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과 로지 뚝딱뚝딱 누리책 10
거스 고든 글.그림, 김서정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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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고 딱 나오는 지도를 보니 밀레니엄 캐피탈 뉴욕이다. 여전히 나에게 뉴욕은 구겐하임 뮤지엄과 브루클린 브릿지로 그렇게 기억되는 도시인가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뉴욕은 실질적인 미국의 문화 수도가 아닌가 싶다. 미국 건국 당시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서부의 도시들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 아니던가.

 

암튼 그곳에 사는 두 외로운 영혼에 대한 동화책이 바로 <허먼과 로지>. 전화로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 허먼 슈베르트는 혼자 살면서 바다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냥 조용하게 사는 게 낙인 그런 악어 남자다. 그리고 간간히 오보에 연주를 즐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에서 오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오보에를 불었다가 바로 문자로 신고 당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대도시의 삶이란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욕망을 무한으로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교집합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가까워지기는 원하지 않는 그런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한 주인공은 목요일 밤마다 두 시간씩 어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로지 블룸, 그녀는 사슴이다. 직업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웨이트리스였던가. 참으로 삶의 모습은 우리네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지의 유일한 삶의 낙은 바로 클럽에서 노래 부르기였다. 사실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일자리를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돈벌이일 뿐, 좋아서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돈벌이도 된다면? 아마 그런 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잠깐 여담이지만 아무리 너튜브 동영상이 좋다고 해서 크리에이터가 되었지만, 끝없이 기존의 독자나 아니면 앞으로 자신의 컨텐츠를 소비할 독자들을 위해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어쩌면 삶의 상당 부분을 돈벌이를 위한 크리에이션에 쏟아 부어야 한다면 그 또한 스트레스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편집이라는 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의 리듬이라는 것도 있고, 최근 무한경쟁의 장인 너튜브에서 완성도 있는 편집은 컨텐츠 기획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중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하긴 글 쓰다 보면 이런 맛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변명을 해본다. 거대도시 뉴욕에서 허먼과 로지는 맛난 핫도그를 먹던가 어쩐던가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교차해 보지만 접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둘 다 같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 정도?

 

그러다가 허먼이 판매 실적 저조로 텔리마케터로 활동하던 직장에서 짤리고,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로지가 노래 부르던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비로소 두 외로운 영혼이 이제 드디어 만날 시간이 되었다. 그 둘을 이어 주는 요소는 역시나 음악이었다. 허먼의 오보에 연주 멜로디는 로지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로지가 부른 노래 역시 허먼에게 내리 꽂혔다지 아마.

 

우리의 소망대로 그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리고 같은 무대에 서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무래도 그림동화다 보니 현실의 극한까지 갈 수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미 현실이 갑갑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마당에 그림동화까지 그런 리얼리티를 재현한다면 삶이 너무 팍팍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이미 기존의 현실에서 그런 리얼리티는 충분하니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도 조금은 소비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오늘도 당근을 훑어 보니, 외로운 영혼들이 친구를 찾는 피드들을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었다. 카공족으로 같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집 근처 왕송호수를 거닐고 싶은데 같이 걷고 싶다는, 비도 오고 해서 마음이 적적하여 같이 술 한 잔 나눌 용자들을 찾는다는 피드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우리 주변에 참으로 외로운 영혼들이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티에 기초한 꽈배기는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 그냥 갑자기 기름에 튀긴 다음, 달달하게 설탕가루를 듬뿍 묻힌 꽈배기가 먹고 싶어졌다. 그거 하나 사 먹으러 시장으로 출동하기엔 내가 참 게으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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