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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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소설 <장미 박람회>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덤으로 바로 옆에 있는 서가에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이란 책도 빌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도서관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목표한 책이 아닌, 우연히 얻어 걸린 책과 만나는 그런 재미 말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단 미리보기로 읽기 시작한 <장미 박람회>는 뒷전이고(생각보다 작고 얇아서 놀람), 102쪽 남짓한 <있으려나 서점>부터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분량은 적지만, 요시타케 씨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보물 같은 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다 있었다니. 나중에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하나 쟁여서 소장각으로 박제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꼭 그러고 싶다. 게다가 또 표지도 내가 좋아라하는 하드커버가 아닌가 말이다.

 

저자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있으려나 서점>의 대머리 주인 아저씨는 인상이 푸근하고, 찾는 책을 말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주는 책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동네서점이라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뭐랄까 동네 문화의 거점이랄까나.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그야말로 풀빵구리 드나들 듯 그렇게 매일 같이 들락거리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도서관에 대한 혜안과 분석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세상에서 처음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사람에게는 아낌 없이 찬사를 보내도 될 것 같다. 21세기 개관한 동안, 아무리 많은 시간 동안 주재해도 부담이 없고 또 비용이 들지 않는 곳은 도서관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우리 책쟁이들이 환장할 만한 책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야말로 패러다이스가 아닐 수 없다. , 어제 빌린 책을 다 보았으니 오늘도 뛰어가야 하나.

 


어느 장면에서는 계속해서 책을 파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밑에 깔린 책들을 파내겠다고 만용을 부리다가 해마다 수명씩 구조를 당하게 된다는 설정도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바로 폐지로 만들어도 상관 없을 그런 책들이겠지만 또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이런 상대적 개념이야말로 책세계의 오묘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수중도서관의 아이디어도 참 재밌더라. 옛날에 어느 부자가 굉장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다지. 그리고 주변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수위가 올라 물 밑에 잠긴 책들은 만날 수가 없게 되었고, 배를 타고 닿는 곳에 놓인 책들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 있는 책들은 좀 더 물이 차야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대단했다. 이건 어쩌면 책쟁이들의 내공이 좀 쌓여야 만날 수 있는 그런 책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책의 명성만 듣고, 나와는 맞지 않는 고전들에게 들이댔다가 실패한 경험들은 책쟁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꾸역꾸역 책에 도전장을 드밀 게 아니라,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른 책들과 만나면서 착착 내공을 쌓으면 어느 순간 넘사벽으로 보이던 책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들 말이다. 나에게 <모비딕>이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고백해 본다. 어느 정도 읽었으나 다시 펴려니 좀 두렵구만 그래.

 

우리의 북소믈리에 아저씨가 서점에서 한가한 틈을 타서 간식을 흡입하시려는 순간에도 손님은 들이닥친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북소믈리에 아저씨, 괜찮다고 응대하는 손님과의 대화가 왜 이리도 훈훈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디테일까지도 요시타로 씨는 놓치지 않는다. 정말 책을 사랑하고, 서점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은 이라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말미에 등장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피날레를 장식할 만한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책을 쓰는 작가나 그런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 모두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이 어느덧 출판비용의 30%를 넘겼다는 현실에서, 컨텐츠에서는 분명 경쟁력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노출되지 않으면 소비될 수 없는 숙명 앞에서 이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굳이 제임스 설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영광과 찬사를 받기 위해 쓴다.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금전적 이득도 따라 온다면 금상첨화겠지? 모든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미 작고한 대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치킨 한 마리(온전하게 한 마리인지 먹을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든다)를 받아 먹어 보겠다고 블로그에 열심으로 올리는 오늘일기나, 이제는 거의 쓰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읽고 쓰기의 습관들 모두 영광과 찬사를 얻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3년 전에 출간된 요시타케 씨의 <있으려나 서점>은 얼마나 사람들이 책을 빌려 보았는지 구석의 모서리들이 죄다 닿아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책의 퀄러티가 이미 보장된 게 아닌가 추정해 본다. 이 책은 단언컨대 우리 책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나의 경애하는 책쟁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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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9 1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중도서관의 은유는 소름이네요!
찜해두었던 책인데 이 페이지도 함께 찜합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2 | URL
아, 알고 계시던 책이셨군요.
강추합니다.

페넬로페 2021-05-29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읽어야할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기 전에 미리 검색해서 빌릴 책만 빌리고 오는데 이제부터 도서관가면 좀 순례를 해서 보물같은 책을 찾아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4 | URL
102쪽 그림동화 스타일이라
읽기에도 부담이 1도 없었습니다.

이런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니 기분이가 좋았습니다.

han22598 2021-05-29 13: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든 찬사와 영광을 레삭매냐님께!!! ㅎㅎㅎ 게으른 저는 치킨 꿈도 못 꾼다는 ㅠ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치킨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치킨은 고전에 먹었으니 이번에
는 책을 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05-29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서점이나 도서관 다루는 이런 책들 읽으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아주 핵심을 콕콕 잡아내는
요시타케 씨의 능력에 고저
감탄했답니다.

mini74 2021-05-29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소믈리에. 너무 읽고싶어집니다. *^^*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3 | URL
잠깐만 시간을 투자하시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그런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붕붕툐툐 2021-05-30 0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플에서 소개받고 읽었는데 느므느므 귀엽더라구요~ 진짜 이런 서점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30 08:12   좋아요 2 | URL
근처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정말 매일 같이 출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