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세계사 5 - 바스티유에서 바그다드까지
래리 고닉 글.그림, 이희재 옮김 / 궁리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출간을 기다리고 있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제 바로 주문을 했고, 총알 배송으로 받아본 책은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인 하버드 수학과 출신의 만화가가 그리는 만화라, 어쩐지 먹물 냄새가 물씬 풍기지 않는가. 래리 고닉이 수년간 계획해온 세계사의 마지막 권의 독서는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진한 아쉬움과의 치열한 전투였다.

동양에서 쇄국정책을 펴고 있던 중국과 일본을 설명한 작가는 바로 노예무역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에 대한 기술을 시작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아프리카에서 마치 사냥을 하듯이 잡아들인 흑인들을 신대륙 개발에 투입한다. 영국과 프랑스로 대변되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식민제국 건설 경쟁에서 흑인 노예노동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영국에서 노예무역에 대한 지식인들의 반성이 보이는 시작하는 시점에서 바로 래리 고닉은 프랑스혁명으로 포커스를 돌린다. 무능력하고 사치와 방탕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에 국가 재정을 낭비한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는 재정고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 유명한 삼부회를 소집한다. 순전히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소집했던 삼부회는, 자각한 부르주아 계급을 중심으로 왕정을 타파하고 공화정 수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치닫는다. 혁명 후의 혼란은 결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독재자의 등장을 불러오고, 래리 고닉은 불리한 상황에서 언제나 병사들을 내버리고 내뺀 황제 나폴레옹을 마음껏 조롱한다.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전 유럽에 전파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은 산업혁명으로 사유재산을 소유하게 된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더불어 막을 수 없는 한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노예해방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의 식민경영의 시대를 맞이한다. 중국의 부(富)에 눈독을 들인 서구 열강, 특히 영국은 인도를 지배하에 두면서 아편무역이라는 부도덕한 방법으로 동양의 재화를 강탈하기 시작한다.

미국 페리 제독의 강제에 의해 개국하게 된 일본의 근대화 과정, 서구 열강의 담합으로 한 때 중근동의 강국이었던 오토만 터키 제국이 종이호랑이가 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지배로부터 라틴 아메리카가 해방되는 과정들이 아주 간략하게 소개된다. 아무래도 미시적인 역사보다는 거시사에 집중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 부분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그 부분은 전적으로 작가의 취사선택에 의한 것이리라.

래리 고닉은 책의 뒷부분에 나오는 방대한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를 하면서 정치사적 접근뿐만 아니라 지난 시대의 과학, 사상적 발견에 의한 세상의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훗날 원자폭탄 개발에까지 이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물론이고,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의 사회발전 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의 스펙트럼을 제공한다. 거기에 번역을 맡은 이희재 씨의 현 세태를 풍자하는 번역과 유머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래리 고닉의 지난 세기에 세계를 주무른 열강에 대한 비판은 인도 분리 독립에 한몫한 영국과 이란, 과테말라 그리고 칠레 등지에서 쿠데타를 지원한 미국에 초점을 맞춘다. 아울러 프랑스혁명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아이티혁명과 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서 벌어진 국공내전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군 해산이라는 치명적인 실수가 불러온 파국적 결과 같은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역사적 사건을 다룬 균형감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래리 고닉의 책을 통해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책을 알게 됐는데, 다시 한 번 좋은 책이 또 다른 좋은 책으로 인도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래리 고닉의 다른 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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