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책 없이 오랜 세월 한 사람만을 사랑해온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보기엔 그 대상이 그렇게까지 인생 전체를 걸만큼은 아닌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외려 그 한 사람에게 인생 전체를 걸었던 사람이 더 아까울 정도로 능력 있고 모자랄 것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어도 좋을 대상이 너무나 훌륭하고 완벽해서 라기 보다는 목숨 거는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다른 무엇과 바꾸지 않겠다는 아집의 문제인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집착과 갈망은 곧 그 사람을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욕망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내 사랑을 얻어내고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의지는 실은 대상의 소중함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다. 세월이 지나면 환경과 조건이 변하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은 변하게 될 수밖에 없다. 변한 그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까닭이다. 어느 시절이건 왜 그래야 했는지 이유를 먼저 따지고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그저 세상이 사람이 원래 이런 것이라 받아들이는 편이 더 지혜로와 보인다.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도 세월 지나면 절대 머물러 있지 않는다. 단지 소중하게 여긴 내 마음을 기억하고 오래 저장해 두었기에 ‘내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흐르는 강물을 손에 움켜쥐어 봤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과거를 거슬러 시간과 공간, 상황을 그때 수준으로 복원하면 사람과 사랑까지 다시 되찾을 줄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간혹 있다. ‘되찾고 싶다’와 ‘되찾아야 한다’가 목숨만큼 절실하다고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 지난 5월말 <위대한 개츠비>를 영화로 보고 난 후였던 것 같다. 그런데 글은 두어 달이 지난 다음에야 쓰는구나...
책만 읽고 글만 쓰던 생활패턴이 바뀐 지 오래다.
독서와 글쓰기에도 근력이라는 게 있어 매일 습관붙이지 않으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 나는 책과 글을 멀리 하면서 매우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온라인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다보니 온라인에서의 관심사에서 자연스레 멀어져 갔다. 알라딘을 알고 여기서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 ‘이름이 뭐예요?’ 하듯 모르는 사람에겐 전혀 몰라도 될 일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다들 더 바쁘고 더 소통하고 현명하게 사는 것 같아도 들여다보면 더 멍청하고 더 외롭고 정신없이 산다는 걸 깨닫고 있다. 소통의 홍수는 반드시 불통의 씨앗이 된다. 즉각적인 반응은 잦은 실수와 무례를 부른다. 하루하루 누구와 무엇을 주고받는지 모르게 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이것이 쌓이다 보니 요즘은 어딜 가도 누구를 만나도 다들 서로가 아닌 전화기 화면만 쳐다본다. 서로가 다들 문제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며 그렇게 살아간다. 궁금한 건 바로 해결되고 처리도 빨라 참 편리한 세상인데 사람 마음, 그 마음 하나는 어쩐지 더 허무해지고 텅 비어간다.
채울수록 허탈해지고 비울수록 마음이 채워짐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또 무언가를 잔뜩 짊어지고 하루를 나선다. 벌써 주문한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반도 못 읽은 책들이다. 아무런 편견이나 어떠한 부담없이 그저 소설 읽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재미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중이다. 처음엔 제목이 웃기다 생각했는데... 그 의미 역시 알아가는 중이다.
이번 주말엔 꼭...
장마가 지나고 한 여름이 시작되려한다. 매미가 우렁차게 울어대는 걸 보니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모두 저마다 자기 갈 길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므로 왜 그러냐 묻지 말기로.
천천히 답하고
좀 시간을 두었다가 결정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