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흘러간 마음

 

 

2012년 하반기 이후 거의 서재 활동을 하지 못했다. 내가 책을 돌아보지 않은 시기는 정확하게 6월 달부터. 그런데 엊그제 서재의 달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덜커덕 한동안의 무심함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이 뭣고. 누가 무엇이 되었는고. 내가 왜.

 

서재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시기 다른 활동과 개인적인 공부 등으로 어떻게 한해가 지나갔는지 인식할 수 없었다. 그동안 출판사로부터 몇 차례 책을 무상으로 받고 서평도 쓰지 못한 책이 수두룩하며 아예 들쳐보지도 못한 책도 상당하다. 미안해서 받아 놓고 그렇게 무책임한 시간이 흘러 간 것이다. 그러는 동안 심지어는 어떻게 서평을 썼는지 조차 잊어버렸다고 할까. 다시 돌아와 보니 이 낯설음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꼭 옛날 애인과 재회라도 한 듯한 기분. 그동안 나 없이... 잘 살았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고,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아닌 것 같다. 차츰 서재와 멀어져 간 이유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천천히 조금씩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은 흘러가 버리는데 무엇을 좇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 사이도 그런 걸까. 어떤 이와 친해지다가도 서로간의 오해로 틈이 벌어지고 한동안 멀어졌다가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반가와 지는 것이. 그러고 보니 왜 헤어졌는지 모르게 헤어져 버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걸까. 그렇담 우리네 이별의 이유란 그 이유 때문이 아니고 그저 헤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인 걸까.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 동안 나는 열정에 대해 위험성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너무 열심히 활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좋다고 만은 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이든 일이든 그것을 대상삼아 대부분의 일상을 의존하고 기대기 시작하면 반드시 실망과 상처가 따르기 때문이다. 적정한 거리두기. 한발짝 물러서기. 잠시 쉬어가기. 멈춘 것에 조바심 내지 않기. 때로는 멈춘 것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지켜봐주기. 다시 마음이 일 때까지 그 마음 기다려 주기.

 

모든 것은 마음이 하는 일이다. 정작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글이란 무엇이고 어떤 글을 쓰며 생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글을 안 쓰는 것도 아니고 안 쓸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불안이고 초조였다. 글을 수단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게 남은 마지막 수단이 혹시 글은 아닐까 싶어서 였을 것이다. 글을 안 써도 되고 글로 아무것이 안 되어도 좋다라는 마음이 들 때까지 글이 아닌 것들을 다시 찾아 취해보았다. 예전에 하던 일을 했고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만났다. 글을 안 써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야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믿었던 이 역설이 나를 다시 깨웠다.

 

그러다가 신기하게도 작년 말에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내 자신도 내 마음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랐다. 사람에게 마음이 한결 같다는 말은 틀려도 한참 틀린 말은 아닐까. 마음은 환경과 조건에 의해 얼마든지 변화하는데 어떻게 한가지로 묶어 둘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제 변하지 않는 사람을 믿지 않고 오직 변하는 마음만을 믿는다. 그 사람의 마음은 반드시 변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이 사실을 믿는 내 마음조차 변할지 모른다. 마음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우리는 때로 좇아가며 때로 머무르며 그렇게 내 하나의 마음이 있다고 여기며 그것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존재인 것.

 

 

#2. 다시 흘러온 마음

 

 

마음 공부를 하면서 전문적인 서적과 유명한 스님들의 에세이, 혹은 불교 경전서들을 들쳐 보았다. 종교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한 의도가 일차적이었다. 그들 중에 실생활에서 도움이 되는 책과 반복해서 읽기 좋은 책을 소개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독성, 탐욕과 화, 무지를 어떻게 정화하고 치유하여 더욱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지 알려준다. 요즘은 힐링 서적도 많고 저마다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들을 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일회성 위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가 불교에 귀의해 절에 들어가 스님처럼 도를 연마하자는 뜻이 아니다. 어떤 분야 어느 지위에서건 내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치유하는 불교읽기에서는 평가기준을, 마음공부를 통해서 인간이나 자연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그릇된 생각이 잘 치유되어 안정되고 조화로운 정서 상태를 회복했는가에 둔다. 또 자신의 내면과 대인관계에서 얼마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조화롭고 균형있게 드러나는가에 관심을 둔다. ...(중략) 내면으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좀 더 명료해져야 하고, 대인관계에서는 뭔가 그만큼 더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너그러운 말, 행동, 생각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하는 불교읽기는 바로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말과 행동과 생각을 치유하는데 일차 목표를 둔다.
- 22p

 

보다 적게 화내고 정서적으로 일관된 인격이란 말처럼 평범하고 쉬운 단계가 아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절로 수행이 된 인격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상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져 자아중심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나의 가치관은 이것이다는 식의 ‘나’에 대한 온갖 고정관념만 늘어날 뿐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믿다가 그 ‘나’에 속고 그 ‘나’가 진짜 자신인 줄 착각하며 상대에게 ‘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물론 나 역시 다를 바가 없었다.

 

불교에서는 자아란 결국 과거 경험의 누적과 그에 대한 집착일뿐 고정된 자아의 실체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교와 사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아의식을 교육받고 내 생각, 내 주장, 내 방식, 내 견해를 정립하여 그것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는 것이 나를 만들고 알리는 길이라 배워왔다. 이러한 과정이 2,30대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성과위주의 세월을 지나온 세대에겐 자아야 말로 조화로운 삶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아니었나 싶은 것이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나의 마음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내가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시원하게... 답을 할 수가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전히 자신과 이웃을 끊임없이 비교하고(我慢, self-pride), 자기중심적인 사랑(我愛, self-love)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我癡, self-ignorance), 그러면서도 영원하고 독립적인 자신이 존재한다는 견해(我見, self-view)를 버리지 못한다. 이것들이 어떻게 인간을 고통에 빠지게 하는지 왜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지 그 중심에 철저하게 믿어 의심치 않는 자아가 있다.

 

가만 생각해보면 괴로움이 있는 곳에 반드시 ‘나’가 있다. 아무리 ‘너’가 있다 해도 결국 ‘너’를 보고 무언가를 느낀 ‘나’를 피할 수 없다. 그러니까 괴로움의 뿌리를 본다는 것은 그 괴로움 속에서 ‘나’를 본다는 것이다. 이 책은 화나고 섭섭하고 불편한 마음 이면에 ‘나’를 드러내고 세우려는 마음이 손상되어 어쩔 줄 몰라 하는 에너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다스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혹시나 요즘 들어 사람들의 마음이 변했다고, 아니면 늙어가는 내 몸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든다면 괴로움의 화살을 내 마음으로 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 마음 어느 구석이 고장났나 먼저 알아보고 집중적인 치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 읽고 있는 책은 반야심경이다. 제대로 느리게 읽기를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은 어렵고 모두 이해하지는 못해 답답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안해진다는 것. 마음 공부를 시작하고 나면 자꾸 더 깊고 넓게 마음을 헤쳐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러나 이 책은 지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머리로는 이해하나 제대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는 없는 책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 그리고 사는 것이 일체될 때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이루어지는 것 일테고 내 수준에선 그저 ‘알음알이’나 ‘엿보기’에 그치는 듯 하다.

 

 

참고로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사이트를 첨부한다. 내 경우 이동 중에 스마트 폰으로 들으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목소리 톤과 이야기 하는 방식이 자신에 맞는 스님을 택하여(?) 하루 한번 명상하듯 들으면 공부도 되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 종범스님의 향기있는 법문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1&PID=P457

 

-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1&PID=P678

 

- 치유하는 불교읽기(서광스님)

http://www.btn.co.kr/program/Program_datail.asp?ls_StSbCode=CATPR_01&PID=P741

 

 

물론 머리로는 이렇게 알고 있지만 또 화는 나고 그 화를 참기는 어렵다. 단지 지난 육개월 동안 이곳을 떠나 조금이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화가 나고 그 마음이 곧 떠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그러는 동안 화가 난 나는 화가 나지 않는 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다. 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 무엇이든 깊고 처절하게 바라볼 수 있다. 언젠가는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또 불현듯 화가 나고 슬프겠지만 그것을 좇아 머무르지 않아야 함을 아주 조금 깨우쳤다고 할까...

 

자신의 마음구조와 반응행동, 인간관계 패턴에 대한 치열한 이해는 사는 동안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마음 편하게 내일도 모레도 사는 날, 아니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2013-01-0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는 날'은 생각하지 마시고요,
'살아가는 오늘'만 즐거이 생각하셔요.

반야심경을 읽은 뒤에는 금강경 읽으시겠지요?
한글로 옮겨진 불경은
누가 옮기느냐에 따라 줄거리나 느낌이 달라지는 듯해요.
그래도, 책마다 서린 이야기를 잘 헤아리면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리라 믿어요.

2013년 한 해에
'글 없이 예쁘게 사는 사람들 사랑'을 잘 삭혀서
'글 하나에 담는 웃음꽃' 곱게 나누어 주소서.

마녀고양이 2013-01-09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그동안 뭐하셨습니까... ^^
한사람님, 고운 새해 맞이하고, 새해 초반부에 얼굴 내밀어줘서 감사드려요.. 헤헤.

화를 낸다, 슬픔을 느낀다, 모두 인간이니까 당연한거 아닐까 싶어져요.
열정만큼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고 슬픔도 삭히고, 한사람님은 부러울 정도로 열정이 많은 멋진 분이예요.. 부비부비.
아하하.... 덧붙여 저두... 그놈의 화가 한몫을 한다눈.. ㅋ
우리 올해 사땡 잡았네요, 우앗....

덧붙임. 헛갈리실까봐, 저는 마녀고양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