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5 - 바스티유에서 바그다드까지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옮김 / 궁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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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출간을 기다리고 있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제 바로 주문을 했고, 총알 배송으로 받아본 책은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인 하버드 수학과 출신의 만화가가 그리는 만화라, 어쩐지 먹물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래리 고닉이 수년간 계획해온 세계사의 마지막 권의 독서는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진한 아쉬움과의 치열한 전투였다.

동양에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중국과 일본을 설명한 작가는 바로 노예무역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기술을 시작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프리카에서 마치 사냥을 하듯이 잡아들인 흑인들을 신대륙 개발에 투입한다.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식민제국 건설 경쟁에서 흑인 노예노동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영국에서 노예무역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보이는 시작하는 시점에서 바로 래리 고닉은 프랑스혁명으로 포커스를 돌린다. 무능력하고 사치와 방탕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에 국가 재정을 낭비한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는 재정고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 유명한 삼부회를 소집한다. 순전히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소집했던 삼부회는, 자각한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정 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치닫는다. 혁명 후의 혼란은 결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독재자의 등장을 불러오고, 래리 고닉은 불리한 상황에서 언제나 병사들을 내버리고 내뺀 황제 나폴레옹을 마음껏 조롱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전 유럽에 전파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산업혁명으로 사유재산을 소유하게 된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막을 수 없는 한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노예해방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의 식민경영의 시대를 맞이한다. 중국의 부(富)에 눈독을 들인 서구 열강, 특히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에 두면서 아편무역이라는 부도덕한 방법으로 동양의 재화를 강탈하기 시작한다.

미국 페리 제독의 강제에 의해 개국하게 된 일본의 근대화 과정, 서구 열강의 담합으로 한 때 중근동의 강국이었던 오토만 터키 제국이 종이호랑이가 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로부터 라틴 아메리카가 해방되는 과정들이 아주 간략하게 소개된다. 아무래도 미시적인 역사보다는 거시사에 집중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부분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그 부분은 전적으로 작가의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리라.

래리 고닉은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방대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를 하면서 정치사적 접근뿐만 아니라 지난 시대의 과학, 사상적 발견에 의한 세상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훗날 원자폭탄 개발에까지 이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물론이고,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발전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의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거기에 번역을 맡은 이희재 씨의 현 세태를 풍자하는 번역과 유머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래리 고닉의 지난 세기에 세계를 주무른 열강에 대한 비판은 인도 분리 독립에 한몫한 영국과 이란, 과테말라 그리고 칠레 등지에서 쿠데타를 지원한 미국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프랑스혁명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이티혁명과 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서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 해산이라는 치명적인 실수가 불러온 파국적 결과 같은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균형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래리 고닉의 책을 통해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책을 알게 됐는데, 다시 한 번 좋은 책이 또 다른 좋은 책으로 인도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래리 고닉의 다른 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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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한니발을 이기고 젊은 로마를 세계의 제국으로 키워낸 남자
B.H.리델 하트 지음, 박성식 옮김 / 사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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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평소에 인터넷 서점에서 추천하는 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만의 독서를 하니 추천은 필요 없어,’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책을 읽는다. 하지만, 이번에 알라딘 대문에 걸린 리델 하트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책을 보는 순간, 이 책은 꼭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바로 주문을 했다. 운명적 만남이라고나 할까?

서두가 길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파리에서 태어난 영국 출신의 종군기자이자 전쟁 역사가인 B. H. 리델 하트(B.H. Liddell Hart)의 저작이다.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이기도 했던 리델 하트는 역사 속의 전쟁에 대한 전략 연구와 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의 전격전 이론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리델 하트는 두 번째 포에니 전쟁에서 백척간두의 조국 로마를 구하고 장차 패권국가의 초석을 닦은 위대한 사령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승리자이면서도 결국 조국에 배신당했던 비운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조명을 시도한다.

아프리카의 정복자라는 뜻에서 아프리카누스라는 별명이 붙은 스키피오는 그의 맞수 한니발 바르카에 비해 역사상의 평가가 인색한 편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스키피오를 알게 된 계기는 시오노 나나미 작가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한니발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장군이었다면, 스키피오는 리델 하트가 그의 장점으로 꼽은 치밀한 계산과 신중한 태도로 전쟁에 이기는 장군이었다. 그리고 전쟁 끝에 찾아오는 평화의 시기를 명쾌한 통찰력으로 예지하는 노련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훗날 로마 제국의 포용과 관용 정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앞서 스키피오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리델 하트는 스키피오가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보통의 전기나 평전이 주인공의 개인적 삶으로부터 그 연원을 찾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일체의 전설을 배제하고 거의 동시대 인물인 폴리비오스와 후대의 리비우스의 역사 기술에 자신의 창조적 상상력을 덧붙여서 흥미로운 진행을 이어간다. 스키피오가 활동한 역사의 무대는 로마와 카르타고 지중해 영역의 패권을 놓고 다툰 세 차례의 포에니 전쟁 중,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천재적 전술가 한니발에 의해 이탈리아 본토가 유린당하던 시기다.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비교하듯이,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가 전제 군주나 독재자로 가능한 인적 물적 자원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었지만, 스키피오는 로마 원로원의 끝없이 시기와 질투로 지원은커녕 견제의 대상이었다. 그런 모든 악조건을 딛고, 본토에서 한니발을 구축할 것이 아니라 원정을 치르는 한니발 군의 보급기지가 에스파냐라는 것을 대국적 견지에서 파악한 24세의 스키피오는 파견군 사령관으로 에스파냐 공략에 나선다. 에스파냐의 주요 거점인 카르타헤나를 기습공격으로 함락시키고,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 패퇴시킨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물자와 증원군 양성을 위한 병참기지인 에스파냐를 장악하면서 전쟁의 흐름을 로마로 돌리기 시작한다.

로마 원로원의 카토와 퀸투스 파비우스로 대변되는 반 스키피오 파들은 천재 전략가의 성공을 시기하면서, 본격적인 스키피오의 아프리카 원정에 반대하면서 본토의 한니발을 공격할 것을 주문한다. 범인들의 세계를 뛰어넘는 거대 전략가 스키피오는 본토 결전보다 한니발의 본국 카르타고에 대한 공격이 실타래처럼 얽힌 전쟁의 실마리를 푸는 첩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국가의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자력으로 국운을 건 대원정을 준비한다. 결국, 그의 냉철한 판단이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을 가른 자마 전투에서의 승리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한니발이 세계 역사상 최고의 전술가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한니발은 칸나에 전투에서의 대승의 여세를 몰아 로마 공략에 나서지 않으면서, 승기를 놓치고 만다. 상대적으로 스키피오는 사기진작을 위한 심리전의 구사, 선제공격의 이점을 파악하고, 적 주력부대에 대한 집중공격과 기동타격 전술 그리고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추격전을 펼치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입체적 전략과 전술을 동시에 구사한다. 스키피오의 진가는 전쟁 중이 아니라, 훗날 로마인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관용정신에 입각한 전후처리 과정에서 더욱 빛났다. 스키피오는 장군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국가의 목적은 전쟁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의 정착이라는 대의를 숙지하고 있었다.

카토로 대변되는 로마 원로원의 강경파는 한니발과 카르타고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원했지만, 정치가로서 스키피오는 제국이 아닌 주도국과 동맹국 관계라는 고대 로마의 파트로네스(후견인)와 클리엔테스(피후견인) 관계를 더 선호했던 것 같다. 역설적으로 개인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했던 스키피오가 헌신했던 그의 조국 로마는 팍스 로마나라는 제국주의 국가로 팽창하게 된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스키피오라는 역사의 비운의 영웅에 대한 전쟁 역사학자 리델 하트의 사모곡(思慕曲)이다. 저자는 스키피오의 고결한 도덕성과 정신적 통찰력 그리고 투명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카이사르나 나폴레옹같이 개인의 영달과 이익이 아니라, 조국에 헌신했던 흠결 없는 국가적 영웅에 대한 배신에 리델 하트는 감출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한다. 아무래도 비운의 역사적 인물인 스키피오에 대한 저자의 열렬한 사랑이 좀 편파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름대로 균형감각을 잡으려고 노력한 점이 엿보인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논리의 전개에, 깔끔한 구성을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장점으로 꼽고 싶다.

B.H. 리델 하트의 또 다른 저작의 출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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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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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의 보스니아 내전은 우리에겐 잊혀진 전쟁이다. 고래로부터 세계의 화약고로 불려 온 발칸 반도 그중에서도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 보스니아의 역사는 유혈로 얼룩져 있었다. 중세의 종교 전쟁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은 야만적 전멸전보다는 상대방의 전쟁의지 분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아울러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인도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는데 지난 천 년의 끝자락에 벌어진 보스니아-세르비아 내전에서 그런 인도주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 간의 불화로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낱말이 다시 등장했다. 그 내전의 와중에 몰타 출신의 미국인 아티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조 사코는 자신의 역작 <팔레스타인>에 이어,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세상에 소개한다.

1940년대 나치의 침공에 대항해서 영웅적인 게릴라전을 지휘한 전설적 영웅 티토는 전쟁이 끝난 후, 6개의 공화국이 연방제를 택한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으로 민족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의 국가 체제 수호를 위해 매진했다. 하지만, 절대권력자가 죽은 뒤에 연방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세르비아가 전면에 나서면서 구 유고연방의 미래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다른 공화국에 비해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차례로 독립선언을 하고, 이에 반발하는 세르비아계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중심으로 하는 신 유고연방의 존속을 지지하는 사이에서 내전이 발생한다.

보스니아는 특히 15세기 이래 발칸 전역을 장악한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남슬라브인과 비슷한 수의 세르비아계가 무난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계 민병대 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를 따르는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에서 분리 독립을 위한 내전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보스니아 동부에 세르비아계에 포위된 몇 개의 지역에 사는 무슬림의 안전을 위해 설정된 것이 바로 안전지대라 불리는 지역이다. 드리나 강 유역의 스레브레니차, 제빠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고라즈데다.

전작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군이 ‘점령지’에서 얼마나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양심의 목소리와 조금은 투박하지만, 진실이 담긴 이미지로 전달했던 조 사코는 이번에는 그 무대를 동유럽 한복판의 보스니아로 옮긴다. 그야말로 곰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퀸 듯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고라즈데로 들어간 조 사코는 현지인들과 소통을 하면서 고라즈데와 보스니아의 역사와 운명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개 보스니아 내전을 직접 경험한 고라즈데 거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당시 고라즈데의 안전을 책임지던 UN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에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중화기를 보유하고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와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포위한 세르비아계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한 때 이웃으로 무탈하게 지내던 이들은 보스니아 내전을 계기로 회복할 수 없는 원수가 되고 만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계 민병대인 우스타샤와 세르비아계 체트니크에 의해 조직적인 학살로 자그마치 70만 명이나 되는 보스니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반세기가 흘러 다시 그런 악몽을 접하게 된 세대들의 충격이 조 사코의 그림을 통해 재현된다. 물론 <안전지대 고라즈데>에는 그런 비참한 비극만 소개되는 건 아니다. 식량이 떨어져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와중에서도, 수도 사라예보나 혹은 서방에서 들어오는 오리지날 리바이스 청바지를 갖고 싶어 하는 철부지 소녀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혹한과 저격병의 총탄을 무릅쓰고 전선을 넘어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조 사코의 보스니아 친구 에딘의 증언은 눈물겹다. 고라즈데를 지키기 위해, 빈약한 무장으로 세르비아계 병사들에 맞서지만 어쩔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리게 되는 모습도 여과 없이 소개된다. 세르비아인들로부터 혹독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당한 보스니아 무슬림 역시 복수에 눈이 멀어 세르비아 이웃의 재산을 약탈하고 방화를 하는, 피의 보복은 그치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클린턴 행정부의 주도로 1995년 11월 내전의 당사자들이 미국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보스니아 내전은 불안정한 평화를 맞이한다. 그리고 조 사코는 고라즈데를 떠난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고라즈데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는지 또 오늘날의 고라즈데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자신을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조 사코는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스니아 내전을 조명한다. 보스니아에 우호적인 시선이 그 기저에 깔려 있어서, 상대적으로 세르비아 측의 해명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가 그린 만화와 저널리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르비아인들의 의견도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왜 보스니아가 정치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전에 왜 평화적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내전과 인종청소라는 극악한 방법이 동원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를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문명이 충분히 야만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서방세계의 안일한 판단과 세르비아에 대한 방임이 보스니아에서의 끔찍한 비극의 원인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보스니아 사람들 역시 미국을 비롯한 UN과 NATO 군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것은 큰 오판이었고 보스니아 사람들은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팔레스타인>에 이어 보스니아 고라즈데로 향한 조 사코의 여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편한 숙소, 부족한 먹을거리 그리고 교통편조차 변변하지 못한 저널리즘의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세계의 관심이 필요한 이들의 진실을 오늘도 알리고 있는 조 사코의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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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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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적에 아주 유명한 작가가 있었다. 개성적인 문체와 유명 문학상을 받기도 한 작가의 경력에는 빛나는 레지스탕스 활동 경력은 물론 외교관으로의 영예도 빠지지 않았다. 무엇하나 부족해 보이지 않던 작가는 권총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그의 사후, 그가 익명으로 발표한 책의 실제 작가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세상은 경악했다. 지금 누구 이야기를 하는지 대충 짐작하셨으리라.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 하지만 나는 그를 <그로칼랭>과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자르로 기억하고 싶다.

공쿠르상은 프랑스 문학계를 대표하는 상으로 절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주어지지 않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규칙은 깨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났듯이 공쿠르상 역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첫 번째 공쿠르상을 받았던 로맹 가리는, 딱 20년 만인 1976년에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상의 영예를 안았다. “열렬한 포옹”을 뜻하는 <그로칼랭>은 로맹 가리의 아바타 에밀 아자르의 데뷔작이다. 


 


<자기 앞의 생>으로 에밀 아자르와 만났던 나는 왜 이렇게 <그로칼랭>이 우리 곁에 도착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곰곰 생각해 봤다. 그건 아마도 가리-아자르 소동 탓이 아니었을까. 개인적으로 로맹 가리의 이 시도를 긍정적으로 보지만, 또 어떤 이들은 대작가의 장난질이라고 폄하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니 말이다. 게다가 <그로칼랭>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로맹 가리가 아닌 신예 작가의 글이라 초판에서 편집부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을 해서 원래의 ‘생태학적 결말’과는 사뭇 다르게 출판이 되었단다.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나온 <그로칼랭>은 원래 나온 판본과 훗날 다시 출간된 에밀 아자르가 구상했던 결말이 고스란히 실려 있어서 비교해 볼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책에 얽힌 이야기가 풍부해서 그런지 서두가 길었다. 자, 이제 중고인구 천만 명이 복작거리며 사는 파리 시내에 사는 미셸 쿠쟁과 비단뱀 “그로칼랭”을 만나 보자. 이 소설의 화자는 37살의 독신남 쿠쟁이다. 쿠쟁이 말했다시피, 이 책은 동물학 개설서이다. 그런데 어떤 동물? 바로 길이 이 미터 이십 센티미터의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아프리카산 파충류 비단뱀 “그로칼랭”이다. 쿠쟁은 즐겨 만나는 친구나 애인도 없이 그로칼랭과 침대에서 뒹구는 것을 좋아한다. 아,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는 에로틱한 상상은 하지 마시길! 쿠쟁은 ‘미국적 잉여’ 상태에 빠져서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애정을 비단뱀 그로칼랭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중이다. 독자는 이 애정결핍에 빠진 불쌍한 중년 남자에 대한 동정과 상상만으로도 흉측한 비단뱀 그로칼랭에 대한 혐오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로칼랭을 위해 허가증을 받고 완벽한 준비를 한 쿠쟁이지만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다. 바로 그건 그로칼랭에게 무얼 먹일 것인가 하는 생존을 위한 본질적 문제다. 살아 있는 먹이만을 먹여야 하는 그로칼랭을 위해, 꼬마 생쥐 블롱딘을 사들이지만 그 녀석에 애정을 느끼는 바람에 결국 그로칼랭의 밥으로도 사용하지 못하고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한편, 쿠쟁은 자신의 직장인 인구 통계학 연구소인 STAT에서 같이 동료로 일하는 드레퓌스 씨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 기아나 출신으로 흑인인 그녀를 가젤 영양처럼 조심스러운 존재로 묘사한다.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그녀와 사랑을 하고, 엘리베이터의 그 짧은 접점을 통해 그는 행복해한다. 그로칼랭과 동거하는 아파트의 벽에서 이 기묘한 동거를 내려다보는 레지스탕스 영웅 장 물랭과 피에르 브로솔레트의 시선은 파시즘을 반대하면서도 사랑의 파시스트를 자임하는 쿠쟁의 이중적 모습에 대한 냉소라고나 할까.  


 

자발적으로 고립되고 외로운 도시인의 전형으로 재현된 캐릭터 쿠쟁은 사랑의 강을 넘기 위해 교구 신부님과 대화를 해보고, 또 학살과 인권유린에 맞서 싸우는 이웃의 추레스 교수와도 교제를 시도해 보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소통이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면서도, 그 소통에 노력하지 않는 현실을 에밀 아자르는 냉정하게 꼬집는다. 네 이웃이 아닌, 비단뱀과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고 심지어는 비단뱀 그로칼랭이 사람으로 변하는 기적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 연민이 느껴진다. 그렇게 애타게 고대하던 드레퓌스 씨의 방문은 비극으로 끝나고, 그녀는 쿠쟁을 떠난다. 에밀 아자르는 환상과 착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통계작업’을 계속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의 쿠쟁과 드레퓌스의 재회는 차라리 희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에밀 아자르라는 아바타로 암약한 로맹 가리는 <그로칼랭>의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부비트랩처럼 설치했다. 우선,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상징적 존재인 장 물랭의 사진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애장하고 있다. 로맹 가리의 특징인 여성성도 숨길 수가 없다. 자신의 페르소나로 등장시킨 쿠쟁 역시 유대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슬쩍슬쩍 드러낸다. 역자는 후기에서 ‘아자르 문체의 천재성’을 꼽기도 했는데, 사실 원어가 아닌 번역으로 대한 그의 문체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이렇게 나는 <그로칼랭>과의 열렬한 포옹을 끝냈다. 서늘한 그로칼랭과의 포옹과 조임 그리고 매듭이 남기는 여운이 한여름밤의 무더위와 어우러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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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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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이다, 세스 토보크먼. 그래서 바로 온라인 서점을 뒤져서 그의 다른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된 적이 있는가 찾아봤다. 물론 헛수고였다. 세스 토보크먼은 다른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다른 만화 시리즈”의 3탄 <나는 왜 저항하는가>의 작가다. 소위 말하는 급진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주로 그리는 작가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언론 매체인 뉴욕타임스가 연재를 중단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한다. 



 

솔직히 말해서 세스 토보크먼의 판화가 세련된 맛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투박스러운 그의 판화로 찍은 만화에는 스타일과 더불어 뚜렷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난 바로 그런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통해 드러나는 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반전, 평화 그리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는 세계화에 그는 반대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간답게 세상을 세스 토보크먼은 그린다.

세스 토보크먼이 말하는 저항은 2000년 세계은행 반대시위를 하다가 연방교도소에 갇힌 학생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국가권력으로 상징되는 경찰은 학생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헌법에 엄연하게 보장된 자유인 집회와 시위, 결사의 자유를 억압한다. 뭐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토보크먼은 그들의 연대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세계의 부유한 국가들이 자금을 대서 만든 세계은행이 빈곤한 나라들을 옥죄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지적한다. 독자는 세계은행의 존립 자체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우리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독점 자본의 모순에 대해서도 토보크먼은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다. 죽어가는 한 남자를 실은 구급차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의 수도 한복판을 질주한다. 그를 받아줄 수 없는 병원을 찾지 못해 멀리 볼티모어까지 가다가 결국 환자가 죽고 말았다는 정말 어느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이 작가의 조국 미국이란다. 2000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은 뉴욕을 구하는 데 많은 공헌을 한 지역 소방서도 예산절감의 칼날은 피해갈 수가 없었다. 불이 나거나 혹은 긴급상황에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소방서를 시민이 직접 나서서 지킨 실화를 토보크먼는 두터운 스타일의 판화로 담담하게 들려준다. 


 

정경유착의 폐해를 유감없이 보여준 이라크 전쟁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칼라일 그룹이었다. 전쟁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창출해낸 사실을 토보크먼은 촌철살인의 터치로 그려낸다. 21세기는 에너지의 시대라는 말처럼, 석유자원의 안정적 공급과 중동에서의 패권 유지는 미국이 이라크에 개입한 진짜 이유라는 것이 정설이다. 아울러 아프리카의 산유국 나이지리아의 이야기는 생소하지만, 다국적 석유회사의 횡포와 환경훼손 때문에 지역 주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무분별한 개발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하더라는.

<나는 왜 저항하는가>에서 세스 토보크먼의 마지막 저항은 다시 미국을 조명한다. 2005년 9월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스를 물바다로 만든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에 의한 것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바 있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재해가 있을 거라는 전망을 부시가 이끄는 연방정부는 가볍게 무시했고, 가공할 만한 수해가 뉴올리언스를 덮쳤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가난한 이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그들의 보금자리인 공영주택단지에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공영주택단지가 노른자 땅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곳에 살던 빈민들을 내쫓고 새로운 주택단지 개발을 획책한다. 대대로 자신이 살아온 터전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도시빈민들은 결연하게 투쟁에 나선다. 공영주택단지가 범죄와 마약의 온상이라는 언론의 프로파간다에도 공영주택단지의 세입자들과 활동가들은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도대체 세스 토보크먼이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해서 사진 검색을 해봤다. 나름대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 뜻밖에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서 놀랐다. 반 세계화주의자, 반전주의자라는 타이틀로 미루어 볼 때, 정부에서 보면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지만, 세스 토보크먼의 메시지에는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 있다. 시민에게 봉사하라고 주어진 권력이 올바르게 사용되지 못하는 현실에 작가는 연대하고 저항하라는 주문을 한다. 



 

세스 토보크먼이 그린 포스터가 말하는 것처럼 역설적으로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는 국민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국가권력은 무상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대신 용돈이라 불리는 노령연금을 줄일 궁리를 하고, 합리적 경영 운운하며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구한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일들이 대명천지에 버젓하게 진행되고 있는 걸까? 그에 대한 작은 해답을 <나는 왜 저항하는가>를 통해 얻기를 바란다. 그리고 계속될 ‘다른만화’ 시리즈의 울림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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