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박람회
외르케니 이슈트반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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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순전히 폴스태프님 덕분에 읽게 되었다는 점을 리뷰에 앞서 밝힌다. 우리 책쟁이들은 호상간의 자극으로 책읽기에 나선다. 누군가 내가 모르는 미지의 책을 읽었다는 말을 들으면 바로 책 검색에 들어간다. 물론 모든 책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책쟁이들도 나름 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혜안이 자동으로 장착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궁금한 책은 견디지 못하고 사거나 혹은 도서관에 가서 빌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접하게 된다. 이번에는 도서관을 이용했다.

 

처음 들어보는 헝가리 출신 작가 외르케니 이슈트반 작가의 <장미 박람회>는 죽음을 다큐멘터리로 담아 보겠다는 야심찬 기획을 한 조연출 이제는 신참내기 PD 코롬 아론이 높으신 장관님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한다. 직속상관 울러릭에게는 퇴짜를 맞았지만, 높은 빽을 써서 코롬 아론은 자신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가동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세 명의 후보자들을 미리 선정해 두었다. 아론은 영악한 선수였다.

 

죽음은 우리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그런 숙명이다. 다만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그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 채 아니면 모르는 채 하면서 살고 있다. 아론의 기획은 참신했다. 다만, 카메라에 그 죽음을 담는다는 게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소싯적에 영상물 촬영도 해보고, 숱한 거절을 당하면서 거리 인터뷰를 해본 결과 카메라가 일단 돌기 시작하면 리얼리티는 사라지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진짜 리얼리티가 되기 위해서는 피사체가 카메라의 존재를 몰라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실제로 아론과 그의 촬영팀들은 시청자들에게 보기 좋은 샷을 뽑아내기 위해 소위 주작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지나가 버린 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실제로 첫 번째 대상자는 촬영 허가가 나기 전에 이미 죽어 버렸다. 그는 언어학자로 17년간 같이 살았던 아내와 함께 마지막 순간까지 두 번째 저서 집필에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홀랑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인터뷰의 바통은 그의 아내가 받아 들었다. 홀로 남은 미망인은 금전적 보상이 필요했고, 아론은 그것을 제공해 줄 수가 있었다. 왠지 금전이라는 보상 앞에 죽음마저도 초라해져 버리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자는 화원 노동자인 미코 부인이었다. 그녀는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이번부터 아론의 주작질이 시작되었던가. 지나가 버린 암선고 장면을 위해 아론은 재설정을 주문한다. 그것 참... 나중에 이런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본 것을 리얼리티로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나라면 아마 아닐 것 같다. 어쨌든 장미를 가꾸는 미코 부인은 장미 박람회에 자신의 화원이 출품한 작품을 입상을 기대한다. 이 모든 건, 촬영을 위한 좋은 소재로 이용된다. 카메라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긴 촬영 분량 대신 리얼리티를 전달할 수 있는 압축된 몇 컷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코 부인이 당면한 죽음의 경우에는 좀 더 케이스가 복잡하다. 자신이 죽고 나면 홀로 남은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어머니의 봉양 문제가 상존한다. 그렇다, 이러저러한 족쇄에 사로 잡힌 우리 인간은 자신의 소멸로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이 소멸된 뒤에도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한 생존의 방법도 도모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미코 부인은 자신의 병간호와 뒤에 남을 어머니를 부탁하기 위해 살 집을 찾던 누오페르 가족과 동거를 강행한다. 내가 왜 강행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단순하다, 그것은 갈등의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점점 죽어가는 미코 부인은 어머니는커녕 자신조차 돌볼 수가 없는 상태로 접어든다. 아론의 촬영팀은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집안의 개조도 마다하지 않는다. 죽음의 리얼리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시작된 촬영이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는 장면들에 점점 불쾌감이 상승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외르케니 이슈트반 작가는 바로 이런 점을 적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자는 아론의 지인, 바람둥이 작가이자 리포터 J. 너지다. 그는 수년 전에 심장 발작을 일으킨 바 있다. 궁금한 것은 당장 죽을병에 걸린 사람도 아닌데, 언제 그가 사신의 방문을 받을 줄 알고 촬영을 시작한단 말인가? 그것 참. 하긴 또 어떤 면에서 본다면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아론 촬영팀의 기획이 아주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J. 너지 주변에는 여자가 끊이지 않는다. 전 부인을 비롯해서, 지금의 여자친구가 잇달아 J. 너지를 방문하고 음식을 전달한다. 심지어 멋진 주치의 실비어마저 그에게 빠져서 아론의 촬영을 방해하기도 한다. 얼마나 실비어가 매력적인지 촬영 기사들은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주자인 J. 너지보다 실비어에게 카메라를 돌릴 판이다. 수면제를 먹었는지 어쨌는지 해서 결국 J. 너지도 죽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외르케니 이슈트반은 거창하게 죽음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아론은 암전과 툭툭 끊어지는 내러티브가 특징인 짐 자무쉬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기법으로 우리 주변의 죽음을 추적한다. 결국 죽음은 시간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시간은 모름지기 모든 것을 파괴하기 마련인데,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 역시 예외는 아니더라 뭐 그런 식의 결말로 가는 건가.

 

미코 부인의 케이스까지는 그런 대로 유지되던 긴장감은 마지막 주자인 J. 너지로 넘어가면서 동력을 잃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원래 이 책을 사서 보려고 했었는데, 도서관에서 실물을 영접하고 그 다음에 다 읽은 다음에는 빌려서 보길 잘했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꾸만 책이 늘어나다 보니 책 구매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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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6-01 14:33   좋아요 8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전 이 책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저하고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했고요.
또 추천했다고 해도 세상만사가 어찌 전타석 안타일 수 있겠습니까.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지만 주로 내야 땅볼에 가끔 삼진도 먹고 아쉬운 파울 홈런도 치는 거지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01 14:54   좋아요 9 | URL
저한테 이 책은 번트 같은 책이었습니다.
저를 희생해서 주자를 2루로 진출하게 하려고 했으나 얼결에 저는 1루에 무사 안착, 그러나 주자 2루 진출은 실패!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6-01 15:00   좋아요 8 | URL
아놔, 제가 딱 야수선택 정도 되겄네요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바로 아래
잠자냥님께서 그 상황을 대입해 주셨
나이다 - 오마이가뜨 ~!

네네 통했삽니다.

syo 2021-06-01 19:49   좋아요 4 | URL
여기가 바로 그 알라딘 소설 리뷰 계의 거대한 신비, 소설들이 그냥 한번 들어오면 벗어나지를 못하고 걸려든다는 ˝레-잠-폴 삼각지대˝의 회동이 이루어진 역사적인 현장입니까? ㅋㅋㅋㅋㅋㅋㅋ

이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한 다른 이웃님들 누구도 댓글 못 잇고 그저 좋아요만 누르시고 갔지만 철없는 syo가 찬물 끼얹고 도망칩니다 ㅎㅎㅎㅎ

새파랑 2021-06-01 15: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책 전문가의 상호 주고받는 추천이라니 너무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1-06-01 21:30   좋아요 1 | URL
뭐랄까 적극적인 추천이라기
보다는 은연 중에 느끼게 되는
압박이라고나 할까요 ㅋㅋ

아니 다른 이웃분들이 이런 책
을? 하면서 책탑이라는 개미지
옥에 자발적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제 고작 9시간 정도가 흐른 지난달에는,

모두 17권의 책들과 만났다.

 

나름 독서 슬럼프다. 반 이상이 그래픽 노블과 동화인가 보다.

여러 책들을 시작하기는 했었는데 끝내지 못한 책들이 많다.

그렇다면 6월에는 더 많이 읽게 되는 건가?

 

어제는 교보에서 쟁여 놓은 적립금 쿠폰 할인권 등등을 사용해서

윌리엄 트레버 작가의 <펠리시아의 여정>을 샀다. 미리보기로

29쪽인가를 봤는데, 희망도서 대신 구매를 선택했다. 희망도서는

제법 시간이 걸리거든.

아이고 그러고 보니 희망도서 신청을 못했네 그래.

또 그러고 보니 값이 오른다는 재활용 봉투 사재기도 못했네 그래.

뭐 다 그런 거지.

 

지난달의 발견은 뭐니뭐니해도 역시나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다.

전반적으로 애잔한 감상의 글들... 일년 정도 지나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어라.

 

<댄서><문체 연습>은 진짜 시간이 많이 걸려서 읽었다.

6월에도 읽을 책들이 많구나.

우선 지금 읽고 있는 <왜 기린은 목이 길까?>부터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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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01 11: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얏~ 1권 본책 이네요 ㅎㅎ 이글 보니까 6월 1일이라는게 실감이 납니다~!! 저도 정리해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21-06-01 11:46   좋아요 3 | URL
아이구 벌써 6월이 되었습니다.

매 순간은 가지 않는데 막상 나
중에 시간을 꿰어 놓고 보면
참 잘도 가는구나 싶어집니다.

정리하기 궈궈씽입니다~~~

붕붕툐툐 2021-06-01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5월에도 많이 읽으셨네용! 읽고 있는 책들이 많으시니 6월엔 더 많이 읽으시겠어요~ 파이팅, 파이팅!!

레삭매냐 2021-06-02 01:48   좋아요 2 | URL
만화와 동화가 태반이었습니다.
반성해야겠습니다 ㅋ

빠이팅, 감사합니다.

초딩 2021-06-02 00: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아 역시 17권!!! 대단하십니다 :-)
6월도 멋진 기록 기대합니다~

레삭매냐 2021-06-02 01:48   좋아요 2 | URL
넵, 만화로 때운 5월이었습니다.

6월에는 좀 더 분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먼과 로지 뚝딱뚝딱 누리책 10
거스 고든 글.그림, 김서정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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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고 딱 나오는 지도를 보니 밀레니엄 캐피탈 뉴욕이다. 여전히 나에게 뉴욕은 구겐하임 뮤지엄과 브루클린 브릿지로 그렇게 기억되는 도시인가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뉴욕은 실질적인 미국의 문화 수도가 아닌가 싶다. 미국 건국 당시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서부의 도시들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 아니던가.

 

암튼 그곳에 사는 두 외로운 영혼에 대한 동화책이 바로 <허먼과 로지>. 전화로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 허먼 슈베르트는 혼자 살면서 바다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냥 조용하게 사는 게 낙인 그런 악어 남자다. 그리고 간간히 오보에 연주를 즐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에서 오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오보에를 불었다가 바로 문자로 신고 당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대도시의 삶이란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욕망을 무한으로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교집합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가까워지기는 원하지 않는 그런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한 주인공은 목요일 밤마다 두 시간씩 어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로지 블룸, 그녀는 사슴이다. 직업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웨이트리스였던가. 참으로 삶의 모습은 우리네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지의 유일한 삶의 낙은 바로 클럽에서 노래 부르기였다. 사실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일자리를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돈벌이일 뿐, 좋아서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돈벌이도 된다면? 아마 그런 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잠깐 여담이지만 아무리 너튜브 동영상이 좋다고 해서 크리에이터가 되었지만, 끝없이 기존의 독자나 아니면 앞으로 자신의 컨텐츠를 소비할 독자들을 위해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어쩌면 삶의 상당 부분을 돈벌이를 위한 크리에이션에 쏟아 부어야 한다면 그 또한 스트레스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편집이라는 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의 리듬이라는 것도 있고, 최근 무한경쟁의 장인 너튜브에서 완성도 있는 편집은 컨텐츠 기획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중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하긴 글 쓰다 보면 이런 맛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변명을 해본다. 거대도시 뉴욕에서 허먼과 로지는 맛난 핫도그를 먹던가 어쩐던가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교차해 보지만 접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둘 다 같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 정도?

 

그러다가 허먼이 판매 실적 저조로 텔리마케터로 활동하던 직장에서 짤리고,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로지가 노래 부르던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비로소 두 외로운 영혼이 이제 드디어 만날 시간이 되었다. 그 둘을 이어 주는 요소는 역시나 음악이었다. 허먼의 오보에 연주 멜로디는 로지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로지가 부른 노래 역시 허먼에게 내리 꽂혔다지 아마.

 

우리의 소망대로 그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리고 같은 무대에 서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무래도 그림동화다 보니 현실의 극한까지 갈 수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미 현실이 갑갑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마당에 그림동화까지 그런 리얼리티를 재현한다면 삶이 너무 팍팍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이미 기존의 현실에서 그런 리얼리티는 충분하니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도 조금은 소비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오늘도 당근을 훑어 보니, 외로운 영혼들이 친구를 찾는 피드들을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었다. 카공족으로 같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집 근처 왕송호수를 거닐고 싶은데 같이 걷고 싶다는, 비도 오고 해서 마음이 적적하여 같이 술 한 잔 나눌 용자들을 찾는다는 피드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우리 주변에 참으로 외로운 영혼들이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티에 기초한 꽈배기는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 그냥 갑자기 기름에 튀긴 다음, 달달하게 설탕가루를 듬뿍 묻힌 꽈배기가 먹고 싶어졌다. 그거 하나 사 먹으러 시장으로 출동하기엔 내가 참 게으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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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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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소설 <장미 박람회>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덤으로 바로 옆에 있는 서가에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이란 책도 빌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도서관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목표한 책이 아닌, 우연히 얻어 걸린 책과 만나는 그런 재미 말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단 미리보기로 읽기 시작한 <장미 박람회>는 뒷전이고(생각보다 작고 얇아서 놀람), 102쪽 남짓한 <있으려나 서점>부터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분량은 적지만, 요시타케 씨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보물 같은 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다 있었다니. 나중에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하나 쟁여서 소장각으로 박제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꼭 그러고 싶다. 게다가 또 표지도 내가 좋아라하는 하드커버가 아닌가 말이다.

 

저자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있으려나 서점>의 대머리 주인 아저씨는 인상이 푸근하고, 찾는 책을 말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주는 책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동네서점이라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뭐랄까 동네 문화의 거점이랄까나.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그야말로 풀빵구리 드나들 듯 그렇게 매일 같이 들락거리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도서관에 대한 혜안과 분석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세상에서 처음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사람에게는 아낌 없이 찬사를 보내도 될 것 같다. 21세기 개관한 동안, 아무리 많은 시간 동안 주재해도 부담이 없고 또 비용이 들지 않는 곳은 도서관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우리 책쟁이들이 환장할 만한 책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야말로 패러다이스가 아닐 수 없다. , 어제 빌린 책을 다 보았으니 오늘도 뛰어가야 하나.

 


어느 장면에서는 계속해서 책을 파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밑에 깔린 책들을 파내겠다고 만용을 부리다가 해마다 수명씩 구조를 당하게 된다는 설정도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바로 폐지로 만들어도 상관 없을 그런 책들이겠지만 또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이런 상대적 개념이야말로 책세계의 오묘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수중도서관의 아이디어도 참 재밌더라. 옛날에 어느 부자가 굉장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다지. 그리고 주변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수위가 올라 물 밑에 잠긴 책들은 만날 수가 없게 되었고, 배를 타고 닿는 곳에 놓인 책들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 있는 책들은 좀 더 물이 차야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대단했다. 이건 어쩌면 책쟁이들의 내공이 좀 쌓여야 만날 수 있는 그런 책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책의 명성만 듣고, 나와는 맞지 않는 고전들에게 들이댔다가 실패한 경험들은 책쟁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꾸역꾸역 책에 도전장을 드밀 게 아니라,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른 책들과 만나면서 착착 내공을 쌓으면 어느 순간 넘사벽으로 보이던 책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들 말이다. 나에게 <모비딕>이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고백해 본다. 어느 정도 읽었으나 다시 펴려니 좀 두렵구만 그래.

 

우리의 북소믈리에 아저씨가 서점에서 한가한 틈을 타서 간식을 흡입하시려는 순간에도 손님은 들이닥친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북소믈리에 아저씨, 괜찮다고 응대하는 손님과의 대화가 왜 이리도 훈훈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디테일까지도 요시타로 씨는 놓치지 않는다. 정말 책을 사랑하고, 서점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은 이라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말미에 등장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피날레를 장식할 만한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책을 쓰는 작가나 그런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 모두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이 어느덧 출판비용의 30%를 넘겼다는 현실에서, 컨텐츠에서는 분명 경쟁력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노출되지 않으면 소비될 수 없는 숙명 앞에서 이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굳이 제임스 설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영광과 찬사를 받기 위해 쓴다.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금전적 이득도 따라 온다면 금상첨화겠지? 모든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미 작고한 대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치킨 한 마리(온전하게 한 마리인지 먹을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든다)를 받아 먹어 보겠다고 블로그에 열심으로 올리는 오늘일기나, 이제는 거의 쓰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읽고 쓰기의 습관들 모두 영광과 찬사를 얻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3년 전에 출간된 요시타케 씨의 <있으려나 서점>은 얼마나 사람들이 책을 빌려 보았는지 구석의 모서리들이 죄다 닿아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책의 퀄러티가 이미 보장된 게 아닌가 추정해 본다. 이 책은 단언컨대 우리 책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나의 경애하는 책쟁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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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5-29 1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중도서관의 은유는 소름이네요!
찜해두었던 책인데 이 페이지도 함께 찜합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2 | URL
아, 알고 계시던 책이셨군요.
강추합니다.

페넬로페 2021-05-29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읽어야할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기 전에 미리 검색해서 빌릴 책만 빌리고 오는데 이제부터 도서관가면 좀 순례를 해서 보물같은 책을 찾아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4 | URL
102쪽 그림동화 스타일이라
읽기에도 부담이 1도 없었습니다.

이런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니 기분이가 좋았습니다.

han22598 2021-05-29 13: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든 찬사와 영광을 레삭매냐님께!!! ㅎㅎㅎ 게으른 저는 치킨 꿈도 못 꾼다는 ㅠ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치킨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치킨은 고전에 먹었으니 이번에
는 책을 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05-29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서점이나 도서관 다루는 이런 책들 읽으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아주 핵심을 콕콕 잡아내는
요시타케 씨의 능력에 고저
감탄했답니다.

mini74 2021-05-29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소믈리에. 너무 읽고싶어집니다. *^^*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3 | URL
잠깐만 시간을 투자하시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그런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붕붕툐툐 2021-05-30 0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플에서 소개받고 읽었는데 느므느므 귀엽더라구요~ 진짜 이런 서점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30 08:12   좋아요 2 | URL
근처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정말 매일 같이 출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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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부터 무려 6개월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레몽 크노라는 프랑스 작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해제가 본문보다 더 많다니... 어쩐지 나는 왜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걸까. 그만큼 우리 우매한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문체와 문장을 해석하는 자신의 능력보다 해제가 더 필요하다는 말일까. 입맛이 씁쓸해지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에 어느 프랑스 작가는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99가지 방식으로 쓰는 도전에 나섰다. , 그 점부터 말하고 싶다. 나는 프랑스어에 대해 1도 모른다. 9년 간의 정규 교과 과정 덕분에 영어 독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말이다. 어제도 브리스 디제이의 단편 <Time and Again>에 나오는 drop에 대해 꽤 고민하기도 했다. drop에는 낙하하다라는 표현도 들어 있다는 걸 알고는 나름 흐뭇해했었지.

 

하지만 프랑스어는 절대 독해 불가다. 그러니 본문 뒤에 실린 프랑스어 원문은 나에게는 아무런 쓸데없는 그런 부분이었다. 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세 번인가 빌려서 다 읽었는데, 돈을 주고 샀다면 본문은 몰라도 역자의 해제가 실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빡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왜 역자의 해제를 돈주고 사서 읽어야 하는가 말이다. 공짜라도 사양할 판인데 말이다.

 

파리에 사는 어느 나름 멋쟁이 청년에 대한 관찰기를 레몽 크노 작가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동원해서 비틀고 꼬고 데치고 볶고 그렇게 해서 99가지 스타일의 글들을 생산해냈다. 원래의 내러티브 역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의 하나다. 아마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목표로 한 게 아닐까 싶다. 이해가 간다.

 

나름 신선하기도 했다. 맛과 냄새 그리고 독특한 수학 산식까지 동원해서 이야기를 늘어뜨리는 재주에 대해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시점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열 댓가지 문체에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레몽 크노 작가는 작가답게 포기하는 대신, 뚝심 있게 밀어 붙인다. 그 점 하나에 대해서는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 15세기 고어에 네다스타일의 이북 사투리는 좀 너무 나간 게 아닐까. 번역에 핍진성을 대입하는 게 옳은 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핍진성이 부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편해지고, 가독성이 떨어지면서 자그마치 한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책을 다 읽는데 자그마치 6개월이나 걸렸다. 이 책을 다 읽기 위해 도서관에 세 번이나 행차를 해야했다.

 

아마 전후 프랑스 사회에 범람하기 시작한 미국식 영어에 대한 반감 혹은 경계도 영어 스타일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왓 더 뻥튀기하는 장면은 좀, 솔직하게 말하면 아주 많이 웃겼다. 일본어를 섞어찌개 스타일로 구사한 장면도. 역시 우리 닝겡들은 자신이 아는 부분에서 그런 유머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가 보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청년에 대한 40대 초반의 레몽 크노 작가의 서술에서는 왠지 모르게 꼰대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모자 끝에 배배 꼬은 줄을 두른 젊은이의 스타일을 못마땅해 하거나, 84S 버스에서 승객들과 끝없이 마찰을 일으키는 그의 까칠함을 부각시키는 장면들이 그렇게 느끼게 했던 것일까. 그렇게 다른 승객들과 툭탁거리던 녀석이 자리가 비자 냉큼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왜 그렇게 밉상이던지. 이 모든 게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정말 점층적으로 주인공을 적대시하고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되는 과정이 놀라울 뿐이다.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어떤 번역이 과연 좋은 번역인가, 단순하게 의미의 전달만이 번역의 핵심인 것인가? 아니면 뉘앙스나 느낌이 좀 달라지더라도 독자 친화적인 번역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 자꾸만 되묻게 되는 그런 나의 독서의 시간들이었다. , 이건 좀 엉뚱한데 영어 번역서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번역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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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27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야~ 6개월에 걸쳐 완독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번역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일지 함께 고민하게 되는 글이네용~

레삭매냐 2021-05-27 17:53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읽고자 세 번이나
도서관에 갔다니...

고전 끝에 다 읽어서 다행
이었습니다.

새파랑 2021-05-27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반역이라니~! 🌟 2개가 눈에 들어오네요. 정말 번역이 중요한거 같은데, 어떤 번역이 좋은건지 저도 고민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1-05-27 17:54   좋아요 2 | URL
가장 좋은 방법은 원서를 대하는
것인데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해 그
럴 수가 없어 아쉬울 뿐입니다.

프랑스어는 더더욱.

페넬로페 2021-05-2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외국어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놓았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후회가 밀려듭니다~~어떤 책은 번역땜에 중간에 멈추는 게 있는데 돈주고 샀다는 게 더 괴로워요^^근데 또 원작이 그럴수도 있으니 무식한 제가 답답할 수 밖에요 ㅠㅠ

레삭매냐 2021-05-27 20:33   좋아요 3 | URL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잘 나가다가 막히면 정말
답이 없더라구요. 계속해서
꾸역꾸역 읽어야 하나 싶기
도 하구요.

유시민 선생님은 그런 책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셨
지만... 그래도 읽기 시작한
책은 마저 읽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