있다는 소속감, 일체감, 조화감이 주는 안정과 평화는 적어도 그 하나가 깨어지기 전까지는 아니 어쩌면 언젠간 깨어질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키의 소설을 덮고 한 참 지나 - 막상 그땐 별 감흥이 없었지만 - 나는 여름 내내 그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면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관계가 일방적으로 단절되었을 때 - 주로 내가 아닌 상대 혹은 타의 및 환경에 의해 - 그것을 견디는 힘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보다 잘 헤어지는 다시 말해 이별이 더 익숙한 그러니까 이별 후 상처에 덜 민감한 종류의 사람이 있다면 그의 내적자아는 어디서부터 단단해진 것일까.

 

제대로 이별하지 못하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가정 하에 나는 이 소설이 좋지 못한 이별을 한 주인공이 뒤늦게라도 좋은 이별을 하고 돌아와 비로소 단단해진 자신과 마주하는 여정으로 읽었다. 나는 이별의 방식도 습관이 된다고 믿는데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이별법은 하루라도 빨리 교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4. 이별의 대처

 

 

사람들은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거나 떠나버리곤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일터이다. 모든 일상이 잠시 정지되고 더 이상 삶이라는 그릇에 아무것도 담으려 하지 않는다.

 

꼭 물리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야 자폐공간에 숨어든 건 아닐테다. 어떤 사람은 방에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집과 회사만으로 최소한의 동선을 유지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취미삼는 특정 모임 혹은 장소를 자폐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다니는 장소만 다니고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것도 비슷한 심리에서 파생되는 증상이다. 불안하거나 위험요소를 피할 수 있는 사람, 해당 장소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거의 24시간 잠을 잔다. 최소한의 기초대사량만 소모하겠다는 절박한 의지의 표현이다. 걸음걸이도 느려지고 말수가 줄어들며 행동반경은 최소화한다. 잠들지 않아도 누워서 눈을 감고 잠들고자 더 정확히는 깨어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슬픔을 감당하려면 일정한 에너지가 필요한데 나는 그 슬픔의 무게에 압도되어 얼마간 항복해버린다. 그러니 이별한 후 내 자폐공간은 침대인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격렬한 운동을 하거나 몸을 움직임으로써 마음을 조절한다고 하는데 나는 내 마음과 몸이 가장 일치하는 장소를 찾게 된다. 고통을 인식하고 슬픔, 분노, 원망과 화해할 용기가 일어 날 때 비로소 한발짝 내밀어 걷기라도 가능하다. 예전에는 그래도 오래 걸으면서 무언가를 떨쳐버리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도 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일단은 드러눕는다.

 

어떤 방법이 되었건 좋게, 이해할 수 있게 이별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인연따라 만났다가 인연따라 헤어지는 것이니 슬퍼할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슬픔을 슬픔이 아니라 말할 수는 없다. 여러 번 이별을 겪었고 그때마다 슬픔을 잘 극복했다고 해서 다시 슬퍼질때 덜 슬퍼지지는 않는다. 외려 어떻게 슬프고 얼마나 견뎌야 할지를 알기 때문에 그 경험치 만큼의 플러스 알파가 더해지기까지 하는 게 나이듦의 서러움일 것이다. 다만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렇게 죽을 것 같던 모든 이별도 결국은 강물처럼 흘러가버리고 나는 다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모든 이별들이 새로운 이별들을 견디고 보내게 하는 아주 고마운 시간들. 그래서 여름과 이별하는 것도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닌 것이다.

 

 

애도 과정에서 내면에 통합되어야 할 것은 떠난 사람이나 그와의 추억만은 아니다. 애도과정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도 의식속으로 통합해야 한다. 고통을 조절하고 슬픔과 화해해야 한다. 애도작업을 이행한 사람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 강해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거나 사망한 후 훨씬 의미가 풍부해지고 역량이 커진다. 내면화, 통합이 영원한 성장법임을 알고 적극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 <좋은 이별>, 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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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08-25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도록 사랑스레 사귄 이들과 즐겁게 놀고 나면
즐겁게 헤어지고, 다시 즐겁게 만날 날을 기다릴 수 있어요.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도 즐거이 누리시기를 빌어요.

2013-08-25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물선 2013-08-3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다른 곳에 살았지만,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군^^*
다자끼 스꾸루와 마지막 4중주.

당신에게 여름과 함께 이별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가을과 함께 다시 만난 사람으로 해주라~

각자의 자리겠지만,
잘 지내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