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외국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요.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죠. 영어는 베트남전 갔을 때 미군들과 한 1년 있으면서 말문이 툭 터졌어요. 우선 상대방이 말하는 걸 잘 들어야 하는데, 저는 듣기 실력이 좋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2년 살았는데, 1년쯤 지나니까 익숙해지더군요. 발음에 겁먹지 마세요. 영국인들은 자국 아이덴티티를 가진 억양으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을 품위 있다고 해요. 그들의 농담 중에 ‘술 취한 사람의 7단계’라는 게 있는데, 마지막 단계가 뭔지 아세요? ‘아메리칸 잉글리시가 나온다’입니다, 어허허.”

서너 살 때 일도 또렷이 기억
▼ 특별히 언어감각이 남다르거나 기억력이 좋습니까. 작가에게 사진을 촬영한 듯 선명한 기억력(photographic memory)이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듯한데요.
“저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자잘한 부분은 잘 잊어버립니다. 다만 지나간 일들의 미세한 분열 같은 것은 아주 잘 기억합니다. 지금도 지각이 제대로 발전하기 전인 서너 살 때의 일을 분명히 기억하는 게 많습니다. 저보다 훨씬 연상인 누이 두 분도 제가 그때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곤 했어요. 지금도 이렇게 앉아서 생각을 하면 그때 일을 영화 장면처럼 자세히 되돌려 그릴 수 있어요.”
▼ 그건 타고난 건가요.
“그보다는 제가 그런 쪽으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까 그 부분이 특별히 강화된 게 아닌가 합니다. 오히려 길눈은 어두워서 어디엘 가도 자꾸 헛갈립니다.”
▼ 외국어를 하고, 꽤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거주했는데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생각하나요.
“일찍이 세계시민이 되고 싶었어요. 이 나라 안에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생각을 하면서 세계적 보편성을 위해 행동하고 글을 쓰겠다는 겁니다. 그것은 종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와는 일단 거리를 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거리를 둔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1989년 방북하고 나서 베를린에 망명했을 때 그곳이 동독 가운데 있는 도시니까, 중간지대 혹은 휴전선 안에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남북 양쪽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남도 북도 갈 수 없었어요. 완전히 단자화한 개인이 된 거죠. 망명자 신세니 국적도 없었죠.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개인의 존엄성을 새삼 느꼈고요. 분단된 한반도를 민족주의적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세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 하는 걸 그때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국통일, 민족통일 그런 관념 갖고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벌써 남북연합이란 말도 나오고 있잖아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서로 체제가 다르니 서로를 다른 나라로 인정해야 하거든요.”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아주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전망이었다. 그는 내년쯤 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수교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北을 이념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라는 정치판에 큰 지각변동이 올 겁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보다 더 큰 변화가 올 겁니다. 그때 남북도 재빨리 수교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종래의 이념적 족쇄들도 풀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남북한 군축을 통해 남는 노동력으로 동시베리아 개발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 지역은 이제 지구 온난화로 더 이상 동토(凍土)가 아닙니다. 핵 문제가 해결되면 YS정권 때 약속했듯이 나진·선봉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그 전력으로 동시베리아 개발에 들어가는 겁니다. 인구는 적지만 국토가 넓은 몽골은 한국을 활용해 근대화를 이루고 싶어 하니까 남한 북한 몽골이 연합하면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동아시아연합이 탄생하고, 지역도 안정될 겁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런던대 SOAS, 파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여러 동아시아·한반도 전문가들과 접촉하면서 이런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적 노선과 맞닿은 발상 아닐까요? 이제 더 이상 북을 이념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휴전선을 등지고 좁은 한반도 남쪽을 향해 대운하를 팔 게 아니라, 우선 연결된 철도를 잘 살려서 대륙과 연결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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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일상의 소중함
갑자기 그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 제2악장이다. “누구요? 그렇소. 뭐요? 인터뷰요? 인터뷰 같은 거 안 해요”라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특별한 인연으로 그와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기자가 머쓱해진다. 그는 “가능한 한 창작에 방해받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며 다시 담배를 피워 문다.
황씨는 1998년 감옥에서 나와 집필을 시작한 무렵을 ‘후반기 문학’이라고 자칭했다. 세상을 탐미적으로 바라보던 그가 베트남전을 계기로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급진화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전반기 문학’이 이데올로기라든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고 그 형태도 정통 리얼리즘에 입각했다면, ‘후반기 문학’은 집단이나 공동체, 역사적 거대 사건 등에 대한 관심에서 개인과 일상의 수준으로 내려왔다고 볼 수 있다.
▼ 작품 경향이 바뀐 계기는 무엇입니까.
“방북 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쏟아져나온 사람들을 보면서 개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했고요. 저에게는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옥서 나오자마자 동아일보에 ‘오래된 정원’을 연재했는데,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부침하는 가냘픈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그들의 구체적 생활상을 다뤘거든요. 옛날하고 다른 태도죠. 그래서 옛날식 독법으로 제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뭐, 이거 좀 풀어지고 나약해진 것 같다’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제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변화한 겁니다.”
2005년 독일의 한 문학행사에서 발표한 글에는 그의 세계 인식 메타포가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그의 렌즈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철새들을 향하고 있다. 어느 순간 그들 앞에 더 큰 철새 무리가 날아들어 일제히 동요가 일어난다. 앉아 있던 새들은 놀라 일제히 하늘로 떠오르지만 다른 데로 날아가지 않고 다시 더 촘촘하게 자리를 좁혀 앉는다. 일부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린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의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마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허공을 맴돌고 있는 때에 있다’고 대답하겠다. 그러고는 나의 작업이 ‘새들이 다시 내려앉는 것’에 관여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할 것이다.”
즉, 한 국가 안에서 정착해 있던 이들이 외국으로 이주해가는 것, 예컨대 탈북자나 난민의 삶, 노동력을 찾아 타국으로 이주한 이주노동자들의 세계에 그의 시선이 고정된 것이다.

해외 체류하며 한반도 통찰
▼ ‘바리데기’의 뒷부분이 재미있어요. 주인공 바리의 런던 생활, 연인이 된 알리와 주변인물과의 관계, 그들의 상징….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을 보니 모두 외국에서 촬영한 것이더군요. 외국에 대한, 세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이는 특별한 까닭이 있을까요.
“망명 시기뿐 아니라 근래 런던과 파리에서 보낸 몇 년간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이 세계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새삼 여러 번 느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파병을 했으니 전쟁에 직접 가담해 있는 처지입니다. 또 세계화 재편성 기간에 IMF 외환위기라는 간난고초를 겪었지요. 굉장히 재밌는 것은 ‘바리데기’ 뒷부분에 중동 분쟁지역이 배경으로 언급되는데, 책 출간 1주일 만에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터졌습니다. 지난 4년 동안 해외에서 체류하며 거리감을 갖고 한반도 문제를 더 뚜렷이 볼 수 있었고, 냉전체제 이후 변화된 세계의 보편성 같은 것을 본 게 큰 수확입니다. 그중 한 가지 주제가 바로 ‘바리데기’에서 다룬 마이그레이션(migration, 이주)의 문제입니다. 이주로 인한 갈등을 풀어낼 하모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즉 이 두 가지가 21세기에 굉장히 중요한 화두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 외국 생활이 불편하진 않았나요.
“저는 하도 많이 돌아다닌 사람이라 어디 가면 금방 낯설지 않게 자기 터전이랄까, 그런 것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한 달쯤 있으면 완전히 적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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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바리데기’ 표지.

그는 블로그에 올라 있는 ‘작가의 말’에서 이번 소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젊은이란 불확실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는 존재고 선택에 따라서는 무한한 자유와 엄청난 억압에 짓눌려 있다. 성인이 되는 길은 독립운동처럼 험난하고 외롭다. 대부분 그 무렵의 연애는 첫사랑이라고 불려지면서 애처롭게 좌절하게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나는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도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말에도 리듬이 있다”
▼ ‘개밥바리기 별’ 서두에 군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부터 과거로 돌아가는 방식인가요.
“제1장에서 주인공 준이는 베트남 전쟁터로 출발하면서 ‘내 청춘이 막을 내린다, 끝이다’는 인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으로 돌아가서 되짚어 올라오는 식으로 진행될 겁니다. 아직 독자들은 눈치를 못 챘을 텐데요. 2장에는 1장에서 거론된 인물 중에 누군가가 화자로 등장해 자신이 겪은 준이와의 일을 객관적으로 진술합니다. 3장에선 다시 준이, 4장에선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하겠죠. 그렇게 해서 주인공의 객관적인 여러 모습이 나올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 서술 방식이 독특하군요.
“사실 내레이터가 여럿 등장하는 것은 민담에도 많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도 ‘내 이름은 빨강’에서 그런 기법을 잘 사용했고, 윌리엄 포크너도 ‘내가 죽었을 때’에서 비슷한 방식을 썼어요.”
사실 그는 이런 방식을 종종 사용해왔다. ‘손님’ ‘심청, 연꽃의 길’ ‘바리데기’에서 세계적인 현실이나 현상을 우리 전통양식에 담아내는 실험들을 해왔다. ‘오래된 정원’에서는 과거의 서술체계를 해체해서 서술문과 독백체 서간문, 1인칭이 서로 엇갈리는 양식적 변화가 드러난다. 주인공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대로 진술되거나, 세밀한 묘사도 과감하게 축약되고 장면 전환도 빨라졌다.
▼ 조만간 ‘한겨레’에 새 소설을 연재한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하반기쯤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주제는 오래전에 생각한 겁니다. 서울 강남 형성사. 우리 사회 욕망의 뿌리, 한국 자본주의 근대사를 한 가족의 부침을 통해 그려볼까 합니다. 한국형 중산층이 바로 거기서 탄생했거든요.”
그의 글은 밑줄 치면서 읽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좋은 문장이 많다. ‘바리데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 소설가 지망생들이 문장 공부할 때 황 선생 소설을 베껴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문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가요.
“우선 정확한 문장이 중요합니다. 사실 나는 문장론을 그다지 강조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문장은 독서하는 사이 저절로 배거든요. 특히 고전을 많이 읽으면 좋습니다. 저는 ‘장길산’을 쓰면서 학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우리말에도 리듬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즉 문장을 쓸 때 저는 그 리듬을 중시하고, 같은 단어를 가까운 행에서 반복하지 않고 다른 표현을 쓴다는 정도만 염두에 둡니다. 사람은 누구나 독서 많이 하고 경륜이 생기면, 편지로 자기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봐요. 감각이니 작품이 주는 인상 같은 것은 바로 구성에서 옵니다. 결국 좋은 구성이 좋은 글을 만드는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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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씨가 소설 ‘개밥바라기 별’을 연재하고 있는 네이버의 웹블로그.

▼ 일 많이 하기 위한 ‘아침형 업무 스타일’을 두고 말이 많았는데, 어느 신문 칼럼에서 ‘몸 쓰지 말고 머리 쓰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 그것, 말이 돼요. 옛날 1970, 80년대 대기업 직원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근대화 일선에서 뛰어다녔죠. 그 버릇이 되살아났군.”
▼ 요즘 황 선생도 웹블로그에 연재소설 대느라 몸과 머리를 많이 쓰고 계신데, 블로그 연재의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정말 새로운 경험입니다. 특히 독자들이 자신의 감상을 표현하는 덧글이 참 신기해요. 그래서 제가 거기다 다시 덧글도 달고 했습니다. 정말 독자의 열기가 대단합니다. 그야말로 사람살이를 바로 곁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글의 내용을 갖고 독자와 곧바로 대화한다는 게 어디 상상할 수 있던 일인가요? 작가로서 창작에 번거롭고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고무되고 있습니다.”
▼ 블로그에 들어가 보니 어느 독자가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내용도 바뀔 수 있나’라고 물었더군요.
“답장을 할까 하다가 그냥 뒀어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계속 치고들어올까봐. 사실 그건 가능하지 않지요. 내가 구상했고 쓰려는 것이 있는데…. 말하자면 창작의 자율성 독립성이라는 것은 피차 존중해야겠죠.”

90% 이상이 젊은 독자
▼ 열성 독자는 단행본으로 나와도 사보잖아요. 이번엔 전에 없던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즐거움도 컸겠네요.
“독자 반응을 보니까, 뒤늦긴 했지만 인터넷 매체에서 본격문학의 문예란을 두는 게 필요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해 ‘바리데기’가 나오고 나서 예스24 같은 인터넷서점에서 ‘참 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독자의 80%가 20~30대고, 10대도 13%가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젊은 독자도 ‘관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네이버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와 승낙했지요.”
▼ 박범신씨는 “포털사이트에 소설을 연재하면서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에게 한식 정찬을 차려내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건 좀 비유가 안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는 이미 매체가 변화하는 이행기에 있는데, 작가들은 꼭 문예지나 신문 지면 같은 데에 실어야 한다는 관습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넷도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날로그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고, 남에게 동정심을 갖는 이런 것들이 다 아날로그 세계입니다. 별이나 대지처럼 말입니다. 그런 콘텐츠는 인류가 살아가는 한 지구상에 영원할 겁니다. 그런데 도구는 미디어뿐 아니라 돌에서 구리 철 전기 컴퓨터 등으로 좀 많이 변했습니까.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미디어의 적재적소에 콘텐츠를 어떻게 싣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터넷 같은 새 미디어로 인해 종이나 문자가 위축되는 게 아니라 상호 보완하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블로그 연재가 끝나면 저는 종래 방식의 출판으로 넘어갈 생각입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흘러가는 문자를 들여다보는 것과, 책장을 넘기며 자신과 혼자 대면하고 사고하는 것과는 다른 체험이니까요. 외국에서도 인터넷이 출판문화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출판문화가 더 활성화됐다고 그래요.”
카페 구석, 스피커가 있는 쪽에 앉아서 그런지 음악 소리가 제법 크다. 황씨가 그예 참지 못하고 한마디했다. “이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나? 보소, 안녕? 언니(웃음)? 음악 소리 좀 줄여줘요.” 주인은 어디를 나갔는지 대답이 없다. 그가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틱틱, 라이터를 켠다.

“제대로 된 성장소설 남기고파”
▼ 이 시점에 굳이 성장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라면.
“한 출판사와 다음 소설을 출간하기로 계약을 했어요. 그때 쓰고 싶은 주제 중 하나가 역사 쪽이었어요. 그런데 요새 ‘팩션(faction, fact+fiction)’에 관심 가진 이가 많아져, 나마저 또 그런 걸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출판사 대표 몇 명과 술을 마셨는데,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에 수십년간 본격 성장소설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하더라고. 그 장르를 휩쓰는 것은 일본 대중소설들이고, 국내 작품은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단편에 그치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분야 장편소설을 하나 남기자고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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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씨가 웹블로그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중견작가의 소설 연재가, 인터넷이 종이매체를 대체해가는 상징적 증거가 아니냐는 진단도 나온다. 독자의 반응은 좋다. 새로운 시도, 모험에 남다른 승부사 기질을 보이는 노(老)작가의 열정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는 “앞으로 20년은 더 쓰고 싶다, 최고령 현역 작가가 되고 싶다”며 팔팔한 의욕을 드러냈다.

 
 




요즘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황석영 블로그(blog.naver.com/hkilsan)’가 달아오른다. 황석영(黃晳暎·65)씨의 연재소설 ‘개밥바라기 별’ 때문이다. 월~금요일 오전 10시30분에 새 글이 오르는 이 블로그엔 연재 2주 만에 네티즌 30만여 명이 접속하고, ‘안부 게시판’에 수많은 덧글이 오르고 있다.
‘한국 떠나온 지 30여 년~ 그래서 한국 문학서적은 접어두고 살았는데…. 오늘 선생님 블로그에서 글을 만나보게 되네요.’(잰이삐)
‘와~ 황석영 선생님 블로그도 하시네요? ㅎㅎ 멋져요~ 언제나 건강하시길!!!’(빨간약)
‘개밥바라기 별’(해지고 난 초저녁, 개들이 저녁밥 달라고 짖을 무렵 떠오르는 금성을 이르는 우리말)은 작가가 열여섯 살 때부터 군 입대 직전까지 겪었던 일을 뼈대로 청년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이란 그 시대의 문화적 ·인간적 환경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소설을 말한다. 감동적 요소는 있지만 대개 무겁고, 말초적인 재미와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네티즌들이 연재 초기 ‘개밥바라기 별’에 이렇듯 열띤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작품 자체의 매력 때문일까, 아니면 블로그라는 매체의 흡인력 때문일까.
흥미로운 점은 문단에서도 이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있다는 것. 이제까지 인터넷 매체란 너무나 가벼워서 본격문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다 지난해 중견작가로선 박범신씨가 처음으로 ‘촐라체’라는 소설을 연재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번에 황씨가 연재를 하면서 이런 관념은 완전히 부서지는 듯하다. 문학평론가인 서영채 한신대 교수는 “종이 매체는 20세기 초부터 국내 장편소설의 중요한 산실이었다. 박범신씨에 이어 최고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인 황석영씨도 인터넷 포털에 연재를 시작했다는 것은 종이 매체의 이런 기능을 인터넷 매체가 대신하게 됐음을 뜻한다”라고 했다.
이런 변화의 기운을 몰고 온 황씨는 사실 그간 새로운 시도나 모험 앞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 방북, 독일 망명, 수감생활, 런던과 파리 체류, ‘바리데기’ 등 근작의 실험적 작풍, 지난해 대선에서 손학규 지지 선언…. 그러나 이제 그도 우리 나이로 예순여섯이다. 그를 만나기 전 가장 궁금했던 점은 그처럼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온 그가 나이 앞에, 속절없는 세월 앞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네티즌과 덧글로 소통
3월7일 오후 3시께 경기도 일산의 주택가 모퉁이에 자리 잡은 한적한 카페. 배우 알 파치노처럼 짧게 깎은 머리에 스타일리시한 재킷을 걸친 그가 성큼성큼 카페 안으로 들어서더니 방송인 이종환씨처럼 걸걸하고 분명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쩌면 “어허허허” 하는 웃음소리조차 이씨와 판박이다. 자리에 앉은 그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 카페라테를 즐겨 드세요?
“아니, 뭐 정신 좀 차릴까 해서요. 조금 아까 일어났어요. 밤새 작업하고, 오전 11시에 잤나? 한 네 시간 잤네.”
▼ 요즘 대통령이 일찍 일어난다고 관가 사람들도 덩달아 부지런을 떠는 바람에 ‘얼리 버드(early bird)’가 되어간다는데, 황 선생은 거꾸로 사시는군요.
“얼리 버드? 벌레를 많이 잡아먹으려고 그러시나? 어허허.”
‘새도 일찍 일어나야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arm)’는 서양 속담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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