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


자웅동체의 생명처럼, 시는 인간을 이해하는 길인 동시에 목적지이다. 그런데 선생은 인간의 삶을 비극으로 점철된 과정으로 본다. 석가모니의 6년 고행, 예수의 골고다 언덕이 바로 인간의 바다이고 인간의 길이다.
“기쁨은 잠시 피었다 지는 봄날의 꽃 같은 거고, 삶은 우리들이 밥 먹는 것처럼 아주 구체적인 비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인간의 삶을 시로 적어놓은 거지요. 내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인가. 선생이 직접 뽑은 선생의 시선집 제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부제가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이다. 선생은 인간의 그늘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늘의 시인이다. 우리가 공감하는 것은 그 그늘이 바로 나의 그늘이고, 어쩌면 앞으로 나의 그늘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과 더불어, 그 그늘을 떼어버리고는 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생의 슬픔은 자신의 기쁨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는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새벽기도를 하면서 나는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대부분 울고 있었다. 불 꺼진 교회당은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의 공간이다. 나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그들의 슬픔만을 보고 슬펐다. 새벽에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깨어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쩌면 밤새워 슬픔의 길을 걸어온 사람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꽃밭
일상에 지쳐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달콤한 꿈의 기쁨에서 깨어난 나에게 새벽은 언제나 기도하면서 울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그들은 오늘이 바로 어제의 슬픔이 드러나는 날이라는 걸 알려주었지만, 그건 기쁨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기쁨은 슬픔의 길을 걸어가다 잠시 드러나는 물거품 같은 것이다.
선생은 그 물거품을 그냥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론 꽃으로 피어나고, 맹인부부가 구걸하기 위해 어설픈 연주를 하는 길거리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만이 선생의 시가 아니다. 거기에 배어 있는 아름다운 것들, 선생은 그걸 그대로 쓰고 우리에게 읽어주는 것이다. 시를 읽어주는 선생의 목소리는 떨림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그 떨림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보고 기뻐한다. 역설적으로 선생을 읽는 순간 나는 기쁘다. 나도 모르게 나의 가슴에 웅크리고 있는 상처 입은 짐승을 달래주는 선생의 시는 따뜻한 손길이다.
초기 시집인 ‘슬픔이 기쁨에게’에 담긴 슬픔과 눈물의 시편, 그 시원은 어디인가. 당연히 모든 시인이 그러하듯 선생의 유년시절을 알아야 한다. 선생에게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마치 짧은 시를 쓰듯이 몇 장면을 이야기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짧게 눈을 감기도 했다. 이제 육순에 가까운 선생은 아주 먼 옛날의 일들을 선명하게 펼쳐 보여주었다.
“제가 살던 시골집 마당에 꾸며진 꽃밭이 떠오릅니다. 어머닌 거기에 꽃을 많이 심었지요. 채송화, 백일홍, 수국 같은 꽃들, 그리고 감나무 같은 유실수들이 있던 공간입니다. 거기에 꽃을 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 그런 꽃밭이 내 유년의 기억에 남아 있고.”
꽃을 심는 어머니의 모습은 슬픔을 심고 있는 시인의 모습과 다름없다. 선생의 슬픔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이라면 궤변이거나 과언일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선생의 그 어린 공간에 어머니가 심어놓은 것은 채송화나 수국 같은 꽃이라기보다, 나중에 선생이 그 꽃의 이름을 시로서 호명하는 그런 이름 모를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마당에 꽃을 심는 존재다. 그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그런 숨겨진 의미가 아이의 마음에 자란다.
“그리고 눈사람이 떠오르네요. 제가 살던 대구는 분지이기 때문에 저 어릴 땐 눈이 무척 많이 내렸지요. 그래서 아이들과 눈사람을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처럼 따뜻한 장갑이 드물던 시절이라 고무신에 손을 넣어 눈을 굴리고 밀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찍은 흑백사진이 한 장 있는데, 사촌누나, 형들과 함께 엄청 크게 눈사람을 만들고 그 곁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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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그늘 속으로 들어간 시인 정호승
“외로움은 상대적이지만, 고독은 절대적이죠”

원재훈 시인 whonjh@empal.com

 
 

이른 새벽. 때론 간병으로 밤을 새우고 나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여인의 모습으로, 우유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가끔은 청소부의 모습으로 정호승 시인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시인의 모습을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그 자리에서 시인은 기도한다.

 
 




초가을 즈음에 새벽기도를 다닌 적이 있다. 새벽잠을 꿀처럼 빨아먹고 살던 내가,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새벽길을 나서면 무척 피곤했다. 하루 서너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한 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몸을 이끌고 예배당에 가고, 거기에서 기도하는 동안에는 마음이 평온해지고 가끔은 휘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불가의 수도승이 하안거나 동안거에 들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나, 일상에 지친 범부가 새벽기도를 하는 시공간은 일상의 담장을 잠시 헐어내는 시간이다.
1시간 정도의 기도를 마치고 새벽담배를 피운다. 교회에서 내려와 점점 밝아오는 태양을 보면서,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벽의 ‘본 모습’을 본다. 새벽은 내가 깨어야 할 나의 ‘자아’이며, 타인에 대한 ‘사랑’이고, 간절한 ‘기도’다. 그렇게 새벽은 깨어 있는 자들의 몫이다. 이제 아침이 오면 저 고요한 거리는 인파로 북적댈 것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오면서 아침을 오게 하는 빛을 보았다. 그것은 예감이었고, 축복의 햇살이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공간에 살면서도 같은 시간을 품고 있으며, 그 시간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곳에 가끔 가을날 감나무처럼 시가 서 있기도 하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순간은 찰나다. 그 찰나에 정호승(鄭浩承·57) 시인은 서 있다.

슬픔을 위하여
슬픔을 이야기하지 말라.
오히려 슬픔의 새벽에 관하여 말하라.
첫아이를 사산한 그 여인에 대하여 기도하고
불빛 없는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그 청년의 애인을 위하여 기도하라
슬픔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의
새벽은 언제나 별들로 가득하다.
-시 ‘슬픔을 위하여’ 중에서

시인은 때론 간병으로 밤을 새우고 나와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여인의 모습으로, 우유 배달을 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가끔은 청소부의 모습으로 새벽에 나타난다. 그를 본 적이 있는가? 독자는 어쩌면 그런 시인의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정호승 시인은 기도한다.
기도하는 시인 정호승. 토요일 오후에 긴 이야기 자리를 벗어나 인사동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정호승 시인을 ‘기도하는 인간’으로 보았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 나타났을 무렵엔, 분명 기도하는 인간들도 같은 땅 위에서 살았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이거나 혹은 우리가 분류해낼 수 없는 원시 인류로서 나는 ‘기도하는 인간’이 저 원시의 공간을 수만년 지배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빙하기에 매머드나 주라기의 공룡과 같은 존재로서의 인류는 ‘기도하는 인간’인 거인이 지배했을 것이다. 선생의 단정하고 자그마한 체구, 그 몸 안에는 거인이 살고 있다. 큰 키에 대단한 몸을 가진 마음의 거인이 세상사의 자잘한 모습을 읽고 안타까워한다.
“선생님은 서정시인입니까?”
뜬금없이 서정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은 허허 웃으면서 서정이란 시의 본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서정은 인간을 이야기하는 서정’이라고 부연 설명해주었다.
“꽃 하나를 보아도, 그 자연물 속에서 제가 보는 건 인간이지요. 저에게 다가오는 모든 상징이나 꽃과 별과 같은 자연물은 모두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매개물입니다. 시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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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리뷰를 많이 올리고 싶다. 될 수 있으면 읽은 책들에 대하여 좋다 싫다. 나의 느낌과 글이 몇줄이라도 장식을 하고 싶다. 흔적, 이 흔적을 남기는 시간을 꼭 보내고 싶다. 어떠한 일이 안 그러마는 끊임없이 그러나 천천히 변함없이 하는 삶이 가장 빛나는 법이다. 남에게 이해을 구하려 하지말고  먼저 내 자신에게 이해와 배려를 하는 사람이 되자. 

 책은 인생의 가장 질긴 끈이다. 소통의 가장 큰 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나를 찾는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초에 이런 책을 읽고 싶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8년 7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9년 01월 04일에 저장
품절

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시사영어사 편집부 엮음 / 와이비엠 / 2000년 1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2009년 01월 04일에 저장
품절
잃어버린 왕국 제3부- 백제여, 백제여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9년 01월 04일에 저장
절판

잃어버린 왕국 제1부- 비밀의 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3년 10월
9,500원 → 8,550원(10%할인) / 마일리지 470원(5% 적립)
2009년 01월 04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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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입은 옷일수록 더욱 정감이 갑니다.

이렇게 추위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은 따뜻한 옷 한벌로 가능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때 독클님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악하악에 나오는 이외수님의 글을 옮겨 보겠습니다.

 

젊었을 때 이를 악물고 실력을 연마하라. 실력은 생존경쟁의 절대무기다.

거기다 고매한 인격까지 겸비할 수 있다면 그대는 문자그대로 천하무적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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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할 때 전 재산 내놓고 욕도 먹었지만 즐겁게 살았다
조영남 가수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간신히 깡통에다 소변을 보셨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안방 문만 열면 있는 우물가에다 그걸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엔 우물가 근처만 가도 냄새가 진동했다. 우리도 거기에 오줌 눠서 그랬는지 연초록색 이끼가 잔뜩 껴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별말씀 안 하셨다. 그런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분이 아니었다. 당시 엄마와 나는 고구마, 감자, 마늘 농사를 함께 짓는 동지였다.
충청도에서 살다 서울 후암동 해방촌으로 온 건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다. 누이, 어린 조카 둘과 살다 보니 물 긷는 건 자연히 내 몫이었다. 동네 수도가 하나밖에 없어 물을 긷는 데 2, 3시간은 족히 걸렸다. 물이 안 나오는 날에는 남산에 올라 숲을 막 헤쳐보면서 물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받으려면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때 아는 노래, 좋아하는 노래 다 부르곤 했다. 데이트하던 아가씨랑 같이 가기도 하고.
대학생이 될 즈음, 부모님이 시골집을 처분하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불광동 부근 독박골에서 살았는데 그때 동생이 죽을 뻔했다. 다락에서 자고 내려오던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나란히 자고 있던 동생 배를 밟은 것이다. 평소에는 ‘짬프’를 잘했는데, 잠결에 그만 실수했다.
“젊은 여자 때문에 본처 버렸다고…”
대학 때부터 ‘쎄씨봉’이라는 경음악감상실에 가서 아마추어 시간만 되면 ‘돈 워리’ ‘월 버튼 마운튼’ 같은 컨트리 송을 불렀다. 돈 받는 건 아니었지만 부르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그러다 이백천, 정홍택 같은 분들이 미8군 악단장에게 다리를 놔줘 미8군 쇼단에 취직하게 됐다. 주말 밤마다 노래를 불렀는데 등록금 6만원은 가볍게 벌었다.
재미있게 노래 부르다 보니 방송에 나와서 노래해보는 건 어떠냐고 해서, ‘딜라일라’를 부르며 가수 데뷔를 하게 됐다. 당시 대학 3학년으로 스물두 살이었는데, 미8군 때 벌이보다 훨씬 좋았다. 데뷔한 지 1, 2년 지난 뒤에는 아파트도 샀다.
그러다 이혼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됐다. 수시로 주는 건 귀찮을 것 같아서 한꺼번에 아이 교육비 몫으로 재산을 다 줬다. 전세 값, 미국에 있던 거 다 계산해줬다. 그때 나는 ‘나한테는 다시 좋은 시절 안 오겠구나’ 생각했다. 사람들이 젊은 여자 때문에 본처 버렸다고, 패륜이라고 욕해서 지금처럼 섭외가 잘 안 왔다. 욕먹을 짓을 했으니까 욕먹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뻔뻔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위축되진 않았다.
개털이 됐지만 금방 옥수동에 월세집을 얻었다. 밤무대를 뛰면 당시 현철 주현미가 500만원이라면 나는 250만원이었는데, 개의치 않고 주어진 대로 즐겁게 일했다. 물론 전에 비해 경제적으론 좀 어려웠지만 그 어려움이 나에게 잔재미를 줬다. 친구들이랑 카페도 가고 술집도 가고, 여자들도 만나고, 책도 읽고. 나처럼 개털인 김홍신, 김한길과 매일 만나서 놀며 더 돈독해졌다. 2년 정도 지나니 사람들이 그걸 잊었는지 다시 섭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놀맨놀맨 하라우”
나는 뻔뻔하고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어려웠던 시절을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재미있게 내 방식대로 살아갈 자신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늘 “놀맨놀맨 하라우”(급하게 하지 말고 놀면서 하라) 하셨는데, 그게 내 신조가 된 셈이다. 그렇게 재미있게 살려다 보니 인생을 즐겁게 살았다.
눈뜨는 매 순간이 위기다. 돈 있는 사람은 돈 아까워하고, 돈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힘들고. 긍정적으로 살면 그만이다. 위기가 닥쳐오면 올 것이 왔구나, 하면 된다. 막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내가 손해다. 남 보기도 추잡스럽고. 쫌스러운 표정 보이면 여자들이 싫어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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