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사자을 만났다. 갑자기 피할 길이 없자 젊은이는 칡넝쿨을 잡고 우물속으로 몸을 피했다. 우물 바닥에는 새파란 독사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위에는 사자요, 아래는 독사떼가 기다리는 절박한 상황이다. 여기다 설상가상으로 위를 보니 흰쥐,검은 쥐가 나타나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한다.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하늘을 보니 우물곁에 있는 나무 위 높은 가지에 벌통이 있는데 벌통에서 꿀이 넘쳐나 똑 똑 떨어지고 있지 않은 가?
그 꿀을 먹으면서 살아나가게 된다...
나에게 독서란 절박한 인생에서 배고픔에 꿀을 먹는 것 같다. 그 꿀을 먹고 취하는 휴식 같은 존재, 이 존재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며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일 것이다...
하루 하루 열심히 땀을 흘리면서 살아가는 요즈음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지구라는 거대한 촌에서도 한국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나란 존재는 어쩌면 미미하고 약한 존재이다. 약한 존재이지만, 삶이란 치열한 전장에서 짬을 내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것에는 대한민국 1%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내 처해있는 현실이 불 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난관에 부닥치는 여러 일들이 많았어도 세상에서 나를 평등하게 가장 잘 해주었던 것은 독서라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어느 낯모를 간이역에서 봄 햇살을 맞으며 읽는 즐거움,낙엽이 떨어지는 가을날 놀이터 벤치에서 읽는 독서의 즐거움,약간의 술에 취해 오래전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은 나에게 작은 감동과 삶의 여유를 가져다 주고는 한다. 각박하고 많은 일들이 총알처럼 빠르고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간의 다툼속에서 올바른 길과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은 독서라는 작은 내안의 울타리에서의 휴식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루을 마감하고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들을 보고 아내에게 하루의 안부를 묻고 바라보는 서재의 책들을 보노라면 흐뭇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한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좋은 책을 읽었고 저렇게 좋은 책을 모았다는 자부심의 일이다. 저 많은 책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하다.오늘도 안녕하셨냐고... 고생 많으셨노라고 내 자신을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나는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독서는 자신을 키우는 거름 같은 존재이다. 거름의 시작은 썩고 냄새를 동반하지만 그 것이 뿌리를 강화하고 생각의 나무에 새로운 살을 돋게 하고 잔 가지를 나뉘고 열매를 맺게 한다.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 뿜어 보는 이들과 맡는 이들의 눈과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나에게 이제는 몸의 한부분이다.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나에게 책읽기는 하루를 살아가는 소중한 부분이다. 중독되었다. 그렇다. 중독되기를 바랬는 데 이제 정말 중독이 된 듯 하다.
독서를 함으로써 내 자신이 커가는 것을 느낀다.
항상 걷기만 하는 사람이 뛰는 듯한 느낌이, 내 몸 어느 곳에서 날개가 달린 듯 이 가끔은 이유없는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요즘 서재의 책들을 보면 흐뭇하다.
거실에 있는 서재의 책장을 보노라면 2천권 가까이 되는 듯 한데 한권한권의 사연이 있기에 어린 자식들 보는 착각이 든다.
내가 직접 서점에 들려서 구입한 책들, 알라딘 서점에서 주문한 책들, 어느 병원이나 남의 집에서 한권 빌리거나 위치이동한 책들, 재활용쓰레기 버리는 날 주워온 책들...
어느 한권 소중하지 않은 책들이 없다.
키케로는 말했다. <서재가 없는 방이야말로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책을 읽지 않고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 갈 것인지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두운 밤길을 운전 할 때 라이트 불빛을 켜지 않고 어떻게 운전을 할 수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봄이 다가오고 있다. 씨앗을 뿌리는 계절이 다가오는 것이다. 이제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도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