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헌
벌교에 가면 강대인이라는 농사꾼이 있다. 체격은 무골(武骨)인데, 얼굴 눈빛은 도사 같고, 풍기는 체취는 털털한 농사꾼이다. 시간 날 때마다 팔영산(八影山)에 가서 기도를 한다. 이 사람의 주특기는 쌀농사이다. 다섯 가지 색깔이 나는 '오행쌀'을 재배한다. 붉은색 쌀도 있고, 푸른색, 검정색 쌀도 있다. 강씨는 농사를 지을 때 천문(天文)을 살핀다. 하늘의 별자리에서 오는 기운이 지상의 생물이나 식물의 발육, 성장에 미세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을 편다. "농사는 무엇인가?" "농(農)자를 보라! 곡(曲)자 밑에 별 진(辰)자가 합쳐져 있다. 농(農)은 '별들의 노래'인 것이다".

그는 농사를 별들의 노래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과일이나 채소를 비롯한 식물들은 보름 전까지 기운을 끌어올린다. 그러다가 보름 이후부터는 기운을 내려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믐에 수확을 해야 열매가 알차다. 초순에 수확을 하면 좋지 않다. 토마토도 음력 보름에 수정을 하면 좋다. 그믐에는 수정하는 능력이 약해진다. 파종(播種)도 될 수 있으면 오전에 하는 것이 좋다. 새벽에 씨를 뿌리면 더 좋다. 이식(移植)은 오후에 하는 게 좋다. 그는 쌀의 수확도 다른 사람보다 늦게 한다. 24절기 중에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이후에 수확을 하면 쌀의 질이 좋아진다고 한다. 식물의 잎사귀가 넓으면 칼슘이 많이 필요하다. 칼슘 성분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면 별에서 그 기운을 받아야 한다. 목성(木星)의 기운은 '규소' 기운이라 빳빳하다. 빳빳하면 병충해가 적다. 대나무를 벼 주변에 꽂아 놓으면 병충해가 적다는 이론이다.

"이러한 공부는 어디서 했는가?" "내가 터득한 것도 있고, 루돌프 슈타이너(Steiner·1861~1925)에게 많이 배웠다. 별들의 힘이 식물을 키운다는 '바이오 다이내믹' 이론의 창시자이다. 스위스 바젤에 가면 슈타이너가 설계한 '괴테아눔'이라는 건물이 있다. 1년에 한 번씩 45개국 사람들이 여기에 모인다. 건물 모습이 사람 얼굴처럼 생겼다. 장군대좌(將軍大座)에 잡은 터이다". 기회가 닿으면 장군대좌의 명당에 자리잡고 있다는 '괴테아눔'이나 한번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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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10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송순(1493~1582)은 초가삼간(草家三間)을 지어놓고 이렇게 읊었다. 나는 10년을 적금 부어 황토로 지은 토가삼간(土家三間)을 마련하였다. 축령산 자락의 휴휴산방(休休山房)이 그것이다.

아궁이에다가 소나무 장작, 편백나무 장작을 집어넣고 2시간 동안 달구어 놓으면 구들장이 쩔쩔 끓는다. 방문을 열어놓고 이 구들장에 앉아서 멀리 저녁노을에 잠겨 있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노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기쁨'을 느낀다. 옛날 고사(高士)들은 이러한 기쁨을 가리켜 '불환삼공지락(不換三公之樂)'이라고 하였다. 자연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삼공(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벼슬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배가 고프면 산방 뒤의 축령산 자락을 넘어간다. 산을 넘어가면 밥을 줄 사람이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길인데, 이 길은 50년 동안 조성한 편백나무 숲길이다. 날씨가 흐린 날 아침에 이 길을 걸으면 편백의 향기가 길에 낮게 깔려 있어서 산보자의 온몸을 감싼다. 마침내 세심원(洗心院)에 도착한다. 축령산의 살롱이다. 지인들이 가면 마음씨 후한 집주인은 손수 기른 상추와, 손수 담은 된장에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을 내놓는다. 50대 중반의 집주인은 군청 공무원 하다가 그만두고 세심원에 들어와 아는 사람들 밥해 주는 것을 낙으로 삼는 인생이다. 물론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너브실의 애일당(愛日堂)으로 간다. 대밭으로 둘러싸인 3500평의 고택인 애일당에는 15년째 백수로 살면서 내방객들과의 한담(閑談)을 업으로 삼는 집주인이 살고 있다. 마당에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인근의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이 모여 밤과 고구마를 구워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정수입은 없지만 결코 굶어 죽지는 않는 클럽이 바로 '방사클럽'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죽설헌(竹雪軒)에 모여, 연잎으로 싼 찰밥을 먹으며 방사(方士)들끼리 우의를 다진다. 월급 안 나온다고 굶어 죽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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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헌
옛날 서양도사는 성경에 나오는 동방박사였다. 동방박사는 별을 보고 예수의 탄생을 예언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 도사는 별을 보고 앞일을 예측했다면, 요즘의 서양도사는 돈의 흐름을 보고 세상변화를 예측한다. 옛날 도사는 밤하늘의 별빛을 관찰했지만, 요즘 도사는 모니터 앞에 앉아서 돈의 흐름을 관찰한다. 별에서 돈으로 관찰대상이 바뀐 것이다. 돈의 흐름을 미리 예측해서 세상 인심을 진정시키는가 하면, 인심을 돌릴 수도 있는 사람이 현대의 도사이다.

내가 보기에 미국워런 버핏은 바로 그러한 서양도사의 전형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우선 얼굴 생김새부터 깊고 그윽한 느낌을 준다. 결코 경박한 얼굴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상대방의 심장을 꿰뚫어보는 것 같은 형형함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월가에 공황태풍이 몰아치고 있는 이때에 버핏은 "지금이 미국주식 사야 할 때"라고 외치고 있다. 공자님도 사판(事判:현실세계의 판단)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시중(時中:가장 적절한 타이밍)을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버핏은 지금이 바로 그러한 '시중'(時中)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왜 지금이 '시중'인가? 왜 지금이 주식을 사야 할 때인가? 그는 "다른 사람이 탐욕을 낼 때는 두려워해야 하고, 두려워할 때는 욕심을 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러한 주장은 음중양(陰中陽), 양중음(陽中陰)의 이치를 그대로 설명한 것이다. 불행 가운데 기회가 있고, 행복 가운데 위험이 있다는 이치는 주역(周易)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하루 24시간이 밤만 계속되는 일은 없고, 낮만 계속되는 일이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버핏이 지금 내린 판단을 주역의 64괘로 환산하면 24번째 '지뢰복'(地雷復) 괘이다. 위에는 모두 음효(陰爻)가 있는데, 맨 밑바닥에 양효(陽爻)가 하나 있는 모양이다.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를 지뢰복 괘로 설명한다. 동지 다음 날부터는 조금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지뢰복은 '바닥을 쳤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닥이란 말인가? 과연 버핏이 뽑은 지뢰복 괘는 적중할 것인가? 이는 시간이 지나 보아야 안다. 이번에 지뢰복 괘가 맞는다면 버핏은 금세기의 예언자 반열에 올라갈 것이다.

입력 : 2008.10.21 22:08 / 수정 : 2008.10.2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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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가는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등산(登山)이요, 하나는 입산(入山)이다. 등산이 땀 흘리고 운동하는 산길이라면, 입산은 삶의 궁지에 몰렸을 때 해답을 모색하고 구원을 갈구하는 산길이다. '통즉등산(通則登山)'이요, '궁즉입산(窮則入山)'인 것이다. 잘나갈 때는 등산을 하지만,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는 입산을 한다는 말이다. 이집트 왕자인 모세가 온통 바위로만 이루어진 골산(骨山)인 시나이 산으로 간 것은 입산이요, 주말마다 산악회에서 버스 대절하여 산에 가는 것은 등산이다.

오늘날 한국의 중년남자들이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리면서도 그나마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 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발 1000m 내외의 산들이 등산하기에는 최적이다. 나무와 약초가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산들이다. 3000m를 넘어가는 산은 춥기만 하고 사람을 압도한다. 3000m 넘어가면서부터는 '죽은 산'이다. 미국의 로키산맥은 너무 웅장하여 사람을 압도한다. 사람이 놀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한국은 적당히 놀기에 좋은 '살아 있는 산'이 국토의 70%나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등산 천국의 지리를 갖추었다. 이는 천혜의 축복이다. 한국이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산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보통 바위산을 5~6시간 정도 타고 나면 대략 1주일분의 에너지를 섭취한다. 내가 다녀본 고단백 에너지 코스는 설악산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평균 6시간 걸린다. 이 코스의 특징은 계속해서 바위 계곡을 타고 간다는 점이다. 설악산의 단단한 화강암에서 나오는 화기와 계곡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기가 이상적으로 버무려져 있는 산길이다. 6시간 정도 올라가다 보면 몸 안의 탁기는 다 나가고, 싱싱한 생기가 충전된다. 그 충전이 한 달은 가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 금강산을 찾았던 소태산(少太山·1891~1943)은 '금강현세계(金剛現世界) 조선갱조선(朝鮮更朝鮮)'이라고 예언하였다. 지금은 비록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지만, 금강이 세계에 드러나니 머지않아 조선이 거듭나게 된다는 희망적인 예언을 하였던 것이다. 복잡한 상황일수록 산에 자주 가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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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세상을 뜬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는 암 투병 환자에게 희망의 아이콘이었다. 병상의 환자들은 '내 생애 단 한 번: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같은 그의 글을 읽으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고통을 이겨냈다.

생을 놓고 투병 중인 암 환자들의 머리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을까.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암 센터를 찾아 5월 도서 대출 목록을 살펴봤다. 수양서(修養書)나 삶에 대한 예찬을 주제로 한 것이 대부분이지 않겠냐고 예상했다. 이 예상은 딱 절반만 맞았다.

희망·사랑 전하는 수필류 강세

'괜찮아, 살아있으니까'의 대출 빈도가 눈에 띄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승들이 전하는 따뜻한 위로'라는 부제(副題)처럼 박완서·이해인·정호승·최일도 목사·조류연구가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산악인 엄홍길 등 25명이 힘든 시기를 사는 이들에게 전한 따뜻한 메시지들이다.

이 책에는 장 교수의 글 '내 뜰의 나무'도 있다. "하트 같은 예쁜 모양의 잎새들, 100일간 피는 꽃, 바다 냄새 같은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 '영희나무'의 겨울은 아주 길 것이다. 겨우내 생명을 향한 몸부림으로, 더욱 환한 세상을 향한 그리움으로(…) 아름다운 그 탄생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이효은·이은아·박소라(왼쪽부터)씨가 암 센터 환자들에게 전달할 병실 이동문고를 정리하고 있다. /채성진 기자

31개의 일화(逸話)를 수록한 '서른한 개의 선물', 이문세·손미나 등 방송인 24명이 전하는 '괜찮아, 웃을 수 있으니까', 제주 바닷가 마을에서 김민수 목사가 전하는 '희망 우체통', 성석제의 소설집 '지금 행복해'도 환자들의 '즐겨찾기' 목록에 있었다.

자원봉사자 박미혜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 조지 메이슨대 연구교수로 활동하는 정유선 박사의 자서전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를 읽은 암 환자들이 새로이 '투병 의지'를 얻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맑고 향기롭게', '산에는 꽃이 피네' 같은 법정 스님의 산문집은 책 표지가 다 해져 테이프로 붙여 놓아야 할 정도로 환자들이 읽고 또 읽었다. 박씨는 "바깥 나들이를 못하는 환자들이라서 그런지 해외 관광 도서나 곽재구의 '포구 기행' 같은 여행 에세이도 즐겨 찾는다"고 했다.

배희진 의료정보센터 의학정보팀 주임은 "입원 환자용 도서는 5000여권 정도"라며 "노인과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6월 중 오디오 북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했다. 전신 화상을 딛고 일어선 이지선씨의 '지선아 사랑해' '오늘도 행복합니다' 같은 에세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소설과 어린이 명작 시리즈를 담은 mp3 플레이어가 제공된다고 한다.

'만화 삼매'로 병상 고통을 잊는다

만화책에 대한 환자들의 수요는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이 병원에서 5년째 자원봉사를 하는 박경자씨는 "웃을 일이 별로 없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부담 없이 웃게 만드는 만화책을 적잖이 선택한다"고 했다. 암 센터 도서 대여 순위의 최상위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食客)'이 차지했다.

"투병 기간 동안 못하는 별식(別食)·별미(別味)에 대한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박경자) 배희진 주임은 "베스트셀러와 에세이 위주로 선정했는데 만화 수요가 높아 깜짝 놀랐다"며 "식객은 20세트가 있는데도 빌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도 인기다.

알콩달콩한 만화를 찾는 환자도 많았다. 만화 스토리 작가인 철수와 14살 연하의 나이 어린 신부 영희, 딸 지우가 나오는 허영만·김세영의 '사랑해' 연작이 그것이다. 작지만 아름다운 일상이 감동을 자아낸 듯 책장 곳곳이 얼룩져 있었다. 과학 학습만화 'Why? 시리즈'와 '마법 천자문', 그리스·로마 신화를 빌려 책 표지가 닳도록 몇 번씩 읽는 어린이도 있다고 했다.

박경자씨는 "개인적으로는 췌장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 간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권하고 싶지만 책 제목의 '마지막'이란 단어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고 했다. 책 내용과는 상관 없이 제목에 나온 '죽음'이나 '최후' 같은 단어가 환자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계속돼야 해!' 메시지 선물도

암 센터 지하 1층의 암 교육센터에는 암에 대한 일반 도서, 환자 투병기, 호스피스 관련서가 꽂혀 있었다. '당신은 우리의 영웅입니다', 이병욱 박사의 '암을 손님처럼 대접하라', 한만청 박사의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같은 책들이다.

대한 암 협회가 펴낸 책 '암은 이렇게 이겨낸다… 희망 21인의 이야기'는 '암은 난치병이긴 하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여기 모인 암 극복 수기가 그 희망의 증거'라며 '암(癌)중 모색' 중인 환자를 격려하고 있었다.

한 암 환자는 독일의 전문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 23명의 모습을 기록한 '마지막 사진 한 장'을 읽고 있었다. 그는 말기 암 투병 환자들이 수줍게 찍은 사진과 몇 년 혹은 몇 개월 뒤 사망한 뒤의 사진이 있는 책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암 투병 중인 친구의 병문안을 왔다는 한 30대 남자는 음료수 박스 대신 암 교육센터 옆 선물의 집에서 '365 매일 읽는 긍정의 한 줄'을 선물로 골랐다. '소소한 일에 초연해지자'(1월 1일)는 글귀로 시작해 '삶은 계속되어야 해!'(12월 31일)라는 글귀로 끝나는 희망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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