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랄의 거짓말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12
이르판 마스터 지음, 위문숙 옮김 / 내인생의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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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를 읽고 나서 이르판 마스터의 <빌랄의 거짓말>을 읽은 건 신의 한 수였다. 전자가 현재의 인도를 그리고 있다면, 후자는 과거 그러니까 1947814일을 즈음한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폭력이 난무하던 인도 북부의 어느 곳을 무대로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영화 <굿바이 레닌><라이프 이즈 뷰티풀>이 생각나더라. 이유는 우리의 주인공 소년(13) 빌랄이 암으로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설정 때문이었으리라.

 

책을 사랑하던 빌랄의 아버지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는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다. 일찍이 철이 든 빌랄은 하나의 인도 밖에 모르던 아버지에게 현실을 들려주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삼총사 초타와 만지트 그리고 쌀림이라는 친구들을 동원해서 위선의 무대를 꾸민다.

 

19세기 중반 인도아 대륙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성공한 대영제국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이라는 고전적인 제국주의 통치 방식으로 거대한 대륙을 지배했다. 소수의 무슬림 그리고 다수의 힌두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같은 마을에서 사이좋게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대영제국의 하수인들과 빌랄의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악질 애국자들은 종교 아니 광신을 바탕으로 해서 각기 다른 나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가 아는 대로, 인도는 두 개의 다른 나라로 갈라졌다. 통합을 원하지 않는 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연료 삼아 폭력으로 상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책을 사랑하는 이상주의자 굴람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런 갈등이 암과 싸우는 아버지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게 아닐까? 이런 걱정으로 빌랄의 거짓말은 화려한 비상을 시작한다.

 

물론 어린 아들의 의도는 순수하고 오로지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백분 이해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그리고 스스로 그런 무거운 짐을 떠안은 빌랄에게는 무리가 되지 않았을까? 빌랄의 형은 무슬림 행동대원으로 증오와 분노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웠다. 소년은 형의 존재 때문에 자신의 집안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는 보통사람들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멋대로 휘어져 나간다.

 

빌랄의 아버지를 돌봐온 의사 선생님과 오랫동안 근처 마을에 의료봉사에 나선 빌랄은 무슬림 첩자로 오해받아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오던 이들에게 종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반목은 어떤 결정적 계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그렇게 증폭을 거듭한다. 그리고 결국 닭싸움을 계기로 상대방에 대한 폭력은 극단적으로 폭발한다.

 

더 이상 마을에 머물 수 없게 된 친구들은 하나둘씩 빌랄의 곁을 떠난다. 언젠가 빌랄이 의사 선생님에게 운명의 뜻에 대해 물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친구들의 우정을 아쉬워하는 빌랄이 운명의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소설의 초반과 종반에 등장하는 몬순은 뭐랄까 규정하기 힘든 자연의 재앙이라고 표현을 할까. 상당히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계절의 변화를 상징한다고나 할까. 아까 책을 열심히 읽을 적에는 좀 더 구체적인 표현이 떠올랐었는데, 어제 마트에서 사온 아크 맥주를 한 깡 했더니만... 에라 모르겠다.

 

<화이트 타이거>가 빈곤과 카스트 제도 같은 인도 전래의 문제들에 집중한 블랙유머라고 한다면, <빌랄의 거짓말>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소년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원래 한 나라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두 개의 다른 나라가 되면서 1,45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강제 이주를 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벌어진 극단적 폭력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빌랄의 증언은 상당히 순화된 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지점에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가 떠오르기도 했다. 부디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길 바래 마지않을 뿐이다.

 

<빌랄의 거짓말>을 다 읽고 나니 왜 그렇게 서글프던지.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소년의 성장통과 분리 독립이라는 거대한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빚어내는 스토리가 가진 흡입력은 정말 대단했다. 이런 책을 자그마치 8년이나 묵혀서 읽은 나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책이든 소장만 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읽게 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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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han0341 2020-08-28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 보고싶네요!!
^^

레삭매냐 2020-08-28 19:33   좋아요 0 | URL
전 아주 오래 묵혀서 읽게 된
책인데, 아주 재밌게 읽었답니다.

인도 문학이 매력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