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외국어를 잘하진 못하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어요.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는 되죠. 영어는 베트남전 갔을 때 미군들과 한 1년 있으면서 말문이 툭 터졌어요. 우선 상대방이 말하는 걸 잘 들어야 하는데, 저는 듣기 실력이 좋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2년 살았는데, 1년쯤 지나니까 익숙해지더군요. 발음에 겁먹지 마세요. 영국인들은 자국 아이덴티티를 가진 억양으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것을 품위 있다고 해요. 그들의 농담 중에 ‘술 취한 사람의 7단계’라는 게 있는데, 마지막 단계가 뭔지 아세요? ‘아메리칸 잉글리시가 나온다’입니다, 어허허.”

서너 살 때 일도 또렷이 기억
▼ 특별히 언어감각이 남다르거나 기억력이 좋습니까. 작가에게 사진을 촬영한 듯 선명한 기억력(photographic memory)이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될 듯한데요.
“저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 자잘한 부분은 잘 잊어버립니다. 다만 지나간 일들의 미세한 분열 같은 것은 아주 잘 기억합니다. 지금도 지각이 제대로 발전하기 전인 서너 살 때의 일을 분명히 기억하는 게 많습니다. 저보다 훨씬 연상인 누이 두 분도 제가 그때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곤 했어요. 지금도 이렇게 앉아서 생각을 하면 그때 일을 영화 장면처럼 자세히 되돌려 그릴 수 있어요.”
▼ 그건 타고난 건가요.
“그보다는 제가 그런 쪽으로 밥을 먹고 살았으니까 그 부분이 특별히 강화된 게 아닌가 합니다. 오히려 길눈은 어두워서 어디엘 가도 자꾸 헛갈립니다.”
▼ 외국어를 하고, 꽤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거주했는데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이라고 생각하나요.
“일찍이 세계시민이 되고 싶었어요. 이 나라 안에서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생각을 하면서 세계적 보편성을 위해 행동하고 글을 쓰겠다는 겁니다. 그것은 종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와는 일단 거리를 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거리를 둔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1989년 방북하고 나서 베를린에 망명했을 때 그곳이 동독 가운데 있는 도시니까, 중간지대 혹은 휴전선 안에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남북 양쪽으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남도 북도 갈 수 없었어요. 완전히 단자화한 개인이 된 거죠. 망명자 신세니 국적도 없었죠.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개인의 존엄성을 새삼 느꼈고요. 분단된 한반도를 민족주의적으로 대하는 게 얼마나 세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 하는 걸 그때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국통일, 민족통일 그런 관념 갖고는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벌써 남북연합이란 말도 나오고 있잖아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서로 체제가 다르니 서로를 다른 나라로 인정해야 하거든요.”
바로 이 지점에서 그는 아주 엄청난 규모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전망이었다. 그는 내년쯤 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수교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 듯했다.

北을 이념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라는 정치판에 큰 지각변동이 올 겁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보다 더 큰 변화가 올 겁니다. 그때 남북도 재빨리 수교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종래의 이념적 족쇄들도 풀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남북한 군축을 통해 남는 노동력으로 동시베리아 개발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 지역은 이제 지구 온난화로 더 이상 동토(凍土)가 아닙니다. 핵 문제가 해결되면 YS정권 때 약속했듯이 나진·선봉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고, 그 전력으로 동시베리아 개발에 들어가는 겁니다. 인구는 적지만 국토가 넓은 몽골은 한국을 활용해 근대화를 이루고 싶어 하니까 남한 북한 몽골이 연합하면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동아시아연합이 탄생하고, 지역도 안정될 겁니다.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런던대 SOAS, 파리 7대학 동양학부에서 여러 동아시아·한반도 전문가들과 접촉하면서 이런 시각을 갖게 됐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실용적 노선과 맞닿은 발상 아닐까요? 이제 더 이상 북을 이념의 대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휴전선을 등지고 좁은 한반도 남쪽을 향해 대운하를 팔 게 아니라, 우선 연결된 철도를 잘 살려서 대륙과 연결하는 작업에 매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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