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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간주곡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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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떠올리다

책을 덮고 제일 먼저 내 인생에서 가장 허기로왔던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生의 한 지점,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 일년 쯤 지나 아이와 마트를 가게 되었다. 일정기간 엄마와 같이 하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살았던 듯하다. 엄마는 내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아이를 돌봐주고 살림을 해주시던 生의 영원한 매니저였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내 일상의 동선은 철저하게도 엄마의 동선과 일치했다는 것을 매 발걸음마다 깨닫는 일이었는데 그 반복되는 자각의 고통이 싫어 나는 오랜 기간 생활의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 중에 마트를 가는 것이 가장 두렵고도 미어지는 일이었는데 물건을 고르고 집어 들면 귓전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아이와 함께일 땐 그렇게 고른 재료들로 최고로 맛나던 식탁을 차려주시던 뒷모습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엄마를 의식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마트를 가게 된 그날, 아이는 전에 없이 지하 주차장에서 갑자기 고개를 떨구더니 차문을 열지 않았다. 당신의 새끼의 새끼에게 모든 정을 쏟아온 할머니를 잃었을 아이는 당시 그것이 자신의 生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었다. 일년 후 학교를 다니다가 엄마와 함께 마트에 도착하니 비로소 할머니의 상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할머니가 해주시는 고기랑 나물은 못 먹는 거잖아. 여기서 사가도 못 해먹는 거잖아. 할머니..." 아이는 차안에서 끝내 오열하며 소리를 질렀고 나는 아이를 달래느라 제대로 울 수도 없었다. 우리는 장을 보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아이를 재우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간사하게 밀려드는 배고픔이 내 허전함을 더 부추기며 스멀스멀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나는 정말로 배가 고픈 것이 고통스러웠고 누구보다 허해진 마음까지 어쩔 줄 몰라 했다. 육(肉)허기와 영(靈)허기에 대책없이 내몰린 내가 한 일은 밥통에 며칠 눌러앉은 밥을 반찬없이 꾸역꾸역 집어 넣는 일이었고 다시 살기 위해 내일을 위해 이불을 덮어 쓰는 것이었다. 그래야 다시 아이의 허기라도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그때 그 극심한 허기의 파도를 뚫고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허기를 채우려 마트를 가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토록 허기의 정점에 다다랐기에 다시 무언가를 채울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내 존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극도로 공허한 상태에선 생물학적인 허기와 정신학적인 허기를 구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즉, 몸이 고픈 것과 마음이 고픈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점엔 어느 쪽이든 쉽게 취할 수 있는 것을 얻게 되면 일단은 본능적으로 재생의 힘을 마련하게 되는 게 인간의 생존방식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는 죽을 만큼 굶어 본 자만이 죽지 않고 살아낼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과도 같은데 삶이 내장한 이 아이러니, 세월속에서 잊혀져가던 허기의 순간을 나는 다행히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르 클레지오는 바로 인간이 감지하는 이 두 가지 '허기'에 대한 기억을 세심하게도 들추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 허기(虛氣)라는 '죽은 듯이 없어 보이는 기운'을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만져지는 '살아있어 느껴지는 기운', 생기(生氣)로 변주하는 데 주저없이 음악적 기운(音氣)을 빌어 오셨다. 서사 전반에 걸쳐 작품의 제목처럼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자신만의 곡(曲, 음악)을 때론 노래로, 때론 연주로, 때론 지휘로 들려주는 수사를 연출하였다. 자연 나는 글의 흐름에 전적으로 몸을 내맡기게 되었고 돌아와 보니 짧지만 굵은 음악여행이라도 마치고 귀가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기분을 어떤 문학적 충격이라고 표현한다면 나는 몸과 의식이 한 곡의 문학에 관류된 꽤 운 좋은 독자가 아닐까. 그가 엮어낸 음악의 곡이 정녕 간주곡(間奏曲)이라 한다면 나는 그 장르를 몸과 마음으로 오래 기억하고 싶고 나와 같은 기억을 가진 청자들과 이 기분을 한껏 공유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먼저 이 작품의 제목 「허기의 간주곡」에서의 '간주곡'은 책을 덮고 나니 더욱 다층적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오페라나 드라마의 막간음악을 의미하는 '간주곡'으로서 불어인 entracte(남성명사)나 intermezzo(남성명사)를 쓰지 않고 이탈리아어인 ritornello (리토르넬로)에서 파생된 ritournelle(리토르넬르, 여성명사)를 택하였다. 표면적으로는 17, 8세기 오페라 아리아의 도입부나 중간부에서 반복되는 짧은 기악곡을 의미하지만 그 후 리토르넬로는 협주곡에서의 특정한 '형식'을 의미하기도 하며 반복되는 후렴구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 리토르넬로는 그 어원도 '회기', '복귀'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ritorno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가 흔히 복고풍의 패션을 '레트로'라고 일컫을 때 같은 의미를 연상하면 될 듯하다. 또 불어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명사인 단어를 사용하여 이 작품이 스무살의 젊은 나이에 시련을 겪은 자신의 어머니에 헌사하는 글임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으로도 생각된다. 비슷한 의미로서 작품의 주인공인 에텔이 부르는 곡이거나 에텔을 위한 곡일 수도 있기에 '간주곡'은 총체적으로 '어머니의 허기로의 회귀'를 그리워 하는 작가의 자작곡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리토르넬로, 독주와 합주의 하모니

소설의 시작은 어린 내가 느껴본 육체적 허기의 체험이었지만 이야기의 마지막은 내 어머니의 인생을 바꿔놓은 볼레로 공연, 어머니의 정신적 허기를 관통하고 남겨진 자유와 생존의 기운을 부연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작가가 자식으로서의 배가 고픔을 어머니 된 마음의 채움으로 끝맺은 것이다. 자신의 허기와 어머니의 허기를 공평하게 일직선상에 놓고 허구의 허기를 관통시키려 한 듯하다. 시점과 내용상 작가의 실체로 보이는 짧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양끝에서 허구로서 흐릿한 기억들을 단단히 동여매주는 지지대 역할을 했다. 두 실제된 체험사이 구성된 허기의 존재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배회하거나 표류했고 분명하지 않은 소음들과 인지되지 않는 색채들로 가득했는데 이 기억들이 옆으로 새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었달까. 행여 번지거나 흩어질 수 있는 본 작품의 서사를 고급스럽고도 우아한 프레임에 잘 안착시켰다는 느낌, 안전하게 표구된 그림을 받아들고 이제 우린 집안 어디에 걸어야 할지 고민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야기의 흐름은 전쟁이라는 역사와 성장을 해가는 개인이 나란히 병행하는 구조였는데 이는 꼭 역사와 개인이 어우러져 연주되는 협주곡(콘체르토ㆍconcerto)을 연상시켰다. 협주곡은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 두 개의 음향체가 서로 대립하면서 대결을 벌이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개인이라는 솔로(독주)와 역사라는 투티(합주)를 교대로 번갈아 등장시키며 리토르넬로 형식을 선보였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처음엔 개인과 거리를 두고 저 만치서 관조된 전쟁이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삶속으로 침투하여 마침내 관통하고 지나는 것으로 느껴져 독주와 합주가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게 이 작품은 지난시절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훗날 회상해보는 그 과정을 섬세하게 따라간 이야기로도 읽혀졌다. 아주 느린 화면으로 총알이 가슴을 뚫고 휘이 지나가는 그 순간을 스스로 목도하고 쓰러진 뒤 한참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때 다시 그 순간을 기억해내는 일. 그러니까 전쟁이라는 성장통을 헤쳐나온 한 여인의 성장기는 그것으로 끝은 아니라 여기기에도 충분했다. 그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예언이자 약속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전쟁'으로 파괴된 삶의 현장과 마음의 파편들은 외려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는데 그것은 도시의 풍경과 일상을 포착하고 담아내는 작가의 미학적 습관에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시종일관 작가는 도시의 색채와 소리, 냄새, 촉감들을 자신만의 필터에 통과시켜 그려내었고 그 결과 우린 언어가 주는 미혹에 빠져들어 어떤 인간 본성의 머나먼 고향에 가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깨달은 악기로 개인의 삶을 연주했으며 자신이 보고 들은 악기로 역사의 현장을 공연했다. 이 책은 집요하게도 근원적인 인간의식을 두드리는 고집이 있었다. 그곳이 순수를 갈망하는 유년의 나라인지 모국을 그리워 하는 탄생지인지 친구와 우정을 쌓았던 호숫가인지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바닷가인지 부성을 확인하고픈 피난처인지는 정확히 답할 순 없으나 아마도 현재의 허기를 달래고 채울 수 있는 누적된 기억의 장소인 것만은 확실했다. 작가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동되는 장소에서도 똑같이 허기를 이동시키며 대상인물이 바뀌어도 허기가 사라지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에텔과 주변 인물들은 모두 그들만의 창의적인 장소를 주장했지만 그들을 지배하던 허기만큼은 변함없었던 것이다. 물론, 훗날 이 모든 허기의 기억들이야 말로 다시 차곡차곡 허기를 메우는 기억이 되었겠지만.

자신의 허기에서 어머니의 허기를 기억해내고 자신을 통과하고 남겨진 허기의 잔재에서 어머니의 그것을 중첩시키며 生의 기운을 찾고자 한 작가의 의지는 역사라는 과거와 개인이라는 현실을 잘 조율하며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한 문학의 리토르넬로는 아니었을까.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망의 끝에 내몰린 한 개인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조국을 외면하지 않는 합리적이고도 지적인 방편은 아니었을지.

...리토르넬로, 순수로의 회귀

소설초반에 등장하는 에텔의 종조부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 유년시절의 연보랏빛 꿈이었다. 검은 중절모를 눌러쓴 채 은지팡이를 들고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를 내며 걸음을 걷는 할아버지는 팔순 고령에도 불구하고 에텔을 목말 태워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 거구의 인물이었다. 실제로 군의관 아버지와 떨어져 어머니와만 생활한 작가에게 부성의 부재는 모성의 절대성을 키우게 한 원인이었을 터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에텔도 부모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정부를 두고 있는 아버지 밑에서 生의 최초로 느낀 허기는 바로 부성의 결핍이었다. 그녀는 가족, 친구, 연인 할 것 없이 상대가 가진 남성성에서 기운을 발견하고 그것을 우상시하며 자신을 의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외동딸로 분한 에텔에게 첫 번째 우상은 바로 할아버지였던 것이다. 에텔은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땐 '거인과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는 '이 세상 어떤 무질서 속에서도 길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솔리망 할아버지는 동화같은 숲속에서 에텔에게 연보라색 빛의 돔을 보여주며 그 별장을 선물하는 것으로 아버지를 대신한다. 유일한 상속자가 된 에텔(ether, éther)의 이름은 영어, 불어 모두 '하늘'을 의미한다. 할아버지는 연보라색 별장에 오염되지 않은 맑은 대기를 의미하는 에텔(하늘)이 비치는 거울연못엔 아무것도 심지 않고 항상 하늘(에텔)이 비치도록 접시처럼 반들거리게 깨끗한 상태로 놓아두고 싶어 했다. 에텔은 솔리망이 죽은 후 대부분 잿빛 하늘밑에서 숨을 쉬게 되지만 그것을 비추는 거울연못을 마음에 심어두었기에 오랫동안 자신의 하늘을 비추게 하는 정체성의 시원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연보라색 집의 거울 연못은 에텔(하늘)의 색채(정체성)를 비춤으로써 에텔이 당면한 허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한 소설속 블랙박스였던 것은 아닐까. 연보라색 집은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블랙박스만은 저 먼 곳, 이 곳이 아닌 세상 반대편 어딘 가에서 살아남아 당시의 행복과 환희를 고스란히 저장해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가 연보라 빛의 우상이었다면 제니아는 금빛의 우상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리셔스 섬 출신의 에텔에게 러시아에서 망명온 제니아는 같은 이방인이지만 우유부단하지 않고 더 빛나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부러움, 동경의 대상이었다. 에텔의 가족이 모리셔스 섬을 순수의 귀향지로 두고 파리에서 각자 그리움의 허기를 느끼는 것은 아마도 작가 자신이 에텔과 같은 식민지 출신 프랑스 이방인 집단에서 성장했던 이유로 더 세밀하고 서정적인 표현이 가능했던 가보다. 에텔은 비극적 가정사를 안고 있던 제니아에게 빈곤과 슬픔을 자양분으로 한 방어기제들과 부딪히면서 상처와 행복을 동시에 느낀다.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지배하고 적절히 모욕을 주면서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는 제니아로부터 우정과 질투심, 동성애 감정들을 발견하고 자신을 조종하는 그녀에게 집착, 몰두하는 소녀시절을 보낸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 여학교 시절에도 남성 지배계급이나 권력층, 군대의 정서를 지니고 행사하는 여학생이 있는 반면 그 학생에게 단순한 호감을 넘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쪽도 많았던 듯하다. 전자가 자신의 열등감을 숨기기 위한 과잉반응이었다면 후자는 부성의 부재에서 오는 결핍이 투사된 심리가 아닐까. 내 경운 에텔과 같은 외동딸이었지만 여성적 취향, 여성의 정서를 폄하하면서 중성적 캐릭터로 친구들 위에서 군림하는데 많은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제니아도 자신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에텔에게 엄마가 일하는 봉제공장에서 남자보다 여자를 더 좋아하는 여성을 예로 들며 에텔의 감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나는 무엇보다 여학생끼리의 이런 밀도높은 심리적 에피소드를 예리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통찰이 참 여성적으로 느껴졌고 내심 놀라웠다. 여학생끼리의 추억으로 잘 포장된 센느 강의 백조 산책길이나 정원에서 보내는 오후의 시간, 그 시절 친구와의 콩쿠르 참가계획들을 넘겨가면서 나는 내 여학생시절 친구관계를 떠올리며 가장 친한 친구를 향한 그리움과 서운함을 다시금 복원해 낼 수 있었다. 기억한다는 것은 지나와 버렸기 때문에 잃어버린 시간과 사람, 사건들로 생겨난 허기를 신기하게도 추억이라는 생기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실은 목메이는 그리움을 메우기 위해 누군가를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닐까. 잊으려고 하는 모든 행위는 잊음으로 생겨날 허기를 채우는 일이므로 실은 더 잊지 않는 기운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그리움을 떨쳐내기 위한 모든 행위는 더 그리워 하고 싶어 행하는 일이었음을 다시금 깨우친다.

에텔은 결국 전쟁을 겪고 나서 제니아가 가고 싶어 한 소설속의 '눈과 숲의 나라' 캐나다로 生의 닻을 내리게 될 것을 암시하며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에텔이 가고 싶어한 곳은 할아버지가 늘 그리워하던 세상 저편의 유년의 고향이면서 제니아가 꿈꾼 소년과의 사랑의 장소이면서 부모의 건조한 사랑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는 곳, 바로 맑은 에텔(하늘) 아래 였을 것이다. 그곳엔 노란 물보라와 초록색 강물과 연보랏빛 태양이 숨쉬는 순수의 귀향지로서 그녀만의 허기의 고향이기도 했을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유년의 순수가 되돌아갈 회귀의 장소로서 그곳은 우리 모두의 그리운 리토르넬로는 아니었을지.

...리토르넬로, 되풀이 되는 감각장치

한편, 코탕탱가의 살롱에서 오가던 사교모임에서  에텔이 듣고 기록한 모든 대화들은 일종의 연극무대를 연상케 했다. 그들에게 살롱모임은 일요일 오후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도돌이표, 친밀한 후렴구는 아니었을까. 길거리에서도 토론하기를 즐기는 프랑스 문화를 떠올리면 하나도 어색할 건 없었지만 신기한건 그들이 뿌려대던 대사들은 어떤 운율을 가진 음어(音語)이거나 반복되는 화풍을 가진 화어(畵語)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청각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또 모인 사람들은 출신지역과 직업이 다양하고 파리지엔느에서 이방인까지 고루 섞여 있어 시사, 종교, 이데올로기에 관한 중구난방식의 대화를 연출해내는 일등공신이었다. 에텔의 아버지 알렉상드르, 어머니 쥐스틴을 비롯해 고모들, 훗날 사기꾼이 되어 아버지를 파산시킨 변절자들, 연인이 된 로랑 펠드까지 대사를 통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연기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시를 읊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혹은 웃거나 욕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전쟁이라는 두려움을 잊고 그로인한 허기를 채우는 프랑스적 광기에 해당하는 그들만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이 장면은 에텔이 그들로부터 가치관을 형성하게 된 시기인 어린 시절을 장식하던 중요한 배경이었는데 살롱에서의 반복되는 일요일 연극이야말로 참가한 배우들에겐 '허기의 간주곡'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선 살롱에서의 비현실적인 분위기, 그들의 허영심 가득한 가식적인 대화를 혐오하는 에텔의 회상중간에 아버지의 연주와 노래에 반주를 담당한 기억도 애틋하게 묘사되었다. 그때 흘렀던 슈만과 슈베르트의 음악은 모리셔스 섬을 그리는 '허기의 기억'을 상징하기에 이야기 속에서 막간을 이용해 연주를 담당한 에텔에겐 더 분명한 '허기의 간주곡'이 되지 않았을까. 에텔은 그들이 나눈 대화들(재미난 표현, 시적인 문장, 험담과 독설등)을 마치 연극의 대본처럼 수첩에 적기도 했는데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간주곡을 연주하고 듣고 적으며 마음에 난 구멍을 메꾸어 보려했던 것이다.

또, 이 작품에서는 유난히도 언어를 시각화하는 작가만의 장치가 빈번했다. 지명으로 표기되는 외래어들, 인명으로 인식되는 가상의 성, 이중의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 전시(戰時)의 법령, 유대인 명단 , 여행 허가 증명서등, 이러한 언어의 나열과 배치는 솔직히 번역문학을 대하는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그 의미와 의도를 정확하게 간파하긴 어려웠지만 대체로 비슷한 마디와 음절을 가져와 다른 곡을 작곡해 나가는 창작의 과정으로 보였다고 할까. 각 단어의 철자들은 문학으로 음악을 변주하는 그 연장선 상에서 흡사 작가가 그려놓은 음표들로 나열된 단어들은 하나의 악보로 이해되었다. 작가는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양국어를 할 줄 알았기에 특별히 모국어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지만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작가 언어를 프랑스어로 택한 경우였다. 즉, 그가 선택하고 표현하는 언어는 자신의 실제 모국어보다 더 주체적이고 의식적인 개념어로서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고 그것의 의미를 전달하는 일은 모국어와 별개로 작가언어를 택하지 않아도 되는 작가들보다 복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택자체가 이미 특정 의미를 함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방인 어머니의 언어를 예술언어로 택한 작가의 이러한 배경은 단순히 프랑스어로 줄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국와의 불편한 관계, 독일을 바라보던 시각, 이탈리아인에게 느끼는 동질감, 같은 언어를 쓰지만 세상 반대편 나라(캐나다)에 대한 선망, 유럽내에서의 예술적 우월감등이 반영된 억양과 문법을 펼치게 한 밑거름이었을 것이다. 나는 에텔의 수첩에 발음할 때 들리는 표음과 원래 단어의 뜻을 이용해 반복되는 농담들 ('재채기 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슈바르첸트루버'를 마찰음이 많아 '시원하시겠습니다'로 지문처리하는 등의)이 기록된 것을 보며 헤르타 뮐러를 떠올리기도 했다. 조국 루마니아를 버리고 독일로 망명해 이방인으로서 작가생활을 한 그녀는 루마니아의 속담이나 노래에서 연상되는 낱말(의미)과 독일어로 쓰거나 읽을 때 나타나는 낱말(표음)을 결합해 독특한 조어를 잉태해낸 작가였다. 비슷한 기법으로 언어유희를 일삼는 작가의 반복되는 장치들은 혹시 부족할 수 있는 작가만의 문학적 허기를 해소하는 언어 자유의 능력은 아닐까 싶었다.

헤르타 뮐러가 경계인의 아픔을 언어유희로 치유했다면 르 클레지오는 제 3자로서 말들의 축제가 절정을 향할 때 오히려 현기증을 느꼈던 경우였다. 에텔은 살롱에서의 현기증이 심해진 어느 날 안락의자에 앉아있던 악몽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그림자는 눈 위에 검은 구멍 두개가 뚫린 가면을 쓴 잿빛 외투의 남자였고 그는 앞으로 펼쳐질 잔인한 현실을 예고하는 전령사로서 '허기의 전주곡'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검은 구멍으로 자신을 직시하던 허기는 꿈을 잃은 정원의 폐허에 드러난 시커먼 구덩이로 확대되고 마침내 커다래진 구멍은 에텔의 몸속을 뚫고 들어와 영원한 공허의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이는 공허한 말들에서 시작된 현기증이 쌓이고 모여 끝내 마음의 구멍을 내버린 결과였다. 에텔은 이 공허의 구멍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아픔이 잊혀졌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구멍이 난 채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자각이 곧 절망을 의미하진 않았다. 그녀는 아르모리크 가의 공사현장에 새롭게 지을 건물에 철저한 시공, 감리자 역할을 하면서 처음으로 삶의 주체가 되는 것의 의미를 알아간다. 피난민 시절엔 아예 부모님을 이끌고 이주상황을 진두지휘할 줄도 알게 된다. 그녀의 아버지가 비행선의 모형을 만들며 클론다이크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꿈꾸며 비현실적인 사회혁명이 실현될 '바로 그날'을 앉아서 기다렸던 것과는 달리 비록 연보라빛 꿈의 집은 사라졌지만 같은 장소에서 올려질 건물에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고 일의 진행과정을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현실에서의 일상속에서 자신이라는 보물을 찾아가게 된 것이다.

허기를 통과하다

이렇듯 에텔과 관계된 인물들은 모두 부성이 부재된 에텔에게 가족의 허기를 메워주는 역할을 했고 그녀가 기억하는 말들의 음악, 언어의 그림들은 상실된 꿈의 자리에 공백을 메워주는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러한 에텔의 유년기를 벗어나게 해주는 인물은 영국출신 로랑 펠드였다. 로랑은 수줍고 여성적인 태도를 가진 우아한 성격의 소유자였고 에텔은 로랑에 의해 기존에 남성적 성향을 가지고 있던 상대에게 지배당하며 판단을 의지하던 소녀시절의 패턴에서 벗어나게 된다. 로랑과의 기억은 할아버지의 '연보라빛 집'과 제니아와의 '백조 산책길'에 이어 브르타뉴의 휴양지 '르 폴뒤의 모래언덕'으로 이어진다. 에텔은 제니아와는 정반대 성향의 로랑을 사귀면서 제니아로부터의 상처의 공백을 메우게 되며 분노의 에너지를 치유하게 된다. 이는 혹시 영국인 아버지를 둔 작가의 공평하고도 중립적인 서사는 아니었을까. 에텔은 로랑이 영국으로 떠난 후 파산된 집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며 연보랏빛 유년의 꿈과 초록의 우정, 금빛 모래밭에서의 사랑과 작별하고 이주하는 순간에도 마차위에서 오페라 세리아를 부르며 패전의 공허를 견뎌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에텔의 음악적 여정은 피난하면서 '자기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발전해 눈앞에 닥친 상황에 빠른 적응을 이끄는 자기정화 기제이기도 했다. 작품 후반부 그녀는 니스에 피신하여 시장과 공원에 남겨진 전쟁의 잔상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포탄에 죽는 것이 아니라 막지 못하고, 꿈꾸지 못하고 숨 쉬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해 그 허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라는 치명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이 깨달음은 생명을 위협하는 허기를 극복하기 위해 에텔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역으로 깨닫게 하는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마녀처럼 거지가 된 아버지의 정부 모드를 만나게 되고 에텔은 모드의 빌라이름으로부터 제니아의 삶의 방식, 자존심을 잃지 않고 현실에 거리낌 없었던 당당함을 회상하고 여덟 살에 모드와 함께 본 볼레로의 공연까지 연속적으로 떠올린다. 자신의 유년기에 선망하던 친구의 자존심과 공연장에서의 함성과 환호, 열정에 대한 기억은 어쩌면 허기에 죽지 않기 위해 자동 재생된 본능이었을 것이며 에텔은 마음의 구멍에 이 기억을 통과시킴으로써 다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텔은 저도 모르게 발현된 기억의 힘으로 모드의 허기를 채워주기까지 하며 그야말로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나는 모드를 안아주던 에텔의 어깨를 살며시 안아주고 싶었다. 내 부모와 가정을 파멸시킨 주범인 모드였지만 그녀가 당면한 고독과 두려움, 공허감 앞에서 같은 시절을 공유했던 기억의 연대를 통해 자신 역시 같은 괴로움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까. 모드는 지난 시절 식민지 이주민들을 위해 오페레타를 부르던 가수였다는 점에서 작가는 그녀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켜주었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에텔의 배려를 택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텔은 모드를 만난 후 더욱 음악에 대한 욕구가 육체적 욕구로 다가왔다고 느끼는데 우연히 거주하게 된 농부의 집에서 강물의 음악소리에 위안을 받고 군인들이 던지는 통조림, 음식물 소음을 볼레로의 한구절로 느끼기도 한다. 기억의 연대가 허기를 관통하며 작가가 선사한 음악은 절정을 향하고 있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배고픔에 대한 본능마저도 자신을 지탱해주고 자신을 표현하였던 음악으로 대신하고자 했던 것은 그녀가 대단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서라기 보다는 어린 시절 삶의 허기를 메우던 방식이 연장된 효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에텔은 작품 마지막에 결국 흰눈과 숲이 끝없이 펼쳐지는 캐나다 토론토로 향하기로 결정하며 떠나기 전 자신을 허기로부터 지켜내 준 추억의 장소를 방문하여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 과정에서 에텔은 여기저기 표류하던 자신의 허기를 그러모아 새로운 자아에 편입하는데 성공하며 스스로 창출한 정체성에 주체성을 확인하게 된다. 아르모리크 가에 지어진 건물에서는 최소한의 장식이 배제된 것을 확인하고는 삶의 승리감을 느끼고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추억한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도 묘비에 관용적인 문구들을 넣지 않고 이름과 탄생일, 사망일, 마침표만 기록하길 원했던 가식과 허례의식을 혐오하던 에텔이었다.에텔과 재회한 제니아는 캐나다로 가게 된 에텔에게 명품 의류 브랜드와 아파트를 이야기 할 뿐이었고 이에 에텔은 비로소 헛된 우상과 작별할 수 있게 되어 자신을 찾게 된다. 에텔의 구멍난 가슴을 통과한 사람들은 에텔을 더 성장하게 하였을까? 그러고 보니 에텔의 허기를 채워주었던 사람들은 다시 에텔의 허기를 관통하며 여전히 구멍을 확인해 준 것은 아닐까.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남겨진 기억은 영원했다. 그것은 내가 이 작품을 통해 가징 명징하게 실감한 허기이기도 했다.

작가는 에텔의 가슴에 난 구멍을 마지막에 파리의 도심지대에 패인 구덩이와 동일시하며 개인과 역사의 변주곡을 마무리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밸디브 경기장이 있던 자리를 찾았을 때 그녀는 그곳이 로랑의 고모가 끌려간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장소와 같은 장소임을 기억하는 애도의 시간을 가진다. 자전거 트랙으로 생겨난 커다란 구멍은 파리 한복판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전쟁이라는 역사의 흉터였지만 그곳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침묵으로 소리치는 오늘의 현실임을 에텔은 조용히 깨닫는다. 흘러가버린 시간, 지나쳐온 도시, 통과하던 허기의 기억앞에서 에텔은 지금의 기억마저 강물속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며 다시 허기를 잠재운다. 하염없이 아름답고도 푸르게 멍울지는 강물이었다. 나는 에텔의 강물 속으로 내 生의 허기를 얼마간은 같이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연초에 여간해서 일어서지 않던 마음의 바닥상태가 조금 반응을 보인 시간이었다. 허기를 느낀 다는 것은 다시 살고 싶다는 생존본능의 다른 말임을 깨닫는 독서였다. 그것은 일종의 구호신호일 것이며 생존전략이기도 할 것이다. 지독한 허기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다시 끈질긴 허기를 견뎌내는 유일한 전술일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그가 느끼고 겪은 모든 허기의 총합은 아닐까. 이번 독서는 어쩐지 눈으로만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도 손으로 어루만진, 마음을 열어 교감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펼쳐 보인 언어의 지도는 슬프게도 아름다웠지만 그가 연주한 음악은 어쩐지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산다는 게 점점 허해지는 자신과의 지난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물질과 권력에 힘을 잃고 인간으로부터 기운을 잃고 계절과 날씨에조차 마음을 빼앗겨 마치 허허로운 벌판을 여행하듯 그렇게 헛헛한 마음을 발견할 때가 얼마나들 많은지. 그런데 허기의 증세가 심해질수록 무엇으로도 구멍 난 가슴을 채우기 힘들다는 사실을, 애석하게도 무언가 채우려는 행위를 하고 난 후 느낄 때도 많다. 허기는 애써 무엇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허기로 구멍난 가슴에 무엇이든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채워진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이 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채웠다고 느낄수록 인간은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매순간 그 구멍을 메울 줄 알았던 무엇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멍을 메우려는 의지로 살아가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 이 책을 덮으며 다시금 시리도록 깨우친다.  

한순간 극심한 허기로 죽을 것만 같았던 그 순간을 회상하며 그 기억을 부여잡고 다시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도 있었다는 사실이 참 고맙고 벅찬 오늘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가슴에 생겨버린 구멍을 인정한 채로 자유롭게 나대로 존재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숨쉬기 힘든 허기는 정작 내 존재의 실체를 실감할 수 없도록 하기에 이대로 사라진다는 것조차도 두려움을 느낄 수 없는 무(無)감각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허기를 슬기롭게 잘 통과해낸 사람은 비록 부족할 지라도 얼마간의 유(有)감각으로 반드시 다시 찾아오는 生의 허기를 제대로 느끼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게 발견해 낸 자신이야 말로 누구보다 자신을 인정하며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며 또 타인의 허기도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느껴지는  내 오래된 허기가 썩 괜찮고도 대견하다는 생각,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다. 나는 내 허기를 생기삼아 얼마든지 삶의 에너지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이 새삼 감격스럽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내 안의 허기여, 얼마든지 나를 흔들고 부수고 쓰러뜨려 주길. 부딪히고 찢겨지고 넘어지는 허기의 파도속에 내 삶의 신비를 내 유년의 꿈을 내 그리움의 고향을 찾을테니 허기여 그대 영원하라. 나 살기위해 사는 동안 그대를 잊지 않으리. 당신도 나를 잊지 말기를, 얼마나 내가 당신을 오랫동안 버리지 않고 살았는지 꼭 기억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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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4 10: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2-14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니에 대한 그런 기억이 있으시군요.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기억 납니다.
별 일이 없으시면 아버진 7시 반 무렵이면 자동으로 열리는 지하 차고의 문을 열고
들어 오셨죠. 들어 오실 때의 계단들.
아침이면 마당에 라디오를 켜 두시고, 밤새 싸 질러놓았을 개의 배설물 치우시고,
때되면 밥주고 하던...
무엇보다 1년쯤 지났을 때던가요? 어렸을 때 꼭 아버지 차 타고
여의도에 있는 교회를 다녔거든요. 근데 아는 친구놈의 차를 타고 그 도로를 지나가는데
어찌나 아버지 생각이 나던지 그만 울고 말았다는 거 아닙니까?
그게 벌써 20년된 일이긴 하지만...
댓글 쓰려니 눈물이 핑 도네요.ㅋ

근데 한 사람님 남자 분이세요? 여자 분이세요?
책방 아저씨라고 해서 남자분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글 쓰신 거 보면 여자 분 같고.
평소 글 쓰시는 것도 세심한 남자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보통은 여자가 글을 꼼꼼하게 씁니다만,
이렇게 세심하게 길게 쓰지 않거든요. 아, 저를 이렇게 헷갈리게 하시다니...ㅠㅠ

stella.K 2011-02-14 15:1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저도 한사람님 글 읽고 댓글 주고 받을 때마다
약간 설레었는데...거 참...ㅠ
한 가지 남자분이라고 생각했던 건,
한사람님은 마실을 잘 안 다니신다는 거죠.
아주 극소수로만 다니시잖아요.
여자들은 수다 떨고 호기심이 많아서 여기 저기 다니거든요.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사실, 예스24에서 첨 뵜을 때 여자분이라고 생각은 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자주(?)뵈니까 저도 모르게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거죠.
제가 참 드문 분을 알게된 거네요. 왠지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불안함이 느껴지는데요?ㅋ
전 배신 같은 거 안해요.ㅎㅎ

stella.K 2011-02-15 11:13   좋아요 0 | URL
근데 궁금하네요. 왜 한사람님 은사님께선
여성적 글쓰기가 안 좋다고 하시는 걸까요?
너무 감정이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하게 되설까요?
아님 가부장적인 분은 아니신가요?

아무튼, 그렇다면 한사람님은 일단 성공하신 거네요.
혹독하게 배우셨겠는데요?
아, 은사님 누구신지 저도 뵙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