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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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 동안 나의 책장에서 자고 있던 화이트 타이거를 지난 6월말에 만났다. 왠지 지난 상반기를 마감하는 책으로 이 책이 안성맞춤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나의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빙고!

 

소설 <화이트 타이거>는 뱅갈로르에 있는 사업가를 자처하는 발람 할와이가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편지 양식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발람이 자신의 옛 주인을 살해하고 도주 중인 지명수배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니 너무 빨리
쎈 이야기를 시작했나. 그만큼 강렬하다는 그런 반증이 아닐까? 참고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데뷔 소설인 <화이트 타이거>2008년 부커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것도 놀랍군.

 

이 책 다음에 읽은 <빌람의 거짓말>이 인도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라면 <화이트 타이거>는 현대 인도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로 읽힌다. 그놈의 카스트 제도와 길똥이 난무한다는 인도 말인가? 이미 로힌턴 미스트리나 아룬다티 로이의 작품을 통해 인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잘 알고 있기에 아디가의 증언은 남다를 것도 없다.

 

문제는 우리의 주인공 과자쟁이이자 운전기사 그리고 하인으로 자신의 신분이 고정된 발람이 과감하게 수탉장을 쳐부수고, 자신의 숙명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와중에는 주인 살해하는 범죄가 끼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주계급은 하인들의 온 가족을 볼모로 잡아, 반항정신의 싹을 잘라 버렸다. 가령 예를 들어 지주 계급의 아이가 낙살 반군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다면, 그 아이를 돌보던 하인의 가족에게 보복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조혼으로 남자들을 가족이라는 굴레에 얽어맨다. 과자쟁이 계급이지만, 자신의 숙명을 거부한 발람의 아버지 역시 인력거꾼으로 활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대가족 집단에게 자신이 버는 돈을 제공하여야 하는 것이다. 과연 가족이란 삶의 안식처가 아니라 족쇄라고 할 법하지 않은가.

 

문제적 인간 발람은 과자쟁이로 찻집에서 알바를 뛰다가, 운전기사로 신분상을 이루게 된다.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기술 그리고 가족의 투자가 한몫했다고나 할까. 지주 황새와 몽구스 같은 전통적 스타일의 주인님들은 발람 같은 하인들을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마침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도련님 스타일의 아쇽 선생과 그의 부인 핑키 마담은 배운 사람들답게 발람에게 나름 인간적 대접을 해준다. 물론 그들의 지주 본색이 들어나기 전까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독자들은 호기심의 폭풍에 사로잡힌다. 왜 발람은 자신에게 섭섭하지 않은 대우를 해주던 아쇽 선생에게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아쇽 선생은 앞으로 인도가 나아갈 길에 대한 희망적 상징으로 받아 들였다. 문제는 부패가 만연한 인도에서는 권력자에게 뇌물을 주지 않고 정상적인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제 카스트 제도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까? 여전히 수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어이없는 계급 제도에 묶여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다면 또 다른 이야기라는 것일까?

 

황새나 몽구스에 비해 개화된 인물로 등장하는 아쇽도 핑키 마담이 술김에 발람이 잡아야 하는 운전대를 잡았다가 엄한 사람을 치는 사건을 치면서 이야기는 배신의 드라마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핑키 마담을 구하기 위해 급거 상경한 몽구스는 발람이 대신 죄를 뒤집어쓰는 설정으로 난국 타개를 도모한다. 아니 도대체 발람이 잘못한 게 무엇이란 말인가? 왜 아무 죄 없이 주인님을 위해 살인자에 감옥살이도 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발람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처럼 득도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온화하고 영명한 주인님이라고 하더라도, 주인님은 주인님일 뿐 무고한 종놈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과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말이다. 이런 잘 짜여진 설정 앞에서 우리의 발람이 할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거금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마다할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수탉장에 갇혀 마누라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아버지처럼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열혈청년 발람이 어떤 선택을 했을 지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 후과로 자신의 가족 17명이 몰살당했다고 하더라도, 발람은 뱅갈로르에서 시작한 자신의 사업을 돌보느라 진실을 제대로 살필 겨를이 없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충실한 종에서 희대의 악당 혹은 사업가로 변신하는데 성공한 발람 할와이가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 계산된 결정이었단 말인가.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같으니.

 

발람은 끝내 이야기해 주지 않는데, 왜 이 방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도 아닌 중국의 총리 원자바오 씨에게 보냈을까라는 생각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실시한다는 인도는 적어도 이웃 중국보다는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앞선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우리의 발람이 한 번도 투표소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기록상 그는 매번 빠지지 않고 투표를 했다. 저자 아라빈드 아디가는 바로 이런 인도식 민주주의 허상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런 형식적 민주주의보다 이웃이자 라이벌 중국이 찍어내는 수세식 화장실과 도시 순환도로 같은 인민을 위한 유형의 물질적 자산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남부로 튄 발람은 인도의 경제가 식민종주국 영국을 대신한 미국의 시간에 맞춰 공급할 다수의 아웃소싱 인력을 위한 편리하면서도 안전한 교통수단이 돈벌이가 되리라는 점에 착안한 운송서비스로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선진 자본은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서 자가증식에 필요한 노동력을 신속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빨아들인다는 점이 또한 신박하게 다가왔다.

 

아라빈드 아디가가 구사하는 블랙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피할 수 없는 비극과 예속을 수탉장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통해 갈무리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나선 문제적 인간 발람 할와이의 도전을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왜 아라빈드 아디가의 다른 작품들은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화이트 타이거>가 발표된 이래, 4편의 소설이 더 나왔는데 어서 빨리 번역서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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