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성석제 선생의 <이 인간이 정말>을 읽고 있다.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 오르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고, 정말 지대 뽑아 올려 주셨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힘도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지금 읽고 있는 <유희>편에서는.

 

모두 8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인데 이제 절반 가량을 읽은 모양이다.

 

장마 소식으로 계획했던 외출이 취소되면서 대대적인 청소에 들어갔다.

일단 책방에 들어찬 책들에 대한 정리를 시도했다. 그리고 장렬하게 실패해 버렸다.

꼬맹이가 책놀이를 하는 줄 알고, 책으로 나를 포위하는 바람에... 그렇다 핑계다.

 

어찌 됐든 책 한 줄을 없애서 통로를 조금 확보했다.

어제 정리를 시도하면서 느낀 점은 참 사두기만 하고 안 읽은 책들이 많구나 하다는 점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

 

나의 책읽기 패턴을 분석해 본다. 이러저러한 통로를 통해 해당의 책의 존재를 알게 된다.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리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새책으로 혹은 중고서적으로 책을 구입한다. 요즘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 바로 마지막이다. 도서관은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자유롭게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참 그지 같다.

 

새책을 사들이는 건 정말 그동안 사두고 안 읽은 책 때문에 점점 양심의 가책이 쌓여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니 집에 그렇게 안 읽은 책들이 넘쳐 흐르는데 또 새책을 사겠다고? 양심이 없는 거니 너는? 에라-

 

일단 2020년 앞으로 남은 반년 동안에는 집에 싸둔 책 읽기 집중하도록 하자.

우리가 읽을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건 아니잖니. 그리고 읽은 책들 중에서 소장각인 책들은 상자에 싸서 잘 보관하기. 단점은 필요할 때 바로 바로 찾을 수가 없다는 점. 그렇다면 라벨링을 해두기라도 해야 한다는 걸까? 그것도 다 귀찮은 일이로다.

 

, 읽다만 책들에게도 관심을... 최근에 시작해서 시마이 하지 못한 책들도 끝내도록 하자.

그나저나 <스팍스의 앵무새>는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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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l 2020-07-06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고로 책이란 책장에 꽂혀있는 것을 읽는것이져~ 흠음!! ㅋ
저두 보니 책장에 중간중간 사두고 안읽은 책들이..ㅋ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하면서 그래두 책장파먹기 열심히 한터라 제법 읽었네여~^^ 그래두 또 시간 날 때마다 온라인서점을 기웃기웃거린다는..ㅋ
저는 유일한 사치 은근 즐기고 살아여~^^

레삭매냐 2020-07-06 17:53   좋아요 0 | URL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 있는
책덜이 좀 치워졌는가 싶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는...

저도 예의 사치를 즐기고 산답니다 냐하~
 


 

올해 상반기에는 모두 75권의 책을 읽었다.

그 중에서 38권은 예전에 사둔 책들을 조졌다. 그리고 보니 요즘 새책은 거의 사지 않는다. 책방과 그 중앙에 쌓인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적잖은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다고 해서 이미 올라간 책탑이 쉬이 허물어지지는 않을 것.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 녀석에 책보따리를 한아름 안겨 주었다.

나에게는 필요없는 책이지만 그 녀석에게는 필요한 책이길 바라면서. 또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책들도 앵겨 주었다. 책은 그렇게 보내는 거지. 미련 없더라.

술은 진탕 얻어 마셨으니 그 정도 쯤이야. 고마워 친구야.

 


1. 알리바이 - 안드레 애시먼


대표작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데(이 책도 결국 읽었다) 나는 작가의 소소한 추억들이 담긴, 그의 작품 세계의 연원을 알 수 있는 이 책이 더 좋았다. 처음으로 만난 책이어서 그럴까. 그리고 보니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콜 미 유어 바이 네임>을 읽다 말다를 반복하면서 두 책을 읽은 기억이다.

 

종로의 헌책방에서 저렴하게 데려온 녀석이라 더 애정이 가는 지도 모르겠다. 요즘 헌책값이 헌책값이 아니더라. , 내친 김에 원서로 <하바드 스퀘어>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여적도 못받고 있다. 이걸 순전히 코로나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어째야 하나, 다시 보내 달라고 해야 하나.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난감하다.

 


2. 더 리더 - 베른하르트 슐링크


정말 오래 전에 사둔 책이었는데 마침내 읽었다.

어쩌면 2020년은 예전에 사두었지만 미처 읽지 못했던 책들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그런 해가 아닌가 어쩐가 싶다.

 

내용도 기가 막혔고, 독일의 청산되지 않은 어쩌면 영원히 청산할 수 없는 그런 아픈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것 참. 영화로도 있다고 하는데, 아마 나는 영화는 찾아서 굳이 볼 필요가 있나 싶다. 소설보다 나은 영화를 아직 만나 보지 못해서 그런가 싶다.

 


3.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 - 팀 오브라이언


오랫동안 내가 찾아 헤매던 책이 마침내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되었다.

그리고 보니 도서관에서 한 번 빌리긴 했지만, 몇 장 읽다 말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칼럼에서 우리나라 전쟁문학이 실종되었다고 하던데, 팀 오브라이언 작가가 직접 체험한 비엣남 전쟁에 대한 썰은 날것 그대로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래서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 오브라이언 작가의 다른 책도 곧 번역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신생출판사의 순항을 기대해 본다.

 


(이번에 만난 책은 문동판이나, 책을 꺼내기가 귀찮아 기존의 열린책들 사진으로.)


4.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 도끼 선생


문동 도끼 선생 한 달 읽기 챌린지로 마침내 완독에 성공한 책이다.

5년 전에 열린책들 버전으로 도전했다가 개박살이 났었다. 사실 지금도 다시 읽으면서 다 소화해 내지 못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걸 내가 다 이해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니 안되는 것은 안되는 채로, 또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으로 넘긴다.

 

장장 세 권에 걸친 대작을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치고 나니 자신감이 붙어서 도끼 선생의 또다른 걸작 <죄와 벌>도 재독에 나섰다. 1권은 문동판으로 읽었는데, 두 번째 권은 사실 돈주고 사서 보기가 좀 그래서 걍 소장하고 있던 열린책들 버전으로 읽었다. 치트키인 셈인가. 역시 고전은 다시 읽어야 하는가 보다라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등반에도 나서긴 했는데 잠시 멈추고 있는 중이다.

 

챌린지 완독 선물이 어제 도착했는데 보기에 좋더라. 소소한 선물들, 다만 챌린지를 너무 일찌감치 끝내는 바람에 쫌 그랬다. 싱거운 맛이랄까.

 


5. 화이트 타이거 - 아라빈드 아디가


무려 2008년 부커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6월의 끝자락에 읽었는데, 곧이어 읽은 <빌랄의 거짓말>과 더불어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고 부르고 싶더라. 전자는 현대의 인도의 진실을 그리고 후자는 73년 전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 독립 즈음을 다루고 있다.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은 블랙유머로 넘쳐 흐른다. 21세기에도 수천년 된 계급제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지주 계급에 시달려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에 그만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아니 그 지주계급은 이제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했던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인간 카멜레온 같은 문제적 인간 발람 할와이의 인생유전이 기가 막히다. 국내 출판사들은 속히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작품을 출간할지어다.

 

[번외편]



1.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들


전세계를 휩쓴 코로나 사태로 소중한 작가 한 분이 우리의 곁을 떠나 별이 되셨다.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동안 수집한 그의 책들을 꾸역꾸역 다시 읽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책들마다 분량이 적어서 재독하는데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 소설까지 출간돼서 화룡점점을 찍었다. 아디오스 미스터 세풀베다.

 


2. 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 게리 폴 나브한


위대한 종자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생애에 대한 르포르타쥬다. 바빌로프의 후예들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치 독일군의 치열한 레닌그라드 공격으로부터 소중한 씨앗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산화했다. 바빌로프는 스탈린에게 숙청당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소중한 씨앗들을 수집하고 연구한 바빌로프의 행적을 쫓는 게리 폴 나브한의 여정 역시 대단했다. 이런 책들은 정말 널리 알려서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싶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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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7-04 14: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타이거>를 담아갑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0-07-04 22:37   좋아요 0 | URL
갠춘한 작가인 것 같은데
후속작의 번역이 되지 않아
국내에서 인기가 힘을 못
얻고 있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단발머리 2020-07-04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좋아하는 류의 페이퍼에요. 2020년 상반기 엑기스 페이퍼죠.
저는 <화이트 타이거>랑 <알리바이>요. 안드레 애시먼,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끌리지 않는 작가였는데, 레삭매냐님 1번이니까 읽어볼까 합니다.

레삭매냐 2020-07-04 22:38   좋아요 0 | URL
엑기스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냥 다들 하시는 것 같아
저도 숟가락을 얹어 보았습니다.

저도 안드레 애시먼이 땡기지
않아 한동안 의도적으로 멀리
했었는데, 읽어 보니 그것 참...
팬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그놈의 <하바드 스퀘어> 때문에
억울하네요 증맬루.

stella.K 2020-07-04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 형제들 문동으로 읽으면 읽을 수 있을까요?
정말 열린책과 차이가 많이 날까요?
챌린지 선물 궁금하네요.
치트키. 종종 듣던 말인데 그 정확한 뜻을 저는 아직도 모르고 있네요.ㅎ;;

레삭매냐 2020-07-04 22:45   좋아요 1 | URL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단 열린책들에서는 특유의 꼬끼뜨
표기로 사뿐하게 외래어 표기를 무시
하지요.

제가 5년 전에 카라마조프에 도전
했다가 망한 책도 바로 열린책들
버전이었답니다. 자간은 또 왜 이렇게
좁은지 증맬루다가.

문동 버전이 훨씬 더 산뜻하다고 감히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진도가 더 잘
나간다고나 할까요 -

챌린지 프레젠또는 완독증서, 도끼샘
뱃지, 책갈피 등등이랍니다 :>

치트키는 무언가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얍삽한 꼼수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북깨비 2020-07-05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끼또... 😅 그러고 보니 오래전 창비의 일본문학서적 한 권을 리뷰만 읽고 샀다가 꼬끼또 번역을 보고 다 읽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꼬끼또와 코키토의 차이는 여전히 극복을 못하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0-07-05 10:24   좋아요 1 | URL
앗~ 그리고 보니 외래어 표기를
가비얍게 무시하는 지존이 하나
더 있었군요 ㅋㅋ

책을 읽을 때마다 거슬리는데
정말 답이 없네요.

겨울호랑이 2020-07-05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삭매냐님처럼 정기 결산을 해야하는데, 하루 읽고 정리하기에도 힘이 부치네요.ㅜㅜ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0-07-05 15:0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탄력 받아서 책 정리에 나섰다가
꼬맹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아
책탑에 갇혀 버리는 바람에 그만
나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죽도 밥도 되지 않은...
소장할 필요가 없는 책들은 누굴
주거나 기증하고 그것도 안되면
버리거나 해야 하는데, 하나도 쉬
운 게 없네요.

페넬로페 2020-07-06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덕분에
여지껏 알지 못한 작가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요즘 루이스 세플베다의 작품을
몇 권 구입했어요**

레삭매냐 2020-07-06 11:40   좋아요 0 | URL
루이스 세풀베다 작가는 정말
사랑입니다.

이런 멋진 작가님이 코로나로
세상을 뜨셨다니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2020-07-23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3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23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20-09-18 1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꽉차게 읽으시고 베푸시는 나눔의 모습도 훈훈합니다!!! 쌓인 책보니 독서욕이 성큼 다가옵니다 가을과 함께^^

레삭매냐 2020-09-18 14:02   좋아요 1 | URL
읽을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데,
그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매달려
여름이 지나가 버렸네요 :>

이산(diaspora) 문학과 이번 가을을 함
께 해볼까 합니다.

coolcat329 2020-09-18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님 도쿠가와 읽으시느라 요즘 조용하셔서 궁금했는데 이렇게 책장도 공개하시고 결산까지 잘 봤습니다~😊

지상의 모든음식과 화이트 타이거 읽고 싶네요, 리더는 아주 예전에 읽었지만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 다시 읽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0-09-18 17: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결산과 책장 공개는 두 달전
의 타이밍이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다음부터
달려 들었답니다. 이제 세 권 남았
답니다 :>

<리더>는 생각 외로 재밌더군요...

 
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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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 동안 나의 책장에서 자고 있던 화이트 타이거를 지난 6월말에 만났다. 왠지 지난 상반기를 마감하는 책으로 이 책이 안성맞춤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의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빙고!

 

소설 <화이트 타이거>는 뱅갈로르에 있는 사업가를 자처하는 발람 할와이가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양식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발람이 자신의 옛 주인을 살해하고 도주 중인 지명수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너무 빨리
쎈 이야기를 시작했나. 그만큼 강렬하다는 그런 반증이 아닐까? 참고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데뷔 소설인 <화이트 타이거>2008년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것도 놀랍군.

 

이 책 다음에 읽은 <빌람의 거짓말>이 인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면 <화이트 타이거>는 현대 인도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로 읽힌다. 그놈의 카스트 제도와 길똥이 난무한다는 인도 말인가? 이미 로힌턴 미스트리나 아룬다티 로이의 작품을 통해 인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잘 알고 있기에 아디가의 증언은 남다를 것도 없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공 과자쟁이이자 운전기사 그리고 하인으로 자신의 신분이 고정된 발람이 과감하게 수탉장을 쳐부수고, 자신의 숙명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와중에는 주인 살해하는 범죄가 끼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주계급은 하인들의 온 가족을 볼모로 잡아, 반항정신의 싹을 잘라 버렸다. 가령 예를 들어 지주 계급의 아이가 낙살 반군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다면, 그 아이를 돌보던 하인의 가족에게 보복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조혼으로 남자들을 가족이라는 굴레에 얽어맨다. 과자쟁이 계급이지만, 자신의 숙명을 거부한 발람의 아버지 역시 인력거꾼으로 활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대가족 집단에게 자신이 버는 돈을 제공하여야 하는 것이다. 과연 가족이란 삶의 안식처가 아니라 족쇄라고 할 법하지 않은가.

 

문제적 인간 발람은 과자쟁이로 찻집에서 알바를 뛰다가, 운전기사로 신분상을 이루게 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기술 그리고 가족의 투자가 한몫했다고나 할까. 지주 황새와 몽구스 같은 전통적 스타일의 주인님들은 발람 같은 하인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마침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도련님 스타일의 아쇽 선생과 그의 부인 핑키 마담은 배운 사람들답게 발람에게 나름 인간적 대접을 해준다. 물론 그들의 지주 본색이 들어나기 전까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호기심의 폭풍에 사로잡힌다. 왜 발람은 자신에게 섭섭하지 않은 대우를 해주던 아쇽 선생에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아쇽 선생은 앞으로 인도가 나아갈 길에 대한 희망적 상징으로 받아 들였다. 문제는 부패가 만연한 인도에서는 권력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제 카스트 제도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까? 여전히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어이없는 계급 제도에 묶여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면 또 다른 이야기라는 것일까?

 

황새나 몽구스에 비해 개화된 인물로 등장하는 아쇽도 핑키 마담이 술김에 발람이 잡아야 하는 운전대를 잡았다가 엄한 사람을 치는 사건을 치면서 이야기는 배신의 드라마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핑키 마담을 구하기 위해 급거 상경한 몽구스는 발람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설정으로 난국 타개를 도모한다. 아니 도대체 발람이 잘못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왜 아무 죄 없이 주인님을 위해 살인자에 감옥살이도 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발람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처럼 득도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온화하고 영명한 주인님이라고 하더라도, 주인님은 주인님일 뿐 무고한 종놈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과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말이다. 이런 잘 짜여진 설정 앞에서 우리의 발람이 할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거금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다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수탉장에 갇혀 마누라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열혈청년 발람이 어떤 선택을 했을 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후과로 자신의 가족 17명이 몰살당했다고 하더라도, 발람은 뱅갈로르에서 시작한 자신의 사업을 돌보느라 진실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충실한 종에서 희대의 악당 혹은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발람 할와이가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 계산된 결정이었단 말인가.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같으니.

 

발람은 끝내 이야기해 주지 않는데, 왜 이 방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중국의 총리 원자바오 씨에게 보냈을까라는 생각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실시한다는 인도는 적어도 이웃 중국보다는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앞선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우리의 발람이 한 번도 투표소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록상 그는 매번 빠지지 않고 투표를 했다. 저자 아라빈드 아디가는 바로 이런 인도식 민주주의 허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보다 이웃이자 라이벌 중국이 찍어내는 수세식 화장실과 도시 순환도로 같은 인민을 위한 유형의 물질적 자산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남부로 튄 발람은 인도의 경제가 식민종주국 영국을 대신한 미국의 시간에 맞춰 공급할 다수의 아웃소싱 인력을 위한 편리하면서도 안전한 교통수단이 돈벌이가 되리라는 점에 착안한 운송서비스로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선진 자본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서 자가증식에 필요한 노동력을 신속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빨아들인다는 점이 또한 신박하게 다가왔다.

 

아라빈드 아디가가 구사하는 블랙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피할 수 없는 비극과 예속을 수탉장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통해 갈무리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나선 문제적 인간 발람 할와이의 도전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왜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화이트 타이거>가 발표된 이래, 4편의 소설이 더 나왔는데 어서 빨리 번역서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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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랄의 거짓말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2
이르판 마스터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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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를 읽고 나서 이르판 마스터의 <빌랄의 거짓말>을 읽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전자가 현재의 인도를 그리고 있다면, 후자는 과거 그러니까 1947814일을 즈음한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던 인도 북부의 어느 곳을 무대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영화 <굿바이 레닌><라이프 이즈 뷰티풀>이 생각나더라. 이유는 우리의 주인공 소년(13) 빌랄이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사랑하던 빌랄의 아버지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다. 일찍이 철이 든 빌랄은 하나의 인도 밖에 모르던 아버지에게 현실을 들려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삼총사 초타와 만지트 그리고 쌀림이라는 친구들을 동원해서 위선의 무대를 꾸민다.

 

19세기 중반 인도아 대륙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한 대영제국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이라는 고전적인 제국주의 통치 방식으로 거대한 대륙을 지배했다. 소수의 무슬림 그리고 다수의 힌두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같은 마을에서 사이좋게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하수인들과 빌랄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악질 애국자들은 종교 아니 광신을 바탕으로 해서 각기 다른 나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가 아는 대로, 인도는 두 개의 다른 나라로 갈라졌다. 통합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연료 삼아 폭력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책을 사랑하는 이상주의자 굴람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갈등이 암과 싸우는 아버지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게 아닐까? 이런 걱정으로 빌랄의 거짓말은 화려한 비상을 시작한다.

 

물론 어린 아들의 의도는 순수하고 오로지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백분 이해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스스로 그런 무거운 짐을 떠안은 빌랄에게는 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빌랄의 형은 무슬림 행동대원으로 증오와 분노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소년은 형의 존재 때문에 자신의 집안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는 보통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멋대로 휘어져 나간다.

 

빌랄의 아버지를 돌봐온 의사 선생님과 오랫동안 근처 마을에 의료봉사에 나선 빌랄은 무슬림 첩자로 오해받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오던 이들에게 종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반목은 어떤 결정적 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그렇게 증폭을 거듭한다. 그리고 결국 닭싸움을 계기로 상대방에 대한 폭력은 극단적으로 폭발한다.

 

더 이상 마을에 머물 수 없게 된 친구들은 하나둘씩 빌랄의 곁을 떠난다. 언젠가 빌랄이 의사 선생님에게 운명의 뜻에 대해 물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의 우정을 아쉬워하는 빌랄이 운명의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소설의 초반과 종반에 등장하는 몬순은 뭐랄까 규정하기 힘든 자연의 재앙이라고 표현을 할까.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계절의 변화를 상징한다고나 할까. 아까 책을 열심히 읽을 적에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떠올랐었는데, 어제 마트에서 사온 아크 맥주를 한 깡 했더니만... 에라 모르겠다.

 

<화이트 타이거>가 빈곤과 카스트 제도 같은 인도 전래의 문제들에 집중한 블랙유머라고 한다면, <빌랄의 거짓말>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소년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원래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두 개의 다른 나라가 되면서 1,45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강제 이주를 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벌어진 극단적 폭력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빌랄의 증언은 상당히 순화된 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지점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가 떠오르기도 했다. 부디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길 바래 마지않을 뿐이다.

 

<빌랄의 거짓말>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소년의 성장통과 분리 독립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빚어내는 스토리가 가진 흡입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런 책을 자그마치 8년이나 묵혀서 읽은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이든 소장만 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읽게 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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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an0341 2020-08-28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 보고싶네요!!
^^

레삭매냐 2020-08-28 19:33   좋아요 0 | URL
전 아주 오래 묵혀서 읽게 된
책인데, 아주 재밌게 읽었답니다.

인도 문학이 매력적이네요.
 
히틀러 최후의 14일
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씨름하던 중에 무언가 기분 전환으로 읽을 만한 책이 없나 하고 서가를 뒤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마의 산에 오를 수는 있는 걸까. 도끼 선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죄와 벌>을 신나게 내달리고 나니 장편에 대한 거부감이 좀 줄어 들어 도전했는데...

 

우리에게는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가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14일을 그린 르포르타쥬가 바로 <히틀러 최후의 14>이다. 아주 오래 전에 절반 값으로 중고서점에 샀는데 몇 번 읽어 보려다가 실패하고 마침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언제나 성공하게 될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히틀러가 이끄는 제3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서방 연합군이 아니라 소비에트 적군이었다. 히틀러가 기획한 최후의 공세였던 1944년말 벌지 전투로 알려진 아르덴 공세에서 히틀러는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을 상대하고 있던 최정예 연대들을 서쪽으로 이동배치했고, 비록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군을 상대로 한때 유럽 전역을 석권했던 베어마흐트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역설적으로 히틀러는 제국의 수도이자 심장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독일 본토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모두 아르덴 공세에서 소진시켜 버렸다. 결국 세르게이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소련군은 1945416일 자그마치 25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제3제국의 마지막 목줄을 끊는 베를린 점령 전투에 나선다.

 

주코프 사령관이 기획한 오데르 강 연안의 젤로브 고원지대 공략전은 치밀한 계획 없이 오로지 파시스트 독일군을 일소한다는 대전략을 앞세운 막무가내식 공격이었다. 이미 압도적인 소련군에 대항해서 병력이나 물자, 보급 등에서 역부족이었던 독일 방어군은 일단 소련군의 포화를 피한 다음, 효과적으로 소련군의 예봉을 돈좌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방향으로 나누어져 베를린으로 향하는 복수에 불타는 소련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 때 도이치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던 총통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전쟁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보강된 베를린 지하의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는 여전히 후퇴는 없다, 현지 절대사수!’라는 실패가 인증된 방식을 고수했다. 같은 방식으로 3년 전, 청색 작전에서 주공을 맡았던 독일 최정예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되어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소멸해 버리지 않았던가.

 

결정적인 것은 히틀러가 조국과 도이치 민족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으로부터 사수하기 위한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라인란트 진주 이래 계속된 히틀러의 크고 작은 성공들이 어쩌면 궁극적인 신들의 황혼의 이유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삶의 끝자락에서 망상에 사로잡힌 총통은 존재하지도 않는 슈타이너 그룹이나 벵크 군단 같은 부대가 수도 베를린을 적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의 그런 착각은 어쩌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중증으로 발화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으로 마침내 권력을 손에 쥐게 된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일단의 국가사회주의 그룹은 1차세계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으로부터 도이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보였다. 상이용사 출신 총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악한 권력을 이용해서 독일을 병영국가로 바꾸어 버렸다. 서유럽에서 전쟁 외에는 더 이상의 영토확장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동방으로 눈을 돌렸다. 동방에는 파시즘과는 불구대천의 원수 볼셰비키 스탈린이 이끄는 슬라브 제국 소련이 존재했다. 작은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선택한 뒤, 그들의 희생을 통해 도이치 민족의 동질성을 획득한 히틀러의 창끝은 폴란드와 프랑스를 석권하고 나서 동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그런 선택은 결국 자신과 도이치 민족 그리고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제국이 잘 나갈 때에는 그렇게 최고권력자에게 빌붙어 온갖 아양을 떨던 이들이 신들의 황혼이 내리자 결국 자신만의 안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 대표선수가 바로 제국의 2인자라던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이었다. 패전 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도 총통을 배신하고 연합군과 항복 조건을 흥정하지 않았던가. 반면, 3제국의 흥망을 함께 하고 이데올로기의 첨병이자 선전수였던 괴벨스 일가는 총통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미 서부 전선에서 패퇴한 발터 모델이나 부르크도르프 같은 장군들은 선배들의 예를 따라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제국의 구세주, 아니 처음부터 제국의 파괴지왕이었던 히틀러는 자신과 도이치 민족의 운명을 동일시했다. 그는 일찍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모조리 잿더미가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예언을 했는데 그런 그의 예언은 19454월 현실이 되었다. 십대 히틀러유겐트 부대원부터 시작해서 중년의 향토예비군들까지 베를린 사수에 동원되어 애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폐허의 잿더미에서 독일 국가가 불사조처럼 다시 부활하리라는 망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자포자기한 독일 병사들은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 아래 죽었고, 파시스트들의 수도 베를린 점령에 나선 소련군도 자그마치 30만 명이나 전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들의 황혼이라는 신화에 걸맞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요아힘 페스트는 한편으로는 마치 CNN이 보도하는 전쟁 뉴스를 들려주는 것처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또 다른 축에서는 얼치기 전쟁광이자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도이치 민족을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현실의식이 결여된 독재자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끝없이 다른 사람들의 탓만 해댄다. 전쟁 초기의 성공들은 모두 자신의 올바른 결정 덕분이고, 패전의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민족의 구세주로 도이치 사람들을 현혹했던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깔끔하게 자신만 그런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히틀러와 그의 부인 에바 브라운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훗날 다양한 형태의 음모론들이 활개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냉정한 시선으로 히틀러 최후의 몰락을 그린 요아힘 페스트의 기록이 보여주는 힘은 대단했다. 저자가 꼽은 히틀러 몰락의 터닝 포인트는 1941년 그리스에 개입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원래 계획보다 6주 지연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411127일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공략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히틀러가 소련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면 현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제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역사 소설 <당신들의 조국>을 읽을 시간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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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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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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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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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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