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누가 물어보면 제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윤송이 박사와 결혼한 후엔 그런 말을 안 해요. 주말엔 같이 서점에 가서 책을 각각 열 권씩 사요. 한 주가 지나면 저는 세 권이나 읽을까 말까인데 윤 박사는 다 읽었대요. 책을 얼마나 빨리 읽는지 몰라요. 아기 젖 먹이면서도 책을 보니까요. 진짜 다 읽었는지 믿어지지 않아서 테스트까지 해봤는데 내용을 다 알더라고요."
'리니지'로 유명한 온라인 게임개발업체인 엔씨소프트의 김택진(42) 대표는 지난해 말 최고전략책임자 겸 부사장으로 영입한 부인 윤송이(34) 박사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했다. '천재소녀'란 별명을 가진 윤 부사장은 과학고와 KAIST를 졸업하고 만 24세에 미국 MIT대학에서 공학박사를 받은 후 매킨지 컨설팅 이사와 SK텔레콤 상무로 일했다.
김 대표의 이력도 화려하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재학 시절인 1989년 이찬진씨 등과 함께 '�글'을 공동개발하며 IT업계의 '무서운 아이들'로 이름을 날렸다. 1997년 직원 17명으로 엔씨소프트를 설립해 온라인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 10여년 만에 국내외 직원 약 3000명, 매출 3500억원이 넘는 회사로 키워냈다.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았던 두 사람의 결혼은 세간의 뜨거운 화제였다.
- ▲ 새로 출시한 온라인 게임 '아이온'에 대해 설명하는 김택진 대표. 아이온은 4년간 230억원을 들여 개발됐다. 김 대표는 전날 게임에 열중하다 나와서 초췌해 보일까봐 걱정했다고 한다. /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수수했다. 거뭇한 흔적이 남은 흰색 아크릴 칠판은 사장실이 곧 회의실임을 대변했다. 곱슬머리에 장난기 어린 표정인 김 대표는 평소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두려워 강연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마이크만 잡으면 '에이, 나 별 볼일 없는 사람인데 뭐'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 술술 나온다고 한다. 이날도 그랬다.
―윤 박사가 김 대표보다 훨씬 더 머리가 좋은 것 아닌가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복잡한데,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것만 가지고 되나요?"
―두 분은 처음에 어떻게 만났습니까?
"저희 회사가 우수인재 영입 차원에서 인재를 찾다가 만나게 됐습니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김 대표의 결혼 이야기를 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전 결혼보도가 나왔을 땐 왜 부인했습니까.
"그때 나온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달랐어요. 언제, 어디서 결혼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보도됐는데 그런 계획은 없었거든요. 물론 당시에도 결혼하고 싶었지요. 그러나 장인이 너무 반대를 해서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어요. 보도가 나온 날 아침 신문을 보고 장인이 병원에 실려가셨어요. 저는 '드디어 결혼하느냐'며 축하전화를 여기저기서 받았고요. 그런 일들이 있어서 결국 저희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요."
―'결혼한다'는 건 맞았잖아요?
"진짜 못할 수도 있었어요. 그땐 결혼할 것처럼 인정했다가 못해서 나중에 바보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어요."
결혼보도가 나온 지 4개월 만인 2007년 11월 두 사람은 양가 부모만 모시고 조용히 결혼했다. 결혼사실은 6개월 뒤에 세상에 알려졌다. 김 대표가 재혼인 데다 두 사람의 결혼을 둘러싼 관심이 너무 커서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김 대표는 "극히 개인적인 일을 발표한다는 게 우스운 것 같았다"고 했다.
김 대표에게 결혼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결혼식을 안 했는데 무슨 사진이 있겠느냐"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이 찍은 사진이라도 있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셀카라 잘 나오지 않아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윤 부사장을 영입하는 결정은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저는 사람들이 터부시하는 것도 옳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합니다. 어떤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오해를 무릅쓰고서라도 한다는 입장입니다. 엔씨소프트가 원하는 글로벌 경영을 할 수 있고 전략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윤 박사가 저희 사외이사로 일하는 동안 '이 사람을 데려다 쓰면 회사가 발전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죠."
―현재까지 윤 부사장이 한 일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평가하긴 시간이 짧아요. 잘 돼야지요. 잘 되면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못하면 별별 이야기를 다 들을 겁니다."
―윤 박사에게 월급은 많이 주십니까?
"많이 줄 수는 없어요.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요. 또 모범을 보여야 하니까. 그런 면에선 희생을 해야 합니다. 윤 박사가 투덜대기는 하지요. 하하…."
―부부가 집과 회사에서 24시간 같이 일하는 것도 쉽진 않을 것 같은데요.
"회사에선 일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둘 다 행동을 조심합니다. 직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고요. 회의가 아니면 마주치기도 힘든 데다 제가 새벽 1~2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서로 '얼굴 좀 보고 살자'고 그럽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말 새로운 온라인게임 '아이온'을 출시한 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새 게임을 내놓으면 한 3일 정도 즐거워요. 얼마 지나면 빈 구석이 보이고 모자란 걸 알게 되죠. 게임 하시는 분들이 아쉬워하는 걸 보면 진짜 너무 마음이 아파요. 앞으로 2~3년 보완해가야지요."
오늘날의
김택진을 만든 '리니지'는 신일숙씨의 만화를 온라인 게임화한 것이다. 유럽 중세를 무대로 주인공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왕권을 되찾는다는 줄거리다. 이 게임을 하려면 기사, 요정, 마법사, 군주 캐릭터 중 하나를 분신으로 삼아 괴물과 싸운다. 그 과정에서 힘과 능력을 키우고 동료 게이머와 협력한다. 리니지 게임을 하는 국내 회원 수는 300만명, 전 세계 회원 수는 4300만명에 달한다.
"게임을 만든다니까 배운 놈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그래요. 게임이라고 하면 '도박',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생각을 먼저 하니까요. TV 프로그램에서 지탄의 대상이 된 적도 있어요. 긍정적이고 멋있는 문화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요."
―왜 '온라인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었는데 공대생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가 게임이었어요. '�글'은 사무용이니까 효율성이 중요하죠. 좀 답답했어요. 수출도 해보고 싶었는데 외국에서 '�글'을 쓸 사람들은 교포들뿐이지요. 그래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제품이 되려면 게임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컴퓨터를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처음 보자마자 너무 사랑하다 보니 여자친구에게 차이기까지 했어요."
'�글'을 만든 공대생들에 관한 기사가 주간지에 실린 후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말이 그에게도 현실로 일어났다. '�글'을 알아주고 쓰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전공은 반도체였는데 사람들은 그를 '소프트웨어쟁이'로 보기 시작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후 현대전자에 입사해 보스턴 R&D센터에 근무했다. 그때 인터넷의 초기 형태를 처음 봤고 미국의 벤처기업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볼 수 있었다.
―창업을 하게 된 동기는 뭐였습니까?
"현대전자에 근무하던 동료가 괌에 갔다가 딸을 사고로 잃은 후에 회사를 다니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 너무 마음이 아파 다닐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같이 그만두고 함께 회사를 만든 거죠. 다니던 회사가 당시 좀 어수선하기도 했고요. 사실은 제가 무슨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엔씨소프트는 처음엔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로 시작했다. 게임개발을 시작할 땐 투자자를 찾지 못해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다. 그 돈으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서버를 샀다. 그러고 남은 얼마 안 되는 돈까지 보너스로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막막했다. 집에 돌아와 캄캄한 방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내가 잘못되면 우리 부모님이 이 아이를 잘 키워주시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엔 비가 걱정거리였다. 비가 오면 사무실에 물이 새고 그러면 서버가 누전이 될 수 있었다. 하도 신경을 써서 아파트에 사는데도 가랑비 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였다. 비가 오기 시작하면 사무실로 뛰어갔다. 가보면 직원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그런 열정이 엔씨소프트를 키웠고 '리니지'란 대박으로 이어졌다.
"인터넷에 게임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니까 사람들이 망할 텐데 그런 걸 왜 만드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PC방이 생길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PC방이 곧 인터넷이고, 인터넷 온라인 게임은 리니지뿐이었어요. 리니지가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임이 된 거지요."
그는 요즘도 가끔 PC방에 몰래 가서 고객들이 그가 만든 게임을 하는 걸 보곤 한다.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뉴턴이 어떻게 훌륭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거인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난쟁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수많은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업적 위에 자신이 조그마한 일을 했다는 거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글' 개발이나 게임을 만들 때는 좋아서 했어요. PC방이나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열풍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성공했으니 행복한 인생이군요.
"결과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과정이 행복하진 않아요.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욕을 먹으며 버틴 10년이었어요.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이니 무관심 속에서 합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믿음에 의존해서 해요. 누가 걸어간 길이 아니니 실패를 많이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외로움을 친구로 삼아야 돼요. 여기 게임 판엔 한탕해서 돈 벌려는 사람은 많아도 사명감을 갖고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사람은 드물어요."
―온라인 게임은 중독성과 폭력성 때문에 우려의 대상이죠. 특히 청소년을 둔 부모 입장에선 걱정이 심각하죠.
"중독은 온라인게임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누구나 어딘가에 푹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아이들도 게임을 오래하면 나쁘다는 걸 다 알아요. 부모가 이해를 하고 지도를 하는 게 중요하지요. 폭력성이나 선정성이라고 하면 인터넷까지 갈 것도 없어요. 길거리에 붙은 광고지만 봐도 얼마나 나쁜데요. 게임은 차라리 관리가 되는 분야라고 봐주시는 게 균형이 맞을 겁니다."
―엔씨소프트의 의미가 뭔가요?
"회사 이름을 못 정해서 '다음 회사(next company)'의 약자인 nc를 썼어요. 그후에도 다른 걸 정하지 못해서 그냥 쓴 거죠. 의미가 계속 변해요. 게임 분야에선 '넥스트 시네마(next cinema)'란 의미로, 요즘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회사가 되자는 뜻에서 '네버엔딩 체인지(never-ending change)'란 뜻으로 씁니다."
―김 대표 입장에서 게임은 '놀이'입니까, '일'입니까?
"제가 즐기지 못하면 게임을 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지 못해요. 저는 제작자인 동시에 뛰어난 고객이어야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 게임도 많이 하고 투덜대며 저희 회사 욕도 많이 해야 해요. 그게 다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그런 감정을 유지해야 돼요. 하지만 스스로 상처를 내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지요."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풉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체질이라 운동도 하고 영화도 많이 봐요. 예전에 듣던 음악도 듣죠. 대학 때 실연하고 들은 노래, 눈 오던 날 듣던 노래, 그런 음악을 들으며 옛 생각을 하다 보면 산다는 게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런 거지 싶어서 마음이 편해져요."
―게임 만드는 일을 예술이라고 표현하셨지요?
"감동이 있으니까요. 초창기엔 게임이 단순히 자극과 반응이었지만 기술발전이 표현력의 발전을 가능케 해요. 영화도 처음엔 기차 가는 거나 연극을 찍어서 보여줬어요. 그러다가 영화적 기법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문화가 됐지요. 앞으로 게임의 가치가 재조명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개발하는 일의 매력은 뭔가요?
"사람들이 저희가 만든 게임을 하며 즐거워하는 걸 보는 거죠. 그걸 보는 게 마약이에요. 정말 좋아해주면 그게 혜택이에요."
―작년 말 새로 출시한 '아이온'이란 게임을 만드는 데 4년이 걸렸다고요?
"게임을 만드는 일은 집단창작이에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하는 일은 의외로 적어요. 다 만들고 나면 누구도 자신이 만들려고 했던 게임이 아니라고 말해요. 이런 애매모호한 걸 개발하는 과정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것보다 규모가 크면 컸지 작지는 않아요. 4년 중 1년 반~3년은 헤매는 시간이에요. 창작을 할 때는 좌충우돌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더라고요."
―상상력이 제일 중요하겠군요.
"저희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상상력이죠.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조그마한 생각들을 개선해 나가면서 만들어지는 거죠.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려는 노력, 닥친 문제에 대한 열린 고민을 통해 발전해요. 거기 열정이 있으면 방향이 잡혀요."
―나이가 들어 어쩔 수 없이 머리가 굳는다고 느낍니까?
"전 아직 말랑말랑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극받고 영화, 음악, 책, 오페라 등 많은 일에 저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어요."
―혹시 콤플렉스가 있습니까?
"욕을 워낙 많이 먹고 살기 때문에 면역이 다 됐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에서 댓글을 읽다가 '키도 작은 놈이…'로 시작하는 글을 보고 열을 확 받더라고요. 하하."
―댓글 다는 기능도 직접 만들지 않았어요?
"그랬어요. 그걸 만들 땐 참 좋았는데, 제가 희생자가 됐죠."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이 분야에도 부침(浮沈)이 많으니까 성공이란 것도 허망합니다. 그래도 후배들에게 뭔가 이야기한다면 '너무 모범생으로 살지 마라. 남이 좋다고 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고 네 인생을 네가 살아보라'고 하고 싶어요. 이번에 서울공대에 가보니 비참하더라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그래도 꿈이 있었는데 요즘 이공계는 의대냐 아니냐만 있는 것 같아요."
―안정을 추구하는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편하고 남 보기에 그럴싸한 삶보다는 자기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도전이 의외로 나중에 큰 것을 남길 거라고 봅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도 '네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제일 잘 하라'고 해요."
―고등학교 때는 모범생 아니었나요?
"모범생이었는데 많이 맞았어요. 그땐 밤늦게까지 학교에 학생들을 잡아뒀어요. '야간학대'였어요. 그게 싫어 도망갔는데 선생님이 '네가 도망을 가면 다른 애들에게 모범이 되겠느냐'며 팼어요. 맞고 기절해서 양호실에 갔지요. 그래도 일주일 후엔 또 도망을 갔어요."
―불황 때 게임산업은 사정이 어떻습니까?
"게임은 제일 싼 오락이잖아요. 가격경쟁력이 있으니까 오히려 불황 때 인기가 있어요. 그러나 외국에 게임개발 외주를 주거든요. 환율이 좋지 않으면 제작비가 많이 들죠."
―'신세대 주식갑부'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습니까?
"언론엔 제가 부자라고 나오지만 저는 주식을 사본 적도, 팔아본 적도 없어요. 그냥 월급쟁이죠. 제가 '�글' 개발할 땐 사람들이 참 따뜻하게 대해 줬어요. 그런데 '부자다', '돈이 얼마 있다' 이런 식으로 알려지니까 그 다음부턴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엔 관심이 없고 부자들은 어떻게 살까에 대해서 호기심을 보이더라고요. 당황스럽지요."
―게임 외에 다른 분야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하려고요. 얼마 전에 영국에서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경쟁력이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라고 했는데, 중국이 워낙 열심히 하고 있어서 어려울 겁니다."
―경영자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변화를 관리하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복잡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고요.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고 거기로 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위험을 관리해야 해요. 뭐든 하다 보면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다는 게 진리예요. 실패 관리에 대한 생각이 없으면 대부분 무너져 내려요."
―직원들이 유독 젊어 보이던데 김 대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정도 될 겁니다. 직원들은 저에게 '사장 아저씨'라고 많이 불러요. 그게 저도 편해요."
―20년 후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IT업계에서 일한 지 20년 가까이 됐습니다. 같이 출발했던 사람들 중 지금도 활동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저는 칭찬 받을 때나 궂은 일이 생겨서 비난받을 때나 이 자리를 계속 지키면서 고민하고 발전시키고 싶어요. '저 사람이 저 일 하나는 열심히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요."
엔씨소프트는?
-1998년 온라인 게임 '리니지' 개발.
-2003년 '리니지Ⅱ', 2005년 '길드워', 2008년'아이온' 출시.
-2000년 이후 미·일·중, 대만, 태국, 유럽 등 진출.
-국내외 직원 약 3000명.
-2008년 매출액 약 3500억원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