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1990년대 중반의 보스니아 내전은 우리에겐 잊혀진 전쟁이다. 고래로부터 세계의 화약고로 불려 온 발칸 반도 그중에서도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라는 별명을 가진 나라 보스니아의 역사는 유혈로 얼룩져 있었다. 중세의 종교 전쟁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은 야만적 전멸전보다는 상대방의 전쟁의지 분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왔다. 아울러 인본주의 사상에 입각한 인도적인 측면이 부각되었는데 지난 천 년의 끝자락에 벌어진 보스니아-세르비아 내전에서 그런 인도주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교와 민족 간의 불화로 ‘인종청소’라는 끔찍한 낱말이 다시 등장했다. 그 내전의 와중에 몰타 출신의 미국인 아티스트이자 저널리스트인 조 사코는 자신의 역작 <팔레스타인>에 이어,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세상에 소개한다.

1940년대 나치의 침공에 대항해서 영웅적인 게릴라전을 지휘한 전설적 영웅 티토는 전쟁이 끝난 후, 6개의 공화국이 연방제를 택한 유고슬라비아의 대통령으로 민족 간의 갈등을 봉합하고 하나의 국가 체제 수호를 위해 매진했다. 하지만, 절대권력자가 죽은 뒤에 연방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세르비아가 전면에 나서면서 구 유고연방의 미래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다른 공화국에 비해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차례로 독립선언을 하고, 이에 반발하는 세르비아계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중심으로 하는 신 유고연방의 존속을 지지하는 사이에서 내전이 발생한다.

보스니아는 특히 15세기 이래 발칸 전역을 장악한 오스만 터키의 지배 아래서 무슬림으로 개종한 남슬라브인과 비슷한 수의 세르비아계가 무난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세르비아 공화국의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계 민병대 지도자인 라도반 카라지치를 따르는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보스니아에서 분리 독립을 위한 내전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보스니아 동부에 세르비아계에 포위된 몇 개의 지역에 사는 무슬림의 안전을 위해 설정된 것이 바로 안전지대라 불리는 지역이다. 드리나 강 유역의 스레브레니차, 제빠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고라즈데다.

전작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군이 ‘점령지’에서 얼마나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르는지를 양심의 목소리와 조금은 투박하지만, 진실이 담긴 이미지로 전달했던 조 사코는 이번에는 그 무대를 동유럽 한복판의 보스니아로 옮긴다. 그야말로 곰이 날카로운 발톱으로 할퀸 듯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고라즈데로 들어간 조 사코는 현지인들과 소통을 하면서 고라즈데와 보스니아의 역사와 운명을 조명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대개 보스니아 내전을 직접 경험한 고라즈데 거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당시 고라즈데의 안전을 책임지던 UN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에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면서, 중화기를 보유하고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와 안전지대 고라즈데를 포위한 세르비아계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한 때 이웃으로 무탈하게 지내던 이들은 보스니아 내전을 계기로 회복할 수 없는 원수가 되고 만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계 민병대인 우스타샤와 세르비아계 체트니크에 의해 조직적인 학살로 자그마치 70만 명이나 되는 보스니아 사람들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반세기가 흘러 다시 그런 악몽을 접하게 된 세대들의 충격이 조 사코의 그림을 통해 재현된다. 물론 <안전지대 고라즈데>에는 그런 비참한 비극만 소개되는 건 아니다. 식량이 떨어져서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와중에서도, 수도 사라예보나 혹은 서방에서 들어오는 오리지날 리바이스 청바지를 갖고 싶어 하는 철부지 소녀들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혹한과 저격병의 총탄을 무릅쓰고 전선을 넘어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조 사코의 보스니아 친구 에딘의 증언은 눈물겹다. 고라즈데를 지키기 위해, 빈약한 무장으로 세르비아계 병사들에 맞서지만 어쩔 수 없는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리게 되는 모습도 여과 없이 소개된다. 세르비아인들로부터 혹독한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당한 보스니아 무슬림 역시 복수에 눈이 멀어 세르비아 이웃의 재산을 약탈하고 방화를 하는, 피의 보복은 그치지 않는다.

천신만고 끝에 클린턴 행정부의 주도로 1995년 11월 내전의 당사자들이 미국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보스니아 내전은 불안정한 평화를 맞이한다. 그리고 조 사코는 고라즈데를 떠난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고라즈데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됐는지 또 오늘날의 고라즈데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자신을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조 사코는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스니아 내전을 조명한다. 보스니아에 우호적인 시선이 그 기저에 깔려 있어서, 상대적으로 세르비아 측의 해명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가 그린 만화와 저널리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르비아인들의 의견도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왜 보스니아가 정치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전에 왜 평화적 해결방법을 모색하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내전과 인종청소라는 극악한 방법이 동원되기 전까지만 해도,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를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 문명이 충분히 야만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서방세계의 안일한 판단과 세르비아에 대한 방임이 보스니아에서의 끔찍한 비극의 원인이었다고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보스니아 사람들 역시 미국을 비롯한 UN과 NATO 군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판단했지만, 그것은 큰 오판이었고 보스니아 사람들은 엄청난 희생을 대가로 치러야 했다.

<팔레스타인>에 이어 보스니아 고라즈데로 향한 조 사코의 여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불편한 숙소, 부족한 먹을거리 그리고 교통편조차 변변하지 못한 저널리즘의 오지를 찾아다니면서 세계의 관심이 필요한 이들의 진실을 오늘도 알리고 있는 조 사코의 뜨거운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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