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저는 정치인 유시민은 별로였지만 글쟁이 유시민은 좋아졌습니다.
사실 유시민은 변한 게 없지만 제 마음이 변한 것이겠죠. 제 마음이 변하게 만든 것은 바로 유시민의 개인적인 고백, 말하지 않았던 가족사,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심경 등입니다. 저는 몰랐던 유시민의 한 부분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한 것이고 그것들은 현재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던 제 마음에 천천히 밀착되어 앞으로 이 사람이 정말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아가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였습니다.
저는 유난히도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화두에 자석처럼 끌립니다. 누군가 지금 하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이 무어냐 물으면 늘 습관처럼 답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 머리와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는지 헤아려 보면 대충 6,7년 정도는 된 듯합니다. 이런 질문에 심각하게 봉착하게 되는 계기는 아마도 그동안의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일 테고 그러한 시간은 무엇이 계기가 되었든 언젠가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지금까지 혹시 잘못 살아 온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일 것입니다. 다시는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다 뼈저리게 자각하는 순간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어쩔 수 없이 또 그렇다면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마음속 유언을 차분히 정리하게 되어 있죠. ‘어떻게 살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음으로써 남은 삶을 마감할 것인가의 준말인 것입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저는 왜 이리 허무하고 서글픈지 모르겠습니다. 그 추운 겨울을 잘도 견디었는데 막상 기다렸던 봄이 오자 변한 건 아무것도 없으며 꽃은 피었다가 다시 질 것이라는 자연의 이치만 분명해질 뿐입니다. 지금, 여기 오늘 내가 사는 이곳에서 감사와 기쁨을 느끼며 내가 마주한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내가 당면한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스님이든 교수든 이제는 멘토식 멘트의 정석이 되어버린 말들이 왜 이리 진부하고 지루해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참.
어쩌면 이미 답도 잘 알면서 그새 다른 말들, 다른 생각, 다른 글들이 그리워 여기 기웃, 저기 들락거리는 건 아니었을까요. 어디 공허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지적이고, 너무 잘난 척 하지 않으면서 감동도 있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가끔은 이상을 염원하는, 그래서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아 마지막 한 장을 덮고 나면 뭐야? 가 아닌, 음... 하며 천천히 무언가 채워지는 듯한 그런 책이 없을까... 하던 차에 이 책을 만났네요. 책도 인연이 되어야 펼칠 수 있고 덮을 수 있습니다.
요즘 출판계에는 오십대가 쓴 오십대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죠. 주변에 오십대가 많아서 그런지 유시민도 오십대 중반이라서 그런지 이 책 역시 오십대가 전하는 깨달음의 메시지로 읽혔습니다. 저자는 시종일관 원래의 나, 내가 되고 싶었던 나에게 다가가는 삶, 궁극에 내가 원하는 삶을 나답게 살고 싶다고 외칩니다. 그런 생각이 지금 가장 화두인 이유는 그동안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은...아닐까요. 그는 왜 원하지도 않는 삶을 그토록 치열하게 살은 것인지... 그런데 가만 보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 ‘운동movement'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학생운동에 청년운동, 노동운동, 시민운동, 정치운동까지 몸과 마음이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때가 없었다.
그는 말합니다. '하고 싶다’는 욕망보다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이끌려 사는 인생으로 살았고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몰랐다고요. 결국 자신은 ‘중요한 인물’이니까 ‘훌륭한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겠죠. 얄밉게도 저 위에 올라간 본 사람들은 내려온 후 꼭 그렇게 말하더군요.
- 나는 정치의 일상이 요구하는 비루함을 참고 견디는 삶에서 벗어나 일상이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나는 직업정치를 떠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해방감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또 다짐합니다. 물론 이 말씀이 이제 다시는 정치인으로 살지 않겠다로 들리진 않았어요. 정치인이 되기는 싫었지만 국민의 염원 때문에 그 거대한 바램을 거스를 수 없어 정치인을 하기로 결심한 안철수를 보면은요. 중요한 건 그가 정치를 다시 하건 안하건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진심은 물씬 전해진 게 아닐까, 저는 그러네요.
- 그런데 아무리 잘 살아도 죽지 않을 도리는 없다. 사형 집행일과 집행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 살아 있는 인간은 모두 사형수라고 할 수 있다.
나이 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자신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자살을 제외하면) 누구든 죽음의 방법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좋은 죽음, 바라는 죽음은 상상하고 염원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글 속에서 유난히도 인격적 존엄, 인생의 품격을 주장합니다. 왜 자살하지 않는지 카뮈의 질문을 빌어 여러 번 묻고 답해보자 부추깁니다. 알고 보면 이 풍진 세상 살아가는 그 누구도 자살할 이유가 없어 자살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요. 죽을 만큼의 이유는 곧 살만큼의 이유와 같다고 느낍니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고 살아갈 것인가는 개인의 의지이고 선택입니다. 만약 십 분후 추락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면 그 남은 십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정치말고 더 좋은 일을 하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고 합니다.
- 참 많은 사람을 사랑했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물이 조금 났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만약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십 분을 허락받는다면 나는 그 십 분을 그렇게 눈을 감은 채 보낼 것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와 주고받았던 사랑의 감정을 되살리면서, 그것이 주는 행복한 느낌을 음미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맞는 것이다.
이 책에서 모르는 뜻, 이해 안 되는 문장, 난해한 표현 같은 건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정치인 유시민의 삶에 대해 많은 회의감을 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처음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정치적 행보를 이어 온 분이라 이 책 역시 이제 이런 글을 쓸 만한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의 글을 책으로 펼쳤구나, 이런 편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진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글이면서 또 가장 크게 감동 느끼는 것도 글이잖아요. 독자가 원하는 글을 원하는 방식대로 세상에 내놓는 것은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책 덮은 후엔 제 선입견이 부끄러워 졌어요.
저자는 정치로 마모된 인간성, 소모된 인격을 채우는 일은 역시 글쓰기였고 앞으로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떠나 글 쓰는 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소설같은 문학작품에도 도전한다면 어떨까...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이 책은 독자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을 듯 합니다.
꽃구경 가려던 마음을 비 때문이라며 핑계를 실컷 할 수 있는 주말입니다. 통계적으로 3,4월에 가장 많은 자살 시도가 이어진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활발해지는 계절인가 봅니다.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고 하는데 봄비를 느끼며 죽음을 준비해 보는 시간은 어떨까요. 애통함을 덜 남기고 마지막 순간 자기 인생에 후회가 없으려면 제대로 삶을 살아야 할테니까요. 왜 자살하지 않는지, 남 몰래 목록을 적어보는 건 어떨까요. 아주 옛날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유를 수첩에 적어보다 그 수가 터무니 없이 적은 것에 한숨을 쉰 적이 있답니다. 지금 자살하지 않는 이유가 아마도 우리를 더 살게 하는 삶의 기쁨이자 행복일 거예요. 사실 따져보면 여러 좋은 장점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이 기쁜 요소들이 많아서 행복이 큰 것은 아니지요. 남들이 보기엔 너무나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이유일지라도 내가 행복해 하는 그 하나만 있다면 우린 오늘도 내일도 행복할 수 있는 거니까요.
유시민의 텍스트가 빡빡하게 느껴진다면 이런 책도 있더군요. 요즘 스님들의 서적이 어엿한 장르가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 부터 스님 책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삶과 수행이 일치하는 분들의 가르침은 언제고 환영입니다.
이 책의 화두 역시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거든요. 밤에 잠들기 전 차분한 마음으로 몇 페이지 읽고 덮기에 좋습니다.
이 분의 말씀 중에 '생각이나 말이나 글을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실과 진실, 실재의 내용과 모습을 확인하는 삶'이 자신을 바로 아는 것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며칠전 친구와 아무일도 없었는데 그저 서로 생각이 다르다고 말과 문자로 언쟁이 오간 적이 있었기에... 저로선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을 전하는 것도 글이므로 글의 필요성이나 효용성에 의문을 가지자는 건 아니구요. 다만 자신이 내뱉은 말이라고 자기가 쓴 글, 자기 머리에서 든 생각이라고 그것이 내것이며 마치 내 자아를 대변하는 양 그것에 끄달리며 살아가는 것의 어리석음을 의미한다고 여깁니다..불교에선 무아와 무상만이 깨달음의 지혜라 주장하니까요.
며칠 전 ‘지아이조 2’- 이병헌이 주연이던걸요? -를 보고 나오면서 시집 모음집을 하나 샀는데 온라인에서 봤으면 구입하지 않았겠지만 시집들 속에서 상대적 경쟁력을 가지고 제 손에 들어와 잡혀버린 책입니다.
저는 요즘 시들이 너무 어려워서... 이렇게 한편 씩 해설이 깃들여진 글들이 좋더군요.. 시 선택의 기준은 완전히 저자의 마음입니다. 제가 어떤 기준을 가질 수준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믿어보고 의지하는 것이죠.
오랜만에 주말에 글을 써 봅니다. 예상대로 비가 많아 머리도 가슴도 촉촉함을 유지하기 그만이네요. 이렇게 촉촉할 수 있는 봄이 아직도 충분히 남았는데 어찌, 자살할 수 있겠어요. 모든 자살을 떠올리는 젊은이들이 이 봄은 화려한 색색의 꽃들만 사는 게 아니라 색도 향도 없는 바람도 비도 가끔은 눈까지도 삶을 기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당신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