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최후의 14일
요아힘 페스트 지음, 안인희 옮김 / 교양인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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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씨름하던 중에 무언가 기분 전환으로 읽을 만한 책이 없나 하고 서가를 뒤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마의 산에 오를 수는 있는 걸까. 도끼 선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리고 <죄와 벌>을 신나게 내달리고 나니 장편에 대한 거부감이 좀 줄어 들어 도전했는데...

 

우리에게는 <히틀러 평전>으로 유명한 요아힘 페스트가 제3제국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베를린의 총통 벙커에서 보낸 생애 마지막 14일을 그린 르포르타쥬가 바로 <히틀러 최후의 14>이다. 아주 오래 전에 절반 값으로 중고서점에 샀는데 몇 번 읽어 보려다가 실패하고 마침내 완독에 성공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언제나 성공하게 될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히틀러가 이끄는 제3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서방 연합군이 아니라 소비에트 적군이었다. 히틀러가 기획한 최후의 공세였던 1944년말 벌지 전투로 알려진 아르덴 공세에서 히틀러는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을 상대하고 있던 최정예 연대들을 서쪽으로 이동배치했고, 비록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미군을 상대로 한때 유럽 전역을 석권했던 베어마흐트의 실력을 보여 주었다.

 

역설적으로 히틀러는 제국의 수도이자 심장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독일 본토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병력을 모두 아르덴 공세에서 소진시켜 버렸다. 결국 세르게이 주코프 사령관이 이끄는 소련군은 1945416일 자그마치 250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제3제국의 마지막 목줄을 끊는 베를린 점령 전투에 나선다.

 

주코프 사령관이 기획한 오데르 강 연안의 젤로브 고원지대 공략전은 치밀한 계획 없이 오로지 파시스트 독일군을 일소한다는 대전략을 앞세운 막무가내식 공격이었다. 이미 압도적인 소련군에 대항해서 병력이나 물자, 보급 등에서 역부족이었던 독일 방어군은 일단 소련군의 포화를 피한 다음, 효과적으로 소련군의 예봉을 돈좌시키는데 성공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 방향으로 나누어져 베를린으로 향하는 복수에 불타는 소련군의 진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 때 도이치 민족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졌던 총통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전쟁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지휘 아래 치밀하게 보강된 베를린 지하의 총통 벙커에서 히틀러는 여전히 후퇴는 없다, 현지 절대사수!’라는 실패가 인증된 방식을 고수했다. 같은 방식으로 3년 전, 청색 작전에서 주공을 맡았던 독일 최정예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되어 탈출하지 못하고 결국 소멸해 버리지 않았던가.

 

결정적인 것은 히틀러가 조국과 도이치 민족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으로부터 사수하기 위한 전략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라인란트 진주 이래 계속된 히틀러의 크고 작은 성공들이 어쩌면 궁극적인 신들의 황혼의 이유가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삶의 끝자락에서 망상에 사로잡힌 총통은 존재하지도 않는 슈타이너 그룹이나 벵크 군단 같은 부대가 수도 베를린을 적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의 그런 착각은 어쩌면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중증으로 발화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으로 마침내 권력을 손에 쥐게 된 히틀러와 그를 추종하는 일단의 국가사회주의 그룹은 1차세계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으로부터 도이치 민족을 구원한 것처럼 보였다. 상이용사 출신 총통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장악한 권력을 이용해서 독일을 병영국가로 바꾸어 버렸다. 서유럽에서 전쟁 외에는 더 이상의 영토확장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동방으로 눈을 돌렸다. 동방에는 파시즘과는 불구대천의 원수 볼셰비키 스탈린이 이끄는 슬라브 제국 소련이 존재했다. 작은 희생양으로 유대인을 선택한 뒤, 그들의 희생을 통해 도이치 민족의 동질성을 획득한 히틀러의 창끝은 폴란드와 프랑스를 석권하고 나서 동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의 그런 선택은 결국 자신과 도이치 민족 그리고 제국을 파멸로 몰아넣었다.

 

제국이 잘 나갈 때에는 그렇게 최고권력자에게 빌붙어 온갖 아양을 떨던 이들이 신들의 황혼이 내리자 결국 자신만의 안위를 찾기 시작했다. 그 대표선수가 바로 제국의 2인자라던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이었다. 패전 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던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도 총통을 배신하고 연합군과 항복 조건을 흥정하지 않았던가. 반면, 3제국의 흥망을 함께 하고 이데올로기의 첨병이자 선전수였던 괴벨스 일가는 총통과 마지막을 함께 했다. 이미 서부 전선에서 패퇴한 발터 모델이나 부르크도르프 같은 장군들은 선배들의 예를 따라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했다.

 

제국의 구세주, 아니 처음부터 제국의 파괴지왕이었던 히틀러는 자신과 도이치 민족의 운명을 동일시했다. 그는 일찍이 독일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모조리 잿더미가 되는 게 나을 거라는 예언을 했는데 그런 그의 예언은 19454월 현실이 되었다. 십대 히틀러유겐트 부대원부터 시작해서 중년의 향토예비군들까지 베를린 사수에 동원되어 애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폐허의 잿더미에서 독일 국가가 불사조처럼 다시 부활하리라는 망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자포자기한 독일 병사들은 끝까지 조국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 아래 죽었고, 파시스트들의 수도 베를린 점령에 나선 소련군도 자그마치 30만 명이나 전사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들의 황혼이라는 신화에 걸맞은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요아힘 페스트는 한편으로는 마치 CNN이 보도하는 전쟁 뉴스를 들려주는 것처럼,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또 다른 축에서는 얼치기 전쟁광이자 뚜렷한 목표 의식 없이 도이치 민족을 전쟁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넣은 독재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현실의식이 결여된 독재자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끝없이 다른 사람들의 탓만 해댄다. 전쟁 초기의 성공들은 모두 자신의 올바른 결정 덕분이고, 패전의 이유는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민족의 구세주로 도이치 사람들을 현혹했던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깔끔하게 자신만 그런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히틀러와 그의 부인 에바 브라운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훗날 다양한 형태의 음모론들이 활개친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냉정한 시선으로 히틀러 최후의 몰락을 그린 요아힘 페스트의 기록이 보여주는 힘은 대단했다. 저자가 꼽은 히틀러 몰락의 터닝 포인트는 1941년 그리스에 개입하면서 바르바로사 작전이 원래 계획보다 6주 지연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19411127일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공략에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히틀러가 소련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면 현대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이제 로버트 해리스의 대체역사 소설 <당신들의 조국>을 읽을 시간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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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14: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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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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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30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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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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